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50화 (450/450)

EP.450

설거지

마리아주.

프랑스어로 결혼을 의미하는 단어다.

'딱히 결혼 시장 용어가 아니라.'

술과 음식에서 주로 쓰인다.

서로 궁합이 맞는지 따지는 것이지만.

"이거 놀랍군요!"

"입맛에 맞으시나요?"

"이 정도의 마리아주를 프랜차이즈에서 맛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 이상의 상호 작용을 낳을 때도 있다.

이 와인과 스테이크처럼 말이다.

'정석적인 조합이긴 하지.'

고기와 레드 와인.

생선과 화이트 와인.

거의 상식적인 수준이다.

그렇기에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식가가 동할 만한 맛을 내는 것은.

"흔히 프랜차이즈라고 하면 저가 체인점이 연상되지만 제 사업 모토는 다릅니다. 맛도, 가격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진 쪽에서 문제가 생길 텐데……."

"참고로 이 정도입니다."

"!!"

동시에 사업가의 눈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필요한 거야.'

그 말도 안되는 일.

해내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독점하게 해준다.

고기를 싸게 들여왔다.

숙성을 통해 맛을 배가시켰다.

원가율은 20% 정도밖에 안된다.

"와인은, 와인은요? 와인 쪽에서 상쇄하는 구조 아닙니까? 저도 와인을 압니다만 이것은 글라스로 팔 만한 수준의 와인이 아니에요."

"와인은 이 정도입니다."

"?!!"

와인도 평범한 것이 아니다.

김진우 이사가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칠 만하다.

꿀꺽!

얕은 책략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필수불가결하다.

"오, 오오……. 어둡습니다. 까만 밤? 아니, 이곳은 공연장입니다. 조명이 비쳐져요. 짙은 자주색의 옷을 입은 댄서가 정열적으로 춤을 춥니다."

이 와인의 가치.

우연히 골라낸 한 잔이 아니라는 사실을 와 닿게 만든다.

그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것을 표현이라는 형태로 설득한다.

"파트너가 있습니다. 그녀는 연약하지 않아요. 서로가 리드하길 원합니다. 마치 싸우는 것 같은 댄스에요. 격렬한 몸놀림, 넘치는 약동감. 그 아크로바틱한 탱고에 저는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숙성향이 짙게 배인 스테이크와 이 와인처럼."

감성적으로 젖어 든다.

테이블에 놓여진 와인의 라벨을 그의 시선에 맞춘다.

「카테나 자파타, 안젤리카 말벡」

10만 원대의 프랑스 와인과 동급.

나는커플에서 했던 말은 방송용의 과장이 아니다.

가게에는 2만 원대로 납품하고 있다.

그 곱절의 곱절이 넘는 포텐셜을 가진 진짜배기다.

"훌륭한 표현입니다. 탱고……, 아르헨티나의 춤이죠. 아르헨티나의 와인을 마셨을 때 저도 그러한 풍경을 느낀 것 같습니다."

"고기도 아르……, 아니 남미에서 수입된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런 마리아주가!"

일류 사업가.

한없이 깐깐하다.

따지는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른다.

'그 기준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이만큼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없다.

유통 구조.

조리 혁명.

인건비 감축.

"수입, 가공을 본사에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각 지점은 셰프를 고용할 필요조차 없어요. 원가율을 혁신적으로 줄인 비결입니다."

"오……, 그렇군요."

흥미를 보인다.

이 사업의 가치.

그의 안에서 싹트게 된 것이다.

'뭐, 그렇잖아.'

주식에서도 생기는 일이다.

급등한 주식을 처음부터 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혹한다.

더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용솟음친다.

타악!

기껏 머리를 들이민 싹에 물을 주지 않으면 섭한 노릇이다.

다음 접시가 나온다.

시그니처 스테이크.

그 강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아직은 실험 판매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저희 레스토랑이 프랜차이즈 수준이라 오해 받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숙성육이다.

짧게는 2주, 많게는 4주의 숙성을 거쳐 고기의 풍미를 극대화한다.

'그것을.'

더 길게 한다면?

더 맛있는 소고기가 나올 거라는 건 어린 아이도 할 수 있는 발상이다.

실제로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글자 그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숙성향이 장난이 아니군요. 한 달은 족히 넘긴 것 같은데."

"반년간 숙성시킨 등심입니다."

"오오!"

"80일이 넘으면 일반적인 공정으로는 썩기 때문에 특수한 공정이 필요하죠. 그만한 고생을 거치는 보람을 발견할 수 있으실 겁니다."

숙성과 부패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기간이 늘어날수록 난이도도 대폭 증가한다.

'긴 기간을 대량으로 하는 건 기술과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지.'

한때 뉴욕에서 고깃집 좀 운영해본 입장이다.

그 정도 노하우는 당연히 안다.

구구절절한 설명.

그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는 건 한 점의 고기가 될 수 있다.

꼴깍!

그를 스테이크 하우스에 초정한 이유다.

인간인 이상 반드시 탐욕에 흔들린다.

"꼬릿한 블루 치즈의 향이 느껴지시죠? 식감도 일반적인 스테이크와는 궤를 달리할 겁니다."

