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화 〉 521. 황보유연의 딸, 이소란
"그가.....여기로 왔었나요?"
황보유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장선우가 팽가련을 찾아왔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1시진 전에 찾아왔습니다. 은자가 가득 들어있는 궤짝을 가지고 말이죠."
"........."
그녀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을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가 집법당을 찾아왔다는 말인가
어째서 그가 오십만냥을 지불했다는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황보 부인이 전해드리라고 했다던데.......아닌가요?"
그녀가 말이 없자 팽가련은 의아한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그게.."
그녀의 물음에 황보유연은 당혹스러운듯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마.....뇌물 반환에 내용을 발설한 건 아니겠죠?"
팽가련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뇌물 반환에 대한 이야기는 기밀 중에 기밀이었다.
만약 발설 될 경우 집법당주인 팽가련도 피해를 입기 때문이었다.
"물..물론 아니죠! 맞..맞아요...그에게 심부름을 시켰어요. 돈을 가져다 달라고...."
팽가련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당황한 황보유연이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발설 사실을 들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네요. 하마터면 화가 치밀어 황보 부인의 목을 잘라버릴 뻔했습니다."
팽가련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황보유연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말이 농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오신건가요? 뇌물도 전부 반환했겠다. 볼일이 없을텐데요?"
그녀가 말이 없자 팽가련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아...그...그러니까......"
그녀의 물음에 황보유연은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하러 온 그녀였다.
그런데 돈이 전부 반환되었다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차나 한 잔..."
"자리에 앉으시지요. 용정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 미소를 마주한 황보유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탁자로 걸어가 착석을 하였다.
그다음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을 하였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장선우에 대해서 말이다.
**********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보유연은 차를 마시는둥 마는둥 먹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벌써 가시게요?"
황보유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팽가련은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에...제가 급히...가볼 때가 있어서요.."
황보유연은 살짝 목례를 한 뒤 곧바로 집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척이나 다급하다는듯이 말이다.
".............."
팽가련은 그런 황보유연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선우님, 갔어요."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스르르륵
그러자 그녀의 뒤편에서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형잠영술을 해제한 것이다.
"연기 잘하더라."
쓰담 쓰담
모습을 드러낸 선우는 팽가련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우가 칭찬을 해주자 팽가련은 헤실헤실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진 까닭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알았지?"
"절대로...실망 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팽가련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충성 어린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 까닭이었다.
"그런데 선우님....안 따라나가셔도 되나요?.....분명 선우님을 찾으러 다닐텐데.."
팽가련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좀 냅둬도 돼. 그래야 더 애가 타고 미안하지."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까요?"
"원래 빚이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마련이거든....마음의 빚도 마찬가지지."
".....그럼 그녀를 만나주지 않을 심산인가요?"
그녀는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한 나흘 정도는 방치할 생각이야. 그 편이 더욱더 애틋할테니까."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흘이나요?"
"그정도는 돼야 약발이 먹혀."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나흘을 동안은 어쩔수 없이 방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셔야겠네요..."
선우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왜? 걱정돼?"
"물론이에요.....나흘이나 돌아다니지 못하면 선우님은 분명 심심해하실거에요."
"확실히 네 말대로 나흘이나 처박혀있으면 심심하긴 하겠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소첩이 선우님의 장난감이 되어 드릴까요? 선우님이 심심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팽가련은 농염하기 그지없는 염기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나흘동안 선우의 노리개가 될 생각을 하니 아랫도리가 후끈해진듯 하였다.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나흘동안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선우는 재밌다는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할 일이요?"
선우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응."
"그게 뭔데요?"
팽가련은 시무룩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재밌는 일."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팽가련은 그런 선우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일 생각이란 말인가
************
좌르르륵
넓게 펴진 헝겊 위에 두 개의 주사위가 바닥에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쾅
그리고 이내 중앙에 앉아있던 도박사가 커다란 그릇을 들어올리더니 빠르게 돌고 있는 두개의 주사위를 그대로 덮어버렸다.
"쌍륙!"
"삼삼!"
"오육!"
"일이!"
그러자 그를 둘러싸고 앉아있던 이들이 바닥에 은자와 동전을 내려놓으며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소리가 잦아들자 도박사는 천천히 그릇을 들어올렸다.
"이삼!"
그리고는 주사위를 확인한 후 고함을 내질렀다.
"오늘은 운이 좋지않군요."
"끗발이 안좋네...안좋아."
"젠장할....이번엔 확실했는데!"
그러자 돈을 걸었던 이들의 입에서 하나둘씩 탄식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걸었던 돈을 일순간에 잃어버린듯 하였다.
도박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반응 보니 아무래도 딴놈은 없는듯 보였다.
"이거 사기 아니에요!?"
그때 삼삼에 돈을 걸었던 여인, 이소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가씨?"
"제가 분명 봤단 말이에요! 삼삼이 나온걸! 그런데 어떻게 삼삼이 이삼으로 바뀐단 말인가요!"
