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이지.'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그런 속담이 생긴 이유일 것이다.
집안 살림만 팔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끼익−!
그럼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창문을 연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의 100층 빌딩에서 내려다보자 그야말로 장관이다.
'인간이 개미만도 못하게 보이지.'
실패한 월가의 거부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고작해야 수백 억.
남은 푼돈으로 무슨 일을 해봤자 심장이 뛰지 않는다.
그래서 떨어진 것이다.
이곳 월가에서는 매년도 아니고 매주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인물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응 자살하면 그만이야~.'
그것이 정말 농담이 아닌 일.
나는 그렇게 목숨을 끊고 싶지 않다.
뽀옹!
이번 사태가 끝나면 축배로 들려고 했다.
다른 이유로 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갈 땐 가더라도 위스키 한 병 정도는 괜찮잖아.'
독한 양주.
뚜껑을 따고 그대로 입에 흘려 넣는다.
수십 억 가치의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짜릿하게 넘어간다.
진한 셰리의 풍미.
그 이상으로 파고드는 피트.
오크와 궐련의 자극적인 향이 코를 찔러야 한다.
벌컥! 벌컥!
그것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취하기 위한 술 한 병일 뿐이다.
'술에서 깨면 뭐가 됐든 달라져 있으면 좋겠어.'
맥캘란 1946은 이름 그대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만들어진 위스키다.
패자가 돼버린 나에게 딱 알맞다.
늙은 육체.
망가진 건강.
잃어버린 열정까지.
더 이상 '다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인생이 될 바에야 잊혀진 월가의 거부들처럼 사라지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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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종합지수』
89,269.74 ▼892.70 (−1.00%)
[대충 이걸 말아 올리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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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전세계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아 넣었던 한 헤지 펀드의 청산은 싱거운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날 −15%까지 떨어졌던 증시는 정부의 발 빠른 대응과 각 기관의 이례적인 협조로 −1%로 마감했다.
나는 미국의 1%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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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나에게는 곤욕스러운 시간이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은 눈이 떠지는 것도 거부한다.
오늘은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어젯밤 혈액이 알코올이 돼버릴 지경으로 질펀하게 처마셨으니까.
"하아~."
고주(古酒).
오래되고 독한 술은 긴 여운을 만든다.
양치를 해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품을 내뱉는다.
술의 풍미가 남아있어야 한다.
퍼마신 비싼 술의 여운이라도 즐기려고 했는데.
'슬슬 빌딩 압류 들어올 때도 됐고…… 어?'
단 냄새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입안이 텁텁할 때의 바로 그 느낌.
몸도 묘하게 개운하다.
아니, 가볍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본지가 대체 얼마만인지.
'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딱히 방을 빼기 위함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원○스 35권』
원○스가 있다.
만화책.
아무리 2035년에 종이책 생산이 금지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이지만.
'35권? 그건 오다 센세가 쓰신 에피소드일 텐데.'
워터 세○편까지는 원작자인 오다 선생님이 직접 작업하셨다.
원○스 팬들도 딱 거기까지만 인정한다.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한 고가에 거래되어 흔하게 굴러다닐 물건은 아니다.
'1권부터 다 있네? 나도 옛날에 사두긴 했지.'
시가로 1000만원 이상.
상태 좋은 미개봉품은 억 단위도 호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스가 완결된 이후로 더더욱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귀한 물건이 어째서?
'이건……, 구형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무심코 뻗은 오른손에 걸린 물체는 낯이 익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핸드폰이다.
그런데 접히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중고 시장에서나 거래되는 구세대의 스마트폰이다.
'세상에. 무게감 묵직한 거봐.'
무슨 아령이라도 든 줄 알겠다.
그럴 만도 하다.
오성전자의 스페이스 노트는 일반 스마트폰보다 거대하다.
폴더블 관련 기술이 없던 과거에는 기본 크기 자체를 크게 만들었다.
무식한 해결법이지만 시장 반응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뭔가 이상해 뭔가가.'
그러한 구세대의 유물들.
침대 주변에 흔하게 굴러다닌다.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희소성은 둘째 치고 짜임새가 있다.
물품 하나하나가 마치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
'무슨 영화 촬영용 세트도 아니고.'
진짜 트루먼 쇼?
그 빌어먹은 기지배가 또 광기에 들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고 있는 사이에 나를 업어갔다던가.
또 박히고 싶어서 환장을 했다던가.
'……그건 아니겠지.'
솔직하게 말한다.
지금의 나는 이성으로서 매력이 없다.
뚱뚱하고 당뇨병까지 시달리는 아저씨를 어디에?
그런데 그것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내 몸 상태.
날아갈 듯이 가벼웠던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음……, 오?"
투자자.
초 단위로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정확하고 빠른 판단 변화가 요구된다.
1초 전까지 맞는 판단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틀리다면 생각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회귀를 한 거 같은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다른 건 차치해도 몸 상태는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무 완벽에 가깝다.
120kg에 육박하게 만든 뱃살이 쏙 빠졌다.
