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 327.비틀어져라.
"헤헤헤헤...그리도 훌렁 훌렁 잘 벗더니. 부끄러움이 올라온 게로구나!"
그 모습을 본 흉마는 기쁘다는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유쾌하였다.
저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저 도도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복수심에 불타 자신을 죽이겠다던 여자가
수치심에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었다.
그것도 풍만한 가슴을 급히 추스리면서 말이다.
어찌 유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크하하하하하 현경에 올랐다고는 하나 네년 역시 계집이구나!"
흉마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지금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우는 화경 상경에 불과한 자신과 달리 인간을 초월하였다고 일컬어지는 현경에 도달한 북궁연이었다.
그런 북궁연이 자신의 명대로 움직이며 옷을 벗어재끼고 굴복을 하고 있었다.
어찌 우월감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흉마는 생각하였다.
이 우월감을 더욱더 충족시키고 싶다고
북궁연에게 더한 수치를 주고 싶다고 말이다.
"지금 뭣하는 것이냐! 당장 마저 벗지 못하겠느냐! 이 계집이 안보이는 것이냐!""
흉마는 설향을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 수작이었다.
"언니! 굴복하시면 안되요!"
그때 흉마에게 붙잡혀 있던 설향이 목청이 터져나라 고함을 내질렀다.
"살려준다해도 죽음보다 더한 수치와 모욕을 겪을게 뻔해요!"
짝
"닥쳐라 이년!"
갑작스러운 설향의 고함에 놀란 흉마는 재빨리 그녀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퉤, 언니! 저희는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뺨을 후려맞은 설향은 입 안에 핏물을 뱉어낸 후 다시금 소리를 내질렀다.
"닥치지 못할까!"
텁
"읍!읍!"
그녀의 말을 들은 흉마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다급히 설향을 입을 틀어막어버렸다.
더 이상 북궁연의 마음을 흔들지 않도록 말이다.
"참으로 눈물 나는 우정이구나! 북궁연을 보호하고자 그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니 말이다!"
설향의 입을 틀어막은 흉마는 고개를 돌려 북궁연을 내려다보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런 동생을 놔두고 혹여 딴 마음을 품을 생각은 아니겠지?"
흉마는 쫄리는 눈빛으로 북궁연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사실 심적으로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다.
혹여 눈앞의 계집 말을 듣고 섣부른 선택을 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죽인다면 마을 사람들이 몰살될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긴 하였지만 진짜 죽고싶지는 않은 흉마였다.
그렇기에 더욱더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혹여 머리가 확 돌아버려 폭주를 하게 된다면 자신만 죽어나지 않겠는가
꿀꺽
흉마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북궁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척이나 차갑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흉마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녀가 섣부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안돼."
이내 북궁연의 입술이 떼어지며 말이 내뱉어졌다.
"난 버릴 수 없어."
그녀는 처연한 눈빛으로 설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빙궁의 패배로 이십여년 간 지옥같은 삶을 보냈던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을 내가 어찌 포기할 수 있겠어?"
북궁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던 그녀였지만 한 편으로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빙궁이 흉마에게 패배한 탓에 지옥같은 삶을 보내게 된 그들에 대한 죄책감이 말이다.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고집때문에 그들이 희생되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군주였다.
"크하하하하하 좋은 생각을 하였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흉마는 즐거운듯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나 걱정했던 것이 해소가 되니 유쾌함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꽈득
"크아아아악!"
그때 갑자기 흉마가 비명성을 내질렀다.
손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설향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 손이였다.
흉마는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손을 맹렬하게 깨물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이런 개같은 년이!"
흉마는 재빨리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반대손으로 설향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뺨을 얻어맞은 설향은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버렸다.
욱신 욱신
그리고 이내 뺨이 퉁 퉁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향은 굴하지 않고 고함을 내질렀다.
"저들도 지옥같은 삶을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을 거에요!"
설향은 올곧은 눈으로 북궁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또한 마찬가지에요! 수치를 지고 살아가는니 죽음을 택하겠어요! 그러니 언니가 원하는대로 마음껏 하세요!"
"이 개같은 년이!"
탁 탁 탁
화가 잔뜩 난 흉마는 재빨리 설향을 점혈하였다.
그러자 고함을 내지르던 설향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흉마는 짜증이 잔뜩 서려있는 얼굴로 설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인질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사로잡은 이들 중 가장 예쁘고 연약해보이는 계집을 끌고 왔건만 알고보니 정신이 나간 계집이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처맞고도 제 할 말을 다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시발년이 진짜.'
흉마는 짜증섞인 눈빛으로 설향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천천히 시선을 앞쪽으로 돌려 북궁연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 그녀에게 영향이 갔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
북궁연은 고심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오연히 서있었다.
흉마는 그 모습에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혹여 그녀가 마음을 고쳐먹었을까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두려움은 분노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원하는대로 착착 잘만되어가던 것이 한순간에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흉마는 점혈당하여 온몸이 마비되있는 설향을 노려보았다.
모두 이 계집때문이었다.
이 계집만 없다면 북궁연이 흔들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흉마는 생각하였다.
북궁연을 흔들리게 만드는 이 계집을 없애버린다면 그녀 또한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라고 말이다.
"북궁연!"
흉마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북궁연을 불렀다.
"지금 당장 옷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면 이년을 성벽 아래로 내던져버리겠다!"
말을 마친 흉마는 설향의 목을 틀어잡더니 그대로 성벽 바깥쪽으로 내밀어버렸다.
"셋을 세겠다! 결정하라!"
흉마는 쏘아대듯 말을 이었다.
생각할 시간따위를 주면 안된다.
이성적인 판단 보단 감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
북궁연은 떨리는 눈빛으로 그런 흉마를 쳐다보았다.
