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온 사람은 주눅이 든다.
지금까지 가본 백화점은 동네 슈퍼마켓 같다.
그런 느낌이 드는 스케일.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라는 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KUCCI』
유명 브랜드 매장에 들어간다.
명품 모르는 사람들도 알 법한 그런 곳이다.
"지갑 혹시 최근에 바꿨어?"
"아뇨, 그냥 쓰는 거 쓰는데……."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적당히."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직원들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움직이는 건 고르는 낌새가 있을 때.
눈치 빠르게 실적을 위해 다가온다.
"저는 이 블랙이랑 밝은 브라운톤 계열이……."
"고객님 보시는 눈이 있으시네요~ 직장인이시면 블랙을 추천드리고요, 학생이시면 밝은 톤이 보다 캐주얼해서."
"둘 다 주세요."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있다.
어째서 이 세상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채택했는지.
'알면서도 모르던 것들.'
바로 와 닿게 된다.
쫑알쫑알 부담스럽게 떠들던 직원의 입이 삽시간에 닫힌다.
"네? 고객님 방금 뭐라고……?"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포장하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요!"
콧대 높아 보이기만 했던 명품샵 직원들.
이리도 재빠른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여를 성과제로 받기 때문이다.
수현이 입을 헤 벌린 채 일련의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저 아직 안 골랐는데……."
"둘 중 하나잖아? 아니야?"
"그, 그건 맞는데요."
"둘 다 사면 되지. 귀찮게 뭘 골라."
하나에 최소 수십만.
학생들로서는 구경만 해도 자랑을 하고 싶은 명품이다.
그런 것을 쓸어 담는다.
그냥 사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삐익!
결제가 된다.
쇼핑백에 담긴다.
매장 밖으로 나갈 때까지 말이 없다.
"다음은 뭐 살까. 옷? 아니면 신발?"
"오빠 이거."
"응?"
"비싼 거 아니에요……?"
당황스러울 수 있다
명품.
글자 그대로 흔하게 걸치는 것이 아니다.
어디 한두 푼이 아닌데.
사려고 마음을 먹어도 하루종일 검색한 끝에.
'그런 귀찮은 짓을 안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이런 백화점이다.
일반인들은 백화점이 어째서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다.
"너 혹시 RPG 게임 해봤어?"
"폰으로는 해본 적 있는데요."
"거기서 왜 무료 이벤트를 하면서 유저들 모집하는지 알아?"
"글쎄요."
RPG 게임은 수많은 유저들이 즐긴다.
게임사에서도 유저 모집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근데 사실 게임사 입장에서 일반 유저들은 없어도 돼.'
BM이라는 게 있다.
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의 약자.
게임사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다.
상위 5%의 유저가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까놓고 말해서 일반 유저들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요? 그럼 왜……."
"광고비 써가면서 신규 유저 모집하냐고?
"네, 그러게요."
"그걸 오늘 알게 될 거야."
클레임 처리하는 게 더 힘들다.
실제로 게임사 관계자들이 망언을 내뱉는 이유도.
「그럼 하지 마! 콰아아아─!!」− 자칭 게임 개발자
맥락이 없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게임사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상위 5% 유저 입장에서는 어떻겠어.'
게임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함이다.
그 남들.
게임 내에서는 일반 유저들을 의미한다.
백화점 안에서라면.
"쇼핑 하는 사람들……."
"그렇지. 저렇게 바글대는 인파는 VIP들이 쇼핑하는 재미를 위해 있는 거야."
백화점의 BM도 게임과 비슷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에 오지만, 실상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건.
'VIP. 즉, 큰손들이거든.'
그들이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라는 생물은 결코 고상하지 않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가챠를 돌리고, 아이템을 산다.
마찬가지의 논리가 현실 세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본주의 세계의 윗공기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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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이, 이거 200만원 짜린데……"
"사이즈 맞춰주세요. 입고 나갈 거니까."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고객님!"
신발.
"100만원짜리 구두는 처음 신어봐요. 엄청 편하다."
"이거랑 평소에 신을 용도로도 하나 골라주세요."
"어느 쪽을 포장해드릴까요?"
백.
"어때요?"
"예쁘네."
"그래요? 잘 어울리나……."
"손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오늘 코디랑도 딱 맞아요 딱!"
하나하나 맞춰나간다.
명품을 차려 입은 수현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이 정도는 입어줘야지.'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액세서리.
고급으로 치장해야 끼고 다니는 보람도 있다.
본인은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는 모양이다.
기본적인 센스는 있어 보이지만.
"근데 마감이 좀 신통찮네."
"손님, 저희 헤르메스는 프랑스 장인이 손수 만든 제품으로……."
"장인 번호 보니까 실습 딱지 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요. 다른 제품 보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아직은 햇병아리다.
기준을 잡을 수 있도록 처음은 내가 골라준다.
'명품은 명품 고르는 법이 또 있어서.'
헤르메스.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다.
직원의 말대로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수작업해서 만든다.
거기에는 작은 함정이 있다.
같은 장인들 사이에서도 레벨이 나뉜다.
그것을 버클에 써있는 번호로 확인이 가능하다.
"B09는 내 기억으로 그렇게 인기 있는 장인은 아니었어."
"그, 그래요?"
"수현이가 처음으로 사는 명품백인데 좋은 걸로 사줘야지."
앞머리를 넘겨준다.
방금 전 까칠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말 잘 따르는 후배가 되었다.
