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1
왕자님 생각은
신이 나는 일이다.
타인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건 정말이지 기분이 좋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할 때는.'
대개의 경우 목적이 있다.
상류 사회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써걱!
써걱!
단순히 음식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찾는다.
'아니, 고등학교 때도 그러잖아.'
담임 선생님.
엿 먹이기 위해 학급의 학우들이 열과 성을 다한다.
온갖 귀찮은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걸려들었을 때.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두껍게 썰은 베이컨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미국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많이 나오죠."
"네, 보기에는 내추럴 해도 현지에서도 많이 먹는 근본 있는 조합입니다."
그 짜릿한 쾌감은 오르가즘에 비할 만하다.
그래서 하는 것이다.
'다 신선하잖아.'
토마토와 양파.
얼핏 의아하게 보일 수 있다.
하다 못해 토치로 구운 것도 아니고.
써걱!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이다.
조금씩 썰어 베이컨이나 새우와 같이 먹으면 된다.
현지에서는 샐러드 대용으로 먹는다.
미국 스테이크 하우스의 시그니처 메뉴다.
『울프X 스테이크 하우스 메뉴판』
Sliced Jumbo Tomato And Anion(썰은 토마토&양파)- 14,000원
Boiled Aged Kimchi(묵은지) - 9,000원
Rice(흰 쌀밥)- 5,500원
Mashed Potato (으깬 감자)- 10,000원
Spinach(찐 시금치)- 12,000원
Brocoli (찐 브로콜리)- 13,000원
한때 한국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논란이 되었다.
왜 저렇게 폭리를 취하냐고.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베이컨은 저희 회사에서의 실험작 중 하나거든요."
"레스토랑도 운영하신다고 하셨죠."
"잘 기억하시네요."
그 스테이크 하우스의 목적은 돈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다른데 있다.
'이 신선하기 그지없는 음식에.'
어울리는 한 잔.
가져온 와인을 꺼낸다.
아니, 제작진 측에서 부탁을 했다.
《시청자분들이 와인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크셔서…….》
세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관심을 곧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방송사다.
와인 수입 업체.
구세계, 꼴데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꼴꼴꼴~
그 기대에 부응해줄 이유는 전혀 없다.
나로서는 이 화제를 이용만 하면 된다.
주아씨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다.
처음부터 표정이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 부쇼네네."
"부쇼네라고요?"
"가끔씩 상한 와인이 걸리잖아요. 와인이라는 게 따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보니."
그럴 만하다.
부쇼네.
상한 와인을 일컫는 말이다.
와인은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십 년까지 보관한다.
그 과정에서 상한다.
『볼렝저 로제 브륏』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말이다.
3~5%의 확률로 부쇼네가 생기는 일은 일상이다.
"그래도 뭐 못 먹을 정도까진 아닌데……."
"저 보고 이걸 먹으라고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일류 소믈리에라도 알 수 없다.
아주 자연스러운 사고를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고서 가져온 거지만.'
하프 보틀.
작은 병일수록 더 일어나기 쉽다.
일부러 관리가 안된 것들을 사왔다.
부쇼네인 걸 확인한 후 코르크를 다시 닫았다.
가짜 와인에도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샴페인 부쇼네는 시큼한 정도잖아요. 동치미 국물 같아서 소면 말아 먹고 싶기도 하고."
"농담으로 하는 말이죠?"
"반쯤 진심인데."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화를 내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가학심을 끓어오르게 만드는지 모른다.
'거 눈 더럽게 높네.'
미스코리아 출신.
심지어 스튜어디스를 하고 있다.
눈이 하늘 꼭대기에 달리기 좋은 직업이다.
나이도 참가자 중 가장 많다.
모르긴 몰라도 잘난 남자들도 숱하게 만나왔을 것이다.
"조금 이르지만 레드를 따기로 할까요? 스테이크도 레스팅이 충분히 된 것 같고."
"뭐……, 그러기로 하죠."
그렇기에 감흥이 없다.
그녀의 마음속은 온갖 잡다한 그림이 빼곡하게 그려진 도화지다.
'이게 얼마나 수준 높은 스테이크인데.'
한국대 스테이크.
둘마트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그 프리미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써걱!
안심 중의 안심 샤토브리앙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워낙 두꺼워서 10분이나 레스팅이 필요했다.
"이것도 저희 회사의 실험작인데."
"드라이에이징을 거친 것 같군요."
"네, 두 달 가까이 공을 들여서 육향을 농축한 녀석입니다."
"비슷한 걸 피터 루거에서 먹어본 적 있죠."
만드는 과정도 난해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부위를 드라이에이징까지 한다는 건 상당한 모험이다.
그렇게 완성된 맛.
먹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한다.
그조차 겪어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본인은 상류층도 아니면서.'
이 고고한 음식의 맛만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달을 만한.
『실버 오크, 알렉산더 밸리 까베르네 소비뇽 2010』
한 잔이 될 것이다.