60kg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몸이 가벼울 만도 하다.
온몸에 분산 투자를 해두었다고 해도 체감되는 무게는 엄청나다.
쌀 한 가마니를 내려 놓은 셈이다.
'상황 파악 완료.'
현재 내가 있는 곳.
대학을 다닐 때 자취를 하고 있던 방이다.
한 번 방을 옮겼으니 전역한 후가 되시겠다.
그리고 이유.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천운이 주어졌을 리 없다.
신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미국을 따먹지 못해 아쉽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이런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일반인이라면 크게 당황할지도 모른다.
마치 꿈 같은 상황.
주식 시장에서는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최고의 주식이 헐값에 떨이되고 있는 경우 말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원래 그 가격 아님?
그러다 나중에 라할살, 라고 할 때 살 걸~ 같은 헛소리를 지껄인다.
기회는 언제나 널려있다.
중요한 건 그 기회를 잡아 채는 능력이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기회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째액! 째액!
창문을 연다.
집 밖은.
"으음……."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게 100층 빌딩.
고소공포증이 없어도 그 아래를 내려다 보면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안 들 수가 없다.
균형을 잃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보통 일로 안 끝난다.
10초 동안 멍하니 하늘을 날아야 하는데.
'참새가 하이루 하네.'
100층은 커녕 땅이 보인다.
푸른 들판 위에 아름드리 세워진 소나무.
나뭇가지 위에 참새가 앉아있다.
나를 보고 깜짝 놀랐는지 도망간다.
아주 자유로이 날갯짓 하고 있다.
구워서 먹으면 그렇게 별미가 따로 없다.
'참새가 작아 가지고.'
운동량은 또 엄청나게 많다.
살이 아주 쫄깃쫄깃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멸종.
사라진다.
기후 변화로 인해서 우리나라 참새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실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도움도 주고, 맛까지 좋은 새가 없어지다니.
'참새를 다시 먹을 수 있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네 쓰읍.'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 참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돈이 없었던 게 아니야. 능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1조 달러 규모의 펀드.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월가에서도 꿀리지 않는 스케일이다.
오롯이 내 힘으로 쌓아 올렸다.
이미 한 번 했던 것, 두 번 하라면 못할 것도 없다.
'두 번 무너질 수 있어서 문제지.'
어디까지나 꿀리지 않을 뿐.
나보다 수십 배 더 큰 대형 펀드들이 즐비하다.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여러가지 꼼수를 썼다.
그럭저럭 성과를 내긴 했어도.
'안돼 나 혼자서는.'
힘에 부친다.
운용 자산이 늘어날수록 운용 난이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전 생에서도 그러했다.
초반엔 빠른 속도로 펀드의 몸집을 불려나갔지만.
토독, 톡!
갈수록 더뎌지게 되어있다.
지금 내가 두들기는 이 구형폰, 스페이스 노트처럼 말이다.
'하드웨어로 성능을 끌어올리던 스마트폰이지.'
초기에는 그 방식이 유효했다.
오성전자는 성능, 애플은 감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스페이스 S10 이후로는 그것마저 뒤집힌다.
따져보니 성능도 아이폰이 앞섰던 것이다.
'GOS 사태도 GOS 사태지만.'
근본적인 원인.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있다.
하드웨어의 성능을 100% 끌어내지 못한다.
성능이 고만고만할 때는 어찌저찌 굴러갔다.
고성능으로 가자 한계가 생기고, 발열 현상도 심해진다.
마찬가지의 현상이 펀드에도 있다.
운용하는 자금이 많아질수록 이전에는 없었던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꽝!
'그딴 거 내가 모르겠냐고.'
수백, 수천억이 아니다.
수십, 수백조를 굴리는데 믿을 만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까?
조금만 삐끗해도 내가 세운 아름다운 계획이 와르르 무너진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그 점이다.
'미래의 정보를 활용해 돈을 벌어봤자.'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사실.
여러가지 활용할 구석이 많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다.
그래봤자 똑같은 결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운용할 능력이 안되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뒤룩뒤룩하게 살찐 돼지는 도축 당하는 게 운명이다.
'그것을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악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회귀를 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이점이다.
여러가지 활용할 수 있는 구석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내 주변만 하더라도.
타악!
집어던졌던 스페이스 폰을 집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내구성 하나는 오지게 튼튼하다.
아무 문제 없이 불이 들어온다.
화면에 금은 커녕 잔기스 하나 나지 않았다.
'이 스페이스 폰에 일어날 마법 같은 변화도 알고 있고.'
현재 시간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나의 20대 시절인 것은 확실하다.
최소 20년은 더 과거로 돌아왔다.
그간의 역사와 사건을 마음껏 이용해 먹을 수 있다.
'내 능력이라면 충분히.'
세상에 변화를 일으킨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여러가지 대책도 준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토독, 톡!
그를 위해서는 날짜부터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
그래서 켠 스마트폰.
날짜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부차적으로 딸려 들어온 뉴스 속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