'명품 싫어하는 여자가 어딨겠어.'
짜증을 있는 대로 내던 여친도 가방 하나 사주면 조용해진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주고 있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충분한 것 같은데요……."
"아니야. 기왕 사주는 거 전부 최고급으로 둘러야지."
수현의 입술.
턱을 조금 당겨 벌린다.
그대로 깊게 혀를 넣어 음미한다.
쭈왑!
꿀꺽!
아까는 당황스러워했다.
힘을 줘서 밀쳐내고, 쓱쓱 문질러 닦기까지 했다.
이제는 오히려 맞이해온다.
두 팔로 안기며 안정적인 자세를 잡는다.
격한 키스를 나눈다.
입술을 떼자 숨소리가 거칠어진 야한 여자가 내 품에 있다.
"오빠 그……, 보고 있는데."
"응?"
"직원분이요."
"예쁜 백을 샀잖아. 얼마나 맛있어졌는지도 체크하고 가야지."
여성 직원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속으로는 뭔 염장질이냐며 씹고 있을 것이다.
'아니지. 부러울 걸?'
월급을 털어도 하나 사기 힘든 명품이다.
남자친구가 선물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을 해주고 있다.
자신도 꼬셔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음은 속옷 살까? 뭐 좋아하는 브랜드 있어?"
"비싼 거는 잘 모르는데요."
"그래? 가서 골라보지."
어깨에 손을 두른다.
내 여자라는 것을 자랑하며 밖으로 나간다.
'젊고, 예쁘고, 가꾸기까지 하면 더 맛있어지겠지.'
그것을 조금 도와준다.
화장품관에 가자 직원들이 유리창 안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
아는 것이다.
돈을 많이 쓰는 손님.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여자친구분 너무 예쁘시네요~."
"그래요?"
"뭘 입으셔도 어울리시겠지만,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가 몇 가지 예시를 드릴까요?"
90도로 깎듯이 인사를 해온다.
친근하게 붙어 영업까지 하고 있다.
노다지.
명품관 직원은 자신이 올린 매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명품인 만큼 파는 것이 쉽지 않다.
몇 시간씩 둘러보다가 하나만 사가도 다행이다.
그런데 동대문에 나온 듯이 사고 있다.
그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시불이다.
소문이 날 만도 하다.
저 손님 비위만 맞춰주면 실적을 거둘 수 있다고.
펄럭!
남의 돈 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수현의 스커트를 걷어 올린다.
"오, 오빠?!"
"괜찮아. 여기 다 수현이한테 예쁜 속옷 골라주는 직원들이니까. 그렇죠?"
"네, 네 손님……."
입고 있는 속옷을 보여준다.
어지간한 진상 짓에 이골이 나있을 직원들도 깜짝 놀란다.
'젖어있었으면 완벽했을 텐데.'
아무래도 개발이 덜 돼있다.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몸이 굳은 수현의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는다.
"벗겼을 때 흥분되는 거랑 남자 유혹하기 하기 좋은 걸로 골라 주실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얘가 다리가 예쁜데."
어깨가 드러나는 야한 원피스다.
검은색 계열.
스타킹을 신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기왕 란제리 매장에 온 거.'
가터벨트가 마렵다.
마침 눈에 띄는 후보군이 보인다.
섹시한 비서가 되기 위함 첫걸음이다.
"참고로 가슴 치수는."
"저,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자친구분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이것저것 맞추고 온다.
예상했던 대로 가터벨트가 전체적인 코디와 잘 어울린다.
"오 섹시한데?"
"이거 너무 어른스러워서."
"괜찮아. 오빠가 수현이 어른으로 만들어줄 거니까."
입맞춤을 나눈다.
허벅지도 쓰다듬는다.
살짝 손을 넣어 확인해본 결과.
'존나 야한 속옷 입었나 보네? 면이 좀 적어.'
마음 같아서는 치마를 걷어 올려보고 싶다.
개봉했을 때의 기쁨으로 남겨둔다.
"오늘 할 거죠?"
"응, 따먹어야지."
"나빴어요. 기껏 남친이랑 사이 좋아졌는데."
"오빠랑도 사이 좋아지면 되잖아."
이 정도 받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수현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된 모양이다.
'좋아하잖아 일탈.'
외도.
한 번 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남자친구를 볼 때마다 죄악감이 든다.
그것을 감수하고도 남는 어드밴티지를 제공한다.
평범하게 살면 느낄 일 없는 자극도 말이다.
"오오……."
"누구지? 어디 모델인가."
수현이를 데리고 돌아다닌다.
본판이 좋은데 명품으로 쫙 빼입기까지 했다.
주위의 시선을 강탈한다.
강남.
예쁜 애들이 천지이기 때문에 더 진짜를 알아본다.
흔하디 흔한 성괴가 아니다.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미인의 아우라가 나온다.
"오빠 여기서는 좀……."
"뭐 어때.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런 수현의 허벅지에 손을 올린다.
가터벨트 위의 참 만지고 싶은 장소.
이렇게 마음껏 어루만질 수 있다.
남자친구, 아니 썸남의 특권이다.
'뽕을 넣은 것도 효과가 있는 것 같고.'
본인도 컴플렉스라는 가슴.
옷 위에서라면 효과를 못 낼 것도 없다.
관상용이다.
예뻐진 수현을 희롱하면서 백화점 데이트를 즐긴다.
"이거 완전 스폰 아닌가요?"
"눈치챘어?"
"진작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