훌륭한 스테이크에는 그에 뒤지지 않는 와인이 필요하다.
"오, 이건!"
"미국에서 손꼽히는 생산자가 만든 컬트와인입니다."
"마셔본 적 있죠. 좋은 인상이 남아있어요."
컬트와인.
미국을 세계적인 와인 생산국으로 인정 받게 만든 소량 생산을 통한 고품질 와인이다.
과거에는 넒은 대지를 활용해 미국다운 대량 생산을 했다.
현재는 본고장인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꼴꼴꼴~
2010년 빈티지는 캘리포니아에서 손에 꼽히는 그레이트 빈티지 중 하나다.
공교롭게도.
"빈티지도 상당히 훌륭한 것을 들고 왔군요?"
"주아씨에게 의미가 있는 해 같아서."
"오……."
그녀가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해이기도 하다.
와인의 빈티지는 선물용으로도 의미가 있다.
자신이 가장 빛났던 해.
글라스에 따라지는 붉은 와인을 숨 넘어갈 듯이 바라본다.
"알렉산더 밸리의 거친 테이스트는 샤토브리앙의 강렬한 풍미와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이룰 거라 자신합니다. 식기 전에 드시죠."
와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고기와 함께 머금으면 얼마나 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알고 있으니까.'
마리아주라는 단어에 반응을 한다.
방송을 보았다면, 나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반드시다.
써걱!
꿀꺽!
샤토브리앙을 나이프로 썬다.
그리고 와인과 함께 입에 가져간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행복한 이미지가.
"읍!"
"어, 입에 안 맞으시나요?"
"아니, 당신……. 지금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거에요?"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숱하게 꿈꿔온 것이기 때문에 박탈감도 더할 수밖에 없다.
와인잔을 코에 가져다 댄다.
그것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든 향이다.
'샴페인은 시큼한 정도로 끝나지만.'
레드 와인의 부쇼네는 지독하다.
낡은 걸레, 젖은 스웨터,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 부쇼네네요."
"아까부터 뭐 하는 거에요? 목적이 뭐에요?"
"불운한 사고입니다."
"사고, 사고라고요?!"
기대감.
처음에 딴 샴페인도 훌륭한 것이다.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더 화가 난다.
'그 맛있는 걸 마시지 못하다니.'
아무리 맛있는 와인이라도 오래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구태여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부쇼네라는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알고 가져오겠어요. 와인 애호가시라면 충분히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그건 그렇지만."
"불운입니다."
상류 사회의 식사.
우연을 가장해 꼽을 주는 것은 의미 없는 장난질이 아니다.
'발끈하면 쪼잔한 사람이 되잖아.'
가문과 사업 등이 걸려있다.
화를 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생긴 문화.
고상하고 화려한 상류층도 인간의 본질은 비슷하다.
"정말 불운입니다. 이 와인도, 저와 당신도요."
"제가요?"
"네, 조금만 빨리 만났다면 근사한 만남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
속마음은 따로 있다.
점잖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용으로는 어울린다.
'아줌마가 정말 눈만 드럽게 높아서.'
한국 사회의 금기어.
정말로 칼을 맞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돌려 말한다.
사실은 본인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뚝! 뚝!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
전성기였던 2010년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커플에 출연했다.
눈높이에 맞는 짝을 이곳에서는 찾을 거라 생각하고.
"양파가 조금 맵네요."
"네……."
"신경을 쓴다고 쓰긴 썼는데."
그러한 꿈과 환상.
깨어날 때가 된 것이다.
이런 철없는 여자들이 정말 많다.
'하는 꼬라지만 봐도 느껴지잖아.'
내가 식사를 차리는데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싸가지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한 대접이 익숙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다.
"부쇼네의 예비로 들고 온 병이 있는데 한 번 드셔 보시겠어요?"
"그것도 상한 건 아니겠죠……?"
"이것만큼은 운명이라고 믿어봐야죠."
최고의 와인이라면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소중한 와인셀러에서 애지중지 모셔진다.
'와인도 조금만 관리를 잘못하면 식초, 부쇼네가 되는데.'
인간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훌륭한 와인도 값싼 편의점 와인보다 못하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 주아씨가 눈물을 흘린다.
조금은 달래줄 수 있는 한 잔이 될 것이다.
퐁!
꼴꼴꼴~
훌륭한 와인이 적절한 숙성을 거쳤을 때 나오는 포텐셜.
이상적인 시기에 이상적으로 꽃핀 자신.
"맛있네요……."
"그렇죠?"
"이렇게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인데."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숱한 경험을 해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수라장이 일어나는 것도 기대를 했는데 말이지.'
고고한 척은 다 하던 주제에 의외로 순수했다.
있지도 않은 양심이 찔릴 지경이다.
당초의 목적은 이뤄낸다.
제대로 된 이슈화가 무엇인지 방송사에 신세 좀 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