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3 1104. 운설의 마음
커다란 욕탕 안
모락 모락
욕탕 안에 가득 차 있는 온수 위로 뿌연 수증기들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언뜻 봐도 온수의 따스함이 절로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그 따스한 온수 속으로 한 명의 여인이 새햐안 발을 뻗기 시작하였다.
첨벙
곧이어 새햐안 발을 시작으로
우아한 각선을 그리고 있는 다리
탄탄하기 그지없는 허벅지
풍만히 부풀어올라있는 둔부
턱 벌어져 여성성을 강조하는 골반
호리병처럼 들어가 있는 허리
도저히 한 손으로는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풍만한 가슴 까지
전신이 물 속에 그대로 잠기기 시작하였다.
찰랑 찰랑
그러자 욕탕 가득 고여있는 물들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출렁이기 시작하였다.
마치 풍랑을 만난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아아아아...."
욕탕에 전신을 담근 여인, 운설은 뜨거운 숨결을 내쉬기 시작하였다.
따스한 온기가 전신을 휘감으며
노곤한 몸을 서서히 이완시켜준 까닭이었다.
온수 속에 있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 좋아 이대로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욕망마저 피어오를 정도로 말이다.
'안되지...안돼..'
휙 휙
하지만 이내 운설은 고개를 거칠게 좌우로 내저었다.
이대로 잠들면 무척이나 행복하겠지만
그리할 수는 없었다.
반대편 방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한 명의 남자.
선우의 존재때문이었다.
'하아...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운설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꼬여도 한참이나 꼬여버린 현 상황에 대한 탄식이 절로 터져나온 것이다.
'피곤하다며 되돌려보내야했는데...되도 않는 목욕 핑계를 대서..'
큰 실수를 했다.
그냥 피곤하다고
다음에 보자며
되돌려보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되도 않는 목욕 핑계를 대서
그가 자신을 기다리는 상황을 몸소 만들어버린 것이다.
'바보야...넌 바보야..'
콩 콩 콩
운설은 앙증맞은 주먹으로 제 머리를 몇 번이고 두드리며 자책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하여 좀더 그럴듯한 핑계를 대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말이다.
".........하아아아"
곧이어 운설은 크나큰 한숨을 내쉬며 들어올렸던 주먹을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였다.
뒤늦게 자책해봤자
하등 소용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래..자책 보단..앞으로 어떻게해야할지 생각하자.'
이미 상황은 꼬일대로 꼬여버렸다.
이런 상황에선 자책하기보단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리라
'.........얼굴을 어떻게 마주치지?'
가장 고민되는 건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었다.
안그래도 젖가슴을 내보이고 난 이후
그와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건만
요랑의 쏘삭거림으로 그 껄끄러움이 배가 되었다.
'게다가...그 두근거림이..신경 쓰여.'
더불어 선우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였을 때
두근거렸던 심장이 신경쓰였다.
'어째서...기분이 좋았을까?'
선우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창피함과 수치심으로 점칠된 수치심과는
전혀 다른 두근거림이 말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두근거림이건만
어찌 그리도 확연히 차이가 내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미소가...너무...멋져서..인가?'
선우의 미소는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온세상의 광명이
그에게만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두근
순간 운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환한 미소를 상기하니
심장이 다시금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화아아악
그 두근거림을 느낀 운설은 얼굴을 잔뜩 붉혔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며 전신에 열을 차오르게 만든 까닭이었다.
'미쳤어..진짜!'
첨벙
이내 운설은 얼굴을 물속에 처박아버렸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심장을
강제적으로 진정시킬 요량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두근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빠르게 뛰며
전신 가득 열을 차오르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진정해..심장아..제발......'
그녀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어서 심장이 진정해주기를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심장박동이 더욱더 거세졌기 때문이다.
'우우우..'
운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무래도 목욕시간이 길어질듯 싶었다.
***********
'꽤 오래걸리네.'
선우는 가벼이 턱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과연 말했던대로
운설의 목욕시간은 상당히 오래걸렸다.
한 시진이 넘도록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이러다간 해가 지겠는데..'
꽤나 여유를 두고 왔건만 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다.
상당히 오랜 기다린 까닭이었다.
'너무 늦은 것 같은데..나중에 다시 와야되나?'
남녀가 같이 있기엔 상당히 야심한 시각이었다.
다시 와야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에이, 선배님이 무슨 여자야.'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야심한 시각
밀폐된 공간에
젊은 남녀가 함께있는 건 야시꾸리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기준에선 운설은 여자가 아니였다.
큰 가르침을 내려주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런 그녀를 여타 여자와 같은 취급을 하며
배려하는 것자체가 크나큰 실례이리라
'애초에 오늘 담판을 지을 생각으로 오기도 했고.'
