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7 1058. 호감을 얻다.
저벅 저벅 저벅
선남선녀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지는
두 남녀가 정원을 거닐기 시작하였다.
마치 산보하듯 천천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뚝
곧이어 앞서가던 남자, 선우는
중앙에 위치한 작은 정자 앞에서 멈춰섰다.
"이곳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편에 따라오고 있는 여인, 이화영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저도 이곳이 좋을 것 같아요."
이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였다.
적당한 깊이에 위치해있고
앉을 만한 자리도 충분하였다.
담소를 나누기에 꽤나 적절한 선택지인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품 안에 작은 손수건을 하나 더 꺼내들었다.
그다음 정자 한쪽 위에 곱게 편 뒤 올려놓았다.
"앉으시지요."
그리고 이화영을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어서 앉으라는듯이 말이다.
"손수건이...무척 많으시네요."
"휴대성에 비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녀석이거든요."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겠습니다."
이화영은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그다음 선우가 깔아놓은
손수건 위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다.
털썩
그리고 선우 또한 그런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
"............."
곧이어 두 남녀는 나란히 앉게 되었고 둘 사이에선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고
이화영의 입장에선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저어.."
곧이어 이화영이 천천히 입을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이화영에게 집중하였다.
말이 내뱉어지기를 말이다.
".............."
하지만 이화영은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차마 말을 시작치 못한 것이다.
상담할 게 있다며
그를 붙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려니
거부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말씀하기 어려우신가보군요. 소저."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이화영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괜스레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시간이 금처럼 귀한 남자를
붙잡아두고
이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세상사 모든 일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지요. 오죽하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문제를 거론해야한다면 그 첫 마디를 떼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협께서는...정말 배려심이 넘치는군요."
이화영은 얼굴을 살며시 붉힌 채 말을 이었다.
선우의 다정한 배려에 감동을 받은 까닭이었다.
"그저 생각한 바를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소저."
"그 생각이 제겐 다정한 배려처럼 느껴져요."
이화영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괜스레 쑥스럽군요."
선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뒤통수를 긁적였다.
쑥스럽다는듯이 말이다.
"이런 배려를 받아놓고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요.....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이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제가 상담할 내용이 무엇인지 말이에요."
이화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좀더 마음을 정리하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안그래도 바쁜 사람의 시간을 더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화영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오늘 재경각주 앞에서 호되게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새로 들어온 새파란 신입 각원 앞에서 말입니다....전 재경각주님의 질타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화영은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펑펑 울면서 감정을 해소했음에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요랑이 자신이 아닌 당진설의 편을 들게 된 것인지 말이다.
"재경각주의 판단이 부당하다는 말씀입니까?"
"네에...제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부당합니다...그렇기에 대협께서 객관적으로 판단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녕 제가 혼났어야하는 상황이었는지....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판단하게 되었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인 시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판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해요..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화영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재경각주, 요랑에게 호되게 혼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말이다.
갑작스럽게 재경각에 전입을 오게된 당진설
그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생겨난 불협화음
그리고 그 정도가 심화되어 일어나게 된
관행에 대한 분쟁.
그 분쟁에서 당진설의 손을 들어준 재경각주의 판단.
결국 사과를 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까지
이화영는 지금껏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전부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설명하는 중간 중간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흐음...."
선우는 그런 이화영의 설명을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얌전히 경청을 하였다.
그녀의 설명이 완전히 끝마쳐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설명이 이어졌을까
".....그렇게 된 거예요."
곧이어 이화영은 모든 설명을 끝마쳤다.
"대협이 보기엔 어떤가요? 제가 잘못한 것 같나요?"
그리고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한 채 답을 구하였다.
자신이 정녕 틀린 것인지 말이다.
"제가 보기엔.."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화영은 그런 선우의 입술에 집중하였다.
어떤 말이 튀어나올 지
잔뜩 긴장한 채로 말이다.
"이번 일은 소저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정말 그리 생각하시는 건가요? 절 배려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 아니라요?"
"정말이고 말구요. 객관적으로 봐도 소저께서 혼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은 당부인께서 다했는데 어찌 이 소저를 나무란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짐짓 화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꾸지람을 들어야할 사람은 재경각 대대로 내려온 관행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한 건 당부인 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갓 굴러들어온 신입의 신분으로 재경각의 지엄한 규칙을 멋대로 망치려든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재경각주께서는...관행에 강제성이 없다고....개인의 자유에 맡겨야한다고 했어요....내규도 아닌 규범을 강요하는 건 잘못이라면서.."
"강제성이 없다고 안지켜도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선 내규보다 엄격히 지켜야하는 관행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선우는 진지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능력에 따라 직급이 결정되는 재경각의 경우, 연배가 있는 평각원의 상사로 젊은 수석 각원이 임명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석 각원이 평각원을 하대를 하거나 막대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바로 상호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관행 때문이지요."
재경각의 체계는 어찌보면
군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능력만 된다면
짬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젊은 상관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짬과 상관없이
소위로 임관하는 신입 장교처럼 말이다.
"만약 이런 관행이 없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크나큰 반발이 일어날 것 같아요."
