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9장-주도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저, 저기 제가 방금 잘못 들은 거 같아서 혹시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
"나를 범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네."
"..."
믿기 어렵지만 제대로 들은 모양이었다.
범한다는 말에 내가 아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없다면 말이다.
"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도.."
"..내가 매력이 부족해서 그러는가?"
"아, 아뇨! 그럴리가요!"
나는 실망한 모습의 검후님을 향해 서둘러 손을 저었다.
"검후님이 얼마나 매력적이신데요! 제, 제가 검후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당황해서.."
"별거 아니네. 인연이 어찌됐든 백년가약을 맺게 된 사이의 작은 요청이니."
'..작은?'
누가 본다면 이렇게 예쁜 여자가 범해달라는데 냅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지는 못할망정 이게 무슨 반응이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봐라.
차라리 당아영이 이런 요청을 했으면 오늘은 그런 플레이겠거니 했겠지만 상대가 다름 아닌 검후님이다.
남자 밑에 깔리기는 커녕 평생 싸움에서도 져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갑자기 저런 요청을 한다고 해도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리고 그냥 섹스를 해달라는 요청도 아니라 범해달라는 요청이다.
결국 둘 다 섹스긴 하지만 범하는 거랑 그냥 섹스는 다르..
'...잠깐만.'
이거 처음으로 내가 주도적인 섹스를 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생각해보자.
내가 이 세계에 와서 한 섹스 중에 내가 주도적으로 했던 적이 있었나?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당아영한테는 매번 밑에 깔렸고.. 여소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검후님은..
'..그때 어땠었더라?'
그래도 나름 기념비적인 첫 경험이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보통 이런 건 평생 기억나야 보통이긴 하지만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아팠다고 했으니 무의식중에 정사를 치렀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희미하게 보이는 기억 속의 장면에 따르면 딱히 검후님이 당아영이나 여소천처럼 격렬한 편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체위는 여성상위였던 것 같긴 하지만 애초에 내가 아파 쓰러져있는 상태에서 그거 말고 쓸 수 있는 체위도 없고 검후님도 성지식이 풍부하시진 않을 테니까.
'..이거 잘하면..?'
어쩌면 내가 이길 수도 있다.
검후님은 처녀는 아니지만 사실상 첫경험이라고 치기도 민망한 치료 행위가 경험이 전부고
나는 수십 번은 해봤다.
그렇다고 검후님이 당아영처럼 방중술을 배웠거나 성욕이 엄청 왕성하거나 여소천처럼 전기자극으로 반칙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어쩌면 정말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주도적인 섹스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나도 주도권을..!'
그동안 얼마나 서러운 세월이었던가.
아무리 힘이 약하고 몸집이 왜소하다지만 남자인데 두 팔을 머리 위로 잡힌 상태로 깔린다거나 아예 몸을 들어버린다거나
이미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산산조각난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한번쯤 내가 주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가슴 한켠에 남아있었다.
10년쯤 뒤에야 가능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여, 역시 이런 부탁은 들어주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못 들은 걸로 해도.."
"아뇨! 괜찮아요! 해드릴게요!"
"괘, 괜찮은가?"
"안될 건 또 뭐 있나요!"
평소 당아영이 씻고 갈테니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할 때와는 정 반대로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서 부탁해도 되겠나?"
"네!"
"그러면 부탁하겠네. 부디 그대의 것이라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사용해주게나."
무슨 연유로 검후님이 범해달라는 부탁을 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런 취향이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지내야 하기도 하고.
'그러면 우선 침대에 넘어 트리고..'
마침 이쪽이 주무시는 방이었는지 검후님 뒤쪽으로 침대가 보였다.
여기서 밀어서 넘어 트리면 푹신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각도였다.
혹시 잘못 넘어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해서 검후님을 밀었..
-우뚝
"..."
"..."
'어.'
힘이 부족했는지 균형을 잃는 미동도 없는 검후님을 보면서 이번엔 온 힘을 다해서 검후님을 밀었다.
이번에는 넘어 트릴 수 있..
"..."
"...저기 검후님. 여기서 뒤로 밀려주셔야 하는데.."
"...아. 미안하네."
-툭
검후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뒤로 밀려나며 침대에 앉았다.
"..."
"..."
어색한 정적.
"...혹시 침대에 누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결국 내가 직접 입으로 부탁하고 나서야 검후님을 침대에 밀어 넘어 트릴 수 있었다.
...아니 이건 그냥 본인이 누운 건가.
'...아니야. 진정하자. 이 다음에 잘하면 돼.'
이건 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상대는 이제 두번째 경험인 처녀.
내 경험치를 생각하면 여유롭게 이길 수 있다.
망토를 벗으며 침대에 올라타 검후님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검후님의 옷을 벗기는 게 어렵진 않았다.
