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3화 〉 564. 언젠간.......파헤쳐주마.
"맹주께서 말입니까?"
허삼관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설마하니 잠자코 있던 이재원이 입을 열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내 일인데...어찌....계속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겠소?"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군요."
허삼관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미안하오, 내 치부를 드러내야한다는 부끄러움에 도저히 입이 떼어지지 않았구려."
이재원은 송구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하였다.
그의 태도에는 미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닙니다. 치부를 드러내는데 부끄럽지 않을 이가 어디있겠습니까?"
허삼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신다니 오히려 고맙구려."
"별말씀을요."
허삼관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말씀해주시지요. 어째서 부인들의 의견이 갈리는지 말입니다."
"간단하오. 모든 부인들과 금슬좋게 지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오."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말씀은?"
"본 맹주는 그간 세명의 부인하고만 관계를 맺었소. 다른 여인들 몰래말이오. 그러니 그녀들이 밀회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찌...그런.."
"사랑이라는 것이 어찌 내 마음대로 되겠소? 노력을 해봤지만 식어가는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소."
이재원은 슬픔이 찬 눈빛으로 주소양과 팽가련 그리고 황보유연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을 사랑하지 않소. 별 다른 이유는 없소...미안하다는 말도..용서해달란 말도 할수 조차 없구려....."
이재원은 슬픔이 가득 담겨있는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균등한 사랑을 나눠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듯 하였다.
"................"
이재원의 말을 들은 세 여인은 일제히 침묵을 하였다.
이곳은 부인들 뿐만 아니라 수뇌부들까지 모여있는 공식선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재원은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무례하고 천박하고 끔찍한 상황이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세인들 앞에서 부인들이 여인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깎아내려버린 것이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수 있다는 말인가
"..........맹주."
그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정녕........그 말에.....거짓은 없는 것이오?"
"진심이오....나는 그녀들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소...그렇기에 밀회를 갖지 않은 것이지."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담담히 답을 한 뒤 고심에 빠져들었다.
설마하니 맹주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누명을 벗기위해 부인들의 명예를 땅바닥까지 떨궈버렸다.
이런 상황을 대체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 더 추궁하기도 힘들었다.
듣기 좋은 어설픈 거짓말이라면 꼬투리를 잡아 그를 압박하겠건만 부인들의 명예를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곳에 처박아버린 태도를 보인 이재원을 감히 추궁할 수는 없었다.
파급력이 큰 만큼 신빙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자시子時 와 인시寅時 사이에 맹주께서는....."
"제갈 부인의 말대로 그녀의 처소에 가있었소...오랜만에 부부간의 금슬을 확인할 심산이었지."
".............."
"이런 식으로 내 치부가 들통날 줄은 예상치 못했구려......참으로 부끄럽더이."
이재원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
치부가 들통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듯한 모습이었다.
'아싸, 시발 개꿀! 오지구여 지리구여 오리너구리구요!'
물론 실상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바아아아알~!! 살았다아아아! 주경아아! 제갈 주경아아아!'
그는 제갈주경에 대한 애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릴 상황에서 자신의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판도를 뒤집어줬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준 것은 물론 증인까지 되어준 것이다.
'이래서 시발 마누라를 잘 둬야돼!'
이재원은 자신의 증인이 되어준 마누라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위증을 해준 그녀들 덕분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부인은 제갈주경이다. 주소양 저년은 탈락이야!'
그와 동시에 위증을 거부한 마누라에 대한 적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황보유연이야 원래 호구끼가 있는 멍청한 년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주소양과 팽가련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들 정도의 눈치라면 위증에 동참하여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거부하였다.
어찌 곱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시발년들, 네년들은 앞으로 평생토록 자지몽둥이 맛은 못 볼줄 알아라.'
이재원은 다짐하였다.
사태가 진행되는 즉시 저년들 모두 쫓아내버리겠다고 말이다.
부창부수라고
남편이 주장하면 부인은 그대로 따라야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찌 지아비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는데 저렇게 매몰차게 위증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
이재원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심적으로는 이재원이 범인이었다.
자신의 직감이 이재원을 향해 끝없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장 부재를 증명해버린 그에게 더이상 추궁할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를 더 추궁하게 된다면 그 뿐만 아니라 그를 옹호하던 부인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행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본디 무림인이라는 작자들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였다.
무시당한다고 여기면 칼부림부터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이 그녀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발언을 한다면 제갈세가를 비롯한 진주언가 그리고 모용세가까지 적으로 돌리게 되어버릴 것이다.
무시당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명분이 될터이니 말이다.
'제기랄....제기랄!'
허삼관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가장 친한 친우를 죽인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추궁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단....지금은...넘어간다.'
하지만 이내 허삼관은 속을 가라앉혔다.
지금 상황에서 무리를 해봤자 정치적으로 고립만 될 뿐이었다.
지금은 몸을 낮춰야했다.
완벽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말이다.
"그래서 제 현장 부재는 증명이 되었소?"
이재원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허삼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이지요....현장 부재 증명을 위해....부끄러운 치부마저 아낌없이 드러낸....맹주가 아니십니까? 어찌 제가 그런 맹주님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허삼관은 타들어가는 속내를 애써 숨기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팔복당주께서 이렇게 이해해주니 너무나 고맙구려."
