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15 1116. 초기初期
쓰윽 쓰윽 쓰윽
차분한 인상의 여인이 거침없이 붓을 놀리며 서류 작업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붓을 놀렸을까
똑 똑 똑
누군가 집무실 문을 가벼이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탁
그러자 작업을 이어가던 여인은
곧바로 손에서 붓을 놓아버렸다.
"어쩐 일이신가요?"
그리고 두드려진 문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결재 서류를 몇 장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여인의 음성이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세요."
끼이이이익
그러자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고급진 느낌이 물씬 드는 귀부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주 대리를 뵙습니다."
고급진 느낌의 귀부인, 금적화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를 건네었다.
"네에, 반가워요, 금부인."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게 결재 서류인가요?"
당서윤은 그녀가 쥐고 있는 서류 뭉치를 눈짓하며 물음을 던졌다.
"네에, 맞습니다."
금적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몇 장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두꺼운 두께네요."
그 모습에 당서윤은 골머리 아프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서류의 두께에
벌써부터 거부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장 수가 많아서 그렇지 , 실질적인 안건은 서너 개밖에 안된답니다."
금적화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안건이길래, 그리 두꺼운 건가요?"
"당가제 무구들의 서역 수출 건이랑 연맹과 차익 분배 건, 당가 무공 전수자 복원 사업에 관한 안건들이예요."
그 물음에 금적화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같이 굵직하기 짝이 없는 안건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장수가 많아 서류가 저리 두꺼운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 일을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 같네요."
당서윤은 푸념하듯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분에 넘칠 정도로
무리하며 일하고 있건만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도저히 일이 줄어들지 않았다.
푸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당가가 날로 번성하며 무림에 우뚝서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금적화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일이 끊이지 않다는 건
그만큼 당가의 위상이 날로 드높아지고 차고 넘칠정도로 번창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일이 많은 걸 마냥 나쁘게만 볼게 아닌 것이다.
"........후우...저도 배부른 푸념인 건..알아요...하지만 이렇게 끝도 없이 일하다간 무림에 우뚝 선 당가를 보기도 전에 그대로 눈을 감을 지 몰라요."
당서윤은 자조적인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가주 대리께서 업무 피로가 과중된듯 하네요. 이리도 힘들어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
일이 얼마나 쌓이든
묵묵히 업무를 이어가던
당서윤이 눈에 띄게 푸념이 늘었다.
분명 과할 정도로 부가된 업무가
극심한 피로를 선사한 까닭이리라
"죄송해요...푸념이 늘었죠.....원래 안그랬는데..요즘 따라..너무 예민하네요."
당서윤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요즘따라 뭔가 더 예민한 기분이었다.
작은 일도 신경쓰이고
괜스레 짜증이 치밀어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아니예요. 충분히 불평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가주 대리께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 지 잘 아는 걸요?"
단언컨대 당가에는
당서윤만큼
막중하고 과다한 업무를 맡고 있는 이는 없었다.
불평을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좀 쉬시는 게 어떠신가요?"
금적화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보며 입을 떼었다.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제가 쉰다면 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거예요."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일을 놓는 순간
수많은 업무들이
뒤편으로 밀려날 게 뻔하였으니
"..며칠 정도는 일이 늦춰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그만큼 몸을 회복시킬 수 있을테니까요."
금적화는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일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건강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휴식이 필요하였다.
억지로 버텨가며 일하는 건 오히려 악수인 것이다.
"......며칠이라..."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쉬었을 때 상황을 가정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무리네요....일이 남아있는 이상 쉴 수 없어요..."
그리고 이내 쉴수 없다는 결론을 짓게 되었다.
"그렇게 업무가 중요한 건가요?"
"네에...적어도 제 휴식보다는 윗선에 놓을 만큼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골병나실지도 몰라요."
"이미 골병은 충분히 났어요...무언가 더 추가된다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네요."
당서윤은 자조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후우...아무래도 가주 대리에게 일을 떼어내기 위해선....업무보다 더 큰 가치를 찾아야될지도 모르겠네요."
"더 큰 가치요?"
"네에, 가령....선우님의 방문이라던가...."
금적화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딱..딱히 그렇지도..."
"가주 대리께서 업무를 멈추고 쉬는 날은 선우님이 방문하는 날 밖에 없지 않았나요? 아니면 제가 잘못 아는 건가요?"
금적화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그 물음에 당서윤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아니면 선우님말고 다른 가치가 찾을 수도 있겠네요...육아휴직이라던가."
"육아라뇨....아직 전 임신하지 않았어요."
당서윤은 짐짓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닌가요?...언제고 아이가 들어섰다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뜨거우시니.."
"그렇긴 하지만...아직 그런 징조는 전혀 없습니다......너무 이른 이야기예요."
당서윤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 말대로
아이가 들어서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뜨거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긴 하였지만
임신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진 아이가 들어서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육아휴직을 논하다니
일러도 너무나 이른 이야기였다.
"뭐...저도 당장 임신을 하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니예요..그저 그런 가치도 있다고 말씀드릴 뿐이죠...가주 대리께서도 만약 임신을 하게 된다면 곧바로 업무를 중단하고 태교에 전념하실테니까 말이에요."
"........당연히 그리 할 생각이예요....제겐 당가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선우와의 결실 또한...그 무엇보다 소중하니까요."
당서윤은 굳은 결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이를 뱄다면
당연히 육아휴직을 쓰고
태교를 위해 온신경을 집중할 생각이었다.
