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기억해 둘 필요 없어."
북궁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번생에선 그리 오래볼 사이는 아닐테니"
그리고 서릿발같은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말인즉슨 둘중 하나는 죽게 된다는 말이렷다?"
적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죽는 건 너야."
북궁연은 싸늘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오만하구나, 인간이여."
그 싸늘한 미소를 마주한 적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북궁연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셀수조차 없는 흉악스러운 마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마경魔警내에서도
적수를 쉽사리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함을 지니고 있는 자신이었다.
마물들의 왕인 구영을 제외한다면 자신을 압도할만한 마물이 존재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한낱 인간따위가
그런 자신에게 감히 죽음을 선고하다니?
어찌 이리도 건방지다는 말인가
"정녕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적사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린 것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난 허언 같은 건 안해."
북궁연은 짤막히 답하였다.
"그 말이 진실이길 빌지."
적사는 허공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손을 기점으로 거대한 마기魔氣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
화르르르륵
곧이어 요동치던 마기魔期들이 끈적하고 불쾌한 적갈색의 커다란 불꽃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진실이 아니라면 비참하게 타죽어버릴테니!"
꽈아아악
적사는 불길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화르르르르르륵
그 순간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청명한 하늘을 가득히 뒤덮기 시작하였다.
겁화劫火
그 자체라 칭해도 어색치 않을 강맹한 불꽃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부우우우우웅
이내 적사는 하늘을 뒤덮은 겁화의 불꽃을 그대로 휘둘렀다.
오만하게 서있는 북궁연을 향해
화르르르르륵
그전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강맹한 불길이 지상에 강림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듯한 기세로
"학습능력이 부족하네."
북궁연은 쏟아지는 불길을 넌지시 바라보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딱
그리고 가벼이 손을 튕겼다.
뚝
그 순간 그녀를 향해 덮쳐들던 겁화의 불꽃이 정지한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그리고 이내 정지했던 불꽃들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불꽃이라는 정체성조차 의심될 정도의 속도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서문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얼음 조형물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모든 불꽃이 완전히 동결되버린 것이다.
"아니?!"
그 순간 적사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이번에는 먼젓번처럼 손대중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을 동원하며 거대한 불꽃을 쏘아보낸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 맹렬한 불꽃이 이리도 허무하게 얼어버린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창 경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부족해."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만들어낸 장본인.
북궁연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런 조잡한 불꽃으로는 내게 닿을 수 없어."
무척이나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으드득
그 말을 들은 적사는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북궁연의 태도에 하늘같이 높았던 자존심이 금이 간 것이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그 요사스러운 여우들의 왕 농질蠪侄도
벼락을 쏟아내는 뇌수雷獸도
절대 죽일 수 없다는 불가살이不可殺伊도
마경 내에서 가장 지독하고 사악하다는 사흉四凶조차도
정면으로 대적하는걸 꺼려하는 강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한낱 인간따위가
그런 자신을 무시하다니?
'네까짓게 감히!'
적사의 전신에 맹염猛炎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북궁연에 대한 분노가 사나운 불꽃을 치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두지 않겠다!"
파팟
곧이어 적사의 신형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흥."
북궁연은 코웃음치며 가벼이 손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그 순간 북궁연의 섬섬옥수와 불길을 두른 돌덩이 같은 주먹이 맞부딪히며 커다한 굉음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눈이 좋구나! 인간!"
적사는 고함을 내지르며 곧바로 이격二擊을 가하였다.
머리통을 터트려버릴듯한 기세로
콰아아아아앙
북궁연은 반댓손을 뻗어 적사의 맹렬한 주먹을 무척이나 여유로이 받아내었다.
"그래! 그래! 그래! 더 받아보거라! 더! 더! 더!"
곧이어 적사는 재빨리 주먹을 떼어내며 연격連擊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그리고 북궁연은 연속적으로 쏟아지는 적사의 공격을 무리없이 받아내기 시작하였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듯이 말이다
이내 두 사람 간의 대치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끄아아아악!"
적사는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북궁연의 가슴을 꿰뚫어버릴듯한 기세로
콰아아앙
북궁연은 재빨리 손을 뻗어 날아드는 주먹을 바깥쪽으로 튕겨내었다.
부우우웅
그러자 날아들던 주먹이 방향을 바꿔 옆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오른쪽 가슴이 완전히 비어버린 것이다.
쇄애애애액
북궁연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비어버린 가슴을 향해 쾌속하게 왼손을 내지른 것이다.
쩌어어엉
곧이어 쇳덩어리를 두드리는듯 둔탁한 울림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주르르르륵
그와 함께 적사의 신형이 뒤편으로 지체없이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북궁연의 왼손에 담겨있던 강맹한 힘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것이다.
"........크으윽..."
강맹한 일격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적사가 눈살을 찌푸린 채 신음을 흘렸다.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거슬릴만한 위력인 탓이었다.
"생각보다 튼튼하네, 죽일 생각으로 내지른 거였는데 말이야."
그 모습에 북궁연은 감탄스럽다는듯 말을 이었다.
죽일 각오로
진심을 다해 내지른 일격이었다.
그런 걸 정통으로 맞은 주제에
눈앞에 남자는 너무나 멀쩡하였다.
피를 토하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
그저 눈살 한 번 찌푸리고 끝낸 것이다.
감탄스러울 정도의 내구성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정도 공격으론 내게 닿을 수 없다...인간."
적사는 적의로 가득한 눈빛을 부라리며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마음에 담아두는 편인가봐?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네."
북궁연은 비웃듯 말을 내뱉었다.
무척이나 가소롭다는듯이 적사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딴 눈으로 날 보지마라!"
