“우, 우리 다른 던전 가면 안 돼?”
“왜?”
“왜, 왜냐니! 여기 개미굴이잖아! 엄청 커다란 개미가 우글거리는!”
높은 돈벌이에도 불구하고 개미굴은 헌터들 사이에서 그리 인기 있는 던전은 아니다.
특히 여성 헌터들 사이에서 더욱 그렇다.
왜냐면 여기 나오는 개미의 크기가 자기들 하반신만 하거든.
심지어 떼로 몰려다닌다.
한 무리에 대략 열에서 스무 마리 정도?
“야, 이 새꺄!”
험상궂은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고 서 있던 신유정이 갑자기 달려들더니 내 멱살을 잡아 쥔다.
“네가 적절한 던전 알아본다고 믿었는데, 개미굴을 골라?!”
“뭐야, 너도 개미 싫어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건 좀 의외인데.
설마 녀석이 곤충을 무서워할 줄이야.
가만히 앉아서 사태를 관망하는 서연이의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굳이 말은 안 하지만,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느낌.
모두가 반쯤 패닉에 빠져 있는데 유일하게 엘레나만이 침착했다.
“도진, 여기 돈 잘 벌립니까?”
“그렇지. 아마 지금 우리 수준으로 갈 수 있는 곳 중에선 Top 3 안에는 들 거야, 아마도.”
“흐응…! 그렇습니까.”
콧바람을 쒸익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는 엘레나.
어라.
그녀의 눈이 이상하다.
“그럼 갑시다…! 나, 여기서 돈 많이 법니다!”
눈동자가 달러 표시로 바뀐 건 내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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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이 좀 거셌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자기들도 알고 있거든.
이제 와서 칭얼거려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신청 완료된 던전의 공략을 포기할 합당한 사유는 파티원 중 일부 또는 전체가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아프거나, 천재지변 또는 그에 준하는 일이 생겼을 경우뿐이니까.
“자자, 기운들 내. 결국 너희 모두 날 믿어서 던전 선택권을 넘겨준 거잖아?”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하는데 신유정이 피식 웃으며 뇌까린다.
“그래, 믿었지. 설마 개미굴을 선택할 거란 생각은 안 했으니까.”
어휴, 저 밉상.
“내가 왜 이 던전을 택했는지,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알게 될 테니까 나 믿고 후딱 해치우고 나오자. 응?”
그래도 어쩌겠나.
이제 고작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핏덩이들, 내가 어르고 달래서 보듬어 줘야지.
어차피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거다.
던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왜 내가 이 던전을 택했는지 금방 알게 될 테니까.
“에효, 그래. 이미 신청된 거 무를 수도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금세 체념한 신유정이 무기를 들어 올린다.
서연이도 마찬가지.
벽에 대고 있던 등을 떼어내며 검을 뽑는다.
“으으…, 나 곤충 진짜 싫어하는데.”
임나은은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표정을 보니 곤충을 정말 싫어하는 모양.
나는 녀석의 팔을 붙잡고 등을 토닥이며 몸을 일으켰다.
“나은아, 걱정하지 마. 네 앞으로 개미가 다가오는 일은 없을 거야.”
“…진짜?”
“약속할게.”
약속까지 운운하고 나니 나은이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진다.
“후….”
아직 던전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치는 느낌이냐.
이것들 사람 구실 하게 만들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잠재력 하나만큼은 다들 뛰어난 애들이니까 열심히 보듬어 봐야지.
여기 있는 녀석들이 내가 생각한 대로 자라만 준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파티로 손꼽히는 손시우 파티도 능가할 수 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그럼 탱커 먼저 진입하자.”
“음!”
“들어간다.”
신유정과 엘레나가 순서대로 균열에 손을 얹어 던전 안으로 향한다.
“다음은 서연 선배.”
“응.”
일단 포지션 상으로 근접 딜러까지 겸할 수 있는 서연이를 보내고.
“나은아.”
“으, 응….”
뒤를 이어 나은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가까스로 손을 뻗는다.
곧이어 나도 손을 뻗어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일순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가 서서히 시야가 회복된다.
어둡고 습한 동굴 내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개미굴에 입장하셨습니다.]
축축하고 끈적한 숨이 코를 타고 흐른다.
난 솔직히 개미보다 여기 공기가 너무 습하고 끈적거려서 별로더라.
“작전 설명할 테니까 일단 모여봐.”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일단 원활한 시야 공유를 위해 광원부터 만들어야겠지.
「라이트(Light).」
빛의 세기를 섬세하게 조절해 만든 광원을 팀원들의 머리 위에 띄운다.
너무 밝으면 멀리 있는 적들에게 쉽게 발각될 수 있어서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이제 작전을 설명할 차례.
“개미굴이 가장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는 사람?”
“물량.”
신유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맞아, 물량이야.”
이곳에서 나오는 개미 몬스터의 정식적인 명칭은 ‘빅 앤트(Big Ant)’.
최소 열 마리에서, 많게는 스물, 서른 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군집형 몬스터.
특징은 단단한 갑각과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
단단한 몸뚱어리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날카로운 이빨로 야금야금 뜯어 먹는 게 특기인 놈들이다.
그로 인해 가장 많은 불편을 겪는 포지션은 바로 탱커다.
수십 마리가 떼로 들러붙어서 몸 여기저기를 깨무는데, 이게 또 상당히 따끔하고 아프거든.
고통은 자세를 무너뜨린다.