요근래 운설이 자신을 눈에 띄게 피해다녔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던 수련을 빼먹기 일수였고
어쩌다 마주쳐도 눈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채 후다닥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아마 예기치 못한 사건이후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끼는듯 하였다.
당시에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속내는 민망함과 불편함을 품고 있던 것이다.
오늘은 그 불편한 속내를 훌훌 털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어렵사리 걸음을 옮긴 참이었다.
시간이 늦었다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관계를 원래처럼 회복시키겠어.'
선우는 다시금 굳은 결심을 하였다.
민망한 사건이후
삐걱대기 시작한 운설과의 관계를 원래처럼 되돌리고 말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한 채 한참을 기다리던 그 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귓가에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왔다.'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사자가 도착하였음을
선우는 시선을 돌려 문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어서 빨리 문이 열리기를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이이이익
곧이어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문이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명의 아리따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머릿결
뽀송뽀송한 우유빛깔의 피부
그 새하얀 얼굴 위에 어려있는 붉디 붉은 홍조
평소 품이 넓은 무복과는 전혀 다른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의복까지
'....아아..'
선우는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운설의 색다른 모습에
생각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이다.
그녀를 반겨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장난스레 타박해야겠다는 생각도
나름 분위기를 잡고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도
모두 멈춰버렸다.
그저 색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운설의 아리따운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창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때였다.
"후배님?"
귓가에 청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네에."
그 목소리에 정신 차린 선우는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너무 빤히 보시는 거 아닌가요? "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제가 넋이 나가서."
"왜요? 사복을 입으니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나요?"
운설은 장난스레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네에.."
선우는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내뱉었다.
"에에?"
운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사복을 입으시니..평소보다 훨씬 아름다우십니다..선배님."
선우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화아아악
순간 운설의 얼굴이 잘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하였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하는 선우의 당당함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어찌 저런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놀..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입니다. 선배."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 눈빛에는 장난기 따윈 일절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운설의 눈빛이 한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간신히 다잡은 마음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리고 흔들리는 운설의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아차 싶었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마치 흑심을 품고 꼬시는 것 같잖아?'
마치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화화공자처럼 말이다.
"................"
"..............."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떄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어색함이 지속되었을까
"후후후....후배님은 안목이 영 없으시군요...제가 아름다운 걸 이제서야 알아보다니 말이에요. 전 언제나 아름다웠다구요."
곧이어 운설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하하하하하..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무공만 수련하다보니....안목이 이상해진듯합니다."
선우는 곧바로 맞장구를 치며 그녀의 자구책에 동조하며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오래 기다리셨죠?"
어느정도 분위기가 환기되자 운설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닙니다....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길지 않긴요...무려 한 시진이나 기다렸으면서..."
"오래 걸린다고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래두.."
"멋대로 기다린 건 접니다. 선배님께서 구태여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겠다고 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녀가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후배님은 참으로 그릇이 큰 것 같아요. 보통 이렇게 기다리면 기분 나쁜 티를 내거나 심기가 불편하기 마련인데 말이에요."
운설은 살며시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그릇이 크다기보단 아쉬운 입장이니 별 말 안하는 것 뿐입니다. 만남을 종용한 건 제가 아닙니까? 어찌 그런 입장에서 불평불만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축객령을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축객령을 내리려고 했는데.'
그 말에 운설은 마음 한 구석이 콕 찔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목욕하겠다는 말도 그를 내쫓기 위한
일종의 구실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일이 꼬여 결국 되돌려보내진 못하였지만 말이다.
"........축객령이라니...제가 애써 찾아온 후배님께 그런 걸 할 리 없잖아요?"
운설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렇긴 하군요."
선우는 웃으며 동의를 하였다.
"......그럼 어디 절 애타게 기다린 이유를 들어보도록 할까요?..궁금해지네요..대체 무슨 연유를 저를 이리도 애타게 기다리시셨는지 말이에요."
운설은 자연스레 본론으로 들어가 선우에게 물었다.
한 시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군말없이 자신을 기다린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제가 선배님을 찾아온 이유는 제대로된 담판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담판이라뇨? 그게 무슨?"
운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저에 대한 선배님의 마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네에에!?"
순간 운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우의 말에 당혹스러움이 물밀듯 차올랐기 때문이었자.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라니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걸
어찌 알고 찾아왔다는 말인가
"제가 정말 모를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선배님이 제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지 말입니다."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 물음에 운설의 표정은 더할 나위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전전긍긍하던 자신의 마음이 꼼짝없이 들통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떻게 하지...어떻게 하지...대체 어떻게........'
운설의 얼굴이 울상이 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