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49화 (449/450)

EP.449

설거지

상권.

수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위해 모여드는 상업 중심지다.

좋은 상권일수록 물건을 팔 기회가 많다.

그리고 그 기회에는 가치가 매겨진다.

---------------------------------------------+

『상권 등급』

특급: 명동, 종로, 신촌 등

A급: 역세권, 교통 중심지

B급: 주택가, 대학가

C급: 찾아서 가지 않는 들리기 힘든 곳

+---------------------------------------------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등급'이라는 이름으로 세분화가 된다.

'같은 프랜차이즈를 차려도.'

종로에 세운 곳과 주택가에 세운 곳은 매출이 천지 차이다.

10배씩도 격차가 생긴다.

그래서 더 비싸다.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이 붙는다.

잘 팔리는 것이 보장된 위치니까.

"해당 지역은 B급 상권으로 분류됩니다. 아니, B−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역에서 너무 떨어져 있는 데다 도로도 좁고, 주차 공간도 없어서 자동차 진입이 난해하거든요."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

철저하게 따져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기본이다.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의 말은 얼핏 그럴 듯하지만.

"알빠노."

"네……?"

"알 만한 가치가 있는 빠른 정보에 노력과 수고 감사합니다. 라는 뜻을 가진 요즘 유행어에요."

"아, 그렇군요!"

궤변이다.

입지 조건(접근성, 인지성, 주차 편의성)만 가지고 정해지지 않는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그냥 딱 하나다.

거기서 장사하면 장사가 잘 되나, 잘되지 않나.

그 외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주식 할 때 지표 보는 거랑 똑같다.

"변호사님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매출 규모를 고려했을 때 B−라는 평가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일례로 가로수길이 있잖아요? 입지 조건은 좋지 않지만 상업용 부동산으로서의 평가는 높은 편이죠."

지표를 개무시하고 달릴 때도 있다.

왜?

이유는 따질 것도 없다.

'사람들이 사니까.'

내가 차지하고 있는 상권.

얼마 전까지만 해도  B−급이었던 건 사실이다.

먹자 골목은 B급 상권 중에서도 열악하다.

정말 외식을 할 때 아니면 안 간다.

"가로수길이라니 그건 비약입니다!"

"예를 든 거에요. 그와 비슷한 현상이 최근 이쪽 부동산 지역의 상권에서 관찰되고 있으니까요."

나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며 달라졌다.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상권으로서의 가치도.

'올라가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B급이라고 불릴 지역이 아니다.

"특히 유천구 지역은 유리단길이라 불리며 젊은 고객층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주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죠."

"……."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내가 부동산을 샀을 때보다 권리금이 제법 올랐다.

'상인들은 못 들어와서 안달이고.'

좋은 입지 조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근처에서 장사를 하면 잘된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애시당초.

"대기업 꼴데가 설마 이 정도도 살피지 않고 인수를 제안한 것이라면 실망입니다. 꼴데가 어째서 28년째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네요."

꼴데를 비롯한 한국의 부동산 대기업들이 하는 짓거리다.

미리 땅을 선점하고 개발한 다음 팔아먹기.

'그것에 브레이크가 걸렸으니.'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꼴데측에서 부동산 인수 제안을 해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이 아닌 필연.

처음부터 계획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이 다음에 있다.

끼익!

변호사 옆에서 손깍지를 끼고 있던 남자가 자세를 고쳐 잡는다.

협상을 진행할 상대는 바로 그다.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말이 좀 심하시군요."

"협의점이 엇갈리다 보니……."

"꼴데 야구를 욕해도 우리가 욕합니다. 선 넘지는 맙시다."

"아 그쪽."

아직 명함을 건네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초면부터 변호사를 대동해서 온 것도 그렇고.'

일개 직원이라면 불가능한 일.

최소 임원급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꼴데 그룹 김진우 이사입니다. 절차상 변호사를 먼저 통했지만 앞으로는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꼴데 야구의 미래에 대해."

"그건 제쳐두시고요."

유천구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부동산까지 전부 눈독 들이고 있다.

실행에 옮길 만한 재력도.

'문제는 얼마에 떠넘기냐는 건데.'

이사급이나 되니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다 알고서 저질렀을 것이다.

만약 내가 모른다면?

선심 써주는 척 시세보다 약간 올려서 매입하려고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꼴데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선생님의 상권이 포함돼있습니다. 기존 설계를 변경하기 보다는 인수하는 방향을 가닥을 잡고 싶습니다. 좋은 가격 쳐드릴 테니 양보해주십시오."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말을 바꾼다.