그녀와 눈빛을 마주한 적사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얕보는듯한 그녀의 눈빛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하지만 북궁연은 시선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노골적으로 그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가소롭다는듯한 감정을 가득히 담은 채로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적사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 얕보는듯한 눈빛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불끈 불끈 불끈
곧이어 적사의 전신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풀어오르며 연신 불끈거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몸속에 감춰져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나 불끈거렸을까
파아아앙
곧이어 폭음과 함께 적사의 몸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대로 터져버렸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스르르르륵
적사가 터져나간 그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부리부리한 눈매
마치 타오른 불꽃과 같은 적안
정면을 향해있는 들창코
흉악스럽게 나있는 날카로운 이빨들
하늘에 닿을 듯 길죽하기 그지없는 몸
그리고 그 길죽한 몸에 채워져있는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붉은 비늘들
".....용?"
그렇다.
모습을 드러낸 건
용이라는 단어가 절로 어울리는 존재였다.
적사 대신 한 마리 붉은 용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체가 용이었던가?"
붉은 용, 적사는 흉악스러운 눈빛으로 북궁연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나는....강철이. 피할 수 없고, 꺾을 수 없는 파괴자, 승천하지 못한 자들의 왕! 내가 바로 대격변이다!]
쩌어어어어억
곧이어 적사의 쩌억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우우우웁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기들이 적사의 입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기가..빨려들어가고 있어?'
그 모습에 북궁연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어찌 자연기들을 저리 쉴새없이 빨아들인다는 말인가
대체 뭘하려고?
그렇게 한창 의문을 품고 있을 때였다.
뚝
숨을 들이키던 적사가 그대로 호흡을 멈춰버렸다.
화르르륵
곧이어 적사의 입천장과 혓바닥 사이 넘실거리는 붉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저거 위험한데..'
그 모습을 본 북궁연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넘실거리는 붉은 구체가 담겨진 힘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라는 사실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그 붉은 구체가 찬란한 빛을 발하더니 그대로 어마어마한 화력이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강철이의 한이 만들어낸 초월의 불꽃
천화天火가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웅
북궁연은 천음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극성으로 운용된 천음빙백신공에 의지를 담았다.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빙결氷結의 의지를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그 순간 혹한의 설풍雪風이 사방에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곧이어 천화와 설풍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고 온사방에는 거대한 굉음성과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그대로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
.
.
.
[크하하하하하하! 꼴이 말이 아니구나! 인간!]
이내 충격파가 완전히 걷히고 적사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저곳이 불에 그을려 넝마가 된 북궁연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
북궁연은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중요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넝마가 되어있는 옷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꼴이 말이 아니긴하네."
북궁연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애딸린 유부녀의 복장이라고 하기엔 과한감이 없진 않다고 느낀 까닭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간 정숙치 못하다며 손가락질 받을거야."
케케묵은 중원인 기준에선 파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운 복장 수위였다.
만약 누군가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정숙치 못하다 크게 꾸짖으리라
[걱정말거라! 이제 흔적조차없이 소멸되어 평가받을 일 따윈 없어질테니!]
적사는 적대감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또 쏘게?"
북궁연은 태연히 말을 내뱉었다.
[가슴 속에 자리잡은 천불은 끊임없이 타오르는 법!]
쩌어어어어억
적사는 입을 다시금 크게 벌렸다.
후우우우우우웁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다시금 자연기들을 빨아들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달리
자연기들이 좀처럼 모여들지 않았다.
'...한 번 사용해서 그런 것인가?...쉽사리 모이지 않는구나.'
후우우우우우웁
후우우우우우웁
숨을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최대한 많은 자연기를 흡입하기 위해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모여들지 않는 것이다.
'대체 이게...무슨!?'
적사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어찌 자연기들이 모여들지 않는다는 말인가
"소용없어."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북궁연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게 무슨...소리더냐!]
적사는 적의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모든 사태가 그녀와 연관있다 느낀 까닭이었다.
"전부 동결시켜버렸거든."
북궁연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였다.
[동결시켰다니...그게...무슨...설마 자연기를!?]
순간 적사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되는 가정이 머릿속으 스쳐지나간 까닭이었다
"자연기는 동결됐어. 이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아."
[말도 안되는!]
말도 안된다며 부정하였다.
자연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을 움직이는 만물의 근원이 아니던가
어찌 그런 것을 멋대로 동결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이 되니까, 자연기가 뜻대로 안움직이는 게 아닐까?"
북궁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현실 부정하는 뱀새끼가 꽤나 귀엽게 보인 까닭이었다.
[만물의 근원을 동결시키는건 기적의 영역이다! 네년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더냐!]
"기적을 행할 순 없어도 흉내정도는 낼 수 있지."
북궁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범위가 무척이나 협소하지만 말이야."
[.....그렇군....깨달았다! 네년이 동결시킨 건 모든 자연기가 아닌 이곳 일대의 자연기 뿐이로군!]
"머리가 없진 않나봐?"
북궁연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될 뿐이지! 멍청하구나! 인간! 그 방정맞은 입이 널 나락으로 보내는구나! 크하하하하하하]
적사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낸 북궁연에 대한 크나큰 비웃음이었다.
본인의 맹점을 드러내다니
어찌 이리도 멍청하다는 말인가
[잘있어라!.인간!....나는.....나는....응?]
몸을 뒤틀려던 적사는 순간 이변을 감지하였다.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마치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왜!...크으윽...으윽..안움직이는 것인가!....크아아아아!]
내부의 마기를 동력원삼아 쉴새없이 꿈틀버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북궁연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부 동결시켰다고."
그리고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그럴...수가.]
적사의 눈빛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눈빛에 자리잡은 감정은 명백한 두려움이었다.
"어서와라, 나의 얼어 붙은 세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