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2화 〉 563. 위기를 모면하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맹주께서는 그 시각에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허삼관은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재원 바라보며 물었다.
말로는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재원에 대한 의심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나...나는..."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뜸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화살이 되돌려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추악한 짓을 저질러도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어가던 그였다.
증거가 있든 없든
현장 부재가 증명이 되었든 안 되었든 말이다.
이번에도 같을 줄 알았다.
언제나처럼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을
천무맹을 세운 설립자이자
초대 맹주인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천무맹의 수뇌부라는 작자들이 말이다.
이재원은 당황하였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은 의심조차 품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서 군림하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지배나 받던 개미같은 새끼들이 자신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하지? 시발 어떻게하지?'
이재원은 속으로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생각없이 막 저지른 상태였다.
언제나처럼 그냥 넘겨버릴 요량으로 말이다.
그런데 설마하니 팽가련이 범인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특정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단독범에 구자엽에게 원한이 있는 현경의 고수라면 자신밖에 없지 않은가
'시발 팽가련, 저 병신 같은 년이! 저 딴 말을 하면 내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잖아아아아! 공과 사는 좀 함께하라고오오오오!!!!!!시발련아아아아아아!!!'
이재원은 속으로 공사 구분 확실한 팽가련에게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꼼짝없이 자신이 특정되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시발.....이걸 어떻게 벗어난다...'
이재원은 이십여년 동안 묵혀놨던 머리를 서서히 굴리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이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맹주, 어찌 말이 이리도 말이 없으십니까? 어서 답을 해주시죠."
이재원이 말이 없자 허삼관은 재촉하듯 되물었다.
허삼관의 눈빛에 담겨있는 의혹이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재원의 태도에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마누라들 빼고 그냥 다죽이자. 사람들한텐 천마나 음양마가 쳐들어왔다고 하면 되잖아? 마누라들은 나를 이해해줄테니까 논외로 치고.'
이내 이재원은 결심을 맞췄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 죽이는 것을 택할 심산이었다.
진실을 아는 모든 이들을 죽인다면 어찌어찌 해결이 되지 않겠는가
무척이나 일차원적인 발상이었지만 이재원은 개의치 않았다.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뭣하러 복잡하게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스으으으으
이재원은 무형지기를 천천히 흘리기 시작하였다.
회의장에 있는 수뇌부들을 단번에 죽일 심산이었다.
그렇게 이재원이 모두를 죽여버릴 심산으로 기운을 퍼트리고 있을 때였다.
"그날 맹주께서는 저와 함께 있었어요."
이지적인 인상의 미부, 제갈주경이 끼어들더니 이내 말을 내뱉었다.
"부인과 말이오?"
그녀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에, 그날 맹주께서는 퇴근 후 제 처소로 찾아들었습니다."
제갈주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맹주가 부인의 처소로 찾아들었다는 말이오?"
허삼관은 의심스럽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남편이 부인의 처소를 찾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의 말을 들은 제갈주경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제갈 부인."
그녀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요."
제갈주경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이 한치의 거짓이 없는 사실이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갈주경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이에요."
제갈주경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하였다.
무척이나 당연한다는듯이 말이다.
"거참......믿기 힘들구려."
허삼관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믿기 힘들다는거죠?"
제갈주경은 이상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어찌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안가
"남편이 부인의 처소를 찾는 일만큼 당연한 일이 어디있겠어요?"
그녀는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맹주와 부인들의 관계는 보통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허삼관은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순간 제갈 주경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그에게 물었다.
"맹주께서 부인들의 처소에 찾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은 천무맹의 수뇌부들이라면 전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맹주가 제갈 부인의 처소에 방문하였다니? 그것도 특정되어진 사건이 일어난 날 당일에 말입니다."
허삼관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제갈주경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재원이 제갈주경의 처소에 방문하여 밤을 지새우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부부간의 정을 쌓는 것이 어찌 이상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도 금슬이 좋은 부부나 해당되는 사항이지.'
하지만 이재원과 제갈주경은 달랐다.
이재원이 부인들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였다.
겉으로는 화목해보이지만 그 속내는 누구보다 무관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건당일 제갈주경을 안으러 갔다?
너무나 작위적인 상황이었다.
의심이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무언가 착각을 한듯 싶군요."
그 말을 들은 제갈주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맹주와 저희들의 부부관계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차갑고 건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뜨겁고 열정적이지요."
제갈주경은 허삼관을 올곧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믿기지 않는군요."
"믿기지 않을 수밖에요. 그간 크게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요."
"티를 내지 않았다?"
허삼관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후우......이렇게 된 이상 진실을 말해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제갈주경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맹주께서는 그동안 저희와 몰래 밀회를 즐기며 부부관계를 영위하였습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말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요? 부부간에 어찌 밀회를 즐긴다는 말이오!?"
