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2화 〉 573. 후계 경합이 시작되다.
저벅 저벅 저벅
이재원은 무척이나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단상 앞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한 걸음 한걸음에 위엄이 돋아날 정도로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뚝
이내 단상 앞에 걸음을 멈춘 이재원은 번쩍이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보니 수많은 맹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으흠"
그 모습을 보던 이재원은 이내 목을 한 번 가볍게 풀어주었다.
"자랑스러운 무림의 협사들이여."
그리고 맹원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반갑소! 본좌는 천무맹의 맹주인 이재원이라고 하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온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상당한 내력이 담겨있는듯하였다.
"본 맹주의 소집 요청에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와주신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오."
이재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마움이 묻어나는 태도였다.
"본 맹주가 그대들을 소집한 이유는 다들 어림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바로 이번에 치뤄질 후계 경합에 관한 내용 때문이오."
이내 고개를 들어올린 이재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붙여진 방을 보았다면 알다시피 후계 경합은 총 세가지로 구분되어 치뤄질 것이오. 첫 번째 무력에 대한 시험, 두 번째 운영 관리 시험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세 번째는 협의에 대한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오. "
이재원은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이 세가지 시험에는 각기 다른 평가가 들어갈 것이고 점수가 매겨질 것이오. 그리고 이 점수의 합인 총점이 가장 높은 자가 훗날 맹주 위를 이어받을 후계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오. "
이재원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세가지 경합 중 무력에 대한 시험이 있을 예정이오. 무력에 대한 시험은 본 맹주가 직접 주관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매길 예정이오."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보통이라면 후보자 간의 비무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좀더 편할지는 모를 일이나 본 맹주는 그럴 경우 요행이나 운으로 인해 실력에 맞지 않은 자가 높은 점수를 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 맹주 스스로 나서 무력을 시험하는 편이 좀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이번 시험은 본 맹주가 직접 나서서 그대들을 평가 할 것이오."
꿀꺽
이재원의 말을 들은 후보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방에 적혀있던 내용이 사실이라게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천하제일인과 비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어찌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럴 경우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할 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결국 본 맹주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마구잡이로 점수를 책정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을테니 말이오."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본 맹주는 이 자리에서 이번 시험에 천하제일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공정한 평가를 내리겠다고 선포하도록 하겠소."
이재원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명예를 아는 무인으로서 신념을 걸고 맹세하리라! 이 시험에는 그 어떠한 부정도 없을 것이오!"
이재원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짝 짝 짝 짝 짝 짝
그러자 함성과 함께 무수한 박수소리가 온 사방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의 진심 어린 호소에 모두가 감동을 받은듯 싶었다.
'흐흐흐........아직 안죽었네......이재원..'
그 함성을 들은 이재원은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싸가지 없는 수뇌부들과 달리 여전히 자신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무림인들을 보니 만족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안되겠다. 경합만 끝나면 싹 다 물갈이해야겠다.'
그리고 다짐하였다.
저 싸가지 없는 수뇌부들을 대신할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겠다고 말이다.
물론 기존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던 새끼들은 전부 내쫓아버린 후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금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 수 있으리라
히죽 히죽
이재원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
'저새끼는 왜 저렇게 실실 쪼개냐?'
한 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히죽거리는 이재원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뭔가 저새끼가 기분 좋은듯한 모습을 보니 불쾌감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이재원이었다.
그런 인간이 기분 좋은듯 실실 쪼개는 모습을 보니 역겨움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주제에 제놈은 웃음이나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한 번 확인해봐야겠군.'
선우는 눈을 반짝였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이재원의 격차가 얼마나 좁혀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처음 백화봉에서 그를 마주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은 초절정에 불과하였다.
개미와 코끼리만큼의 무력차이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적어도 그 덩치만큼은 꿀리지 않게 성장한 것이다.
초절정을 넘어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우는 화경을 넘어
반선의 경지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연기를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신선의 육체, 공령지체마저 이룩 할 수 있었다.
그전과는 비교조차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현경에 다다른 자신이라면
이재원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말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무협지 안으로 들어오고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것을 선사해주었던 이재원을 대상으로 말이다.
물론 장삼이 아닌 장선우의 탈을 쓰고 있는 만큼 본신의 전력을 모두 끌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태허일기공(太虛一氣功)도
음양조화신공(陰陽造化神功)도
무엇하나 사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장삼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음양마의 제자라는 사실을 들킬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손속을 나눈 것만으로도 알 수있을 것이다.
그와 벌어져있던 격차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말이다..
'...........이재원.'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단상 위에 있는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적대감과 호승심이 가득 차 있었다.
****************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연무장
그 중앙에는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이재원이 오연하게 서있었다.
과연 천하제일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엄을 흩뿌리고 있었다.
꿀꺽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천하제일인의 위엄 어린 모습에 완전히 압도가 된 까닭이었다.
"지금부터 경합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그때 팔복당주 허삼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경합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던 세인들이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시험을 받은 자는 해남파에서 온 참철검斬鐵劍 비파랑 소협외 네 명이오!"