수도 없이 깨물리다 보면 탱커의 자세는 흐트러지고, 그 순간 한 끼 배부른 식사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 뒤의 결말 또한 정해져 있다.
탱커가 무너진 파티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도미노와 같다.
개미들에게 물린 탱커의 자세가 무너져내릴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파티는 전멸한다는 뜻.
“이번 공략의 메인 탱커는 엘레나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유정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당장에라도 윽박을 지를 것처럼 보였으나, 녀석은 의외로 그러지 않았다.
다만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아직 김정훈 약발이 먹히고 있는 모양.
“방패의 차이지.”
신유정과 엘레나.
탱커인 두 사람의 포지션을 조금 더 세분화하면 각각 딜탱과 퓨어 탱커로 나뉜다.
무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유정은 오각형의 카이트 실드와 숏소드를 쥐고 휘두른다.
반면 엘레나는 온몸을 가리는 타워 실드 하나.
“타워 실드를 든 엘레나가 전방을 막아서고, 유정이 네가 뒤에서 엘레나의 몸에 달라붙는 개미를 떼어주는 게 맞아.”
신유정의 방패는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상반신을 커버하는 게 한계다.
결국 개미들이 물어뜯을 수 있는 틈이 더 많다는 뜻이고.
반면 엘레나는 제 앞만큼은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
거기에 신유정이 옆과 뒤를 견제해주면 더 수월할 테지.
“엘레나의 광역 CC는?”
“그건 걱정하지 마. 너희는 아마 거의 움직일 일이 없을 테니까.”
개미 녀석들을 아주 손쉽게 해치울 방법을 만들어 왔거든.
“서연 선배도 이번에는 마법사로 갑니다. 검 휘두를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알았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내비치는 서연이.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검을 휘두르지 못할 거라는 말에 아쉬움을 느낀 듯했다.
이상하네.
언제부터 검을 저렇게 좋아했대?
“대충 설명도 끝났으니까 나은이 마법만 저장하고 출발하자.”
“응, 잠깐만….”
나은이의 손바닥에서 샘솟는 방울.
그 안에 마법이 차곡차곡 쌓인다.
준비된 마법은 총 여섯 발.
저 정도면 타격지점만 잘 잡으면 한 부대는 녹여버릴 수 있겠지.
“그럼 출발.”
“흐응…! 나, 앞장섭니다.”
엘레나가 기세등등하게 타워 실드를 쥐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뒤를 신유정이 바짝 따라붙고, 우리 세 사람은 대략 3m 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걸어갔다.
“음….”
앞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걷는데 빈부격차가 느껴진다.
중요한 곳마다 단단한 방어구로 감싸고 있는 신유정과 달리, 엘레나는 좀 휑하다.
탱커의 장비값은 마법사 다음이다.
원체 두껍고 단단한 걸 사용하다 보니 그만큼 단가가 높다.
타워 실드 마련하느라 다른 방어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거겠지.
저런 데에 물리면 많이 아플 텐데….
“다들 준비합니다!”
콰앙!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엘레나가 방패를 땅에 내려찍으며 우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왔다.
희미한 불빛 너머로 번뜩이는 수십 쌍의 눈빛.
개미 떼의 등장이었다.
“수는?”
“십오입니다!”
“그럼 아까 얘기한 대로 탱킹 시도해.”
“흐응…!”
콧바람을 내뿜으며 달려드는 개미와 충돌하는 엘레나.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거무죽죽한 마력들이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광역 감속 지역의 발현.
“윽…!”
옆에 서 있던 신유정이 발을 몇 번 구르며 눈살을 찌푸린다.
못해도 3할 이상은 느려졌을 테니, 움직이지 않아도 그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다.
“신유정! 엘레나 잘 보호해!”
“알고 있어!”
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개미들이 이빨을 들이밀며 사방으로 들이닥치고, 엘레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방패를 흔들며 개미를 떨어뜨린다.
신유정도 마찬가지.
자신을 노리는 개미의 머리를 방패로 후려치고, 엘레나의 등을 노리는 개미에게 숏소드를 휘둘러 거리를 벌린다.
“생각보다 수월하네.”
이는 두 가지 요인 덕분이었다.
첫 번째는 두 사람의 합이 생각 외로 잘 맞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엘레나의 특성이 쉴 새 없이 몰아붙여야 빛을 발하는 개미들의 발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점.
덕분에 녀석들의 파상공세에 허점이 생겨나고, 그만큼 수비가 수월해졌다.
“나은아, 타격 준비.”
“응…!”
실전을 치르는 마법사에게 중요한 것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법을 쏘아낼 위치.
즉, 타격지점을 정하는 것이다.
마법을 만들어내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모두 탱커들의 피.
그러니 한 발, 한 발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지사.
“쏠게…!”
마침내 쏘아진 여섯 발의 마법.
전부 초급 마법인 파이어볼이었다.
퍼어엉-!
퍼엉!
차례대로 날아간 여섯 발의 화구가 개미들의 한복판에 떨어져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
키리릭!
키릭…!
폭발과 함께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 부위들이 허공에 비산한다.
“서연 선배.”
“응.”
“발이 느려져도 괜찮다면 직접 가서 마무리해도 좋습니다.”
“알았어…!”
크게 티는 내지 않지만, 곧장 달려 나가는 것만 봐도 기쁘다는 걸 알겠다.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되는 명령이지만, 던전에서는 작은 불만도 화가 되는 법이니까.
여유 있을 때 적절하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쏜살처럼 개미의 무리 속으로 파고든 서연이가 검을 휘두른다.
퍼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