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브랜디계의 개잡주라고 할 수 있지."
나도 브랜디 중에서는 제일 좋아한다.
이곳 바자르마냑으로 행선지를 정한 이유다.
아르마냑 지역은 3개로 또 나뉘어진다.
바자르마냑이 가장 역사도 깊고, 평가도 좋다.
꾸에엑!!
푸아그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성난 거위들이 좁은 우리 안에서 뛰어놀고 있다.
"선배 보세요. 오리에요!"
"거위야."
"올해 신입생 중에 저렇게 우는 애가 있다던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울어."
적당히 크면 우리에 처박는다.
목에 호스를 꽂고 미친 듯이 먹여서.
'먹방을 찍게 만드는 거지.'
뒤룩뒤룩 살이 찌면 도축을 한다.
간만 쏙 빼낸 것이 바로 푸아그라.
그 지역의 술은, 그 지역의 음식과 먹는 것이 원칙이다.
오는 길에 예약한 식당을 찾는다.
"별로 맛있어 보이는 식당은 아니네요."
"원래 맛집이라는 게 그런 거야."
"그럴 듯한데요?"
시골 식당이다 보니 인테리어가 썩 훌륭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생기는 장점도 있다.
'현재는 운영을 하나 보네.'
프랑스에 올 때마다 들리던 맛집이었다.
차후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문을 닫게 된다.
식당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몰려오며 사건이 일어났다.
"맛있게 드십쇼."
"아저씨가 음식 팔 마음이 없는 느낌이에요."
"시골이 원래 그렇지."
첫 메뉴는 빵이다.
프랑스가 빵의 본고장이기도 한 만큼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밥이 한국에서 짓든 프랑스에서 짓든 똑같은 밥이지.'
별 차이는 없다.
좋은 점이 있다면 갓 만들어서 준다는 것 정도다.
따끈따끈하다.
바게트 위에 푸아그라로 만든 테린을 올리자 사르르 녹는다.
"원래 테린이 신선하지 못한 재료로 만드는데, 이 집은 원산지다 보니 신선해서 잡맛이 없지."
"존나 느끼해요."
기내식에서 캐비어를 발라 먹었듯 버터 대신이다.
프랑스 고급 음식점에서는 일반적이다.
'캐비어보다 훨씬 느끼하지.'
그래서 캐비어보다는 아래.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일 음식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꼴꼴꼴~!
오는 길에 기념품점에서 술을 사왔다.
Sempe Vieil의 1970년 빈티지 제품이다.
"우리 아빠랑 같은 나인데……."
"릴리즈는 최근이니까 40년이 좀 넘었으려나."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이런 것도 100유로가 안된다는 게 아르마냑의 좋은 점이지."
주인의 허락을 받고 콜키지를 한다.
추가 금액을 내야 하지만 전용 잔을 내준다.
'그렇게 튀지 않고 클래식하네. 나쁘지 않아.'
아르마냑의 단점.
QC가 안된다.
소위 말하는 꽝을 뽑을 확률이 있다.
기억하고 있는 빈티지 중 골랐기 때문에 평타는 친다.
입문자인 소라에게도 적당할 것이다.
꿀꺽!
느끼해진 입안을 아르마냑이 씻어낸다.
조금 독하지만 향긋한 과일 향과 단맛이 남는다.
"콜록! 콜록!"
"독해?"
"독한데 맛있어요! 와, 분명 포도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다른 맛들이 나네요?"
5대 꼬냑은 그냥 포도포도하다.
좋은 의미로도,나쁜 의미로도 포도로 만든 술이다.
'근데 그러면 여러가지를 사먹을 이유가 없잖아.'
대기업이다 보니 대중의 입맛을 신경 쓴다.
획일적인 맛은 애주가에게 적이다.
"거칠다고 들었는데 거칠지도 않아요. 소주보다 조금 독한 정도?"
"고숙성으로 커버가 된 거지."
"아!"
그에 반해 아르마냑.
가정집에서 창고에 짱박아둔 술을 파는 거라서 맛이 가지각색이다.
'너티함과 함께 담배가 스치듯 지나가고, 설탕에 절인 모과와 자두 향이 은은하게 남네.'
술을 마시는 보람이 있다.
개중에서 특별히 좋은 것에는 높은 가격이 붙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격이 비싸지는 거군요."
"물론 맛만은 아니지만."
"?"
아르마냑의 좋은 점은 19세기 빈티지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 포도나무가 필록세라 진딧물에 멸종하기 이전.
'그렇게 스토리 있는 것들이 가격이 올라가기 쉽지.'
소믈리에들에게는 꿈과 같은 술이다.
와인은 이미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었지만, 아르마냑은 아직 건질 게 남아있다.
탁!
스프와 감자 밀푀유가 나온다.
플레이팅은 프랑스 식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준이 낮다.
"가장자리에 둘러진 소스에 찍어 먹어."
"술은요?"
"지역 음식은 지역 전통주 하나면 끝나."
하지만 맛은 있다.
이어서 진짜로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거위를 꼭 푸아그라만 먹는 건 아니거든.'
Magret.
거위의 간을 감싸는 가슴살이다.
마찬가지로 느끼하지만 그만큼 맛이 진하다.
"이것도 엄청 느끼하네요."
"그치?"
"술이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고."
"그렇게 먹는 거야."
프랑스에서 술은 음식과 같은 선상에 있다.
조미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메인으로 올라선다.
'술을 이용한 조리법도 정말 많고.'
하고 많은 가게 중에 이 식당을 찾은 이유.
풀코스의 진짜 메인이 도착할 차례다.
"새네요? 그것도 아주 작은."
"참새만 하지."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지."
"이렇게 한입에 넣고 씹어버리는 거야."
