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0
死母펀드
꽈앙!
헤일즈푸드 본사.
사장실에서 울리는 소음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또?"
"한바탕 지랄하겠네."
최근 들어 잦아졌다.
사장이 발작을 하는 일이 말이다.
"내가 하란 대로 안 했어?"
"일단 저는……, 전했습니다."
"제대로 안 전한 거 아니냐고!!"
"으."
'내가 이래서 안 간다니까.'
김현우 과장은 찍소리를 못한다.
회사 내에서 연차가 낮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사장은 고집불통이다.
거슬리지 않으려면 Yes맨이 되는 방법 뿐이다.
"똑같은 이벤트를 했습니다."
"중량은?"
"네?"
"아니~! 무한으로 퍼줄 거면 질이라도 낮춰야 될 거 아니야. 이런 것도 가르쳐줘야 돼? 이 답답한 놈이."
"하하……."
'답답하면 니가 뛰던가.'
말도 안 해놓고.
직원들이 무슨 단체로 관심법이라도 깨친 줄 안다.
일상이다.
이럴 때는 적당히 비위를 맞춰줘야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
꽈앙!
반복된다.
1주일 후, 곽우석 사장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를 받는다.
"매출이 줄어들었잖아!"
"아, 그게……."
"그게 뭔데? 또 무슨 실수를 했는데?!"
"무한 리필의 질을 낮추지 않았습니까? 근데 그게 좀 부작용이."
매출이 또다시 줄어들었다.
당연하게도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나 같아도 눈치채지.'
위스키의 함량을 줄인다.
사케도 훨씬 싼 것을 쓴다.
알아채지 말라는 게 더 무리수.
단골 손님들을 잃게 된다.
그 여파가 매출과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질을 낮추라고 했지. 저질 메뉴를 팔라고 했냐고!!"
"그게 그거 같은데요."
"이 새끼가 말대꾸해?!"
"……아닙니다."
물론 곧이곧대로 시킨 것은 아니다.
본사에서 나름대로 메뉴얼을 만들어서 하달했다.
'그게 제대로 지켜지겠냐고.'
손발이 아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현장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모른다.
본사에서 직원들을 달달 볶기만 하지 현장에 간 적은 없다시피하니까.
"보고를 마저 드리자면 영업 악화로 폐업을 희망하는 지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조속히 해결해주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겠다고."
"뭐어? 이 새끼들이?!"
"저는 전달을 드렸을 뿐입니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징징대고 지랄이야!"
현장의 상황은 이미 심각하다.
장사는 안되는데 인건비는 고스란히 나가고 있다.
인플레로 인해 원재료 부담은 더 커졌다.
사장님들이 이탈을 할 만도 한 일.
'그걸 이 새끼가 알겠냐고.'
말해봤자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우는 이 회사에 완전히 적응해있다.
'이 월급 도둑 새끼들.'
사장이 하는 건 탓과 징계뿐.
지금까지는 회사 내실을 까먹는 것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진짜 위기가 오자 지도자의 역량이 드러난다.
우석은 결코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 새끼."
"죄송합니다."
"아니, 그 새끼 이름 뭐였지? 그 교이쿠 선생님 엿 먹인 새끼 말이야."
"손익좌 말씀이시죠?"
어린 놈이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 것 또한.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손익좌가 뭐야.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입사를 제안했다.
심지어 대리급 대우를 약속했다.
그런데 경쟁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감히 자신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는 놈.
"우리도 가만 있을 수 없지."
"뭐,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는."
"너 가마니야? 스스로 생각 못해? 이 쓸모없는 놈."
"……."
본때를 보여줘야만 한다.
* * *
한국대 미시경제학과.
"부탁하신 거 다 끝났습니다 교수님."
"아, 그래? 수고했다!"
교수인 양민석은 깐깐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성격도 독불장군이다.
대학원생들의 기피 1순위.
그런 그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에요?"
"그럼 뭐?"
"트집 한두 개는 잡아야 되지 않나 해서."
"내가 이유 없이 시비 거는 사람인 줄 알아?"
조교인 김탁수로서는 의아하다.
자신은 개같이 해도 항상 트집을 잡히는데.
'걔랑 너랑 같냐.'
교수도 사정이 있다.
단순히 뛰어난 학생이라면 군기 잡기용으로라도 굴렸을 것이다.
그래야 말을 잘 듣는다.
그랬다가 삔또라도 상할까 걱정이 돼서 그럴 수가 없다.
"저도 좀 소중하게 대해주시죠."
"너도 걔처럼 잘하던가."
"어떻게 그렇게 해요."
레이첼 비거.
올해 들어온 대학원생이다.
한국대에는 외국인 학생들도 제법 있지만.
'어떻게 하버드 경제학과를 나와서.'
초명문대를 나왔다.
역지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수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신상 정보가 존재한다.
"한류를 좋아해서 온 걸까요?"
