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4화 〉 825. 저희는 한 배를 탄 몸이 아닙니까?
저벅 저벅
금의위 지휘사 유중기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놀리기 시작하였다.
성공적으로 황태자를 압박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헛된 생각은 못할 것이다.'
유중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최측근들 모두 잡아들인 후 끔찍한 고문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비명성을 태자에게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정도면 충분한 압박이 될 것이다.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저 비명성의 주인공이
태자비와 태손이 될테니까 말이다.
'이제 태자비 차례로군.'
저벅 저벅
유중기는 경쾌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태자비와 태손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똑 똑 똑
이내 그들의 거처로 도달한 유중기는 부드럽게 문을 두드렸다.
"태자비마마, 소인 지휘사 유중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유중기는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입을 떼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그 어떠한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단단히 화가났구만.'
유중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화가나도 그렇지 대화를 완전히 단절시켜버리다니 어찌 이리 감정적이란 말인가
'태자비도 계집은 계집이구나.'
아무리 고귀한 품격을 갖춘 태자비라도 결국 계집인듯 하였다.
"화가났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태자비."
유중기는 꾸중하듯 말을 내뱉었다.
감히 태자비를 가르치려고드는 무례한 언사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명백히 태자비를 아래로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례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방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끝까지 묵묵부답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군요. 강제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길."
끼이이이익
유중기는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방 안에 전경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아..아니!?"
그리고 유중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없어!?'
없었다.
어디에도 황태자비와 황태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어찌?..'
데구르르
유중기는 혹시나 싶어 양눈을 좌우로 데구르르 굴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두 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유중기는 잔뜩 화난 어조로 고함을 내질렀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사방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고함 속에 상당한 내력이 담겨진 것이다.
타타타탁
그러자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지휘사!"
이내 교위를 비롯한 금의위들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태자비와 황태손은 어디를 간 것이냐!"
유중기는 잔뜩 화가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우도어사께서.....도찰원으로 연행하셨습니다."
"뭐라!? 우도어사가!?"
유중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어찌 우도어사가 그들을 데려갔다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교위는 떨리는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어찌 내게 보고를 하지 않았는가!"
"우도어사께서......이미.....합의된...내용이라하여.."
"이런 멍청한! 그딴 합의따윈 한 적이 없다! 네놈들이 속은 것이란 말이다!"
유중기는 역정을 내기 시작하였다.
어찌 금의위라는 놈들이 수장인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들의 신변을 내어준다는 말인가
상명하복이 철저한 원칙인 금의위에선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교위를 비롯한 금의위들이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내 이번일은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단단히 각오하도록 하라!"
유중기는 잔뜩 뿔난 모습으로 역정을 쏟아내었다.
"따라오거라! 당장 도찰원으로 간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금의위들은 유중기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
도찰원
금빛 관복을 입은 수십명의 인원들이 도찰원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자 도찰원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위사가 입구를 막아서며 입을 떼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우도어사 만나야겠다."
선두에 서있던 유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기별 넣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미안하구나, 내 그럴 여유가 없구나."
유중기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강제로 안으로 진입을 하려고 하였다.
"안됩니다!"
수문위사는 재빨리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더냐?"
유중기는 짜증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건방진 수문위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금의위의 수장인 지휘사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그걸 아는 놈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는 말인가?"
유중기는 앞을 막아서 수문위사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제 아무리 지휘사 어르신이라고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겁니다! 도찰원에선 도찰원만의 법도가 있는법. 어찌 그 법도를 어기려고 든다는 말씀입니까!"
수문위사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 네놈은 높은 자리까지는 못 올라가겠구나. 이리도 천지분간을 못하니 말이야."
유중기는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다음 수문위사를 향해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톡 톡
그리고 그의 이마를 가볍게 두어번 두드렸다.
털썩
그러자 앞을 가로막았던 수문위사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가벼운 두드림으로 뇌진탕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신념이라는 건 관철할 실력이 있을 때 세우는 것이다. 멍청한 놈."
유중기는 기절해버린 수문위사를 바라보며 가벼운 핀잔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도찰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뚝
얼마 지나지 않아 유중기는 걸음을 멈추어버렸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타난 도찰원의 어사들이 그의 진로를 아예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금의위의 행사이다. 내 앞길을 막는다면 공무집행 방해로 네놈들을 전부 처넣어버리겠다."
유중기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어사들을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곳은 도찰원이다! 이곳의 법도를 존중치 않는다면 아무리 금의위라도 협조 따윈 없다!"
그때 거친 음성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유중기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도찰원을 떠받치고 있는 두개의 기둥 중 하나
좌도어사 도숭을 말이다.
"...좌도어사."
유중기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지휘사! 대체 이게 무슨 무례인가! 허락도 없이 멋대로 도찰원에 침범한 걸로도 모자라! 내 부하에게 해를 끼치다니!"
"금의위로서 본분을 다한 것 뿐이오."
유중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도찰원은 중요한 참고인으로 금의위에서 구금 중이던 태자비와 태손을 멋대로 데려갔소. 그런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유중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뭐라?! 지금 태자비와 태손을 구금하였다는 말인가!"
그의 말을 들은 도숭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황실의 수호자라고 불리우는 금의위가 태자비와 태손을 구금하려고 들다니
어찌 이런 불경이 있다는 말인가
"태자께서 범행을 시인하였소! 그 최측근인 태자비와 태손을 구금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오!"
"허락을 맡은 것이오?"
"뭐라?"