고함이 잦아들자 허삼관은 후보자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러자 이내 일단의 무리가 연무장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는 질끈 동여 맨 말총머리에 야수처럼 거친 인상이 인상적인 젊은 남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네 명의 거한들
그들이 허삼관이 호명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세인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맹주."
이내 연무장 중앙에 도달한 비파랑은 이재원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천하를 대표하는 고수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있는 모습이었다.
"반갑네. 비 소협."
이재원은 그런 그를 아는 체 하며 말을 이었다.
"......저를 아십니까?"
비파랑은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양민들을 수탈하던 남해 해적들의 절반을 참살한 그대를 어찌 모르겠는가?"
이재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저 멀리 남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대 또한 천무맹의 협의지사들과 마찬가지로 협을 알고 협을 행할 줄 아는 협객일세. 내 어찌 그대와 같은 협객에 대해 모를 수 있겠는가?"
이재원은 비파랑을 칭찬하며 입을 열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주."
그의 칭찬을 들은 비파랑은 감격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인사를 건네었다.
남해라면 중원에서 촌구석이라고 여길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보잘 것 없는 명성을 날려봤자 무시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데 천하제일인이 그런 자신을 알아봐주었다.
어찌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 참, 별걸 다 감사하는군."
이재원은 별 것 아니라는듯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하도록 하세나. 좀더 사담을 나누고 싶지만 기다리는 이가 많아서 말일세."
이재원은 슬쩍 뒤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맹주."
스르릉
그의 말을 들은 비파랑은 천천히 검을 빼내었다.
톱날처럼 삐죽삐죽한 날이 서있는 특이한 검이었다.
"특이한 검을 쓰는구만. 아주 재밌겠어."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비파랑은 톱날처럼 뾰족한 검을 이재원에게 겨누며 말을 이었다.
타탁
그리고는 이재원을 향해 달려들더니 이내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휘리리릭
그러자 톱날 같던 그의 검이 수십가지의 변화를 일으키더니 이내 이재원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변검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남해삼십육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검은 사방팔방을 오가며 쉴새없이 변화를 일으켰다.
이재원의 살갗에라도 닿기 위해서 말이다.
'좆밥.'
그 모습을 보던 이재원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름 최고의 정수를 선보인 것 같은데 그 정수가 너무나 뻔하디 뻔하였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꺼저라.'
이내 이재원은 손을 한 번 휘저었다.
스겅
그러자 비파랑의 톱날처럼 생긴 검을 너무나 쉽게 잘려버렸다.
이재원의 가벼운 손길에 남해삼십육검이 그대로 파해되어버린 것이다.
"아..아니?!"
그 모습을 본 비파랑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하던 최고의 절기가 맥없이 막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듯 싶었다.
이재원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목에 겨누었다.
"어떤가? 더 해볼텐가?"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졌습니다."
비파랑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와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크크크큭.....'
그 모습을 보던 이재원은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다.
아마 비파랑이라는 자는 쉴새없니 변하는 검을 손에 넣기 위해 끝없는 고련을 쌓았을 것이다.
손과 발에 온갖 물집이 잡히고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새카맣게 탈정도로 땡볕에서 훈련을 하였으며 목숨 걸고 실전을 치르며 무공을 갈고 닦고 또 갈고 닦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력이 단번에 부정되었다.
노력 한 번 해본적 없는 자신에 의해서 말이다.
'하아아아~~'
이재원은 마음속에서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어렸을 때 치트를 써서 원하던 몬스터를 단 번에 잡아버린 느낌이었다.
깨지 못했던 사천왕을 치트를 써서 어거지로 이겨버린 느낌이었다.
노력으로 실력을 쌓았던 상대를 핵으로 압살한 기분이었다.
행복하였다.
너무 행복하여 발기가 될 것만 같았다.
"훌륭하다."
이재원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훌륭한 실력이로다. 분명 그대는 이런 검술을 손에 넣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였겠지."
이재원은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정진하도록 하라. 그렇다면 그대는 변화의 끝을 맛볼 수 있으리라."
이재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실상은 되는대로 지껄이는 말이었다.
변화의 끝이 뭔지 그가 알리 없지 않은가
심검조차 스승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그가 말이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그런 이재원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비파랑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아, 이제 그대들의 실력도 보도록 하겠네."
이재원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뒤 비파랑의 뒤편에 있는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스르르르릉
이내 지지자들 중 하나가 검을 뽑아들었다.
"아니, 한 명씩말고 한 번에 오도록하게."
그 모습을 보던 이재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스르르릉
그러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한 명을 여럿이서 공격하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상대는 천하제일인이었다.
합공따위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리라
콰콰쾅
이내 지지자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날아가버렸고 이재원은 여전히 연무장 중앙에 오연하게 서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고고한 모습으로 말이다.
"다음."
비파랑의 지지자들을 단번에 무력화 시킨 이재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짜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