"안 물어봤어?"
"물어는 봤죠. 근데 뭐……,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없으니까."
"에휴, 쑥맥 자식."
물론 민석도 알고 있다.
하버드를 가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턱을 쉽게 두들기진 않았을 텐데.'
소수인종.
기피학과.
두 가지 전제를 붙인다면 한국대를 가는 것보다 쉬울 정도다.
그런 경우는 역지원을 할 만하다.
장래 한국에서 일을 할 예정이라면 말이다.
"교수님은 아십니까?"
"글쎄……."
"저는 그렇다 치고 교수님은 모르시면 안되죠. 오성전자 주가도."
"알면 물렸겠냐!"
하지만 경제학과다.
심지어 백인이라면 어드밴티지도 없었을 것이다.
'조기 졸업까지 하고.'
특수한 인재.
미국 내에서 0.1%에 들어간다는 보증을 받은 엘리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 년 휴학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타닥, 탁!
처음에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학생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나.
'크~ 보고서 완벽한 거봐.'
지금은 그냥 즐기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노예를 둘 수 있다니!
다른 노예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이 충분히 가능하다.
끼익−!
중요한 일만 맡기고 노터치.
그만큼 그녀의 존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막 대하다가 어디로 떠나면 어떡해?
노심초사하며 그녀를 다루고 있다.
"교수님."
"어, 어?"
"더 시키실 일이 없으시면 이틀 정도 연락이 안돼도 괜찮을까요?"
최근에 연구 중인 논문만 해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없어서는 안될 지경이다.
'뭐, 며칠 정도야.'
다른 노예들이 더 열심히 해주면 된다.
레이첼에게는 관대한 민석이었다.
쿠웅!
그와 반비례한다.
교수실을 저승처럼 여기는 대학원생과 달리 일절 눈치 보지 않는다.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대학원생들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내가 어떻게 아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표정이라……."
"쟤가 어떻던 말던 니나 잘해!"
"네이~."
표정부터 그러하다.
쌀쌀맞기 그지없다.
어투도 무미건조함 그 자체다.
'최근 들어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래부터 그러한 느낌이었다.
다가가기 힘들다는 장벽을 세우고 있다.
알 바 아니기도 하다.
자신의 연구 성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날로 더 섹시해지는 것 같애.'
탁수도 딱히 상관은 없다.
오히려 자신을 매도해줬으면 좋겠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미인.
금발벽안의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지경이다.
학과에서 그녀는 특별한 존재다.
냉담한 태도와 꾸미지 않는 담백함 덕에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아니, 남학생들의 이성이.
'후우…….'
그런 교수와 학생들의 생각.
레이첼로서는 아예 신경 쓰지도 않고 있다.
다른 깊은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자취방에 돌아온 그녀는 침대 위에 눕는다.
찌걱! 찌걱!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만지작거린다.
손가락 끝이 어느새 청바지 속에.
'이러면 안되는데.'
자위 행위.
성교육을 통해서는 알고 있다.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날 이후 몸이 이상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가 생긴다.
찌걱! 찌걱!
남자와 대화를 했을 때.
전에는 하나도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게 큰 손으로 날 만지기라도 한다면.'
오버랩이 된다.
그 상상이 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행위.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몸을 진정시킨다.
"아! 아!"
이윽고 반응이 온다.
충실하게 움직인 손가락이 머릿속 상상과 합쳐져 쾌감을 선사한다.
바르르 떨리는 골반.
활처럼 휘게 되는 허리.
그럼에도 순수하게 쾌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인간 때문에…….'
자신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된 데는 원흉이 있다.
찬욱.
그와의 만남이 자신을 이상하게 만들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찌걱! 찌걱!
그를 떠올리면 몸이 더 뜨거워진다.
한 번 달랬던 몸이 또 쾌감을 원하고 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 때문에 제가 이런 짓을.'
핑계를 대며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럴수록 마음 속에서 찬욱의 존재가 커져만 간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함부로 다뤄졌던 몸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찌걱! 찌걱! 찌걱!
아무리 격하게 만져도 그때와는 다르다.
난생 처음 성욕을 깨달은 몸은 갈구해온다.
'Batshit Crazy!'
정신은 그를 부정한다.
몸은 찬욱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레이첼을 더 미치게 만든다.
최근에는 다른 남자들까지 의식되고 있다.
남성이 그토록 폭력적이라는 사실이.
'미국으로 갈 거에요. 다시는 너 따위 안 볼 거에요.'
한국에 온 이유.
현지 조사와 함께 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능력은 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말이다.
그 이상으로 인격파탄자다.
레이첼은 침대 위에서 처량하게 눈물을 삼키고 있었는데.
까톡!
또다시 그 인간에게서 연락이 온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행패를 부리고 대체 무슨 낯짝으로.'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없다.
자신에게 한 일은 기억도 못하는 걸까.
토독, 톡!
이대로 무시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보기로 한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