이재원은 감복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감사를 표하였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의심스러운듯 추궁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허삼관은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사과를 하였다.
"사과할 필요없네. 아무리 맹주라하더라고 제대로 된 수사를 위해서는 추궁을 피해갈 수 없는 법이지. 앞으로도 의심이 간다면 언제든지 추궁해도 좋네."
이재원은 호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대인배스러운 면모가 엿보였다.
".........맹주의 공정성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금칠을 해주니 오히려 내가 부끄럽구려."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언젠간.......파헤쳐주마..'
'이새끼도 언젠가 죽여야겠다....이번에는 계획좀 잘짜서 의심안받게.'
물론 속내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
회의가 끝나고 여섯 명의 부인들이 각자 자리에 남아있었다.
끝나고 남으라는 대부인 주소양의 엄명이 있었던 탓이었다.
"............"
회의실에 남은 여인들은 주소양의 눈치를 살피며 모두 침묵을 하였다.
하나같이 표독스럽고 불같은 성미를 자랑하는 여인들이었지만 첫 번째 부인이라는 위치와 여중제일인라는 거대한 명성을 지닌 주소양 앞에선 분위기에 압도되어 절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제갈 부인."
이내 잠자코 있던 주소양이 천천히 입을 떼어 제갈주경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대부인."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한거죠?"
주소양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거....거짓말이라뇨?"
그녀의 말을 들은 제갈주경은 살짝 더듬으며 시치미를 떼었다.
"부인, 저는 두 번 말하는걸 싫어합니다."
그녀의 시치미에 주소양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러니 한 번에 똑바로 말해주세요. 어째서 그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지껄인 것입니까?"
주소양은 흉흉한 기세를 피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이내 제갈주경은 주눅든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맹주께서 곤란하였을테니까요."
"그렇다고 위증을 해요!?"
주소양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그대로 냅두나요? 맹주께서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데!"
이내 제갈주경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추궁하는 주소양의 태도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범인이 아니라면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겠지요. 어찌 위증으로 상황을 심각하게 만든다는 말입니까!"
주소양은 또한 언성을 높이며 그녀를 크게 꾸짖었다.
"그게 지금 부인으로서 할 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편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그저 바라만 보라니!"
"위증은 엄연히 범죄입니다. 맹주를 감싸고자 스스로 범죄를 저지른다는게 말이 됩니까?"
"............"
그녀의 말을 들은 제갈 주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론으로 나오니 딱히 반박할만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위증임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사과를 하도록하세요!"
주소양은 엄한 표정으로 제갈주경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럴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당진설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라구요!?"
그녀의 대답에 주소양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감히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거절하는 당진설에 대한 화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죠?"
"하면 안되니까요."
당진설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싫어합니다. 당부인."
주소양은 적대적인 시선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랑 다르군요. 저는 돌려말하는 걸 무척 선호하는데 말이죠."
당진설은 여유롭게 그녀의 말을 받아치며 말을 이었다.
"............당진설...언제부터 그렇게 모가지가 뻣뻣했지?"
주소양은 당진설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난 것인지
투기를 잔뜩 끌어올리며 위협적으로 말하였다.
그러자 회의장 전체에 짓눌린듯한 압박감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글쎄요. 뻣뻣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재밌네. 네년이 내게 반항도 하고 말이야."
"반항이라뇨. 이런 건 의견 조율이라고 하는거랍니다."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의견 조율을 해야할 이유를 대봐. 어째서 위증을 인정하면 안된다는 거지?"
"뭐, 궁금하다면 말씀 못해드릴 것도 없긴한데.......그전에 투기부터 먼저 거둬들여주시겠어요? 싸울게 아니라면 말이에요."
"싸움이란 건 수준이 맞아야 성립하는거란다. 당가의 요녀야."
말을 마친 주소양은 이내 순식간에 투기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회의실을 무겁게 짓누르던 중압감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후우.....이제야 살겠네요."
중압감이 해소되자 당진설은 농염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매에서 짧은 단죽短竹을 꺼내들더니 이내 입에 물었다.
그다음 손가락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끄트머리에 불을 붙여버렸다.
뻐끔 뻐끔 뻐끔
그리고 입에 문 단죽을 뻐끔거리기 시작하였다.
"후우우우우...위증을 인정하는건 곤란해요."
그다음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위증을 인정한다면 거기에 동참한 저와 언부인도 모두 공범이 되어버린답니다."
"그건 네 년의 업보가 아닌가?"
"후훗, 너무하네요. 그래도 한솥밥 먹는 사이인데 이렇게 매정하게 굴다니 말이에요....."
당진설은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시덥지 않은 이유라면 내쪽에서 먼저 고발해주겠어."
"진정하세요. 대부인,위증 인정하면 안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톡 톡
당진설은 담뱃재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똑바로 말해. 시덥지 않은 장난질 칠 생각하지 말고"
주소양은 눈을 부릅뜨며 위협적으로 말하였다.
또다시 장난질을 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알겠어요. 대부인 그럼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지요."
당진설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위증은 인정할 수 없어요."
당진설은 올곧은 시선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의 사랑하는 부군이 구씨세가를 멸문시켰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말테니까요."
그녀는 요요로운 눈빛으로 부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 모두 그런 결말을 원하는건 아니겠죠?"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부인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