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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92화 (1,193/1,419)

"....인류의 적.."

갈지천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저 강대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스스로 인류의 적임을 자처하였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여, 내가 두려운가?"

그 모습에 스스로 적사赤蛇라 소개한 남자는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이내 갈지천은 대번 부정을 하였다.

"본인은 위대한 검신께 인정받은 검객들의 왕이자 사천 최고의 무력부대 독천대의 대주 갈지천이다! 그런 내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리고 이를 악문 채 고함을 내질렀다.

실상은 두려웠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인간의 한계라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랐기에

갈지천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자신의 힘으로는 눈앞의 존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두려웠다.

너무 두려워

당장에라도 모든 걸 내버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차오르기까지 하였다.

혼자 도망친다면 목숨만큼은 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를테니

하지만 그리 할 수 없었다.

백성들을 부탁한다던 검신의 신뢰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독천대의 존경이

핍박받고 있는 죄없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맞물려 갈지천을 이기적인 욕망을 그래도 짓눌러버렸다.

도망칠 수도

목숨을 구걸할 수도

약한 모습을 내보일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갈지천은 그저 검을 들 수밖에 없었고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너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인류의 적이여!"

두려움따윈 없다고

얼마든지 상대해주겠다고

"역시 너는 강하군."

적사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눈동자에 두려움이 그득 차 있는 걸 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눈앞에 남자가 자신과 격차를 확연히 느끼고 있음을

승산이 없음을 누구보다 확연히 체감하고 있음을

그런데 남자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검을 치켜세우고

큰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얼마든지 상대해주겠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의 내면적인 강함을

"갈지천이라고 했던가?"

적사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렇다!"

"기억해두도록 하지. 전사여."

적사는 갈지천을 향해 가벼이 주먹을 뻗었다.

쇄애애애액

그 순간 어마어마한 풍압을 갈지천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부웅

갈지천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쏘아지던 풍압이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고작 이정도냐!"

풍압을 베어린 갈지천은 호기롭게 고함을 내질렀다.

나름 적사에게 기죽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럴 리가."

스르르륵

적사는 가볍게 코웃음치고는 그대로 발을 굴렸다.

그러자 그의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갈지천의 코앞까지 순식간에 도달하였다.

쇄애애애애애액

코앞까지 다가온 적사는 돌덩이 같은 주먹을 움켜쥔 채 갈치천을 향해 그대로 내질렀다.

부우우우웅

그러자 갈지천은 한치의 망설임없이 날아드는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곧이어 거권과 검이 맞부딪히며 굉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주르르르륵

"크으윽!"

그와 함께 갈지천의 신형이 지체없이 뒤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적사의 주먹에 담긴 강맹한 힘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부족하다, 이정도로는 내게 닿을 수 없다. 인간이여."

단 한발자국조차 밀려나지 않은 적사는 담담히 입을 떼었다.

너무 여유로워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냐! 어디 이것도 한 번 당해보아라!"

우우우우우웅

갈지천을 내력을 극성으로 운용하였다.

그러자 검에 한층 더 파괴력이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내력이 유형화되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검기劍氣

검기들이 뭉쳐져 더욱더 선명해지는 검강劍罡.

그리고 검강들이 극한으로 압축되어 그 파괴력을 더해주는 검환劍環.

지금 갈지천의 검끝에는 강기들이 극한으로 압축된 검환劍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죽어라!"

쇄애애애애액

갈지천은 적사의 머리통을 향해 망설임없이 검환을 내질렀다.

머리를 으깨버릴 요량이었다.

갈지천은 날아드는 검환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곧이어 검환과 적사의 이마가 맞닿게 되었고 커다란 굉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끝이다!'

갈지천은 승리를 자신하였다.

적사가 무슨 의도로 자신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저놈의 실책이었다.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파괴의 고리를 이마로 받아버린 이상

머리통이 으깨지고 말테니

"꽤 강한 공격이군."

하지만 그런 갈지천의 예상은 절묘히 빗나가버렸다.

적사가 생채기 하나조차 없는 너무나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또한 닿을 수 없다."

적사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 말을 들은 갈지찬의 눈동자가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드드득

하지만 이내 이를 갈고 애써 신색을 회복하였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모두가 패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으아아아아아아아!"

다시금 기합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검이 맞닿을 때마다

커다란 굉음성과 함께 충격파가 전해졌지만 적사는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어떠한 피해도 없다는듯이

그렇게 얼마나 맞아주었을까

"그만하면 되었다. 인간이여. 이제 너도 알지 않더냐?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포기하라."

적사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 생에 포기란 없다!"

갈지천은 불복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말이다.

"말이 안통하는군."

적사는 가벼이 손을 뻗었다.

덥석

그리고 갈지천의 검신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이익!"

갈지천은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닿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는가?"

콰직

곧이어 갈지천의 명검이 그대로 두동강나기 시작하였다.

적사의 힘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이노오옴!"

갈지천은 분노로 가득한 고함을 내질렀다.

평생을 함께했던 친우를

저항조차 못해보고 잃고 말았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갈지천은 부러진 칼날을 치켜세우며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끝까지 저항할 요량인 것이다.

적사는 그런 갈지천을 바라보더니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파팟

순간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휙 휙 휙

그가 사라지자 갈지천은 재빨리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조금이라도 그를 빨리 찾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두리번거렸을까

덥석

어느 순간 갈지천은 고개를 뜻대로 할 수는 없음을 느꼈다.

