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질투심에 못 이겨 심한 장난을 친 아델의 엉덩이를 때찌하는 세화, 말리려다가 그러려니 하는 실비아와 유리아
* * *
@@
벽난로 안에 있는 나뭇가지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침실 안.
“아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아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불은 또 어찌나 보드라운지... 칙칙한 마계 주제에 너무 짜증난다.
눈을 감은 아델은 아까 있었던 일을 상기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화의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마기... 정말이지 오줌을 지릴 뻔했다.
지혁에게 실망스러운 건 덤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세화와 유리아가 권속이 된 일을 숨기고 있었다니 말이다.
“헤휴...”
연신 한숨만 내쉬고 있던 아델은,
똑똑.
고풍스런 목재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이불을 살짝 걷었다.
그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셔요...”
“유리아인데, 들어가도 돼?”
아델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유리아가 사랑하는 언니의 미간에 활을 겨눈 모습을, 자신은 똑똑히 봤다!
그런데도 친근한 척이라니... 당장 축객령을 내려도 모자라다.
하지만 무서웠다.
세화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리아가 내뿜는 기운도 굉장히 강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 자매인데...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어선 안 된다.
에잇... 정말... 지혁과 실비아, 이 둘과 알콩달콩 지구에서 살 때가 좋았다.
그리 생각한 아델이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네에...”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하늘하늘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유리아가 들어왔다.
누워있는 상태로 유리아를 샅샅이 살펴보던 아델이 생각했다.
그녀의 몸매가 실비아의 몸매만큼 흉악하다고 말이다.
암퇘지에 최적화된 늘씬한 몸... 또 화가 나려고 한다.
이런 아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유리아가 안부를 물었다.
“방은 어때? 괜찮아?”
“.... 따뜻해요... 근데 여기 TV는 없나요?”
순진무구한 질문에 살짝 터져버린 유리아가 입가를 가렸다.
“왜? TV 보고 싶어?”
“네에... 심심해요...”
“어쩌지? 마계는 지구처럼 과학이 발달된 행성이 아닌데... 조만간 마르셀라한테 부탁해볼게.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정말인가요...?”
“응. 내가 책임지고 물어볼 거야. 약속해.”
음음...! 유리아... 뭔가 실비아만큼 어른스럽다.
말투도 서글서글하고... 자신도 잘 챙겨줄 것 같다.
이 정도면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체를 일으킨 아델이 말했다.
“흐흠...! 식사는 하셨나요? 배가 고프니 저와 점심... 아, 저녁인가요?”
“저녁이야.”
“마계는 시간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짜증나는군요. 어쨌든 함께 먹도록 하지요.”
“그럴까? 그 전에... 네게 소개해줄 아이가 있어.”
“으응? 소개해줄 아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아델이 귀여웠는지, 유리아가 킥킥거렸다.
“응. 엄청 귀여운 마물인데...”
“마, 마물...? 싫어요!”
기겁을 한 아델이 이불을 덮어썼다.
마물이 귀엽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유리아는 이곳에 있다 보니 눈이 침침해진 게 분명했다.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걸까? 정말 싫다!
반란만 진압하면 당장 지구로 돌아갈 것이다!
“엄청 마음에 들 걸? 데려올게.”
“데, 데리고 오지 마셔요! 혼을 낼 거예요!”
“메릴!”
아아...! 자신의 의견 따윈 무시하고 한 이름을 부르는 유리아에게 화가 난다.
어쩜 저리 꼰대 같을까!
잘 지낼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취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언가가 폴짝 뛰어올랐다.
침대에서 느껴진 진동으로 보아 무척 가벼운 마물인 것 같은데... 요상한 똥강아지라도 데리고 온 건 아니겠지?
“유리아 님! 부루셔떠요?”
여자아이 특유의 상큼하고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가 꼬이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무척 어림을 알 수 있었다.
흐으음...! 이름과 목소리만큼은 귀엽긴 한데에...
“네 친구를 한 명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불렀어.”
“칭구?”
“응, 근데 네 친구가 부끄럼을 많이 타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가봐. 잠깐만 기다려줄래?”
“네에에!”
마물과 유리아의 대화를 듣던 아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물들은 분명 에란델 행성의 언어를 썼다.
헌데... 지금 이 마물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뭐지? 특별취급을 받는 허접 마물인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델은, 이불을 스리슬쩍 내렸다.
그리고는 입을 떠억 벌리고 말았다.
머리 양옆에 달린 거대한 귤색 귀,
윗니에서 삐져나와 아랫입술을 덮는 송곳니,
뺨에 세 갈래로 난 여우수염과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자그마한 몸집,
지구에서 가져온 듯한,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사이즈가 커서 티셔츠 한 장으로 모든 몸을 덮고 있는 게 까무러칠 정도로 예쁘다.
화룡점정으로 티셔츠 밑에서부터 튀어나와있는 세 갈래의 복실복실한 꼬리까지...
세상에...! 귀여움이 폭발한다!
저, 저 여우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눈도 깜박하지 않고 메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델에게, 유리아가 생긋 미소 짓더니 말했다.
“메릴, 인사해. 아델라인이야.”
그러자 유리아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메릴이 조막만한 손을 들어 올리며 헤헤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아델이 침을 삼켰다.
당장 빼앗고 싶은 눈빛. 하지만 유리아의 눈치가 보여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유리아가 메릴을 조심스레 안아들고는 아델에게 내밀었다.
“메릴은 세 살이야. 안아볼래?”
“후우... 후... 네...! 안을래요...! 안아보고 싶어요...!”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린 아델.
유리아가 아델을 놀렸다.
“데리고 오지 말라며? 혼낸다고 했잖아.”
