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4화 〉 625. 생각나면 구해줄게~
"각주님! 어디 가신거예요!"
"각주님!"
"이만 나오세요!"
재경각의 각원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재경각주 요랑을 찾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월말정산을 하는 날이었다.
그 어떤 때보다 바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 요랑은 귀신처럼 사라져버렸다.
혼자서 서너명 정도의 업무는 거뜬히 처리할 수 있는 요랑이 말이다.
재경각의 각원들은 난감함을 느꼈고 이내 그녀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없다면 정신나간 수준의 월말 정산을 그들끼리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은 죽고 말 것이다.
과로사로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필사적으로 그녀를 찾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도움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각주님! 제발 나와주세요오오...제발.."
"각주님!......이러다간 저희 과로사로 죽습니다."
요랑을 찾는 목소리가 당가 전체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정말 안가도 되는가?"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은 능소화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능소화의 물음에 요랑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나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요랑은 걱정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분명 과로사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능소화는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으로 요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에이, 요즘 애들이 엄살이 심해서 그래."
"그대도 어찌보면 요즘 애가 아니던가?"
"나 삼백살 넘었는데?"
요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으로서 자아는 이 년 남짓이 아니던가?"
"소화야, 나는 천재라구, 이년이면 인간 사회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니까?"
"일단 요령이 늘어난 건 확실한 것 같다."
능소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보다 더욱더 인간다운 요랑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인간 사회에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령이라니, 그저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고 있을 뿐이야."
요랑은 뻔뻔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휴가를 꼭 월말에 해야했는가?"
"그치만 월말이 제일 바쁜걸?"
요랑은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깨물고 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월봉도둑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능소화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궁에서는 그대와 같은 이를 월봉도둑이라고 부른다."
"나처럼 예쁘고 똑똑하고 능력까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야?"
요랑은 재밌다는듯 방실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대처럼 쉬운 일만 하고 어려운 일은 회피하면서 꼬박꼬박 월봉을 타가는 도둑같은 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능소화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뭐야!"
그러자 요랑이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난 평소에 남들에 서너배는 열심히 한다고! 하루 정도는 쉬어도 돼!"
"그 하루가 하필 가장 바쁜 날이니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대는 저들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능소화는 요랑을 살짝 타박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 인간이란 시련 속에서 성장하는거야."
요랑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시련도 버틸 수준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본녀가 보기엔 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처럼 보이는구나."
능소화는 진지한 눈빛으로 요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정도는 버틸 수 있을거야."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그녀는 되물었다.
"......당연하지."
요랑은 자신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그리 생각하는가?"
능소화는 고요한 눈동자로 요랑을 응시하며 다시금 그녀에게 되물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
능소화의 고요한 눈빛을 마주한 요랑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월말정산은 저정도 인력이 감당해내기엔 너무나 가혹한 업무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조차 없었다.
월말정산을 기한내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당가의 재정적 흐름이 전부 꼬여버릴테니 말이다.
".....사실 아니야."
이내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업무를 내일로 미룬다!"
"..........."
능소화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같이 월말정산을 마무리한다."
그 눈빛을 마주한 요랑은 순순히 답을 하였다.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니 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요랑은 착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매력적인 눈웃음을 쳤다.
꼬옥
그리고 요랑은 품에 안아들었다.
쓰담 쓰담
그다음 그녀의 흑단같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녀는 쭉 도망다녀도 상관없었다.
영물인 그녀가 인간이 정한 규칙따위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부하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 반성을 하고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찌 어여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헤헤헤헤헤...헤헤헤...."
능소화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요랑은 기쁜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칭찬받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은 탓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업무를 보러 가보도록 하라."
그리고 이내 능소화는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뗸 후 단호하게 말하였다.
"좀만 더 쓰다듬어주면 안돼?"
요랑은 그녀를 올려다 본 뒤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안된다. 일이 늦어질 수록 저들은 고통 받을 것이다."
"우우우...우...알았어.."
요랑은 포기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번뜩
부르르르
그때 갑자기 요랑이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요랑, 갑자기 왜 그러는가!?"
그 모습을 능소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부르르르
그녀의 물음에도 요랑은 여전히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주르르륵
그러더니 이내 천천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요랑!? 왜 그러는가? 어디 아픈 것이더냐? "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요랑에게 물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왔어."
"응?"
능소화는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왔다고!"
"뭐가 왔다는 것인가!?"
"선우가 왔어!"
요랑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선우가!?"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우웅
그다음 기감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기척이 느껴질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감에는 선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요랑,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야! 확실해!"
요랑은 도리질치며 언성을 높였다.
"선우의 냄새가 난단 말이야!"
"그게 정말이더냐!?"
능소화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확신할 수 있어! 선우가! 선우가 돌아온거야!"
요랑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쯤인 것이더냐?"