우악스러운 힘이 머리통을 고정시킨 까닭이었다.

"내면의 강함만큼 실력이 따라주었으면 좋았을 것을...안타깝구나."

갈지천의 머리통을 움켜쥔 적사는 안타깝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내면적 강함과 실력이 조화를 이뤘다면 분명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었으리라

부우우우우웅

말을 마친 적사는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러자 굉음성과 함께 갈지천의 머리통이 땅에 그대로 처박혀버렸다.

한순간에 일격을 허용해버린 것이다

"푹 쉬거라, 전사여."

곧이어 적사는 땅에 처박힌 갈지천을 향해 천천히 발을 들어올렸다.

끝마무리를 지을 요량이었다.

휘이이익

그때 바람을 꿰뚫는 파공성과 함께 무언가 번쩍이는 물체가 적사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덥석

적사는 가벼이 손을 뻗어 날아드는 물체를 그대로 붙잡았다.

그리고 손을 펴보니

그곳에는 한 자루의 비수가 놓여져있었다.

"호오, 끼어들 셈인가?"

비수를 본 적사는 읊조리듯 말을 내뱉었다.

"대주의 목숨은 못넘겨준다!"

그러자 비수를 던진 장본인, 독천대의 부대주 당륜이 큰소리를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양손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소매 속에 감춰줘있던 수많은 암기들이 손 안에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독천대! 대주를 구하라!"

곧이어 당륜은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암기들이 하늘 가득히 수놓으며 소나기처럼 쉴새없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적사 하나만을 노린 채로

"눈물겨운 전우애군.."

그 모습에 적사는 가벼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손안에 어마어마한 마기魔氣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곧이어 요동치던 마기魔期들이 끈적하고 불쾌한 적갈색의 커다란 불꽃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꽈아악

적사는 그 적갈색의 불꽃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부우우웅

그리고 망설임없이 그대로 휘둘렀다.

그 순간 하늘이 붉어졌다.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으며 하늘 가득 수 놓아져있던 암기들이 그대로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겁화劫火

전우주를 파괴하는 종말의 불꽃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초자연적인 모습에 암기를 내던졌던 모든 독천대원들은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순간 하늘조차 붉게 만들정도로 강대한 불길이라니

어찌 저런 게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격차를 깨달았는가?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사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이정도라면

저 무지한 자들도 자신과의 현격한 격차를 깨달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

"..........."

그 물음에 독천대는 답하지 못하였다.

명백한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대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한 가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 다른 한 가지는 발악을 하다 고통으로 가득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어떤 걸 선택하겠는가?"

적사는 그들을 바라보며 선택을 강요하였다.

그저 고통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발악을 하다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의기로운 갈지천을 봐서 나름의 호의를 베풀어준 것이다.

"......독천대."

그 물음에 부대주 당륜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검을 들어라!"

그리고 하늘높이 검을 치켜들기 시작하였다.

"오오오!"

그러자 기합성과 함께 다른 이들 또한 검을 치켜세우기 시작하였다.

명백히 후자를 택한 것이다.

"어리석구나, 참으로 어리석어."

절레 절레

적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름의 호의를 베풀어

고통없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까지 줬거늘

어찌 이리도 멍청한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어리석다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또한 너희들의 선택, 존중하도록 하지."

적사는 다시금 적갈색의 불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크게 치켜세웠다.

화르르르르륵

그러자 적갈색의 불꽃이 다시금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였다.

우주를 파괴하는 종말의 불꽃

겁화劫火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불길이 치솟은 것이다.

"예정된 종말을 맞이하라."

그리고 망설임없이 휘둘렀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향해

그러자 하늘을 뒤덮고 있던 적갈색의 불꽃이 하늘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듯한 기세로

그 초자연적인 광경을 마주한

독천대의 무사들은 두려움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오직 적사를 죽이기 위해

이내 독천대의 무사들과 겁화의 불길이 맞딱뜨리게 되었고

커다란 겁화의 불길은 독천대의 무사들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시작하였다.

'끝났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적사는 이내 시선을 떼었다.

더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작열의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

위력을 현저히 낮추긴 했지만

저정도 수준의 인간들이 감당하기엔

차고 넘칠정도의 위력을 자랑하는 불길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저 불길 속에서 살아남는 건 요원한 일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적사는 몸을 돌렸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갈지천에게 마무리할 차례였다.

전사다운 영광스러운 최후를 선사해주리라

그렇게 한창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오싹

알 수 없는 한기가 등골을 스쳐지나기 시작하였다.

휘익

적사는 함께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독천대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얼음조형물을

".....대체 저게..무슨?"

순간 적사는 모습을 드러내고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겁화의 불길이 얼어붙은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얼음 처음 봐? 이거 완전 촌놈의 새끼네."

그때 마치 북풍한설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적사는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에

하늘처럼 청명한 푸른 눈빛

오똑한 콧날을 가진 아름답기 짝이 없는 여인의 모습을.

"......네년은 누구지?"

적사는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북궁연."

새하얀 여인, 북궁연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구태여 기억해둘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번생에선 그리 오래볼 사이는 아닐테니."

그녀의 냉기가 한층 더 차가워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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