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회사 경영의 정상화 촉구.
소액 주주들의 권리 보호.
회사 CEO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선배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턱도 없다.
수십 억이 아닌, 수백 조의 가치를 지닌 회사니까.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오성전자 주주들을 대표해서 주가 하락의 책임을 묻는다.
의결권을 위임 받는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확실히 한국 주식 시장은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기업인 오성전자가 개선된다면, 다른 기업들도 달라질 것이다.
"선배!"
"아, 왜."
"선배가 오늘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손 닿는데까지 도울게요!"
자신도 선뜻 도와줄 의향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선배가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스케일이 큰 일을 계획하고 있을 줄 몰랐다.
소라의 가슴이 더 커지려던 찰나에.
"아까부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네?"
"헛소리 그만하고 와서 줄이나 서."
"?"
선배가 엉덩이를 찰싹! 친다.
자신도 모르게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그 끝에는.
"여기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이찬욱 주주님 본인 맞으시죠?"
"맞으니까 빨리 내놔."
주주 확인 절차인 모양이다.
오성전자 주주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주주확인표'를 받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묵직한 상자를 받은 선배가 3살 먹은 애새끼처럼 기뻐한다.
"그게 뭐에요?"
"보면 몰라? 빨리 받아 너도."
"꺄!"
엉덩이를 또 찰싹! 때린다.
주위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마음속 수치심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윤소라 주주님 본인 맞으시죠?"
"네, 네 맞아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은 이쪽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주주확인표를 받는다.
자신도 오성전자의 주주.
그리고 선배가 받은 상자의 정체도 알게 된다.
'케이크?'
카스테라와 파운드 케이크.
델○트 콜드 오렌지 주스도 하나 들어있었다.
"맛있다. 역시 빵은 아티제지 쩝쩝!"
이미 뜯어서 게걸스럽게 입안에 처넣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
반쯤 얼이 탄 채로 홀로 이동한다.
좌석에 착석하고 나서야 정신이 든다.
"선배."
"또 왜."
"여기 왜 온 거에요?"
"보면 몰라? 이거 먹으려고 밥도 안 먹고 나왔는데. 오예 주스도 있다."
주주총회가 열리는 홀 안.
분위기는 당연 엄숙할 수밖에 없다.
오직 선배만이 피크닉이라도 온 모습이다.
'?????'
멈춰버린 뇌는 쪽팔림조차 기능하지 않는다.
선배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 모르겠다.
"이거 먹으려고 주주총회를 왔다고요?"
"그럼 넌 여기를 왜 왔는데?"
"그야 한 명의 주주로서……."
"여기 아티제 케이크 먹으러 오는 곳인데? 대체 넌 주주총회를 뭘로 아는 거냐."
"……."
상식이 붕괴되는 느낌.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선배와 있을 때면 자주 겪었다.
'아 원래 이런 새끼였지.'
보통 사람이 아니긴 하다.
그것이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닐 뿐.
골 때리는 새끼.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욕을 할 만한 여력이 없다.
"겨우 이거 받으려고 온 거라고요?"
"뭐가 겨우야. 이거 얼마나 맛있고 비싼데."
"저는 선배가 사라고 해서 추가 매수했단 말이에요!"
"내가 니한테 매수 찬스를 가르쳐줄 것 같냐?"
개처물렸으니까.
선배는 주주총회용으로 딱 1주만 매수했다고 한다.
주가가 내려가도 아티제 케이크 먹으면 개이득이라며.
'미친놈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 자신이 바보였다.
물 밀듯이 후회도 밀려온다.
1200주.
정말로 삼만전자라도 가게 되면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그 귀한 오만전자 주주를 여기서 뵙게 되네."
"아니거든요. 물 타서 사만전자거든요."
"아오 부끄러운 거봐. 부끄러운 젖탱이 잘도 달고 다니네."
"뒤질래 진짜!"
깐족깐족 맞을 짓만 골라서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도 화낼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 김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으로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가 내려가는 거 아닙니까?>
<불과 몇 주 전까지 육만전자였는데 지금 30% 가까이 떨어졌어요!>
<주가 하락을 사과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젊은 청년층부터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아줌마까지 각양각색이지만.
'저분들도 물렸구나.'
오성전자 주주.
주주들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하나다.
주가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경영진의 책임 아니냐?
"선배는 할 말 없어요?"
"내가?"
"아니, 뭐 방송에서도 뭐라고 했잖아요. 선배인 거 알고 있는데."
소액 주주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시간이다.
그들을 대표해 유튜브에서 일을 벌인 장본인.
'이기는 한데 이 새끼는 그냥 유튜브로 보는 게 훨씬 사람 같네.'
전혀 관심이 없다.
콧구멍을 파면서 남 일이라도 되는 양 띠껍게 보고 있다.
"진짜 남 일이라 그래."
"우씨!"
"내가 니처럼 띨빵하게 오성전자 산 줄 아니?"
"한 마디 해줄 수는 있는 거잖아요! 선배한테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오성전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상을 본 많은 개인 투자자들도 분노하고 있다.
'대가리 뚜껑 따서 열어보고 싶다.'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존경할 만한 투자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씨발놈인 것 같기도 하고.
"주주총회에서 뭘 기대하는 거야. 여기 그냥 케이크 먹으러 오는 곳이라니까."
"좀 진지하게요!"
"진지는 안 차려주나?"
하지만 안다.
선배가 이유 없이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아티제 케이크 정도면 진짜 할지도.'
자신도 좋아하는 케이크이긴 하다.
그래도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싶다.
