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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95화 (195/250)

[195화] 10장-계약협상

'..다시 자고 싶다.'

스승님에 의해 강제로 일어나 잠이 부족한 상태로 배를 채운 상황.

나는 우선 세수라도 하며 잠을 깨보기 위해 화장실을 향해 거울을 살펴봤고

"...뭐야 이건."

못 본 사이에 머리카락 곳곳에 흰색 머리카락이 많아진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사이에 폭삭 늙었나 했지만 자세히 보니 늙어서 나오는 그런 흰머리가 아니라 은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이었는데 나는 이 머리카락 색을 이미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성녀님?'

화면 너머로 보던 성녀님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깔.

'그러고 보니 아직 통신은 안되나?'

성녀님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강림할 때 그 간섭력이란 걸 너무 많이 쓴 모양인지 호출은 물론 상점창도 열리지 않았다.

딱히 걱정이 되진 않았다.

사실 연락이 끊기면 좋은 건 이쪽이기도 하고.

'힘들게 계약까지 받아낸 마당에 그냥 놓아줄 리가 없지.'

놓아줄 거면 그 전에 놓아줬지 이제 와서 놓아주진 않을 거다.

아무튼 이걸로 이제 피하지도 못한다.

그 거래를 하지 않았으면 스승님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지도 못했을 거고 아마 당아영은 거기서 죽었을 테니 딱히 후회하진 않는다.

'1만 포인트면.. 얼마나 걸리려나.'

정석 대로라면 하루에 1포인트씩 약 27년이다.

근데 여소천이랑 뒹굴 때마다 포인트가 계속 증식하니 그것보단 훨씬 빠를 거다.

어쩌면 1~2년 정도로 다 모아버릴 수도 있고.

'여소천이랑은 섹스리스로 지내야 하나.'

1만 포인트가 채워지는 순간 저쪽 세계로 끌려가는 계약이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려면 그러는 수밖...

...잠깐만.

'...포인트 소모를 막는 내용이 계약에 있었나?'

잠시 영혼에 새겨진 계약서의 내용을 다시 살펴봤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포인트의 소모를 막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 이거 그냥..

[아 드디어 복구 됐다! 괜찮으신가요 용사님! 그때 간섭력이 다 떨어져서 마무리를 못하고 돌아가 버렸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으셨네요! 정말 다행..]

'1만 포인트 모이기 전에 다 소모해버리면...'

[어.]

'어.'

하필 딱 그 부분에서 통신이 복구 되는 바람에 한동안 그 상태로 우리 사이에 정적이 이어졌고

[자, 잠깐만요. 포인트 소모를 못하게 막는 조항이 계약서에 없었다고요?]

'..진짜 없었는데요?'

[거짓말 마세요! 제가 분명히 넣었... 진짜 없네?!]

'...'

당연히 성녀님도 바보는 아니라 그런 조항은 넣어 놨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약서에선 빠진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순간 개꿀이라고 생각할뻔 했지만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성녀님이기에 의도적으로 생각을 조절했다.

지금 상태의 성녀님을 자극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혹시 몰라서 조심스럽게 성녀님의 표정을 확인해보자..

-퀭

'어우.'

절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얼굴에 붙여놔도 이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성녀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진 못하리라.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번에야 말로 용사님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지, 진정하세요. 어차피 계약이 됐었어도 1만 포인트는 모아야 갈 수 있었잖아요.'

[그러면 뭐해요! 어차피 용사님이 1만 포인트가 모이게 두질 않을텐데!]

이런. 들켰네.

'에이 그래도 기껏 계약까지 하고 받을 것도 다 받아 먹었는데 그래 놓고 그러긴 양심이 좀 찔리죠. 제가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ㅇ..'

[심층의식도 다 읽혀요! 아까 절 자극하면 안된다니 뭐니 하던 것도 다 들었다고요!]

음. 이건 몰랐네.

기껏 노력했는데 다 쓸모없던 모양이었다.

[으으.. 어떻게 해야 용사님의 포인트 소모를 막을 수 있을까요.. 아예 상점창 물건들을 다 없애버리면..]

'아예 폐쇄해버리는건요?'

[그러면 포인트 자체가 안 쌓여버리잖아요. 제가 그렇게 바보로 보이세요?]

'칫.'

[음.. 이미 등록된 물건을 내려버리는 건 힘이 좀 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겠네요. 우선 1000포인트 이하 아이템들은 다 없애버리면 당분간은 걱정 없겠죠.]

잠시 성녀님의 눈을 돌려보려고 시도하는 사이 상황은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간신히 찾은 탈출구가 다시 막힐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나 심층의식도 읽히는 마당에 어중간한 수작질은 통하지 않을 터.

수작을 부리더라도 통할 수밖에 없는 수작으로 부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그런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성녀님?'

[왜 부르세요? 대놓고 수작을 부린다고 읽힌 뒤에도 상대한테 통할만한 수작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자신..]

'잠시 이쪽을 봐보시겠어요?'

-스륵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과감하게 옷을 풀어헤쳐 버렸다.

망토도 벗어던지고 안에 입고 있는 옷도 줄을 풀어 고정을 푼 뒤 나풀 거리는 상태로 몸에 걸치고 있는 상황.

-꿀꺽

[...미, 미인계는 안 통해요! 제가 지금까지 용사님 화보를 몇 번이나 찍었는데!]

확실히 지금까지 성녀님이 요청한 자세 중엔 정말 아찔한 자세도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내성이 조금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같은 배우 여러 번 본다고 안 꼴리는 게 아니거든.

