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2 1063. 기싸움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당진설은 기품 넘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 발 한 발을
뗄 때마다 우아함과 고귀함이 절로 묻어나는
여유롭고 품격이 넘치는 걸음걸이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끼이이이익
재경각 안쪽에 위치한
개인 집무실에
도달한 당진설은 서서히 문을 열어젖혔다.
"또 늦었군요."
그러자 뾰족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은 그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핏덩이같은 계집의 모습을 말이다.
"미안하구나, 내 오늘 늦잠을 자버려서 말이야."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만
누가봐도 미안해하는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각씩 일찍 오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제 시간에는 도착해야하지 않나요?"
핏덩이 같은 계집,이화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니?"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로 떼우면 다인가요?"
"그럼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무릎이라도 꿇을까?"
"어머,그렇게 해주시겠어요? 그래주시면 고맙구요."
"고작 지각 한 번 했다고 무릎을 꿇으라고?"
당진설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한 번이 아닐텐데요?"
이화영은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떼었다.
당진설의 지각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재경각주가 편을 들어준 이후부터
슬쩍 슬쩍 지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각때문에 무릎을 꿇기는 싫구나."
"무릎이 꿇기 싫다면 시말서라도 쓰세요."
쾅
이화영은 책상 위에 시말서 양식을 올린 채 입을 떼었다.
"그것도 싫구나."
당진설은 이번에도 거절하였다.
시말서를 쓸만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지금 항명하는 건가요?"
이화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항명이라...항명이라기보단 우매한 상사의 잘못된 지시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거란다."
"그걸 재경각에선 항명이라고 불러요."
"그럼 항명인 걸로 하려무나"
당진설은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항명이든 아니든
딱히 상관없다는듯한 태도였다.
"재경각의 가장 기본적인 규율이 상명하복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알지...이 어미도 잘안단다...하지만..아무리 그래도 부당한 명령까지 듣고 싶지는 않구나."
"제 명령이 부당하다는 건가요?"
"고작 일각정도 늦었을 뿐인데, 그런 사소한 일로 시말서라니......누가봐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니?"
"지각은 큰 문제입니다. 당부인."
"내겐 그리 크지 않구나. 지각한 만큼 열심히하면 되지 않겠니?"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신의 생각따윈 중요치 않아요. 판단을 하는 건 재경각입니다."
"재경각이라고 모든 옳은 건 아니지 않니?"
"옳든 안옳든 조직원들 사이에 제정된 규칙입니다. 이걸 지키지 않겠다는 건 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아요."
이화영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내키지가 않는구나. 본디 내가 납득을 못하면 실행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정말 건방짐을 넘어서 오만방자하기까지 하군요....."
"이유있는 건방짐이라는 생각은 안해봤니?"
당진설은 얄미운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으드득
그 미소를 마주한 이화영은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필시 재경각주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리라
"각주에게 직접 말씀드리겠어요."
"어디 해보렴, 과연 각주께서 누구 편을 들어줄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당진설은 실실 거리며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자신감이 넘치는듯한 모습이었다.
으드드득
그 모습에 이화영은 더욱더 강하게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분함이 절로 치솟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벌컥
갑자기 집무실 문이 벌컥 열어젖혀지기 시작하였다.
이화영과 당진설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여인.
재경각주 요랑의 모습을 말이다.
"각주를 뵙습니다!"
"각주를 뵈어요."
그 모습에 두 여인은 곧바로 정중히 인사를 건네었다.
"아침부터 왜 또 쌈박질이야? 내 말이 우스워? 내가 쓸데없는 기싸움 하지말고 일하랬지?"
요랑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침부터
요란스럽기 짝이 없는
두 여인의 기싸움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죄송해요.. 재경각주님.....전 되도록 조용히 끝내보려고 했는데.....사수께서...좀처럼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당진설은 눈빛으로 연신 이화영을 흘깃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소동의 원인이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다는듯이 말이다.
와락
그 말을 들은 이화영은 안면을 와락 구겨버렸다.
대놓고 맥이려고는 드는
당진설의 여우짓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사정은 대충 들었어. 별 시덥지 않은 이유로 싸우더라?"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사정을 모르진 않았다.
기민한 그녀의 청각은
재경각 내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
그 말을 두 여인의 표정에는
희비가 교차하였다.
당진설은 요랑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는
생각에 미소를 띄웠고
이화영은 이번에도 자신만 혼날게 뻔할 것이라
여기며 안색을 굳혔다.
시덥지 않은 일이라는
말 속에 내포된 의미가
편을 들어주는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정말 그렇다니까요.....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구태여 꼬투리 잡아서....시말서를 쓰라고...."
요랑의 말에 당진설은 맞장구를 치며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넘어가도 될 일이라......넌 그렇게 생각하나보지?"
요랑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당진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각은...실수니까....재량에 따라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신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지각은 실수였다.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실수 말이다.
그런 작은 실수 하나로
시말서를 써야한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네 생각은 잘 알았어. 시말서를 쓸만한 중대한 잘못이 아니라 이거지?"
"맞아요. 전 지각이 시말서를 써야할 정도로 중대한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진설아."
요랑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씀하세요 각주님."
"난 아냐."
요랑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네에?"
순간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튀어나온 까닭이었다.
콰앙
"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머리통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요랑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 머리통을 후려갈겨버린 까닭이었다.
"크으윽...흐으윽...으으으윽.....어..어째서.."
머리통을 후려갈겨진 당진설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요랑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머리통을 후려맞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뒷배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어찌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친다는 말인가
"어째서긴 뭘 어째서야. 잘못했으니까 때리지."