아직 판단이 안선 까닭이었다.
설향이 목숨을 걸고 내질렀던 말은 그녀에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자신이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들에게 숙이고 들어간다면 마을 사람들은 분명 살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기존과 같이 지옥과도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약탈당하고 수탈당하며 목숨마저 가벼이 여겨지는 삶으로 말이다.
산다고 꼭 행복할 수 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에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말이다.
북궁연은 쉴새없이 떨리는 눈으로 허공에 떠있는 설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은 뻣뻣이 굳어져있었다.
분명 점혈을 당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성벽 아래도 떨어지게된다면 아무리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라하더라도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게 될 것이다.
끔찍하게 말이다.
고민이 되었다.
설향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나!"
그때 흉마가 큰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둘!"
그는 곧바로 다음 숫자를 외쳤다.
생각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을 요량이었다.
이내 그는 마지막 숫자를 외치기 전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북궁연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를 공격하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지도 않았으며 옷을 벗지도 않았다.
그저 고민에 빠진듯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어떠한 선택도 못한 것이리라
'네년이 자초한 것이다!'
흉마는 생각하였다.
이 계집이 죽는 것은 전부 북궁연 때문이라고 말이다.
"셋!"
흉마는 숫자를 외침과 동시에 그대로 손을 놔버렸다.
미련따윈 없었다.
워낙 예쁜 계집이라 아깝긴 하였지만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계집의 몸이 그대로 터져나간다면 북궁연도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리라
흉마는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지어졌다.
"안돼!"
한 편 흉마가 손을 놓는 모습을 본 북궁연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재빨리 냉기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이잉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설향을 구해야한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손바닥에 냉기를 끌어모은 북궁연은 재빨리 앞으로 손을 뻗었다.
솨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어마어마한 냉기의 폭풍이 엄청난 속도로 앞쪽에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날아든 냉기 폭풍은 성벽 바로 밑바닥에 닿게 되었고 이내 바닥에서 커다란 얼음기둥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우우우웅
얼음기둥은 점점 높이올라가더니 이내 떨어지고 있는 설향과 맞닿게 되었다.
팍
이내 설향의 몸이 평평한 얼음 기둥 위로 완전히 떨어지더니 조그마한 충격음이 퍼져나갔다.
"후우"
그 모습을 본 북궁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설향의 몸 중 한군데는 그대로 작살이 났으리라
퓨슉
그때 어디선가 피륙음이 터져나오더니 그대로 강타하였다.
북궁연은 의아함이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그녀는 이 피륙음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화끈 화끈
갑자기 오른쪽 어깨에 화끈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악!"
어깨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북궁연은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오른쪽 어깨를 관통해있는 한 자루의 창을 말이다.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연이 자신을 급습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말했을 텐데?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 창을 던질 것이라고."
이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북궁연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창을 박아버린 장본인을 노려봤다.
"개...자식.."
"남자의 말에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지."
이연은 무심한 눈으로 북궁연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꽤나 감탄했다. 설마하니 빙백신장氷白神掌이 그토록 수준이 높았을 줄이야."
팍
북궁연은 이연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어깨에 있는 창을 뽑아내기 시작하였다.
"크으...크아아아악!"
뽑는 과정에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기에 북궁연은 비명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챙그랑
이내 완전히 창을 뽑아버린 북궁연은 그대로 창을 내던져버렸다.
"하아...하아...하아.."
창을 내던진 북궁연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창을 빼내는 과정에서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듯 싶었다.
"꽤나 반항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도 끝난 것 같군."
이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하아...무슨..소리야..이건..상처 축에도 못끼어...."
"순 억지를 부리는구나. 창에는 신경독이 발라져 있었다. 스치기만해도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지독한 녀석이지. 그런 것을 버텨낼리 없지 않은가?"
"하아..하아..진심이다.. "
"이젠 내 앞에는 무인은 없구나. 그저 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만 있을 뿐."
이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안타까움이 드는구나 만약 그대가 저 여아를 포기했다면 끝까지 무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터인데 말이다."
이연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다시금 그의 주위에 수 백 자루의 창들이 날아들었다.
이내 그의 머리 위쪽에 수백 자루의 창들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창끝이 일제히 북궁연에게 향하였다.
"고생하였다. 빙정은 알아서 찾도록 하지."
말을 마친 이연은 더욱더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녀에게 장렬한 최후를 선사해줄 심산이었다.
쾅
그때 어디선가 귓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흐름이 끊긴 이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중요한 순간에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쾅
그때 다시금 굉음이 울려퍼지더니 귓가를 아프게 울려대었다.
짜증이 난 이연은 굉음이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거대한 흙먼지를 말이다.
쾅
이내 다시금 굉음이 울리더니 더욱더 가까워진 위치에서 거대한 흙먼지가 다시금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뭐지?'
의아함이 든 이연은 눈쌀을 찌푸리며 안력을 집중하였다.
굉음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쾅
그리고 다시금 소리가 터져나왔을 때
그는 볼 수있었다.
흙먼지 사이에서 믿기지 못할 속도로 튀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이연은 쥐고있던 창을 그대로 남자를 향해 던져버렸다.
자신의 행사를 방해받은 것이 심히 불편하였기 때문이었다.
쇄애애애애액
거력이 담긴 이연의 창이 그대로 남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연은 생각하였다.
날아든 창이 남자의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연의 계획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틀어져라."
남자에게 날아가던 창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자신에게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찌 날아가던 창이 방향을 선회하여 되돌아온다는 말인가
이연은 창을 잡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텁
"크윽!"
그리고 창을 받아낸 순간 그는 신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선회하여 날아든 창에는 자신의 공력이 완벽히 들어차 있었기 떄문이었다.
한 줌의 손실도 없이 말이다.
이내 이연의 얼굴에는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