-스르륵

나는 의도적으로 팔을 소매 안쪽으로 집어넣어 밖으로 손이 드러나지 않게 하며 그 상태로 몸과 옷의 각도를 조절했다.

속옷도 이미 벗은 상태라 정말 조금만 실수하면 바로 중요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

옆에 있던 의자에 무릎을 올리며 몸을 좀 더 비틀었다.

[...읏.]

성녀님도 미인계는 안 통한다니 뭐니 하더니 정작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미인계는 안 통한다면서요?'

[그, 그치만 평소보다 수위가 높아서..]

'...원하신다면 아예 안쪽까지 보여드릴 수도 있는데요?'

[예?]

'이번에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도와주신 것도 사실이고.. 덕분에 당아영도 살았으니까.. 이 정도 은혜는 갚아드려야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입으로 향해 V자로 벌리고 그 사이로 혀를 내밀었다.

성녀님은 이젠 대놓고 얼굴을 붉히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성녀님과 화보를 찍으며 했던 온갖 부끄러운 자세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고 그건 곧 내가 성녀님의 취향을 보다 쉽게 저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평상시 성녀님의 행실을 보면 내가 뭘 해도 좋아하겠지만..

-베에

'최대한 요염하면 좋겠지.'

미인계에 100점 따위는 없다.

120점. 200점. 300점.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점수를 노리는 것이 미인계고 유혹이다.

[아, 아, 안..]

그리고 이쯤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당근 중에서도 제일 좋은 당근이 필요했다.

성녀님이 원하는 게 뭘까.

궁극적으론 날 데려가는 것이지만 그전에 나를 향한 상당한 수준의 성적인 욕망은 이미 그녀의 몸과 마음에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있을 터.

그리고 미인계란 눈앞의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궁극적인 목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유혹법이다.

'...직접 딸감이 되어드릴 수도 있어요?'

[ㅁ,무슨..!]

그게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게 작은 이득이라고 하더라도

이성을 마비시켜 그 순간엔 그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든 뒤 선택을 강요하는 것.

그게 미인계의 기본이다.

'성녀님도 그동안 많이 쌓여있으셨잖아요. 해봐야 제가 다른 여자들이랑 하는 걸 보거나 찍어드린 화보로 해소한 게 전부일텐데 이 기회를 놓치셔도 되겠어요..?'

[아..아..]

-부들부들

'제가 계약을 파기하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상점창에 손만 안대면 돼요. 나중에 또 계약해서 포인트 소모를 제한하면 되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상점창에서 물건을 없애버리는 건 위험하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만..]

속마음을 읽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읽는 속마음까지도 쾌락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아니면.. 상호자위라도 해볼까요? 멀리 떨어진 달달한 애인처럼?'

[...!]

'말했듯이 상황이나 컨셉은 다 맞춰드릴게요. 성녀님이 원하는 대로 뭐든지.'

[뭐든지..]

마지막 말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아, 알았어요. 이 정도로도 충분한 수확이니 이번엔 만족하는 걸로 하죠..! 저도 끝까지 제대로 못 지켜드린 책임도 있고요..!]

'저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여자가 그렇게 싫던데.'

[...제가 모시는 생명의 여신님과 제 '에르델 세인트리스'라는 이름에 맹세코!]

...저걸 저렇게 쉽게 걸어도 되는 건가.

뭐 아무튼 이걸로 한 건 해결이다.

저 정도로 맹세를 받아 놨으니 성녀님이 상점창을 건드릴 일은 없겠지.

[저, 저기 그러면 언제쯤..]

'나중에 저 혼자 있을 때요. 대낮부터 화장실에 계속 있으면 의심할걸요. 문을 박차고 열고 들어올 수도 있고.'

[...네?]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잖아요? 정 못 참겠으면 이대로 해드릴 순 있지만 만약 걸리면 전 다신 감당 못해요.'

성녀님이야 남들 눈에 안보일 수 있다지만 나는 아니다.

남들 눈엔 화장실에서 혼자 자위하는 걸로 보일텐데 그런 꼴을 어떻게 보여준단 말인가.

당아영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혹시라도 스승님이면..

'어우.'

바로 가장 가까운 강으로 뛰어갈 거다.

[새,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아마 오늘 밤은 따로 잘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보세요. 오늘이야 제가 쓰러져서 그랬다고 쳐도 이제 당분간 따로 자겠죠.'

스승님이 없었다면 당아영의 방에서 잤을 수도 있지만 스승님이 있는 이상 그러긴 힘들었다.

이미 스승님도 당아영과 내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대놓고 합방해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

비유하자면 장인어른이 집에 오셨는데 신부랑 신랑이 밤에 같은 방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당아영도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것이다.

'...?'

뭔가 성별 비유가 반대로 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 치고

아직 흥분이 진정되지 않은 성녀님을 돌려보내고 옷을 똑바로 입은 뒤 밖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 여기. 다 깎았습니다!"

"사과 껍질 깎는 솜씨가 바닥이구나. 껍데기에 속살이 다 붙어있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소파 비슷한 곳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스승님과 그 앞에서 무릎 꿇고 과일을 깎고 있는 당아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여자들 여기서 뭐하지.'

스승님이 나오시면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걸 직접 눈앞에서 목격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스승님.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당아영한테 뭐라고 하지 말.."

"네놈도 잠 다 깼으면 와서 꿇거라. 한번 잘난 변명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아.

맞다.

나도 웃을 처지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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