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5화 〉 826. 경화군주의 정혼자입니다.
"금의위에 구금 중인 대신들과 궁녀들을 도찰원으로 넘겨주십시오."
양경은 유중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째서지?"
유중기는 납득 가지 않는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태자비와 태손을 빼돌리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괜스레 황실의 우호세력을 자극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측근들을 양도하라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들을 왜 넘기란 말인가
"그들 또한 영장없이 체포한 이들이 아닙니까? 이쪽에서 데려가는 게 좀더 구색에 맞습니다."
양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측근들 또한 영장없이 체포된 이들이었다.
애초에 금의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 자체가 불합리인 것이다.
".......곤란하네."
양경을 말을 들은 유중기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들 중 일부는 태자의 공범으로 내정되어있는 상황일세. 그런 상황에서 도찰원에 그들을 넘긴다면 계획이 무산된다는 말일세."
신하들과 궁녀들 중 일부는 공범이 될 예정이었다.
강압적인 협박과 무자비한 고문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을 양도하라니?
말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 역할 또한 도찰원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찰원에서?"
"그렇습니다, 공범이라고 실토를 하게 만들면 되는 게 아닙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양경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유중기는 못미더운 시선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드는 일에는 한치의 실수가 있어도 안되는 일일세."
"걱정마십시오. 가족을 걸고 협박을 하는데 안들어먹을 이가 어디있겠습니까?"
양경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불쾌감이 치솟을 것 같은 웃음이었다.
"지휘사 어르신께선 내정되어있는 자들의 명단만 넘겨주시지요. 제가 이어서 확실히 교육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완벽한 공범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양경은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
그리고 양경의 말을 들은 유중기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고심에 빠진 것이다.
분명 그의 말 중 틀린 것은 없었다.
영장조차 없는 금의위에게 태자의 측근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할 권한 따위는 없는 것이다.
구색을 맞추려면 태자빈과 태손과 함께 그들을 넘기는 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그런데....왜 내키지가 않지?'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이대로 넘기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휘사 어르신. 전적으로 절 믿으셔야합니다."
양경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유중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설마 제가 어르신께 누가 되는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저는 지휘사 어르신의 편입니다. 제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신다면 대계를 완벽하게 이뤄낼 수 있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양경은 강조하듯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정도면 충분한가?"
"예에,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이미 태자의 자백을 받아낸 상황이 아닙니까? 공범을 만들고 정식 재판을 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양경은 매끄럽기 그지없는 혀를 놀리며 말을 이었다.
"일주일 뒤 태화전에서 정식 재판을 열겠습니다."
"태화전에 말인가?"
유중기는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태화전이라고 하면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혼 혹은 황후 책봉 등 제국의 중대사가 있을 때 사용하던 거대한 광장이었다.
그런 곳에서 재판장으로 만들어 사용하겠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객은 최대한 많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태화전 정도되는 크기라면 황실에 있는 관리들을 대다수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경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들 앞에서 태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암살 사건의 배후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운 채 말입니다."
"..........."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습니까? 이천자를 저희 손으로 죽이게 되는 겁니다."
양경은 약에 취한듯 몽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천자를 죽인다는 생각에 상당한 쾌락이 차오르는듯한 모습이었다.
'미쳤군.'
그리고 그런 양경의 모습을 본 유중기는 생각하였다.
그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말이다.
'하지만 신뢰가 간다.'
그리고 신뢰가 갔다.
저 쾌락 어린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이내 유중기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권력에 취한 그라면
쾌락에 취한 그라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분명 현명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양경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대답이 썩 만족스러운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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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드득
도숭은 격하게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를 가는 소리가 방 전체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분노가 차올라있다는 증거이리라
으드득 으드득
그렇게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콰쾅
도숭은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마음 속에 차오른 분이 도저히 해소가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유중기.....이 건방진 자식이...황실이 기르는 개주제에 어디..감히..태자비마마와 태손저하를...."
이내 도숭은 분노에 가득 찬 음성으로 유중기를 씹어대기 시작하였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미쳐날뛰고 있는 꼴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어디 황실의 개가 주인도 몰라보고 덤벼든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버릇을 단단히 고쳤어야했거늘.'
도숭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금의위 버릇을 고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금의위는 수문위사에게 손까지 써가며 무단으로 도찰원을 침범하였다.
더불어 무력적인 시위까지 불사 할 기세까지 내보였다.
분명 대치가 지속되었으면 무력적인 충돌을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아깝구나....아까워..'
도숭의 탄식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만약 무력적인 충돌까지 이어졌다면
명백히 도찰원에게 유리한 명분을 가질 수도 있었다.
피해자입장으로소 금의위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호의 기회가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빌어처먹을 양경 자식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바로 양경때문이었다.
그가 중간에 난입하여 사태를 일단락 시켜버린 것이다.
'망할 자식.'