"그, 그렇군요."

"이만한 숙성육에 대항하려면 어지간한 와인으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이사쯤 되면 온갖 산해진미는 다 먹고 다닐 것이다.

와인에도 반드시 관심을 가진다.

'원래 돈이 썩어나면.'

돈은 썩어 나는데 시간은 없는 것이 임원이란 직종이다.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한다.

그만큼 유혹에도 약해진다.

별다른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입 정도는 괜찮겠지.

『까바스 데 와이너트 1977』

이미 늦었다.

와인 애호가라면 라벨에 쓰여있는 빈티지를 본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진다.

"제가 남미 여행을 갔을 때 와인샵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아이입니다."

"1977년이면 무려 50년 전의 올드 빈티지군요."

"그런 셈이죠."

오래된 와인.

비싼 것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다.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이라.'

현지에서 구입했기 때문에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맛까지 그렇지는 않다.

"대표님! 말씀하신 장비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에 두면 될까요?"

웨이터가 장비를 가지고 온다.

올드 빈티지는 개봉하는 것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다.

"이건 뭔가요?"

"포트 인두입니다. 오래된 와인은 코르크가 상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병목 부분을 분리해서 열죠."

만화 같은 데서는 어떻게 잘해서 연다.

와인 오프너로 똥꼬쇼를 하는 것이다.

코르크 가루가 들어갈 위험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

더 간단한 방법이.

쉬이이익……!!

포트 인두(Port tongs).

뜨겁게 달군 전용 집게로 병목 부근을 정확하게 지진다.

유리 분자가 열로 팽창하게 된다.

그렇게 분자의 결속이 약해진 틈을 타서.

"차가운 물을 살짝 칠하면 분리가 됩니다."

"어?!"

"간단하죠."

오래된 와인을 따는 방법.

진짜 부자들의 취미에 대해서는 몰랐던 모양이다.

'이 정도로 오래된 건 보통 열 일이 없긴 하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깜짝 놀랐다는 것이 표정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다.

병을 따자마자 향기가 피어오른다.

꼴깍!

침샘이 미친 듯이 솟아난다.

와인 애호가라면 반드시 마시고 싶은 한 잔이다.

"자, 드시죠."

"이런 와인을 마셔도 될런지……."

"저희 레스토랑의 컨셉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니까요. 가격뿐만 아니라 맛도 괜찮다는 것을 부디 확인해주십시오."

스스로에 대한 변명.

허들을 낮춰준 것만으로 손쉽게 납득을 한다.

아니, 하고 싶다.

눈앞의 놓인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고 싶으니까.

"오……, 환상적이네요. 마리아주도 신경을 쓰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혹시 표현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까 인상적이었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좋은 술과 음식은 협상 테이블조차 감화시킨다.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니까.'

개인의 감정.

안 들어갈 수가 없다.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꿀꺽!

현명한 투자자가 감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건 결코 실수가 아니다.

주위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일으킨다.

김진우 이사가 원하는 대로 매혹적인 한 소절을 읊어주기로 한다.

"화산이 있었습니다. 대지를 불태우는 용암이 여기에 흘렀어요. 시간이 지나 차갑게 식어 온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뜨거웠던 분출은 덧없지 않았습니다."

까바스 데 와이너트는 아르헨티나의 와인이다.

프랑스의 와인만큼 장기 숙성에 걸맞게 만들어져있지 않다.

하지만 그 힘찼던 줄기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래된 숙성육과 어울리자 과거의 영광이 꿈틀거린다.

"재에요. 화산재! 생물이 살 수 없던 화산이 동식물의 낙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긴 잠을 자고 있던 동물들이 깨어나요. 식물들은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이것은 생명력의 마리아주에요."

숙성육.

단순히 맛있는 고기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타기도 한다.

'곰팡이가 핀 블루치즈를 극혐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식욕을 돋우는 감칠맛으로 화한다.

고기 본래의 육향과 와인의 과실향이 입안에서 춤을 추게 만든다.

짝! 짝! 짝!

김진우 이사가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자신도 스테이크와 와인을 맛본다.

자연스럽게 끄덕이는 고개.

"훌륭합니다. 훌륭해요. 당신이 어떤 이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곳 사업장을 열었는지 알겠어요. 아마 다른 프랜차이즈들도 마찬가지겠죠."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심사숙고해서 내린 평가입니다."

접대를 해준 보람이 있다.

아니,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심리를 흔들었다는 사실이다.

'평가의 과정은 분명 옳을 거야.'

백전노장이다.

50대의 노련한 이사를 속이는 것은, 구워 삶는 것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허점은 가능하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작은 틈 말이다.

"저는 여전히 이 부동산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가요……."

"일시적으로 손님이 몰렸다 한들 입지적 조건이 달라진 건 아니니까요. 다만, 프랜차이즈들을 포함시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점을 찍은 주식을 사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될 뿐이다.

'귀신에 홀린 듯이 말이지.'

투자.

그 두 글자가 들어가 있다면 어느 세계든 마찬가지다.

대어의 낚시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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