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3화 〉 924. 짐승들이 쳐들어온다!
"이 다음부터는 제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앞으로 걸어나오며 입을 떼었다.
"맹주께서 구파 연합의 제안을 받아들인데는 마땅한 이유가 존재......"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잠깐"
그때 원로 이세진이 다급히 손을 들어올려 선우의 말을 끊어버렸다.
"어찌 군왕君王께서 몸소 해명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건 무림의 일입니다. 군왕 전하."
이세진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외부인이 되어버린 선우에게
맹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말이다.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였이다.
아무리 그가 의천맹의 전대 맹주이자 무림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신분은 엄연히 군왕君王이었다.
그런 그가 의천맹주인 주소양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 이성적이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세진은 원로들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며 객관적이었다.
어긋남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마는 것이다.
선우는 그런 대쪽같은 심성이 그리 싫지 않았다.
결국 옳음을 추구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일테니까 말이다.
"아니, 이 원로! 어찌 초대 맹주께 그런 말을!"
"맞소! 자문을 할수도 있는 것이지! 어찌 그리 선을 긋는다는 말이오!"
"그런 걸 시건방짐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때 여기저기서 반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군왕인 선우에게 시건방을 떠는 이세진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비록 신분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선우와의 연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지 않았다.
초대 맹주이자 창립자인 그와 어찌 완벽한 단절을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칼같이 선을 그으며 군왕君王에게 쓴소리를 내뱉는다는 말인가
무례를 넘어 시건방지기까지한 모습이었다.
"맹의 일이지만......황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해가 안되는 군요, 어찌 무림의 일이 황실과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세진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새외 무림에 의해 중원 무림을 대표하는 문파들이 멸문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일이 황실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간단합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 현 황실의 주적인 마교이기 때문입니다."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이세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마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경악스러운듯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 사태가 일으킨 원흉이 마교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새외무림에서 중원 무림을 침범하였습니다..... 남만야수궁이 운남성의 점창을 멸문시켜버렸고....곧이어....해왕海王의 선단이 광동성을 점령하였으며.....그리고......불을 다루는 괴인이 광서성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몽고 기병이 섬서성의 종남을 멸문시켰습니다...."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세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말씀입니까?"
"새외 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득세하여 중원을 침략하고 있는 상황이 말입니다....수 백년의 무림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선우는 좌중을 둘러보며 물음을 던졌다.
"............."
"............"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새외 세력의 동시다발적인 득세는 전례없던 사태였기 떄문이었다.
"전례에 없던 일이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어찌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답이 없자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검신께서는...마교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예측하고 계신 것입니까?"
"예측이 아닙니다......확신입니다."
선우는 확신 어린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도 안됩니다....새외 무림의 세력들은 마교조차 아래로 볼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외골수들입니다..........그런데 어찌 마교의 수하가 되어 그들의 명을 충실히 따른단 말입니까!"
이세진은 이해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남만야수궁, 해왕 선단, 몽고기병 이들 모두가 새외를 대표하는 최고의 집단들이었다.
최고인 만큼 자존심 또한 하늘을 찌를듯 높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어찌 마교의 밑에 들어가 명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말인가
죽으면 죽었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모르겠습니다...군왕께서...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저는 도저히.."
이세진은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였다.
불신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근거라면 있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직접 들었거든요."
"직접? 누구에게 말입니까?"
"광서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괴인에게 말입니다."
선우는 확신 어린 눈동자를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원로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제가 광서성을 들려 괴인과 맞상대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그때..묘한..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선우는 이세진을 비롯한 원로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마교의 음모를 그대로 전해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원로들의 표정이 더할 나위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일의 흑막이 마교라는 말에 반신반의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이세진의 말 또한 일리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의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거대하고 추악한 악의惡意가 중원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선우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감조차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무려 이십여 년만에 이뤄지는 대대적인 침공이었다.
그간 간을 보며 덤벼든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 말이다.
"이제 납득이 되십니까?......어째서 무림만의 일이 아닌지......어째서...의천맹주가 참전을 결정하였는지 말입니다."
선우는 원로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원로들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였다.
암묵적인 동의를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납득하였다고 말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우는 이내 천천히 시선을 돌려 주소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부터는 그녀의 차례였다.
주소양은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일단 원로님들에게 사죄드립니다....제대로된 상의가 오고갔어야했는데......멋대로 결정내려버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맹주직을 내려놓으라 하신다면 미련없이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주소양은 송구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사죄를 하였다.
마땅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내리는 것은 맹주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절차를 중시해야할 이가 바로 맹주였다.
그런데 그런 맹주가 절차를 무시한 채 독단을 하였다.
어찌 옳은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맹주직을 걸어도 후회없을만큼 마땅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무림 뿐 아니라 중원 전체가 위험에 빠졌는데....어찌 의천義天을 행하는 맹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소양은 뜨거운 눈빛으로 원로들을 돌아보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나라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올바른 협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나라가 있기에 백성이 있을 수 있고 백성이 있기에 협이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주소양은 격정적인 어조로 원로들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 부디 힘을 빌려주십시오......존경하는 맹원 여러분."