"정확한 거리는 몰라! 그냥 느낌이 와! 당가로 오고 있다는 느낌이 말이야!"
"옥령....언니께..알려야하겠느니라!"
능소화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이 사실을 정부인인 옥령에게 알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려한테 갈게!"
요랑 또한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타타타탁
타타타탁
이내 두 사람은 곧바로 바깥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
"혈검향血劍香 선배와 이렇게 마주하게 되다니..영광이에요."
강하윤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일찌기 혈검향 옥령은 여중제일인 주소양과 여중제이인 강하윤 보다 먼저 무림에 협행을 날렸던 선배격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여협이었다.
그런 옥령을 눈앞에서 보게되니 왠지 모를 벅참이 차오르는듯하였다.
"오히려 제가 더 영광인걸요? 봉황대주인 강하윤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옥령은 티 한점없는 맑은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저 따위는....옥령 선배에 비할바 못되어요.."
그녀는 쑥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옥령은 이십오년 전 당시 최대 사파 단체이자 사파연합을 창립할 뻔했던 거악방을 홀로 전멸시켜버린 전설적인 무용을 가지고 있는 여협이었다.
그런 여협에 비하면 자신의 협행따위는 비할바가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윤님, 너무 금칠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이미 이십년이 훌쩍 넘은 일이랍니다."
옥령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자꾸 띄워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었다.
"말씀...편히 하셔도...돼요....옥령님."
"흐음...그럼 말을 편히해도 될까요?"
"네에..그 편이 오히려 편할 것 같아요.."
"그럼 하윤아."
옥령은 청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에."
그녀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너도 언니라고 불러주련?"
"..네에!?..하지만...제가..어찌.."
"하윤이에게 언니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그래..도와줄 수 있겠니?"
옥령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하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들은 강하윤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침묵을 하였다.
복잡한 머릿속으로 정리하는듯하였다.
".........언..니."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왜 그러니? 하윤아."
그녀의 대답에 만족스러움을 느낀 것일까
옥령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쾅 쾅 쾅
그때 갑자기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과격하게 말이다.
"누구인가요?"
옥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간이 찾아올만한 이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옥령...언니"
그러자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옥령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또다른 동생이 찾아온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화구나, 들어오려무나."
끼이이익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곧바로 열어젖혀졌다.
그리고 불꽃처럼 찬란한 붉은 머릿결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능소화였다.
"큰일났느니라!"
능소화는 옥령을 바라보며 다급히 외쳤다.
"큰일이라니?"
옥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별안간 무슨 큰 일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선우가 당가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능소화는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네에에?!"
"네에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옥령과 강하윤은 경악성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
"각주님! 어디를 가시는겁니까!"
덥석
우연치 않게 요랑을 마주친 당감은 그녀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이거놔아아!! 나 갈거야!"
요랑은 그런 당감의 팔을 뿌리치려고 하였다.
"안됩니다!"
당감은 양손으로 요랑의 팔한쪽을 완전히 껴안아버렸다.
절대 놓을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이거놔! 안놔!?"
부웅 부웅 부웅
요랑은 그 상태로 팔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당감의 몸이 팔의 움직임에 따라 그대로 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요랑의 초월적인 힘은 체중으로도 버텨내는게 무리인듯 싶었다.
"크으윽...안됩니다..과로사..흐윽..하기 싫어요오.."
당감은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결혼도 못한 노총각 신세인 그였다.
청춘도 제대로 못 피운채 이대로 과로사하는 건 사양이었다.
'이걸 한대 쥐어박아? 말아?'
요랑은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이걸 쥐어박아서 기절시켜버릴까하고 말이다.
'안돼....힘조절 실패하면 죽을거야.'
하지만 이내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만약 힘조절에 실패한다면 당감의 연약한 두개골이 수박터지듯 터져나갈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어쩌지..'
요랑은 고민에 빠졌다.
당과를 먼저 먹을지
전병을 먼저 먹을지에 대해 고민한 이후
겪는 최대의 고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아!'
이내 요랑은 무척이나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당감아"
요랑은 팔을 부여잡고 있는 당감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베에에"
그리고는 입을 벌려 혓바닥을 내밀었다.
"응?"
그 모습을 본 당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슈르르르륵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요랑의 입에서 새햐얀 실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으아아아악!"
당황한 당감은 그대로 요랑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새햐얀 실들에 그대로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완전히 봉합될 정도로 말이다.
이내 장내에는 사람 모양의 새하얀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당감의 온몸을 새햐얀 실들이 전부 뒤덮어버린 것이다.
"그거 공기가 통하는 재질이라 숨은 쉴 수 있을거야."
그 모습을 본 요랑은 깜찍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나면 구해줄게~"
그리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벼락치듯 빠르게 말이다.
'살려줘어어어'
이내 장내에는 불쌍한 당감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