소중한 아이가 자라나고 있는 몸뚱아리를
먼지가 잔뜩 묻어나있는
서류 뭉치 속에 방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심산인 것이다.
"역시 가주 대리께선 임신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금적화는 결론을 내었다.
당서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선
임신을 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다고 말이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임신이 아무때나 되는 것도 아니고.."
당서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임신이라는 건 적절한 시기와
운수가 맞아야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융합이었다.
말로 내뱉는다고
곧바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럼 오늘 밤부터라도 노력해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농이 과해요....금부인."
당서윤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노골적인 그녀의 말에
괜스레 부끄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어머, 농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금적화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우.....부디.....농이길 바랄게요."
당서윤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었다.
"어쨌든 결재 서류 전해주셔서 감사해요...이만 가보셔도 돼요."
그리고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더 말을 섞다간
끊임없이 놀려먹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후후후, 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가주 대리."
금적화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가주 대리, 전 진심이니까요."
금적화는 한마디 덧붙인 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쿵
곧이어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는 당서윤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임신이라니.....그런 게 마음먹은대로 이뤄질 리 없잖아..."
홀로 남은 당서윤은 넋두리하듯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스윽 스윽 스윽
홀로 남게된 당서윤은 다시금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수다를 떤 만큼 업무가 지체되었다.
재빨리 업무를 진행하지 않으면
오늘 퇴근도 물건너가리라
스윽 스윽 스윽
그렇게 당서윤은 거침없이 붓을 놀리고 또 놀리기 시작하였다.
일필휘지라는 말이
절로 떠올리질 정도로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붓을 놀렸을까
흠칫
얼마지 않아 당서윤은 몸을 흠칫 하고 떨었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관통하듯 느껴진 까닭이었다.
'선우?.....그 이가...왜 이곳에?'
당서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익숙한 기운의 정체는
선우였다.
누구보다 소중한 낭군이자
자신의 업무를 유일하게 멈출 수 있는 존재 말이다.
그가 별안간 이곳에 왜 찾아온다는 말인가
'금부인이 불렀구나.'
와락
곧이어 당서윤의 고운 아미가 있는대로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금적화의 오지랖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해도
자신과 상의조차 없이 대뜸 선우를 부르다니
어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걱정시키기 싫거늘.'
안그래도 공사가 다망한 남자였다.
그런 그를 괜스레 걱정시키고 싶진 않은 것이다.
'......금부인...나중에..두고 보지요.'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하였다.
이번 빚은 톡톡히 갚아주고 말겠다고
그렇게 한창 다짐을 하던 차였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지?"
당서윤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보고 싶어서 왔지."
그러자 능글맞은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거짓말, 금부인이 불러서왔지?"
"금부인이 불렀다니? 오늘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흐으음."
당서윤은 의심을 거둬들이지 못하였다.
별안간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일단 들어가서 말하면 안될까? 이래저래 줄 것도 있고...할 말도 있거든."
"......들어와."
당서윤은 마지못해 출입을 허락하였다.
의도가 어쨌든
구태여 찾아온 그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싶진않은 까닭이었다.
끼이이이익
곧이어 경첩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문틈 사이로 시원스러운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손 안에 뚜껑 달린 커다란 그릇을 올려놓은 채 말이다.
"..뭐야? 그건."
당서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그걸 왜?"
"요즘 일하느라 많이 힘들다며? 예민하기도 하고 피로하기도 하고 말야..그게 다 몸이 허해서 그런거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걸 먹으면 좀 나아질거야. 서윤"
"......역시 금부인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거구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내가 널 위해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을 가져왔다는 게 중요하지."
"또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당서윤은 볼을 살짝 부풀리며 말을 이었다.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그의 속내가 너무나 뻔히 보인 까닭이었다.
"원래 구렁이 담넘듯 잘 넘어가는 거 알고 있었잖아? 새삼스럽게."
선우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후우우.."
당서윤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해맑은 표정을 마주하니
뭐라 쏘아붙이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탁
그때 책상 위에 십전대보탕이 담긴 그릇이 올려졌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선우가
그릇을 올린 것이다.
"화내도 되니까. 일단 이것부터 먹고 내도록 하자."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화 안내..바보야."
"진짜?"
"날..위해 행동한 사람을 질책할 정도로 못되먹진 않았어."
"그것도 그렇네."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서윤이 겉으로는 조금 딱딱해보일지언정
그 속내는 누구보다 상냥한 여자였으니
"그럼 이제 슬슬 맛을 볼까?"
덥석
선우는 십전대보탕의 뚜겅을 쥔 채 입을 떼었다.
"신경 써줘서..고마워."
당서윤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감사를 표하였다.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말이다.
"별말씀을."
선우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뚜껑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모락 모락
그러자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역한 약재가 냄새가 솔솔 풍겨지기 시작하였다.
과연 약재가 열 가지나 들어간 만큼
그 냄새가 가진 역함이 상당한듯 싶었다.
'뭐, 서윤이면 괜찮겠지.'
하지만 선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독을 밥처럼 먹는 당가의 직계 혈족이라면
이정도 역함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버텨낼 게 뻔할테니.
"우우우우웁!"
하지만 그런 선우의 안일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버렸다.
십전대보탕이 드러나는 그 순간
당서윤이 입을 틀어막은 채
헛구역질을 내뱉은 까닭이었다.
"응?"
순간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벌떡
타타타타탁
그렇게 한창 당황하고 있는 사이
당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하였다.
입을 굳게 틀어막고 연신 헛구역질을 하면서 말이다.
".............."
곧이어 방 안에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