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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19화 (520/1,419)

〈 519화 〉 520. 황보유연, 속내를 털어놓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굳이 대답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곤란한 기색을 보이자 선우는 한발 물러섰다.

집요하게 캐묻기보단 자연스럽게 고민을 내뱉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말씀드리겠습니다. 딱히 비밀이랄것도 없는 일이니까요."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고개를 좌우로 살며시 저었다.

"제 방이 황량한 이유는 간단해요.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가난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가주에 의해 황보세가가 반파된 이후 부끄럽지만 저는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도저히 천무맹의 안주인이라고 칭할 수 없을 만큼 말이에요."

그녀는 슬픈듯 고개를 살며시 떨군 채 말을 이었다.

"맹에서 다달이 품위유지비가 나오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계파 지원금 또한 같이 나올텐데요?"

"..........물론 달마다 상당한 액수가 쥐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맹의 배려이지요. 하지만 그 돈들은 모두 세가와 소란이를 위해 쓰여집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제 품위 유지비는 대부분 황보세가로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봉문한 황보세가에는 마땅한 자구책이 없어요. 그렇다고 이렇다할 기술 또한 없는 실정이지요. 그 사람들에게는 꾸준한 지원이 필요해요. 아니면 모두가 굶어죽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계파 지원금은 대부분 소란이를 위해 쓰여집니다. 후계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좋은 영약과 질좋은 무기 그리고 균형잡힌 식단이 필요한 법이지요 뿐만 아니라 후계로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장인이 한땀 한땀 수를 놓아만든 명품 비단옷으로 치장을 합니다."

황보유연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난해요. 저는 가난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계속 가난할거에요."

그녀는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팽가련에게 사정이 어떤지 대충 듣긴 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가슴이 더욱더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소녀 가장....아니...줌마 가장인가?'

그녀를 바라보는 선우의 눈빛에 연민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이건 제가 선택한 일이에요. 후회 따윈 없어요."

선우가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자 황보유연은 고개를 도리질치며 말을 이었다.

"........힘드시지 않습니까?"

"힘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그래도...딸이 기뻐한다면......혈족들이 굶지 않는다면 전 족해요."

"왜 혼자 전부 짊어지려고 하시는 겁니까? 딸에게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치장을 줄이라던가.....좀더 낮은 등급의 영약이나 무기를 사용하라던가.."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충분히 절약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찌 본인에게는 박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관대하게 군다는 말인가

"그럴순 없어요."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도리질치며 말을 이었다.

"가난한 건 저 혼자로 족해요. 딸만큼은 다른 후계들에게 꿀리지 않게 키우고 싶어요.....딸만큼은...아무런 걱정없이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싶어요."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성이라는건 어느 곳이나 똑같구나.'

그 모습을 보며 선우는 생각하였다.

자식을 위하는 어미의 마음은 현대든 무협지 속이든 똑같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황보세가에 보내는 지원금을 과감히 끊는 것이 어떻습니까? 자구책이란 본디 스스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선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현명한 어부는 아들에게 물고기를 잡아다주기보단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전수해준다.

스스로 살 방편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황보유연은 그저 물고기만 가져다주고 있었다.

쫄쫄 굶으며 제 몫까지 말이다.

어찌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무리예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황보세가의 핏줄들은 무공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한 인간들이에요."

그녀는 무척이난 슬픈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욕심은 산더미 같은데 시야는 좁기 그지없어 사기를 당하기 일쑤고 순박하기 이를 데가 없어 이용당하기 일쑤예요. 그런 이들한테 자구책을 마련하라고요? 빚덩이에 나앉지 않으면 천만다행일거에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설마하니 이렇게 신랄하게 핏줄을 까내릴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황보씨면서..'

"그냥 봉문이 풀릴 때까지 얌전히 있는게 더 나아요. 괜스레 자구책을 마련한다고 사고를 쳤다간 이번엔 봉문이 아니라 멸문을 당하게 될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혈족과 정을 끊지 않는 이상

평생토록 그녀가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 절레 저었다.

혈족까지 부양하려는 그녀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라면 결코 그녀처럼 하진 못했으리라

친족도 아니고 사돈에 팔촌까지 뭣하러 부양을 한다는 말인가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이재원 진짜 나쁜새끼네.'

더불어 이재원에 대한 반감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고생하는 애를 방탕하다고 욕하다니 어찌 반감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녀를 실질적으로 궁핍하게 만든 원흉인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떤가요?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선우가 말이 없자 황보유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걸요."

그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

"글쎄요......그런 일이....제게 있을까요?"

"있고 말고요.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황보유연은 그런 선우를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과 희망이 가득 서려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고양될 정도로 멋진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더 비참하네.'

그녀는 생각하였다.

헛된 희망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고 말이다.

만약 그녀가 팽가련에게 불려가기 전 선우를 만났다면 그로부터 희망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저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올곧은 눈빛을 보며 커다란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팽가련에게 불려가고 오십만냥을 배상해야하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저 눈빛에 담긴 것이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비참함이 느껴졌다.

