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화 〉 471. 피해자들이 모이다.
제남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장원
덜컹 덜컹
그곳에 정문에 마차 한대가 당도하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위사가 마차를 가로막으며 말을 내뱉었다.
"스승님께서는 초대를 받고 왔소이다."
수문위사의 물음에 마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혹여 스승의 성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윤 강 자 진 자를 쓰십니다."
"실례하였습니다. 명부에 있는 이름이군요."
마부의 말을 들은 수문위사는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차에서 내리시지요."
"뭐라!? 지금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말입니까?"
마부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마차에 타고있는 이는 소중한 스승이자 문파의 지존인 문주였다.
그런데 어찌 그런 분을 함부로 걷게 만든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저희 장원에는 마차가 들어설 수 없습니다. 내부가 좁기도 하고 마차를 들이지 말라는 장주님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수문위사는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는 못하겠소! 어서 길을 비키시오!"
마부는 언성을 높이며 역정을 내질렀다.
한낱 장주의 의견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스승님이 걸어가게 생겼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스승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이다."
"뭐라!?"
챙
이내 마부는 뒤편에 놓아두었던 협봉검을 빼들었다.
수문위사의 완고한 태도에 화가 치민 까닭이었다.
"네놈이 정녕 피를 봐야 정신 차리겠구나!"
마부는 협봉검을 수문위사에게 겨누며 역정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은 화난 기색이 역력하였다.
"검을 빼들어도 규칙은 규칙이요. 마차는 통과할 수 없소."
검에 겨누어졌음에도 수문위사는 여전히 완고한 태도를 취하였다.
타협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놈이 그래도!"
마부는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줘야 정신차릴 놈이라고 말이다.
끼이이익
"그만하거라."
그때 뒤편에 있는 마차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그와 동시에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부드러운 인상의 장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장원에 초대되어온 손님, 윤강진이었다.
"사부님!"
그 모습을 본 마부는 대번 놀라며 스승을 불렀다.
"장원의 규칙이라면 따라야하지 않겠느냐? 어찌 그리도 쉽사리 검을 빼어든다는 말이더냐."
마차에서 나오는 윤강진은 부드럽게 제자를 꾸짖기 시작하였다.
그의 거친 태도에 화가난듯 싶었다.
"하오나.."
스승의 꾸지람에 마부는 변명하듯 말을 내뱉었다.
"듣기 싫다! 내 장원으로는 홀로 들어갈터이니 너는 이곳에 남아 마차나 지키고 있도록 하거라."
"위험합니다!"
마부는 대번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위험하긴 무슨.....이곳이 어디더냐? 천무맹이 위치한 제남이 아니더냐? 그런데 위험한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지만."
"그만하거라. 더이상 실례를 범하지 말도록 하라."
윤강진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마부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늘같은 스승의 명에 거스를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오. 실례가 많았소."
그 모습을 본 윤강진은 만족스러운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앞에 있는 수문위사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닙니다. 스승을 위한 제자의 마음이 어찌 실례가 된다는 말입니까"
"이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윤강진은 살짝 목례를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말씀하신대로 걸어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안내역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수문위사는 마주 인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윤강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안내역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
"이곳입니다."
안내역을 맡은 이는 커다란 철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고맙소."
그 말을 들은 윤강진은 짧게 읍소를 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철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익
이내 철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자 수많은 시선들이 그에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허어..."
그 시선을 느낀 윤강진은 당혹스러운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자신말고 초대된 이가 이리도 많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아니!? 윤 문주가 아니오?"
그떄 누군가 그를 아는 체 하였다.
윤강진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익히 아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송 문주께서 어찌 이곳에?"
그 얼굴의 정체는 산동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송검문이라는 중소문파의 문주인 송경이었다.
"이 장원에는 초대를 받아서 왔소이다."
"오호....이거 우연의 일치구려. 나 또한 이곳에 초대를 받아 걸음을 옮기게 되었구려."
"그렇구려. 여기 와서 앉으시죠."
송경은 옆에 있는 의자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사양치 않고 가도록 하겠소."
윤강진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그대로 송경의 옆자리로 이동을 하였다.
"언제부터 있으셨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소. 마차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말이오."
"하하하. 그렇구려. 그나저나 부인은 잘있으셨소?"
"하하하하 그 여편네야 항상 똑같지요."
"윤 문주께서는 어떻소."
"마찬가지요. 언제나 똑같지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안부를 물으며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우연한 만남이 기쁜듯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저.....송 문주,"
이내 윤강진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요."
송경 또한 덩달아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송문주께서도 서신으로 초대를 받으신 것이오?"
"......맞소.."
"혹여 서신에.......무슨 말이 적혀있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주겠다고 하더이."
".....역시 송문주께서도...그런 서신을 받은 것이구려."
송경의 대답에 윤강진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맞소...처음에는 무슨 장난인가 싶었지만.....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걸음을 옮기게 되었소."
송경은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그런 서신을 받은 것은 윤 문주도 마찬가지인듯 싶구려."
"........그렇소....나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장원을 방문하게 되었소.....뼈째로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장삼을...죽이기 위해."
윤강진은 핏줄이 잔뜩 눈빛을 발하며 원독어린 말을 내뱉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여버린 장삼에 대한 원한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그렇군....부디 장난이 아니였으면 좋겠구려....만약 죽은 딸을 이용한 장난질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구려."
송경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윤강진 못지 않은 분노가 가득 서려있었다.
천무맹을 대표하는 군사가 되겠다며 구중심처를 박차고 나간 딸이었다.