허삼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부부간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부간에 관계를 갖는다는 건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금슬이 좋다면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부부간에 밀회를 즐기며 부부관계를 영위한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맹주께서는 세인들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위치에 서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언행과 행동을 더욱더 조심한 것이지요. 맹주라는 작자가 색에 빠져있다는 소문이 돌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겠어요."
그 말을 들은 제갈 주경은 이재원에 대한 옹호를 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설득력있게 말이다.
".....흐음.."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침음성을 삼켰다.
무척이나 작위적이고 의심스러운 정황이었지만 제갈주경의 말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예를 위해 색을 멀리하는 척 수십년간 부인들과 밀회를 즐긴 맹주
꽤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하는 위선자들은 수뇌부들 중에도 수두룩하였으니까 말이다.
허삼관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고심에 빠져들었다.
제갈주경의 옹호로 인해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이것만 현장 부재를 증명해줄 증인이 존재하였다.
어찌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있겠는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내 허삼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증명이요?"
제갈주경은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맹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증명을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맹주와 관계라도 치뤄 금슬이 시들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할까요?"
제갈주경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증명할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게 뭔가요?"
"제갈 부인을 제외한 다른 부인들께도 물어보면 되겠지요."
허삼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맹주와 밀회를 즐겼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당부인, 묻겠습니다. 그동안 맹주와 밀회를 즐기셨는지요?"
그리고 이내 상석 근처에 앉아있던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네에, 맹주와 밀회를 즐겼습니다. 매주 한 번씩 찾아오셨거든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알겠습니다......그럼 언부인."
그녀의 답을 들은 허삼관은 이번에는 언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소외되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언소소는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모용 부인께서는 어떻셨습니까?"
"저도 다른 이들과 똑같아요. 언제나 품위넘치고 기품넘치는 애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모용란은 살며시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
그녀들의 답을 들은 허삼관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부인들이 제갈주경의 의견에 동조하여 너도나도 옹호를 하니 그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였다.
맹주와의 밀회가 증명이 되는 것이다.
"...황보부인."
이내 허삼관은 한쪽 구석퉁이에 밀려나있는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그런적이 없는데요?"
그녀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다들 저빼고 그런 짓을 벌였던 건가요?"
그리고 이내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참입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허삼관이 화색이 된 채 그녀에게 물었다.
제갈주경의 주장이 정면에서 부정되었기 떄문이었다.
"네에.......저는...그이의 방문을 받은 적이 없어요......."
황보유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만 소외되었다는 느낌에 실망감이 든듯 하였다.
'아오 시발 저 빡통대가리 같은년! 시발 눈치 없나!'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신을 옹호해주지 않는 황보유연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던가
부인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신을 옹호해주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렇게 눈치없이 사실대로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발 이래서 계집들도 군대를 가야해. 저따위 눈치로 시발 어떻게 산다고......아오 시발 저 고문관같은 년!'
이재원은 분이 삭혀지지 않는지 속으로 연신 그녀에 대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호오....그렇군요.. 진실된 발언 감사드립니다."
허삼관은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팽가련을 바라보았다.
"집법당주, 아니 팽부인, 그간 맹주와 은밀한 만남을 즐기셨습니까?"
".....흐음..저도 황보부인과 다르지 않습니다....저런 은밀한 만남이 있었을 줄이야.....솔직히 충격이네요."
"팽가련은 그의 물음에 부정을 하였다.
난생처음들어보는 것마냥 말이다.
".....진실된 증언에 감사를 전합니다."
"별말씀을요."
팽가련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대부인."
허삼관은 이재원의 옆에 앉아있는 여인,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은밀한 관계를 즐기셨습니까?"
그의 눈빛에는 집요함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요. 단 한 번도 그런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물음에 주소양은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출산 이후 맹주와 관계를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여인으로서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오죽 매력이 없었으면 남편이 겉으로 도냐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소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었다.
무척이나 담담한 태도로 말이다.
"..................."
그 태도에 압도된 허삼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걸인 것을 알고 있긴 하였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진실된 증언에 감사를 전합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허삼관은 솔직하게 증언을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갈주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지적인 얼굴을 와락 찌푸려져있었다.
마치 짜증이 치솟은 것처럼 말이다.
"제갈 부인의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갈려버렸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삼관은 그런 제갈주경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그건..."
그의 물음에 제갈주경은 당황한듯 말을 더듬었다.
설마하니 저 세명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그에 대해서 내가 설명하도록 하겠소."
그때 잠자코 있었던 이재원이 허삼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맹주가 말입니까?"
허삼관은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의문이 가득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