"제 케이크 둘 다 줄 테니까 제대로 좀 말해줘요."
"하긴 넌 이미 두 덩이 달고 다니니까."
"씨발놈아."
주주총회는 신성한 자리다.
주주가 회사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장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선배도 이렇게 심드렁할 줄은 몰랐다.
"너 혹시 주주총회 처음 와봐?'
"네."
"넌 어떻게 아다가 아닌 게 없냐."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자신이 상상했던 주주총회와는 다르다.
소라는 가슴속 답답함을 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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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
주식회사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일반 주주들도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다.
"의장을 맡게 된 성현준입니다. 뚝배기 47기 정기주주총회를 개회를 선언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주주들이 모여 가지고 큰 소리라도 치면 회사도 무시 못하겠지.
"오늘 많이 곤혹스럽겠는데요?"
"왜?"
"뚝배기 실적을 보세요. 최근 경기가 좋았는 데도 어닝 쇼크를 낸 걸 보면……."
현실이 어떤지는 겪어봐야 안다.
소라가 입구에서 나눠준 팜플렛을 들고 쏼라쏼라 떠들어 댄다.
'여기가 무슨 경영자 심판의 장소라도 되는 줄 아는 거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굳이 구구절절한 설명하지 않아도 보면 알 것이다.
"의장!!"
주주총회에 참석한 한 사람.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의장을 향해 발언권을 요구한다.
"봐봐요! 최근 뚝배기 주가 완전히 뚝배기 깨졌는데 아무리 강성 주주라도 뇌수 질질 흘러 나온다니까요?"
소라의 말도 일리가 있다.
칼을 갈고 나오는 주주도 가끔씩 있으니까.
'근데. 얘네가 회사를 하루이틀 운영해 왔겠냐고.'
그런 사람을 하루이틀 봤을 리 없다.
그에 대한 대처법도 완벽히 준비해온다.
"저에게 첫 번째 발언권을 갖게 해주셔서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힘든 여건 와중에서도 열심히 일을 해주신 임원 및 직원분들께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
소라의 머리 위에 갈고리가 떠오를 만하다.
생각한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실적에 관한 내용은 다 알고 있을 테니 빠르게 넘기면 어떨까 합니다."
"아 우리 주주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주가 아주 회사 친화적인다.
주주를 위한 발언인지, 회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트루먼쇼라니까.'
그냥 짜고 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소라가 손을 들려던 것도 잠시.
""동의합니다!!""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다른 주주들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놀랍게도 말이다.
"뭐, 뭐에요 이거?"
"너의 능지가 언제쯤 업그레이드 될지 요원하기만 하구나."
"저도 눈치챘거든요!"
한두 명이 아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인원의 절대 다수가 회사측에서 파견한 인원들인 것이다.
""동의합니다!!""
"어 보감."
대충 이런 식이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찬성을 한다는데 반대 의견을 내비치는 것은 쉽지 않다.
속전속결로 끝난다.
본래라면 몇 시간씩 진행되어야 할 주주총회가 불과 30분만에 막을 내린다.
"……."
소라가 평소보다 더 얼빵해질만 하다.
정말 가슴 큰 것 빼고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아이다.
"이게 주주총회라고요?"
"그래."
"오성전자는 이렇지 않았잖요?"
"거긴 그래도 글로벌 대기업이잖아."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비판을 받아도 급부터가 다른 회사다.
하지만 다른 한국의 기업들은.
'최소한조차 갖춰지지 않은 거지.'
쌍팔년도식을 아직도 하고 있다.
형식만 갖춰서 주주총회를 치르는 것이다.
"가라, 보여주기식 몰라? 니가 군대를 안 가니까 모르지."
"들어는 봤는데요."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일단 해야 하니까.
주식 회사로 등록된 이상 말이다.
한국 회사들은 의무 없이 권리만 쪽 빨아 먹으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이 주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주총회 돌아가는 꼴만 봐도 파악이 가능하다.
"알겠어?
"그래도 이런 기업만 있는 건 아닐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이런 기업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주주들을 무시하지, 병신 취급하진 않으니까.
소라는 아직도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다.
다음 장소로 간다.
이곳은 양반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아까는 순한 맛이었어."
"순한 맛이라고요?"
"원래 그렇잖아. 한국 사람들이 신라면은 매운 것도 아니라고 해도 외국 사람들 입맛에는 매운 거."
글로벌적인 기준에서는 뚝배기도 아웃이다.
미국에서 그런 짓 하면 진짜 뚝배기 날아가지.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더 심한 짓을 하는 회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확실해?"
"당연하죠. 제가 오는 길에 확인까지 했는데.'
다른 회사의 주주총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소라가 물린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닌 모양이다.
'얘 방생 하면 5년 안에 룸빵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
하락장인 만큼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진짜 여기 맞는데! 뭐지?"
띨빵한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개미의 시점에서 생각한다.
"정말 너는 언제쯤 돼야 철이 들래."
"아니, 여기 맞다니까요. 지도 보세요!"
"생각을 해봐. 주주총회를 숨겨서 몰래 진행하면 더 좋을 거 아니야?"
"?????"
주주총회.
주주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다.
'회사 입장에서는 귀찮지.'
돈이나 갖다 바치면 될 개미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주주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제52기 정기주주총회 개최 장소 변경 안내」− 하람
그중 하나.
주주총회 장소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오지 않으면 의결권이고 뭐고 행사할 수 없다.
차후에는 온라인으로도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직접 가야 하기 때문에.
"봐봐.직전에 장소 바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