아니, 거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은 양쪽 모두 일종의 승부를 하는 세계인 거야!!」− 세키구치 쇼타

미스터 초밥왕의 명언처럼 말이다.

당하는 쪽이 나빴다고 우기는 것이 가능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세계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라는 것의 본질은 이득을 보는데 있다.

"만약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면?"

"알고 계시겠지만……, 선생님의 프랜차이즈는 꼴데몰 주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희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응하는 조치 말이죠."

그것은 자본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주식 시장에서 기관이 개미를 잡아먹는 것처럼.

'하지만 약자라고 당하기만 하란 법은 없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목적을 들켜서는 안된다.

그리고 가능한 비싼 가격에.

"거래 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좋은 가격을 쳐주신다면 팔지 않을 이유는 없겠죠."

"대화가 통하셔서 다행이군요."

"저는 투자자이니까요."

"투자자……, 인가요."

차익을 남기는 것이 직업병이다.

주가는 꼭 주식의 가치에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호재를 씌우느냐에 따라.'

180도 변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의 현상이 부동산에도 생기는 것이다.

미래 가치.

그 애매모호한 것을 애널리스트와 기사들을 통해 설명하는 방법도 있지만.

부우웅~!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부동산은 시각적인 설득을 하기 더 용이하다.

차를 타고 나간다.

유천구 지역은 저녁 8시인 이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꽤나 북적거리고 있군요."

"젊은 고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트렌디하다는 점도 이곳 상권이 유망한 이유 중 하나죠."

"보고 받은 사실입니다."

아니, 한창 장사가 잘될 시기다.

일반 음식점보다는 술집을 겸하는 곳이 많으니 말이다.

끼익−!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한다.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저희가 이번에 새롭게 런칭한 스테이크 전문점입니다."

"식사라도 하자는 건가요?"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요."

음식은 먹어보는 것만한 게 없다.

해당 식당의 가치가 아주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딸랑~♪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본래는 밤 11시까지 열지만, 시범 중인 현재는 영업이 끝나있다.

"아, 대표님!"

"수고 많으십니다. 전화로 연락 드린 대로 조금만 더 수고 부탁드릴게요."

"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테이블에 앉는다.

텅 빈 가게의 내부에 마주 앉아있자니 마치 면접을 보는 것 같다.

'그렇잖아.'

여기 단골 할까?

일반 소비자들도 평가를 한다.

음식의 맛과 서비스, 가성비 등에 대해.

사업가들은 직업병이다.

내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평가에 들어갔을 것이다.

"본격적인 스테이크 하우스는 아닌 모양이군요."

"캐주얼한 느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상권에서 혼자 튀면 어색하니까요."

"흠……."

날카로운 질문까지 던져온다.

이 음식점의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한 공격이다.

'본격적인 곳이면 위약금을 더 줘야 할지 모르니까.'

그러한 눈치 게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격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꼴데가 관심이 있는 건 부동산이다.

이곳에 세워져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타악!

그렇기에 의미를 가진다.

웨이터가 테이블 위에 스테이크를 내려놓는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테이크 같은데요."

"그래서 좋은 겁니다."

"?"

"누구나 조리할 수 있는 흔한 스테이크니까요."

한국대 스테이크 하우스.

성황 리에 운영되고 있다.

SNS 반응도 상당히 괜찮다.

'BM도 말이지.'

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만큼 중요한 게 없다.

사업의 지속성과 편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3성 셰프를 고용하면 3성 레스토랑을 열 수 있다.

그래서야 수지타산도, 운영 효율도 나쁘다는 이야기다.

써걱!

그에 반해 이 스테이크.

본사에서 공급한 숙성육을 레시피에 따라 구우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이거 실례했군요. 한국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어서 말이에요."

"과찬이십니다."

"이곳 레스토랑이 잘되는 이유는 알겠어요."

그럼에도 본격적인 맛이 나온다.

한입에 그 점을 파악했다는 것은 오히려 긴장할 부분이다.

'폼으로 이사 자리를 단 사람은 아닌 것 같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에 대해 말이다.

꼴꼴꼴~!

그러한 이성적인 사고.

그것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는 알코올 한 잔만한 것이 없다.

"근무 중에 술은 지양하고 있습니다만."

"딱히 대접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레스토랑은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리아주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마리아주요?"

아니, 한 잔의 알코올 따위가 아니다.

이 글라스 안에는 감동이 가득 차있다.

겉모습으로는 알지 못한다.

어두운 자주빛의 액체와 마이야르 된 살덩이가 만났을 때.

우적!

꿀꺽!

그 시너지의 값은 단순한 사칙연산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