그런 딸이 매음굴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것도 죽은 상태로 부랑자들에게 시간屍姦을 당한 것인지 온갖 정액과 오물에 뒤덮힌 채로 말이다.
사랑하는 딸의 시체를 발견한 날
송경은 검을 들고 매음굴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부랑자들을 베고 베고 또 베어버렸다.
매음굴의 모든 부랑자들을 죽일 것처럼 말이다.
가슴 속 깊이 차오른 분노를 좀처럼 주체할 수 없던 탓이었다.
결국 그는 집법당에 끌려가게 되었지만 한점의 후회를 하지 않았다.
죽인 부랑자들 중 딸의 시체를 훼손한 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난질이라면 목을 쳐버리리라'
송경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다짐하였다.
만약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이라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다짐을 굳히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이익
갑자기 귓가에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실내에 있던 이들은 일제히 철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닛!?"
그리고 경악을 하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챙
"자일광!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모습을 드러내느냐!"
송경은 옆구리에 매어있던 검을 꺼내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자일광?"
"그 마교의 주구?"
"마교와 결탁한 배신자?"
"어찌 그런자가 이곳에?"
송경의 말을 들은 좌중들은 하나같이 놀란듯 말을 내뱉었다.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가 정파를 배신한 마교의 세작임을 눈치 챈 까닭이었다.
"네놈이 무슨 볼일이 있어 우리를 불렀지? 이 더러운 마도종자놈아!"
윤강진 또한 검을 꺼내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주겠다는 이의 정체가 마교의 세작임을 알게되자 충격을 받은듯 하였다.
"다들.....진정하시게나....너무 흥분을 했군."
모습을 드러낸 자일광은 차분한 어조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더러운 마도종자가 눈앞에 있는데!"
윤강진은 얼굴을 잔뜩 상기시킨 채 말을 이었다.
"옳소! 어찌 마도종자와 한 자리에 있는다는 말인가!"
"긴말할 것 없소이다. 그냥 목을 베어버립시다!"
"더러운 마교의 개같은 새끼가!"
이내 좌중들은 윤강진에게 동조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챙 챙 챙
그리고 하나같이 품고 있던 병장기를 꺼내들며 자일광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실내에는 흉흉하기 그지없는 기운들이 풍겨지기 시작하였다.
"딸을 죽인 범인을 잡고 싶지 않나?"
그 모습을 보던 자일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
그러자 불꽃처럼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말이다.
"혹여.........네놈이......장삼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윤강진은 혹시 모를 기대가 담겨있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모른다."
그러자 자일광은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뭐라! 장삼의 행방도 모르는 놈이 어찌 범인을 잡아준다는 말이더냐!"
그의 말을 들은 윤강진은 발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자일광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삼의 행방은 모른다..........하지만 자네들 딸을 죽인 진범의 행방은 알고있지."
자일광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진...진범이라고!?"
그의 말을 들은 윤강진은 놀란듯 되물었다.
진범이라니?
부녀 연쇄 강간 살인마의 정체는 패륜아 장삼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런 말을 지껄인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더냐! 진범은 장삼이 아니던가! "
"틀렸다. 네놈 딸을 죽인 범인은 장삼이 아니다."
"뭐...뭐라?!"
윤강진은 당황한듯 그에게 물었다.
"네놈 딸 뿐 아니다. 여기있는 모든 이들의 딸과 아내 그리고 연인을 죽인 이의 정체는 장삼이 아니다."
자일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오! 장삼이 여인들을 간살해 죽였다는 사실은 천무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 장삼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는 말이오!"
송경은 말도 안된다는듯 고함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삼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천무맹에 기거하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공식적인 사실을 부정한다는 말인가
이는 곧 천무맹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천무맹의 말이 무조건 사실이오?"
자일광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것이 아니더냐! 무림을 구한 영웅이자 천하제일인이면서 모든 이의 귀감이 되는 협객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 절대무신 이재원 대협이 맹주로 있는 곳이 바로 천무맹이 아니더냐! 어찌 그런 천무맹의 결정에 의심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송경은 자일광을 노려보며 열변을 토해내었다.
평소 천무맹주 이재원을 흠모하고 존경하고 있던 송경이었다.
그런 송경에게 천무맹에 대한 모욕은 천무맹주 이재원에 대한 모욕이었고 이재원에 대한 모욕은 곧 자신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노를 토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때 송경의 말을 잠자코 듣던 자일광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척이나 재밌다는듯이
무척이나 웃기다는듯이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내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증거였다.
그가 송경을 조롱하기 위해 웃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웃고있다는 증거 말이다.
"뭐가 그리 웃긴다는 말이오!"
자일광이 쉴새없이 웃자 송경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가 자신을 희롱한다는 생각에 모욕감과 수치심이 올라온 까닭이었다.
"하하하하하하...미안하오....너무 웃겨서....어쩔 수가 없더이..."
자일광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네 이놈!"
그 모습에 분노한 송경은 칼을 크게 들어올렸다.
당장에라도 저 무도한 자일광을 베어버릴 심산이었다.
"이재원이요."
그때 자일광이 웃음기를 싹 지운 채 정색하며 말을 내뱉었다.
"무슨 말이냐!"
"진범 말이오."
그는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송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딸, 송연수를 간살하고 매음굴에 버려 시체조차 온전히 보존치 못하게 만든 진범이 바로 그대가 그리도 존경하고 협객의 표본이라고 부르짖던 이재원이라는 말이오!"
자일광은 분노가 가득 서려있는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분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