희망조차 품지 못하는 이 현실에 말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 잘 될겁니다."

선우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원하였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황보유연은 손을 들어 눈을 가리기 시작하였다.

태양처럼 빛나는 그의 모습에 눈이 멀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르르륵

이내 그녀의 뺨을 타고 한 줄기 물방울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저 찬란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응원에도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치부를 알게된다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경멸감이 가득 찬 시선일까?

혐오감이 가득 찬 시선일까?

아니면 동정심이 가득 찬 시선일까?"

연민이 가득 찬 시선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무엇이 되었든 가슴이 찢어질듯 아플 것 같았다.

다시는 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만드는 찬란한 눈빛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쉴새없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부..인?!"

그녀가 눈물을 보이자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불렀다.

"흐극...흐으윽...흐윽...흐그극.....흐윽"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칠 수 없었다.

도저히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울고 또 울었다.

가슴속에 담겨져 있는 서글픔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꼬오옥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선우가 다시금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그대로 선우의 품에 안겨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북받친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말이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죄송해요......또 추태를 부렸군요."

이내 눈물을 그친 황보유연이 선우에게 사과를 하였다.

"추태라뇨?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는 모습도 아름답다구요."

"............고마워요."

"이제 좀 진정이 되셨습니까?"

".....네에."

"그럼 어째서 눈물을 보이셨는지 연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혹여 제가 부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것입니까?"

"아니에요...소협 잘못이......아니에요.."

선우의 말에 황보유연은 고개를 도리질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어째서 눈물을 보인 것 입니까?"

"그건.......희망이......없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희망이 없다니요. 부인...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저는 칠주야 뒤면.........집법당에 끌려갈테니까요."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집법당이라뇨!?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반 년전 저는 천일 상단으로 부터 오십만냥 상당의 뇌물을 받아습니다.그리고 그 사실이 집법당에 발각이 되었어요.........."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그간 있었던 사실을 모두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천일 상단으로부터 오십만냥 상당의 뇌물을 받았던 이야기

전임 단주가 양심고백으로 자신을 고발한 이야기

집법당주인 팽가련에게 불려갔던 이야기

그녀에게 반환을 조건으로 무죄를 약속 받은 이야기

이재원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이야기 등

꽁꽁 감춰두려고 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가장 힘들고 가장 서러웠던 모든 이야기들을

그에게 전부 토로하였다.

쉴새없이 눈물을 잔뜩 흘리면서 말이다.

"제겐 희망이 없어요...아무것도 없다구요......란아는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거에요......후보자 자격도 박탈당할 거에요.....황보세가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겠죠? 모두가....모두가....저를 원망할거에요....딸도....가문도.......남편도.....모두 말이에요....흐극...흑...흑"

그녀는 처연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무서웠다.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무서웠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

그렇기에 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오십만냥이라는 거금을 마련할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

선우는 그런 그녀를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심각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그녀를 바라보았을까

이내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겨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이다.

"흐으윽.......흐으으윽...흐윽...흑."

그 모습을 본 황보유연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가 자신에게 실망하여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흐윽...흑.......흑...흑...흑.."

이내 방안에는 황보유연의 울음소리만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

터벅 터벅

황보유연은 축처진 모습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하였다.

지난 칠주야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또 뛰며 돈을 구하러 다녔지만 그녀가 모을 수 있었던 건 고작 이 만냥에 불과하였다.

원금이 오십만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인 것이다.

그녀는 체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들어올리며 집법당으로 향하였다.

팽가련에게 돈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고할 생각이었다.

터벅 터벅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이내 그녀는 팽가련의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후우"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내뱉은 후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똑 똑 똑

그리고 그대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입니까?"

그러자 안에서 날카로운 팽가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에요..........팽부인."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내 황보유연은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팽가련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벅 저벅

이내 황보유연은 잔뜩 주눅 든 표정을 지은 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쩐 일입니까?"

그녀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팽가련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오십만냥을 반환해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지난 칠주야동안 밤잠을 설쳤던 그녀였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 오십만냥 반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팽가련에게 오십만냥 반환받는 일은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일인듯 싶었다.

이렇게 모르쇠일관하는 걸보니 말이다.

눈물이 핑돌 수 밖에 없었다.

내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남에게는 하찮기 그지없게 여겨졌으니 말이다.

"........저기...그..오십만냥을...."

하지만 그녀는 속상함을 내심 숨기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지금 자신은 철저한 을의 입장이었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팽가련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오십만냥이요?"

그녀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생각났다는듯이 말을 내뱉었다.

"......네에."

그녀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잔뜩 주눅든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잘 받았습니다. 전부 은자로 가져왔더군요."

"........네에?"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잘받았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천룡과는 언제 그렇게 친분을 쌓았나요? 돈 심부름을 시킬정도로 말입니다."

팽가련은 재차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천..룡!?"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룡이라면 장선우를 이르는 말이 아니던가

그 아이의 이름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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