“취, 취소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알았어. 예민한 아이니까 막 아프게 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물론이지요...! 언니도 참...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물론 믿지. 안아도 돼.”
허락이 떨어지자, 아델이 최대한 순진한 눈망울을 한 채로 메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아에게서부터 메릴을 받아들었다.
약간 긴장을 했는지 쫑긋거리는 메릴의 귀.
그것을 본 아델의 혼이 쏙 빠졌다.
‘너무 귀여워...!’
심지어 냄새마저도 좋다.
체리향이다! 좋은 바디워시를 쓰는 듯하다!
마물 중에 이런 귀여운 아이가 있다니...
어쩌면 마계는 괜찮은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리아가 꼰대 같다는 말은 정정한다!
유리아 언니는 실비아 언니보단 못하지만, 그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까 알현실에서의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린 아델은, 그렇게 메릴을 품에 안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위층이 시끌벅적한데... 아델이 또 사고라도 치나?”
촛불로 어둠을 밝힌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던 내 말에, 세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리아 언니가 메릴을 소개시켜줬어요.”
어쩐지 마력이 요동치더라니... 그래서 호들갑을 떠는 거구나.
하긴, 비장의 카드를 쓸 때가 되긴 했지.
그나저나 효과가 무척 뛰어나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이상으로 좋아하는 모양.
잘 된 일이었다. 아델이 이곳에 정을 붙이게 되면 칭얼거림도 줄어들 터였으니.
“그렇군. 어깨의 상처는 괜찮으냐? 거의 아물긴 한 것 같다만...”
“이젠 안 아파요. 아델은 약간 감정적인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약간이 아니라 엄청 감정적이지.
나는 옆자리에 앉아 우리 대화를 경청하고 있는 실비아의 뒷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실비아가 아델과 오래 있었으니, 도움을 받아 아델을 잘 대해줬으면 좋겠구나.”
세화가 장난기 어린 투로 대답했다.
“도움을 받다가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요?”
알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비아가 움찔했다.
“그, 그건... 본능적으로 경계한 거였어. 널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단 말이야.”
“농담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잘 부탁드려요. 언니.”
세화의 조곤조곤한 투에 안심했을까?
실비아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졌다.
그래, 아까처럼 서로 잡아먹으려 하지 말고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대로 가자.
“현재 전황은 어떠하지?”
“며칠 전 큰 충돌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 조용한 편이에요.”
“큰 충돌이라... 피해는?”
“마물들이 꽤 많이 죽고 다쳤어요. 상대방만큼은 아니지만, 잔뜩 독이 올라 있는 상태니 주인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말파스가 있는 서부로 진격할 거예요. 아, 그리고... 말파스 쪽에 있는 마물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요.”
“어수선하다?”
“네. 배신한 것을 후회하는 마물들이 몇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독재정권에서의 반역은 목숨을 걸고 저지르는 법이다.
정권을 교체하거나 죽거나, 모 아니면 도다.
배신할 때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각오했을 텐데 후회라? 웃기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배신자들이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세화와 유리아가 잘해줬다는 뜻이기도 했다.
“말파스 이놈은 뭘 하고 있느냐?”
“아몬의 성에 틀어박혀있어요. 가끔 나와서 마물 몇 마리를 성으로 데리고 간다는 소문이 돌아요. 죄다 C급 언저리에요.”
아몬이라... 그 이름 한 번 오랜만에 듣는구나.
아델의 신성력으로 인해 완전히 불타 뒈진 놈인데... 어떻게 신체부위 일부라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능력이 굉장히 아까워서 속이 조금 탄다.
“몇 마리를 성으로? 무슨 의도라고 생각하지?”
“제 생각엔... 자신의 능력을 대신 사용하게 할 희생양을 구하는 것 같아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
세 치 혀로 마물을 유혹해 반역까지 하도록 선동한 놈이다.
소원을 직접 빌게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증폭시키거나,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다.
어중간한 C급 마물들의 희생으론 유의미한 결과를 얻진 못하겠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많은 수의 마물들이 희생된다면 큰 효과를 발휘하리라.
“현재 배신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전선이 있느냐?”
“물론 있죠. 발록이 책임자로 있는 상태에요.”
발록...! 이 충신 녀석.
널 오해했던 내 죄가 크다.
너에겐 내가 특별히 천계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신을 내려주도록 하마.
당연히 로사리오는 제외하고.
“내일 한 번 들러야겠다.”
“알았어요.”
“그리고 너희 둘과 유리아는 아델에게 가서 마력을 받아오도록 해라. 미리 말해두겠다.”
“아... 마르셀라한테 들었어요. 주인님의 권속이 가진 힘을 증폭시켜준다죠?”
“정확하다.”
“그럼 실비아 언니도...”
실비아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나도 아직이야.”
“그래요? 왜?”
“지금까진 딱히 필요가 없었거든.”
지금은 필요하단 소리였다.
S급 마물 정도는 손쉽게 찜 쪄 먹는 실비아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세화의 마기가 신경 쓰인다는 뜻.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서로를 믿게 되겠지만, 지금은 조금 무리인가보다.
어쨌거나 이 세 명이 아델의 마력을 받는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궁금하다.
천계의 신들과 싸우는 게 가능해질 만큼 증폭되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아니, 목표는 높게 잡으랬다. 그 정도는 되어야 천계를 정복하지.
로사리오 이년... 가랑이 벌리고 기다려라. 마왕님이 간다.
아직 천계로 가려면 남은 일이 있긴 하지만, 이젠 그곳도 가시권이니 신경을 써야겠지.
근데 얼마나 예쁠까? 실비아와 아델의 말을 들어보면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라는데...
직접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