"아가씨가 잘못봤겠지요."
도박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없다구요!"
이소란은 잔뜩 성이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아가씨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다른 손님분들께 민폐가 되지 않습니까?"
도박사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치만 당신이 사기를 쳤잖아요!"
"증거 있습니까?
"뭐라구요?"
"제가 사기를 쳤다는 증거가 있냐는 말씀입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이소란은 확신에 찬듯한 눈초리로 도박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아가씨께서 착각한 걸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뭐라구요!? 전 절정의 고수에요! 착각할 리 없다구요!"
그녀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비록 중경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의 눈썰미가 잘못되었을 리 만무하였다.
저건 삼삼이었다.
목을 걸수도 있었다.
"다른 일행분들도 아가씨 못지 않은 고수지만 전부 다른 숫자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 잘못 볼리 없다면서 생떼를 부린다는 말입니까!"
도박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내뱉었다.
"생떼라뇨!"
도박사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은 발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을 애취급하는 도박사의 태도가 심히 거슬린 까닭이었다.
"지금 말 다하셨....."
이소란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저 안하무인한 도박사에게 한 소리를 해줄 심산었다.
"란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지적인 인상의 여인, 이현경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이제 그만하는게 어때?"
"하지만 저치가!"
"사기라는 건 비약이야. 내 눈에도 주사위는 삼삼으로 안보였는걸?"
그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이소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 또한 절정에 다다른 고수야. 설마 네 눈썰미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런거야?"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소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움찔
"..........."
그 눈빛을 마주한 이소란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서슬퍼런 기세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란매, 이곳은 수준이 맞는 손님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고급 도박장이야. 이렇게 어깃장을 놓으면서 수준에 안맞는 행동을 한다면 너를 데려온 내 체면이 안서지 않겠어?"
"........미안해."
"사과는 나 말고 저분께 해야지."
이현경은 손가락끝으로 도박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이소란은 도박사를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되었습니다. 뭐 아가씨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녀의 사과를 받은 도박사는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돈을 잃어서 무척이나 억울했겠지요. 분통도 터졌을거구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억지를 부리더라도 돈을 돌려받고 싶겠지요. 위협을 해서라도 돌려받고 싶겠죠. 하지만 아가씨 명심하십시오. 세상에는 모든 일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어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이를 핍박한다는 말입니까? 어불성설이지요."
도박사는 이소란을 바라보며 짐짓 훈계하듯이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에는 조롱과 비방이 가득 섞여 있었다.
부들 부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소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돈을 잃어 화풀이로 행패를 부린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도박사의 모욕에 수치심과 창피함 그리고 억울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 보았다.
삼삼에서 주사위가 멈춘 것을 말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이런 모욕을 당해야한다는 말인가
"하아....하아..하아.."
수치심에 얼굴이 잔뜩 붉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였다.
한 편 그런 이소란의 모습을 보던 이현경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행동으로 모욕을 당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억울하겠지.'
이현경은 알고 있었다.
도박사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소란에게 작업을 하기위해 자신이 매수한 전문 도박사였으니 말이다.
그는 분명 삼삼이 나왔을 때 주사위를 덮었다.
그리고 이소란이 삼삼을 외치자 그대로 내용물을 바꿔치기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으로 확인한 눈금과 전혀 다른 눈금이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그녀는 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박사 뿐만 아니라 옆에서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이들 모두가 자신의 하수인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느 누가 그녀의 편을 들어주겠는가
'멍청한 년.'
이현경은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번쩍 뜬채로 모든 돈을 털리고 있는 그녀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아가씨? 저희 도박장은 관아에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상류층을 위한 고급 도박장이라 이말입니다. 그런 곳에서 돈을 잃었다고 이렇게 행패를 부리신다면 부친의 명예의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도박사는 자극적이고 듣기 싫은 말만 쏙쏙히 내뱉기 시작하였다.
이소란을 흥분시켜 도박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심산이었다.
의뢰인인 이현경이 원하는대로 말이다.
그렇기에 교묘하게 욕설에서 벗어난 악담으로 이소란을 갈구기 시작하였다.
부들 부들 부들
그런 도박사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이소란은 모욕감에 온몸을 더욱더 떨기 시작하였다.
마치 폭발하기 직전에 화산처럼 말이다.
"이런 건 가정교육을 통해 배우셨어야죠. 맹주께서는 업무로 공사가 다망하시니 이건 칠부인의 잘못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박사는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미에 대한 모욕으로 말이다.
벌떡
이내 이소란은 서슬퍼런 눈빛을 빛내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도박사쪽으로 걸어갔다.
어미를 모욕한 그의 뺨을 후려버릴 심산이었다.
씨익
'단박에 천냥을 버는구나.'
그 모습을 본 도박사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박사가 때리기 편하게 은근슬쩍 뺨을 내밀고 있을 때였다.
털썩
누군가 이소란이 앉고 있던 의자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그 인기척에 놀란 이소란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준수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리 빈거 맞죠?"
남자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