"맞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존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직급에서 밀리는 평각원들이 크나큰 반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근무 기간만 따진다면 수십 년은 근무한 이들이 고작 몇 년 근무한 어린 상사에게 무시를 당한다면 말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마 대다수 승진을 못한 평각원들은 재경각을 관두고 말것입니다. 일이 고된 건 물론 한참이나 어린놈을 상전으로 모신다면 누구든 견뎌내지 못할테니까요. 그리고 대들보처럼 재경각을 지탱하던 평각원들이 집단으로 퇴사를 해버린다면 재경각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지요."
재경각의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대체 불가할 정도로 뛰어난 초일류 행정 직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집단으로 퇴사한다면
재경각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상호존중을 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직급에 걸맞는 상명하복이라는 지휘 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선우는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어찌보면 내규보다 우선시해야할 관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선우의 말을 들은 이화영은 납득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시를 듣고보니
내규보다 우선시 해야할 관행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엔 이소저께서 요구한 관행 또한 내규만큼이나 엄격히 지켜야하는 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근무시간보다 이각 일찍 오는 일은 이소저 뿐 아니라 재경각의 근무하는 이들 모두가 지키고 있는 공동체의 규칙이 아닙니까? 그걸 새파란 신입의 신분으로 무시하는 건 조직의 질서를 깨뜨리는 중대한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저께서 관행을 걸고 넘어지며 당부인을 지적한 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선 불가피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적극적으로 이화영의 편을 들었다.
그녀는 옳은 일을 하였다고
잘못따윈 전혀 없다고
오히려 혼나야하는 건 당진설이라고 말이다.
".....맞아요......저는 재경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관행을 요구한 것 뿐이에요......"
선우의 단호한 지지에
이화영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만 들어보면 자신에게 잘못 따윈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전 이번 일은 재경각주의 엄연한 판단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직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며 헌신한 이 소저에게 호된 질책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맞아요...이번 일은...이번 일은 재경각주님의 판단 착오예요..그렇지 않고서야..저를 이렇게 호되게 질책할 리 없어요!"
이화영은 선우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였지만
선우가 거듭 편을 들어주니
이제는 완전히 선우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신입 앞에서 면박을 주었다고 하였지요? 이는 조직의 장으로서 슬기로운 대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찌 부사수 앞에서 직속 사수를 망신준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이화영을 더욱더 두둔하기 시작하였다.
요랑의 잘못을 강요하면서 말이다.
"맞아요...이번 일은..재경각주님이 심했어요...그런 거예요."
그리고 그런 선우의 두둔에
이화영은 존경하는 요랑조차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판단 착오를 한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평소라면 감히 상상조차 못할 생각이었지만
선우가 끊임없이 편을 들어주니
자기 확신이 더욱더 굳어지게 된 것이다.
마치 세뇌가 된 것처럼 말이다.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 없군요."
벌떡
이내 선우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뭐..뭘하시게요!?"
그 모습에 이화영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선우의 행동에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재경각주에게 이 부조리함을 말해야겠습니다."
"아니에요...그러지마세요.!"
이화영은 다급히 그를 말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끝난 일이 커지는 걸 원치 않은 까닭이었다.
"아닙니다. 이대로 일이 마무리된다면 조직의 안정을 위해 헌신한 이 소저께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직접 가시면 안돼요...제 꼴이 더 우스워질 거라구요.."
이화영은 필사적으로 그를 만류하였다.
만약 여기서 선우가
재경각주를 찾아간다면
동무 간의 싸움에서 엄마를 부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쪽팔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저의 심경이...."
"저는 괜찮아요..정말..괜찮아요...생각해주신 것만으로도 황송해요!..정말 충분하니까...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어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정말로...정말로 괜찮아요."
이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안괜찮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재경각을 찾아갈 것처럼 보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자제하도록 하지요."
선우는 수긍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우우.."
선우의 수긍에 이화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난 황소같은 그를 어느정도 진성시킨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또다시 이런 불합리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때는 제가 직접 나서 재경각주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네에. 그리 하도록 할게요."
이화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약속한 겁니다."
선우는 거듭 그녀에게 약속을 받아내었다.
꼭 지키라는듯이 말이다.
"..............."
그리고 그 모습에 본 이화영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담뿐 아니라 자신을 끝까지 도와주려는
그의 태도에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이리도
친절히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다는 말인가
어찌보면 악연으로 엮인 전력이 있는 자신을 말이다.
"대협."
곧이어 이화영은 의아한듯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물어보시지요."
".......저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세요?"
그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선우의 친절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저께서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고작...그런 이유로요?"
이화영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 이유면 충분합니다. 저에겐."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이화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멍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이화영은
이내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재량조차 할 수 없는
선우의 거대한 그릇에
감탄과 놀라움이 절로 치솟은 까닭이었다.
'이게 정말 대협이구나...'
이화영은 생각하였다.
눈앞에 남자야 말로 대협 중에 대협이라고 말이다.
그 누구보다 협의를 중시하는
대협 말이다.
화아아아악
곧이어 이화영의 양뺨에 홍조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급속도로 상승한
선우에 대한 호감도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멋져..'
곧이어 이화영의 양뺨의 홍조가 더욱더 짙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