여기서도 머뭇거렸으면 진짜 쥐구멍에 숨기라도 했을텐데 다행히 옷이 복잡한 편이 아니었다.
-출렁
'워우..'
옷을 풀자 옷에 지탱되고 있던 가슴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출렁이는 장면이 눈을 어지럽혔다.
저 정도로 크면 축 쳐질 만도 할텐데 그게 뭐냐는 듯 예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만.."
-움찔!
순간 나도 모르게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했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내가 범하는 입장.
저런 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검후님도 자기 몸을 내 거라고 생각하고 쓰라고 했으니까.
-물컹
'오오..'
손을 뻗어서 가슴을 문지르자 부드러운 살덩이의 감촉이 손 가득히 느껴졌다.
손이 가슴을 감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이 가슴에 감싸이는 것처럼도 느껴지는 무게감은 당아영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아까 잠깐 느끼긴 했지만 그땐 옷 너머로 피부로 느낀 거고 손으로 느끼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제대로 비교해보자면 당아영이 탱탱하고 말랑한 감촉이라면 검후님은 농밀하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암기를 수련한 당아영과 검을 수련한 검후님의 차이일까.
겉으로 보기엔 둘 다 말라 보였는데 이렇게 나체로 느껴보니 제법 차이가 느껴졌다.
물론 나이..차이도 있을 거고.
-말랑말랑
나는 그대로도 몇 분 동안 계속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당아영과 지내는 동안 매일 이 가슴 밑에 깔렸을 텐데 질리지도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안 질린다.
질릴 거였으면 스승님이랑 지낸 세월 동안 진작에 질렸겠지. 10년을 같이 지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 살덩이에 매일 갇혀 살았는데.
그 살덩이에 깔려서 몇 번 숨막혀 죽을 뻔 하다 보면 좀 거부감이 생길 만도 할텐데 그런 건 없더라.
그 사이에서도 숨 쉴 틈을 찾는 요령만 늘었지 그런 건 늘지 않았다.
..슬슬 검후님이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으니 가슴은 여기까지 만지고 슬슬 본격적인 섹스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삽입하기 전에 보지가 젖었는지를 확인..
-질척
"...언제 이렇게 젖었지."
"읏.."
이제 한거라곤 애무라고 하기도 민망한 가슴 만지기가 다인데 벌써 삽입을 해도 될 정도로 애액이 분비되어 있었다.
사실 가슴을 만진 것도 애무 목적도 아니고 그냥 내가 만지고 싶어서 만진 거지 그걸로 애무를 하려면 마사지를 하듯이 신경 쓰면서 만져야 하는데..
[에휴. 됐어요. 그냥 다리나 벌리세요.]
[자, 잠깐만! 아직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다가 날 새겠네요. 나중에 다시 알려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얌전히 다리나 벌리고 있는 걸로.]
"..."
내 기억 상 딱히 내 애무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닌 걸로 알아서 살짝 의아했다.
'검후님이 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걸지도.'
아무튼 잘됐다.
애무까지 하려면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가는데 이미 이렇게 젖어 있다면 그냥 이대로 삽입만 하면 된다.
-스륵
옷에 있는 줄을 당겨서 내 옷을 바로 풀어버리고 속옷까지 벗었다.
가슴을 만지던 동안 딱딱하게 발기돼서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자지를 보면서 문득 나한텐 이런 장면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고 내가 그 앞에 허리를 세우고 있다라..
-부들부들
'그렇지.. 이게 옳게 된 섹스지..'
당아영과 지내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보통 섹스'에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평생 여자 밑에 깔려 지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조금씩 복구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어느덧 귀두가 보지의 입구에 닿아 넣기 직전인 상태.
"느껴지시죠? 이제 이게 검후님 안으로 들어갈 거에요."
"으, 응.."
...다음 대사가 생각이 안 난다.
뭔가 내가 주도적인 입장이면 이런 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해봤는데 이 다음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나온 말은 이러했다.
"혹시 아프시면 말하세요?"
...아니 뭐. 혹시 아플 수도 있으니까.
섹스는 기분 좋으라고 하는 건데 아프면 안되잖아.
그렇게 속으로 변명하며 그대로 귀두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윽."
귀두가 사라지고 그 아래 기둥까지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으극.."
이제 절반 정도 들어갔다.
이를 악물고 허리를 더욱 밀어 넣는다.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억지로 몸을 움직여 끝내 검후님의 골반에 치골이 닿았을 때
-풀썩
"에헥.. 에헤엑.."
나는 그대로 검후님의 몸 위로 쓰러졌다.
"그, 그대? 괘, 괜찮나? 가, 갑자기 쓰러.."
얼굴로 검후님의 피부 감촉을 느끼면서 그제서야 생각났다.
내가 왜 그동안 주도적인 섹스를 한 기억이 없었을까.
'...아.'
생각해보니 나는 피스톤질도 제대로 못하는 약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