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死母펀드
컨설팅.
사모펀드 업무의 일환이다.
'글자 그대로 일환이지.'
주된 목적은 가게를 살리는 게 아니다.
돈의 흐름은 원하는 대로 이끄는 것이다.
"영업 환경이 변화된 점은 없나요?"
"잘되고 있습니다! 너무 잘돼서 문제일 정도로……."
"어떤?"
"도쿄포차의 폐업 점포 수가 늘고 있습니다. 저희로서는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된 셈이죠."
투자와 마찬가지.
개별주를 조종하는 것은 전체 움직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
'뭐, 그렇게 되겠지.'
푸드마켓의 대표 백화선씨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사후 경과.
그날 며칠 잘됐더라도, 또 몇 주 지나면 모르는 게 음식점 일이기 때문인데.
"그리고 요즘 다들 가격을 인상하는 추세라……."
"아무래도 그렇겠죠."
"네, 원가 인상이 요즘 업계 최대 화두입니다. 다들 눈치 보고 있었는데, 하나둘 올리니까 다들 따라하는 분위기에요."
잘되고 있다.
아니, 안될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어중이떠중이 음식점 컨설팅 업자가 아니니까.
'경제 상황까지 감안을 하면서 해주지.'
PPI는 생산자가 느끼는 물가 지수다.
CPI의 선행 지표로서 활용이 된다.
이미 생산자들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인건비도 오르고, 원자재값도 올랐다.
"이번에 환율까지 무너지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그걸 소비자한테 전가할 수 있냐죠."
"맞습니다! 정말 골칫거리가 될 뻔했어요."
그것을 소비자한테 전가하게 된다.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 지수인 CPI가 오르는 과정이다.
'그러면 소비자는 지갑을 걸어 잠그고.'
경기 침체가 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제라는 것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돌렸다.
도쿄포차의 가격 상승은 주위 가게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위 가게들이 전부 올라서 반대급부로 저희가 싸보이는 효과가 생긴 모양입니다."
"무한 리필도 하고."
"네! 요즘 SNS에서도 회식 하기 좋은 가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와중 고토리자케는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다
최소한 망할 일은 없다.
'사실은 망했어야 할 가게가.'
프리미엄 이자카야.
현재 경제에 걸맞은 가게가 아니다.
어지간히 경쟁력 없으면 무너지게 돼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부실 지점 정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장이다.
"그래서 현재 가격 정책을, 무한 리필도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죠."
"프리미엄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내부 회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운 밥 찬 밥 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잘됐네요."
일이라는 것은 가치를 알아줘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누군가에게는 거위 한 마리에 지나지 않다.
'나를 고작 월급 주고 굴리려고 했던 회사들처럼.'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합격점은 된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 조금 정도는 이해한다.
"그럼 본론을 시작할까요?"
"네?"
"저는 이 다음까지 보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못 보고 계셨다면 실망이 좀 크네요."
"허허허……."
조금.
겨우 가게 하나 도와주자고 일을 벌린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사모펀드가 요식업 일을 겨우 매출 이득 먹자고 하겠냐고.'
들어가는 수고 대비 이득이 많지 않다.
이런 고급 인력이 움직이는 비용이 안된다.
수고비.
처음부터 인센티브 계약을 맺었다.
한 만큼 가져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다.
"제가 조사하기로 귀사 프랜차이즈 근처에 유독 헤일즈푸드의 점포가 많이 포진해 있더라고요."
"그런 감이……, 있긴 합니다."
"도쿄포차의 폐점으로도 타격이 크겠죠. 만약 악재가 겹친다면 어지간한 회사라도 버티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매도를 친 주식이 내려가면.
'시세 차익을 얻는 게 고작이겠지만.'
아예 상장폐지가 돼버린다면?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게 된다.
실제로 월가에서 흔히 쓰이는 전략이다.
미국 주식은 1달러 아래로 30일간 유지되면 상장 폐지 처리가 된다.
그것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분명 그럴 겁니다."
"이미 알고 계셨네요?"
"아, 네……. 제가 과거에 헤일즈푸드의 부사장이었거든요."
1달러를 못 넘도록 공매도를 쳐서 말이다.
30일 동안을 찍어 눌러서 터트려버린다.
'회사를.'
당연하게도 어렵다.
기관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제한 공매도가 아니니까.
실물 경제에서는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요식업체 둘이 경쟁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끼어들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면 내부 사정도 잘 아시겠네요."
"네……."
"정이라도 남은 게 있나요?"
"정이라……,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군요."
그럴 만한 여력도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경기 안 좋은 때 사업 확장을 하는 곳은 드물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철저하게 때려 부술 수 있다.
마음을 옮기는 것에 장애 요소가 있었다.
"선대 회장님은 제가 진심으로 모시는 분이었는데 아드님이."
"경영 재능이 없었나요?"
"그런 것 뿐이라면 저도 아직 그 회사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정은 떡 칠 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다 투자 기회를 날려 먹어서야 되겠냐고.'
특히 정이라는 것은 귀찮은 것이다.
보증 서주다가 좆되는 것도 그래서잖아.