"사법권을 가진 우도어사가 허락한 내용이냐는 말이오!"
좌도어사 도숭은 잔뜩 화가난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금의위는 도찰원의 하위기관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 허락맡았냐고 묻는 것이오!"
유중기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그렇겠지. 그대들은 오직 폐하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소? 사법권이 분리가 되어 우도어사에게 떨어진 상황이오! 그렇다면 수사에 관해선 우도어사의 허락이 필요치 않겠소?"
도숭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중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유중기는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말이 안되는 것은 당신이오! 폐하가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금의위가 대체 무슨 권리로 자체적인 움직인다는 말이오! 폐하가 없다면 그대들은 독립적일 수 없소! 독립적이여서도 안되고 말이오! 어디 개새끼가 주인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닌다는 말인가"
도숭의 금의위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금의위는 오직 황제를 위한 곳이었다.
모든 결정권자가 곧 황제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 그런 곳에서 사법권을 가진 우도어사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황제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놈들이 말이다.
으드득
유중기는 이를 으드득 갈기 시작하였다.
본질을 꿰뚫는 도숭의 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말 다했소? 좌도어사?"
"하루종일 할 수도 있소. 지휘사."
두 단체의 수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금의위들과 도찰원의 어사들 또한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가히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싸움을 이어갔을까
저벅 저벅
가벼운 발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장내 있던 이들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갔다.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뱀과 같이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
삼권 중 사법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권력자.
우도어사 양경의 모습을 말이다.
""우도어사!""
두 사람은 동시에 고함을 내질렀다.
이 사단의 원흉이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일단 두 분 다 진정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너무 과열된 듯 합니다."
모습을 드러낸 양경은 대치하고 있는 유중기와 도숭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는가! 어찌 금의위에 구금되어있는 태자비와 태손을 멋대로 데려간다는 말인가! 이건 월권일세!"
유중기는 잔뜩 화가난 어조로 고함을 내질렀다.
"제가 다 해명토록 하겠습니다. 부디 진정하시지요. 지휘사 어르신."
"대체 무슨 해명을 하겠다는 말인가!"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듯합니다."
양경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요. 병력을 물리고 말입니다. 두 분 모두 정말 싸울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양경은 담담한 시선으로 유중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유중기는 그런 양경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찰원 밖으로 물러가있거라."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려 금의위들에게 명을 내렸다.
양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지휘사 어르신 "
양경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을 따르는 모습들이 꽤나 흡족한 까닭이었다.
"그럼 이동하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금의위들이 완전히 물러간 것을 확인한 양경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유중기는 그런 양경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따라걷기 시작하였다.
**********
"앉으시지요."
개인 집무실로 들어온 양경은 유중기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털썩
그 말을 들은 유중기는 곧바로 권한 자리에 착석을 하였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양경을 노려보았다.
"차라도 마시겠습니까?"
"오래 있을 생각은 없네."
유중기는 대뜸 거절을 하였다.
한가로이 차나 마시며 시간을 떼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명부터 말하게.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무슨 생각이길래 태자비와 태손을 빼돌린 것인가!"
유중기는 알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의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 지휘사 어르신을 위해서였습니다."
"대체 뭐가 나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만약 제가 그리 하지 않았다면 금의위는 그대로 결단이 나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양경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결단이 난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대체 누가 금의위를 결단내버린다는 말인가!"
"좌도어사..."
"고작 좌도어사 따위가 황실의 수호자라고 불리우는 금의위를 결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중기는 그대로 말을 끊어버린 채 언성을 높였다.
".....를 비롯한 황실의 우호적인 세력들이 금의위를 표적으로 삼을 것입니다."
양경은 그런 유중기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세히 말해보게."
"방금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태자비와 태손을 체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좌도어사가 지휘사 어르신에게 반발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양경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현재 대다수의 우호세력들은 좌도어사와 같이 반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황실을 지키는 검이 황실에게 겨눠졌다면서 말입니다."
"이건 정당한 절차일세! 태자가 범행을 자백한 상황에서 최측근을 구금하고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정당한 절차지만 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들에게 황족이란 대하는 것조차 송구한 신성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를 영장도 없이 멋대로 체포하고 구금하였으니 어찌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네 또한 그들을 구금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내게만 그리 가혹하게 군다는 말인가!"
"사법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저와 자체적인 수사를 하였던 금의위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양경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태자를 강제적으로 구금하여 반감을 사고 있던 금의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태자비와 태손까지 체포한다? 모르긴 몰라도 쉽사리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태자비와 태손을 데려갔다는 말인가?"
"예에, 그렇습니다. 적어도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도찰원이라면 그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양경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내게.....언질이라도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지 않았는가?"
"언질을 주기도 전에 태자비와 태손을 추포하지 않으셨습니까? 너무 성급하셨습니다."
양경은 유중기를 바라보며 타박하듯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지금이라도 영장을 넘겨주게, 금의위에서 태자비와 태손을 합벅적으로 구금할 수 있도록 말일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양경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인가!"
"지금 상황에서 태자비와 태손을 넘긴다면 도찰원이 금의위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자존심때문에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만약 그리 된다면 금의위와 도찰원 사이에 유착을 의심하는 자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방지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태자비와 태손은 태자를 협박해야할 인질일세....."
"그 인질을 도찰원에서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유중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인질을 데리고 있겠다는 양경의 말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차피 저희는 한 배를 탄 몸이 아닙니까? 부디 저를 믿고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지휘사"
양경은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유중기는 그런 양경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