주소양은 허리를 숙여 간곡히 부탁하였다.
부디 힘을 빌려달라고 말이다.
"허리를 피십시오......맹주."
그때 잠자코 있던 이세진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어찌 의천맹을 총괄하는 이가 함부로 허리를 숙인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날카롭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허리를 당당히 펴십시오...그리고 명령하십시오....의천義天의 뜻을 이루기 위해 참전을 한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맹주! 허리를 펴십시오!"
"어찌 하급자에게 허리를 숙인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힘을 빌려달라고요? 당연히 빌려드려야지요!"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저희 또한 한가득입니다....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부턴 명을 내려주십시오! 어찌 맹주가 부탁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맹주께서는 이제 보호받아야할 존재가 아닙니다...군림하여 다스려야할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니 위엄을 보여주십시오! 맹주로서의 위엄을 말입니다!"
이내 여기저기 그녀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협을 향한 그녀의 진심이 늙은 협사들의 심금을 쉴새없이 울려버린 까닭이었다.
늙고 영악해지며
욕심이 그득해졌기는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엄연히 협사였다.
악을 미워하고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며
협행을 이루어내는 진정한 협사말이다.
그런 그들이 협을 이루기 위한 전쟁에 나서지 않을 리 만무한 것이다.
"모두들..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반응을 본 주소양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찌보면 억지로 밀어부친 안건이었다.
그런데 이렇데 흔쾌히 수락을 해주는 걸 보니
괜스레 감격이 차올랐다.
피부가 자글자글해지고
검버섯이 피어있고
뼈마디가 얇아져 가죽만 보이게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협사였다.
협을 행함에 있어서 거침없이 나서는
진정한 협사말이다.
'맹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네.'
한 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맹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동안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강한 그녀였다.
아무래도 맡고 싶어서 맡은 자리가 아니기에
맹주로서의 존재감이 미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런 미약한 존재감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의천義天이라는 창립 이념을 통해 맹주로서 확고한 존재감을 확립한 것이다.
오늘 주소양의 모습은 원로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협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존경스러운 협사로서 말이다.
아마 인식이 바뀌게 될 것이다.
지켜줘야할 아가씨가 아닌 절로 경외감이 느껴지는 맹주로서 말이다.
'그럼...이제...슬슬...본론으로 들어가겠군.'
선우는 별빛같은 눈동자를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마교 휘하에 있는 새외 세력들을 상대할 계획에 대해서 말이다.
*******
운남성
구석에 위치한 작은 마을
벌떡
마을 촌장, 곽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산책이라도 해야겠구만.'
저벅 저벅
곽칠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디가우?"
그러자 어느새 일어난 그의 부인, 연천댁이 의아한듯 물음을 던졌다.
"응? 깼는가? 임자."
"그렇게 뒤척이는데...어찌 안깨우?"
연척댁는 불만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허허허, 미안허이, 내 잠이 안와서 말이야."
곽칠은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잠이 안오면 오랜만에 운동이라도 하는 게 어떠우?"
"운동?"
곽칠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연천댁이 이불자락을 걷어올려 황소와같은 다리를 살며시 내밀기 시작하였다.
"알면서.."
그리고 유혹하듯 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오싹
그 모습에 곽칠은 두려움을 느꼈다.
탁 탁 탁 탁 탁
더불어 이빨을 쉴새없이 맞부딪히기 시작하였다.
상상만해도 두려운 공포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난...난..소피 좀!"
후다다다닥
이내 곽칠은 재빨리 바깥으로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안에다..싸도 되는데.."
그 뒷모습을 본 연천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 훌륭한 화장실이 있건만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쓰담 쓰담
연천댁은 아쉬운듯 통통한 배를 쓰다듬었다.
*********
"하아...주책맞은 여편네...나이들어서..무슨.."
바깥으로 도망나온 곽칠은 연척댁을 욕하기 시작하였다.
나이도 들대로 들었으면서 무슨 운동이란 말인가
노망이 난게 분명하였다.
"에잉, 오늘은 산책을 오래해야겠구만."
그는 생각하였다.
마누라가 잠에 들때까지 오래도록 산책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막 걸음을 떼려는 찰나였다.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어디선가 거대한 굉음성과 함께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뭐..뭐야!?'
곽칠은 당황하였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곽칠은 굉음성이 울려퍼지는곳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짐..짐승?!"
셀 수도 없이 많은 수많은 짐승들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서우는 물론 호랑이, 표범,들소, 곰, 뱀, 늑대, 원숭이, 쥐 때 등 그밖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짐승들이 마을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짐승들이 쳐들어온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다급히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짐승들이! 맹수들이 쳐들어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이내 대군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많은 짐승의 무리가 마을을 덮쳐들었다.
그리고 마을은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풀한포기 남기지 않고 전부 쓸려가버린 것이다.
마치 폭풍이 지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