다행히 내가 우려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선대의 운영과는 너무 달라졌습니다. 제가 독립을 하게 된 계기였고, 그때 일부 직원들도 저를 따라 나왔죠."
"정통성 대결이라 볼 수 있겠군요?"
"네?"
"선대의 의지를 잇는 것이 어느 쪽인지 판가름을 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요?"
그렇다면 꼬드길 수 있다.
어지간히 좆같은 새끼였으니까 따로 회사 차려서 독립했겠지.
'실제로도 그런 것 같고.'
푸드마켓과 헤일드푸드의 점포들이 인접해있는 것.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절묘하기 그지없다.
사전에 조사도 해왔다.
둘 중 하나는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장이 아니라면 그쪽일 것이다.
악연까지 있다고 하니 이야기가 편하다.
* * *
사모펀드.
일반 펀드와는 다른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익을 보는 경기부터가.'
보통은 상승장에서 돈을 번다.
그래야 주식도 많이 오르고, 유동성도 풍부해서 차익을 보기 쉽다.
사모펀드는 완전히 반대에 해당한다.
경기가 최악일 때 돈을 버는 이상한(?) 펀드다.
"사장님 위치 확인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현장 답사 후에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하죠."
<네, 기다리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
딱히 숏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굳이 따지면 저점 매수에 가깝다.
'방법이 조금 적극적이지만.'
여러가지 수단을 쓴다.
부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금리 인상기에 상환시키는 등.
의도적으로 기업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도 비슷하다.
헤이즐푸드의 주요 자금줄을 공략한다.
여러가지 프랜차이즈 중에서 선택한 것은.
"용건만 말해주세요."
레이첼.
연락을 해서 불렀더니 이 모양이다.
고개를 45도쯤 돌린 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툭 쏘아붙인다.
'뭐, 이런 반응이겠지.'
앙금이 남아있다.
아니, 남아있게 만들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했으니까.
"왜 이렇게 화가 나있어요."
"용건."
"응?"
"용건만 말하라고요."
아주 얼어 붙어있다.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말도 하지 않고 싶다는 표정이다.
'말은 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몸은 다를 수 있다.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레이첼을 꼬드긴다.
"그럼 잠깐 사람 없는 곳으로 갈까요?"
"왜죠?"
"굉장히 중요한 용건이라서. 1분이면 됩니다."
"1분 정도는 뭐……."
손을 잡고 구석진 골목으로 향한다.
순진하게 따라오는 그녀를 바로 패대기 친다.
콰앙!
벽에.
두 팔과 다리로 못 움직이게 만든다.
공포와 혐오로 물든 눈이 나를 노려본다.
"그렇게 쫄래쫄래 따라오면 나쁜 일 당하는 거 몰라요? 알아요?"
"절 속였군요!"
"바보야?"
온실 속의 화초.
한 번 제대로 알려줬음에도 같은 수법에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쪼옥!
하지만 마음이 꺾인 건 아니다.
꼭 다문 입술은 어떻게 해도 벌어지지 않는다.
'상관없지만.'
이미 기억시켰다.
소중한 곳으로 향하는 손가락 끝을 거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찌걱! 찌걱!
쾌감을 알아버린 몸은 나의 손가락에 맞춰 연주한다.
솔직한 몸은 알고 있다.
"아! 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신음 소리를 흐느끼며 굳게 잠겼던 입이 열리게 된다.
'첫 연주자를 기억하고 있겠지.'
월가의 마녀라 불렸던 그녀도 결국 여자다.
지금 이 어린 나이대에서는 더더욱.
한 번의 조교도 마쳤다.
얼마 움직일 것도 없이 빠르게 쾌감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쪼옥! 쪼옥!
앙칼지던 눈초리도 무너져 내려있다.
정신과 다른 몸의 반응에 충격을 느낀 걸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나의 혀와 손가락을 거부하지 못한다.
다른 의미로 얼어붙은 그녀의 몸을 마음껏 희롱한다.
'가만히 있으면 귀여운데.'
이 드세고 이겨 먹으려고 드는 성격만 고치면 말이다.
꼭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다.
"옳지."
"아!"
"여기죠? 자~ 몸을 맡겨요. 금방 기분 좋아질 테니까."
나와 그녀의 성향은 극과 극이다.
말로 설득이 안된다면 몸으로 말을 듣게 만든다.
찌걱! 찌걱!
손가락 끝이 점점 끈적해진다.
이런 강압적인 상황에서도 육체는 정직하게 쾌감을 느낀다.
부르르 떤다.
거칠어지는 숨소리는 오르가즘이 온몸 구석구석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갔어요?"
"……."
"귀엽네. 귀여워. 그렇게 새침하게 굴면서 몸은 이렇게 솔직하고."
여운을 느끼는 몸.
품듯이 꼭 안아주며 찰랑찰랑한 금빛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귀여워서 정말 죽여버리고 싶네.'
사랑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에 안았다.
이러저러한 악연은 아직도 채 풀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돌려줘야 속이 시원해질까.
나로서도 아직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참에.
"저를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거에요……."
레이첼이 울음을 터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