오르톨랑.
프랑스의 참새라고 할 수 있는 회색머리멧새를 통째로 구운 요리다.
'만드는 과정이 좀 잔인해서.'
법적으로 금지돼있다.
푸아그라조차 냅두는 프랑스에서도 이것만큼은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시골 식당 중에는 여전히 파는 곳이 있다.
나는 이전의 단골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고.
우적! 우적!
오도독!
입막음 + 소정의 비용을 내고 시켰다.
어째서 한입에 먹어야 하는지 먹어보면 이해가 간다.
"읍읍읍!"
"삼키고 말해."
"이거 술 들었어요??"
"그래, 아르마냑에 담궈서 만든 요리거든."
"아~."
산 채로 말이다.
새의 폐와 위에 아르마냑이 가득 차서 엄청난 풍미를 보여준다.
'알고는 절대 못 먹는 요리인데.'
소라는 알려줘도 먹을 것 같다.
삼키고 나면 오르가즘을 느낀 것처럼 강렬한 후폭풍이 몰아친다.
소라의 얼굴이 환희로 차오른다.
누가 봐도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진짜 존나 맛있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지 않아?"
"네!"
안타깝게도 일반 식당에서는 먹을 수 없다.
내가 참새를 좋아하는 이유다.
'참새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거든.'
참새 구이도 정말 맛있다.
몸집이 작아서 직화 불맛이 제대로 배어들고, 살은 쫀쫀하고 뼈는 고소하다.
그렇게 맛있는 새로 요리를 했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아르마냑을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더 고급스러워진다.
"그럼 아르마냑을 사둬야겠네요!"
"그건 아니지."
"왜요?
"요즘 가장 핫한 건 따로 있거든."
일반인이 술로 재테크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관리도 어렵고, 판매도 어렵고, 가격도 잘 오르지 않는다.
'기왕 할 거면 가장 많이 오르는 걸 사야지.'
위테크의 나라.
영국은 꼭 한 번 가볼 만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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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가기 전에 꼭 할 것이 있다.
"선배……?"
명품 쇼핑.
백화점에 들러 옷을 사고 가기로 했다.
소라가 드레스룸에서 나온다.
불편한지 어색한 표정이다.
"잘 어울리네."
"정말요?"
"가슴 뒤지게 커가지고 정말."
"그 얘기가 왜 나와!"
가슴이 V자로 푹 파여있다.
그 외에는 보수적이라 야하지는 않다.
가슴이 커야 잘 어울리는 의상.
뒤지게 커서 뒤지게 잘 어울린다.
'손 넣기 마렵잖아.'
여행 내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싼티 나는 옷을 입고 있으면 싸보인다.
"오빠가 사줄까?"
"이거 비싼 건데요."
"가슴만 만지게 해줘."
"에휴, 씨발."
명품을 입고 있으면 철없는 커플로 저점이 내려간다.
혹은 성공한 남자.
'남자의 로망 데이트거든.'
누구나 하고는 싶다.
사회적 인식, 그리고 여자가 안 맞춰서 못할 뿐이다.
"절대 안돼요."
"키스는?"
"그건 원래 하던 거……."
"잘 먹을게."
소라는 은근히 관대하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쪼오옥!
바로 한입 먹는다.
가볍게 바른 립스틱과 함께 촉촉한 혀가 들어온다.
소라가 지랄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에선 기본 인사가 키스인데."
"그래도요!"
"그래도 뭐?"
"어……?"
실제로 별 상관도 안 한다.
점원도, 가게 손님들도 자신들 일을 보고 있다.
소리를 지르니 잠깐 뒤돌아본 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볼 일을 본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가지라니까.'
소라가 얼을 탄다.
아직도 한국식 씹선비 문화가 몸에 배어있다.
"그냥 여행 동안 오빠 여자 하라니까. 그러면 남자들이 못 건들 거 아니야."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정하기 싫거든요."
"오빠가 명품 많이 사줄게. 응?"
"돈으로는……, 싫거든요."
탈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행은 사람을 개방적으로 만든다.
'대충 핑계거리 하나 만들어주고.'
그럴 듯한 개소리로 포장한다.
천천히 유도할 계획이었는데.
"저도 선배가 싫은 건 아니거든요."
"그럼?"
"자꾸 절 소유하려고 하니까 화나는 거지."
눈길을 돌린 채 중얼거린다.
빨갛게 달아오른 홍조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얘가 귀엽다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다처럼 꾹 닫힌 마음을 열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소라 성격에 호감 없는 남자와 어울릴 리 없다.
생각지도 못한 딜을 걸어온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저도 선배를 소유하고 싶어요."
"니가? 나를?"
"그래야 공평한 거잖아요."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본 모양이다.
실제 기업간의 인수에도 쓰이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자기 돈 안 쓰고 기업 돈으로 사려고 하는 꼼수인데.'
오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가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성그룹이 75%를 가지고 있다.
이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나중에 오성전자의 주가가 내려앉았을 때 주식간의 트레이딩으로 사들인다.
"생각을 해봐. 너와 나의 가치가 같니?"
"우씨!"
"꽤 탐이 나는 벤처기업이긴 하지만."
"아!"
소라가 하려는 것도 그것.
하지만 등가 교환을 하기에는 가치 차이가 너무 난다.
'원천 기술은 원하고 있지.'
소라의 가슴에 손을 올린다.
그대로 힘을 주자 귀여운 신음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주위를 의식하는지 참고 있는 것이 티가 난다.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럼 30%……."
"30%? 그 정도야 뭐……, 아니 잠깐만."
물론 가치는 충분하다.
30% 정도 주고 소라를 암컷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개이득이다.
'설마 알고 말한 건가?'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