도숭은 짜증이 절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짜증을 내었을까
'설마 태자비마마와 태손 저하를 이대로 넘기는 건 아니겠지?'
이내 도숭은 마음 한켠에 불안감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비록 태자비와 태손을 데려오긴 하였지만
양경은 엄연히 지휘사인 유중기와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혹여 그의 비위를 맞춰 태자비와 태손을 넘긴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그럴거면 뭣하러 그들을 데려왔겠는가?'
절레 절레
도숭은 고개를 내저으며 애써 부정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불안감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양경에 대한 불신이 그의 불안을 증폭시킨 까닭이었다.
벌떡
'안되겠군.'
이내 도숭은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태자비와 태손의 거처로 이동할 심산이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데려갈 수 없도록 말이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인가"
도숭은 짐짓 정색을 한 채 입을 떼었다.
"접니다. 좌도어사."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게."
도숭은 대뜸 출입을 허가해주었다.
평소라면 축객령부터 내릴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끼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뱀처럼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
우도어사 양경이었다.
"좌도어사를 뵙습니다."
양경은 살짝 목례하며 가벼이 인사를 건네었다.
"인사 치레는 되었네, 그보다 유중기는 어찌 되었는가?""
도숭은 손사래치며 대뜸 용건부터 물어보았다.
가장 궁금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갔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예에, 혼자서 말입니다."
"..............태자비와 태손을 넘기지 않았군."
"쉽게 넘길 생각이라면 애초에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자네가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일 걸세."
"하하하하, 참으로 박하시군요."
양경은 짐짓 과장된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도숭은 그런 양경을 얌전히 바라보았다.
"자네는 대체 누구의 편인가?"
이내 도숭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며 입을 떼었다.
"누구의 편이라뇨?"
양경은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자네는 대신들 편인가 아니면 황실의 편인 건가?"
"어디인 것 같습니까?"
양경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되물었다.
"모르겠네, 그래서 물어보는 걸세."
도숭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락가락하는 양경의 행적으로는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누구의 편인지 말이다.
대신들과 합세하여 황권을 약화시키고 권력을 나눠먹으려는 것 같으면서도
황실에 충성하여 대신들로부터 황족들을 지키는 충신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누구의 편인지
누구를 지지하는 지 말이다.
"저는 제 편입니다. 좌도어사 어르신."
양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저 제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루기위해 행동할 뿐이지요."
"자네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도숭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자신의 적인지
아니면 우군인지 말이다.
"제가.....추구하는..가치라...."
그의 물음을 들은 양경은 천천히 입을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도숭은 그런 양경의 입모양에 온신경을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행복입니다."
"뭐..뭐라?"
양경의 답을 들은 도숭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아내의 행복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황실에 충성하는 지
아니면 황실을 적대하는 지
판가름을 할 질문이었다.
그런데 뜨끔없이 아내의 행복을 왜 거론한다는 말인가
전혀 맥락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 아니던가
그런 자가 무슨 아내란 말인가
"나를 놀릴 생각인가!"
이내 도숭은 양경을 바라보며 언성을 내질렀다.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놀리는 게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양경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끝까지 네놈이 나를 희롱하는 구나! 내가 그리도 우습게 보이더냐!"
도숭은 역정을 격하게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좌도어사 어르신."
"거짓말말거라!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는 놈이 어찌 내게 말장난을...........응?"
도숭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우두둑
우두둑
눈앞에 갑작스러운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양경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점점 다른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뱀처럼 차가운 인상은 호랑이처럼 사나운 인상으로 바뀌았고
키는 더욱더 커졌고
몸은 더욱더 두터워졌다.
그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말이다.
도숭은 그저 멍하니 눈앞에 이변을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반갑습니다. 좌도어사 어르신"
이내 양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남자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장선우라고 합니다."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경화군주의 정혼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도숭의 눈이 휘둥그레해지기 시작하였다.
*********
"제가 부마도위를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선우에게 모든 사정을 들은 도숭은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사과를 하기 시작하였다.
몰랐다고는 하지만 감히 부마도위에게 역정을 내고 고함을 내질렀던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사과하실 만큼 잘못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
선우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내뱉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뭐 저리 과하게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새끼 손가락을 잘라 반성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좌도어사의 손가락을 받아서 어디다 쓰겠습니까?"
선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을 하였다.
무슨 야쿠자도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새끼손가락을 자르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도통 이해가 안되었다.
"그 대신 다른 부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도숭은 눈을 반짝거리며 답을 하였다.
원한다면 하늘에 있는 별까지 따줄 기세였다.
"저는 황실에 반기를 든 역적들을 모조리 쳐죽일 생각입니다."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뼛속까지 갈아마실 수 있도록 곱게 빻아드리겠습니다!"
도숭은 우렁차게 대답을 하였다.
역적의 소탕은 그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거절할 리 만무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같이 작업을 해보죠."
그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꽤 바쁜 일주일이 될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