요랑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지각한 주제에 누가 그렇게 뻣뻣하게 굴래? 누가보면 네가 상전인줄 알겠어."
"그...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 실수? 재량에 따라 넘어가도 될 일? 그걸 네가 왜 정해? 네가 각주야? 네가 각주냐고?"
요랑은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상사가 시말서를 써오라면 써와야지.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아? 재경각은 상명하복이 가장 기본인 거 몰라?"
"........죄..죄송...아아아악!"
콰아아앙
당진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요랑이 다시금 주먹을 휘둘러
그녀의 머리통을 그대로 후려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는데? 넌 업무가 장난이야?"
요랑은 사납게 그녀를 몰아부치기 시작하였다.
편을 들어주던 그전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말이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요랑의 끝없는 질책과 폭력에
당진설은 연신 사과하고 또 사과하였다.
이러다간 머리통이 남아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죄송하면 재경각 생활이 끝나? 끝나냐고!"
하지만 요랑은 자비가 없었다.
마치 벼르고 있던 차
건수를 잡아낸 악독한 선임처럼
그녀를 사정없이 갈구기 시작한 것이다.
".........."
그 모습에 이화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레 태세 전환을 한 요랑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전까지는 암묵적으로
당진설의 뒷배가 되어주던 그녀였다.
사소한 잘못따윈 넘어가주고
되려 그녀를 감싸주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별안간 당진설을
타박하기 시작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란 말인가
'대체...어째서?'
이화영은 의아함을 느끼며
당진설을 호되게 혼내고 있는
요랑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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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어째서..어째서..내가.."
당진설은 부풀어오른 머리통을
어루만지며 짜증을 내비치기 시작하였다.
재경각주에게
머리통을 후려맞은 상황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베갯머리 송사를 성공시킨 이후
재경각주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든
눈을 감아주고 감싸주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이
이해가 될 리 만무하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선우님을...사랑하는 주인님을 찾아가야해.'
당진설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주인님께 방문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렇게 우아함을 잃지 않은 걸음걸이로
선우의 처소로 향하던 그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어디선가 도도하기 그지없는 발걸음소리가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뒤?'
휘익
당진설은 그 소리를 따라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요염스러운 화장을 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모용란."
"어머, 당부인이 아니신가요? 여기서 뵙네요."
뒤편에 걸어오던 모용란은 당진설을 아는 체하며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반갑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딸아이로부터 소식은 잘 전해들었어요. 큰죄를 짓고 재경각의 신입각원으로 들어갔다죠? 후훗. 고생 많으시겠어요...늙은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신입으로 굴려지다니 말이에요...그러게..둥글게 좀 살지 그러셨어요.....마음을 몹쓸게 굴리니 그런 수모를 겪는 거랍니다."
빠직
당진설은 이맛살에 힘줄이 서는 것을 느꼈다.
딸년이나 애미나 싸가지없는 건 일맥상통한듯 싶었다.
"...모용 부인의 딸은 참으로 가벼운 입을 가졌군요. 재경각에서 일어난 일을 꼬치꼬치 나불대는 걸 보면 말이에요. 이러다가 중요한 기밀까지 누설될까 두려워요."
"당부인이 인생이 나락간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비밀이랄 게 있나요?"
"나락이라니....지금 재경각을 비하하는 건가요? 무척 위험한 발언이 아닐까 싶네요. 자칫 잘못 해석했다간 당가를 모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어요."
"비약이 심하시네요.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 말이에요. 아니면 마음 고생때문에 지능이 떨어져버린 걸까요?"
두 여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덕담을 나누듯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실상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독설의 교환이었지만 말이다.
"후후훗, 자꾸 나락 나락 하는데 , 진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모용가가 아닌가요? 미개한 이민족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해 당가에 기생충마냥 빌붙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잖아요?"
당진설은 코웃음을 치며 독설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마치 천재가 제련한 명검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는
독설을 말이다.
으드득
"말조심해요... 은하검에 그 잘난 세치혀가 잘리고 싶지 않으면."
그 독설에 모용란은 은은한 투기를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당신이야 말로 말조심하는 게 어떤가요? 독기에 절여지고 싶지 않으면."
당진설 또한 지지않겠다는듯 거친 어투로 맞받아쳤다.
은은한 독기를 흩뿌리면서 말이다.
이내 두 여인은 사이에선 사나운 기운들이
흩뿌려지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위협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싸움을 벌였을까
팟
모용란이 흩뿌리던 투기를 그대로 끊어버렸다.
"겁을 집어먹으신건가요?"
그 모습에 당진설은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내뱉었다.
기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럴 리가요. 끈 떨어진 연따위에게 이 모용가의 보옥이 겁을 집어먹을 리 없잖아요?"
모용란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내뱉었다.
"이번 기회에 생사결을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아쉽게도 선약이 있어서요."
"핑계도 좋군요."
"모든 사람들이 당부인처럼 한가한 건 아니랍니다."
모용란은 비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리고는 당진설을 그대로 지나쳐가기 시작하였다.
"흥!"
그 모습에 당진설은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그녀 또한 독기를 거둬들이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녀 또한 바쁜 일정이 있었으니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저년은 어디를 가는거야!?'
당진설은 의문을 느꼈다.
모용란과 진행방향이 일치함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이 앞 위치한 건
사랑하는 주인님의 처소밖에 없었다.
저년은 대체 왜 그곳을 향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참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모용란이 선우의 처소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저년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의 눈빛에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신성한 주인님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모용란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