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310. 본녀는 그대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비경秘景
그렇다.
선우의 눈에 보인 것은 능소화가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수 많은 수풀들
입을 앙 다물고 있어 그 비밀스러움을 한층 더 강조해주는 입구까지
가히 비경秘景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리라
꿀꺽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절로 침을 삼켰다.
너무 신비로운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상당한 여인들과 밤을 지새운 선우였지만 단언컨대 수풀마저 붉은 것은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어찌 신비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앙다물고 있는 보지의 입구는 선우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였다.
저 앙다물고 있는 입구 안쪽에는 대체 어떤 아름다움이 숨어있을까?
덜 덜 덜
선우의 눈이 맹렬하게 떨렸다.
그리고 아랫도리에 서서히 혈류가 쏠리기 시작하였다.
위험하였다.
이대로 가다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덮치고 말 것이다.
선우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음양조화신공의 구결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단전에 남아있던 음양조화기가 순식간에 혈도를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가라 앉아! 가라앉으라고!'
그리고 선우는 속으로 몇번이고 고함을 내질렀다.
제발 가라앉으라고 말이다.
그런 선우의 염원이 통한 것일까
혈류가 쏠렸던 아랫도리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후우'
선우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간 어마어마한 성욕에 휩싸여 괴로움을 토해냈으리라
게다가 만약 자지가 발기된 것을 능소화가 보기라도 했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파렴치한 음적 취급을 받게 됐을 것이다.
'그럴수는 없지 아암.'
선우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생각을 하였다.
그런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만보거라."
흠칫
그때 선우의 귓가에 들려서는 안될 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선우는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부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길 말이다.
"자꾸 쳐다보니 민망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지는 확정타에 선우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녀가 깨어나버린 것이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윗쪽을 바라보았다.
위를 보니 고고한 눈빛을 하고 있는 절세의 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녀의 몸이 그리도 신기한가?"
능소화는 짐짓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힌 채 입을 열었다.
"아...저...그...어.."
그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란 것일까
선우는 평소에 능글맞은 태도는 어디간 것인지 말까지 더듬기 시작하였다.
"부끄럽다."
선우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능소화는 얼굴을 더욱더 붉히며 몸을 배배 꼬았다.
선우는 멍하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
선우가 제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정확히 반다경이 지난 후였다.
선우는 그녀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였다.
그녀의 몸을 속속히 훑으며 관음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소중한 친구를 그런 식으로 바라봤던 것에 대한 죄책감 말이다.
물론 능소화는 그런 선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대여."
능소화는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선우를 불렀다.
".....왜?"
선우는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찌 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인가?"
능소화는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거 아닌데?"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시치미를 떼며 입을 열었다.
"아니다. 본녀는 알 수 있다. 그대는 본녀의 눈을 절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어찌 그러는 것이냐?"
선우의 대답에 능소화는 도리질치며 입을 열었다.
선우는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것도 확실히 말이다.
그런데 어찌 저렇게 시치미를 뚝 뗀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되었다.
"착각이 아닐까?"
"착각이 아니다. "
선우의 말에 능소화는 확신에 찬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여 또다시 본녀의 몸을 감상하던 것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더냐?"
움찔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선우는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녀가 정확한 이유를 맞췄기 때문이었다.
"호오.....그게 맞는듯 하구나."
선우가 몸을 움찔떨자 능소화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안.."
선우는 개미가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과할 필요없다."
선우의 사과를 들은 능소화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입을 열었다.
"그대와 같은 사내가 매력적인 여인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 아닌가? 어찌 그런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뭘그리 당연한 것을 묻냐는듯 입을 열었다.
"소화야......."
선우는 그녀의 말에 감동 받은듯 말끝을 흐렸다.
어쩜 저리도 비단결과 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저런 이해심이라니
이정도면 아기 소화가 아니라 마망 소화가 아니던가
"그리고 어차피 이런 몸뚱이 따위는 그대가 없었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고깃 덩어리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능소화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녀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극양염황마기에 인격이 잠식되어버린 일도 그대가 본녀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던 일 모두 말이다. 그대는 바보다. 정말로 진실로 바보다. 어찌 그리 바보처럼 군다는 말인가!"
진지한 어조로 말하던 능소화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화났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감정 변화에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낀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하였단 말인가? 그대는 죽을 뻔한 것이다. 운이 좋아 이리도 살 수 있었지만 그대가 죽을 뻔하였다 이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무모하게 나선다는 말인가! "
능소화의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고작 며칠 만난 계집에 불과하거늘! 어찌 목숨을 걸고 본녀를 막아선다는 말인가! 본녀도 기억이 있다! 마공에 잠식당한 본녀는 미친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광기에 차 있었다! 그런데 대체 그대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달려들었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울분을 토해내듯 선우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전부 기억난다는 말이다! 화룡火龍에 휩싸여졌을 때도! 흑염黑炎에 팔이 불태워졌을 때도! 폭륜겁爆輪劫에 휘말려 온몸이 화상을 입었을 때도 전부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제 힘 하나 제어하지 못해 인격마저 잠식되어버린 멍청한 계집 따위는 잊어버리고 멀리 도망가버리면 되는 것을! 어찌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말을 마친 능소화는 마침내 눈물을 터트려버렸다.
눈물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주화입마에 걸렸던 당시에 기억이 아직도 선명히 떠오른다.
현경이나 마찬가지인 거대한 힘을 가진 자신에게 쉼없이 달려들던 선우의 모습과 그런 그에게 상처를 입힌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그녀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미친듯이 아파왔다.
선우는 자신에게 소중한 이였다.
비록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하나 그런 소중한 이를 다치게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아프게하였다.
그녀는 울었다.
끊임없이 울고 또 울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그리고 고맙고 또 고마워서
눈물밖에 내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은혜를 어찌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포옥
그때 갑자기 온몸이 구속되는 듯한 감촉이 들더니 온 몸에 무척이나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선우가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어미새가 아기새를 품듯이 말이다.
"어쩔 수 없었어."
능소화를 품안에 꼭 껴안은 선우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하였다.
"널 포기할 수 없었어."
"바보다! 그대는 정말 바보다!"
능소화는 선우의 가슴을 투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그대 목숨을 등한시한다는 말인가! 어째서 나 같은 계집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말했잖아. 네가 좋다고."
"............"
순간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는 말하였다.
자신이 좋다고 그러니까 되돌릴 것이라고 말이다.
미쳐있던 당시에는 자신을 부정한다며 분노를 내뱉었지만 새삼 맨정신으로 들으니 부끄러움과 설렘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런 감정은 이십 팔년을 살아온 동안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선우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좋아하니까,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어. 예전 모습 그대로 말이야."
선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쓰담 쓰담
그리고는 천천히 부드러운 그녀의 적발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난 후회는 없어. 결국 너를 이렇게 원래대로 되돌렸으니까."
선우는 능소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을 토로하였다.
선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몇 번이고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만약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그녀를 본래대로 되돌렸으니 말이다.
".......그치만....그치만...."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선우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그에 대한 미안함이 북받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소화야."
그때 그녀의 귓가에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해."
".........고맙다."
선우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눈물을 글성이며 입을 열었다.
무어라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뒷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마공에 인격이 잠식되어 미쳐있을 때 포기 하지 않고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에게 고마웠다.
온 몸에 화상을 입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빙정을 먹여주었던 그에게 고마웠다.
극양염황마기와 빙정의 극음지기가 충돌하여 혈도가 갈갈이 찢기고 단전이 금가기 직전 자신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그에게 고마웠다.
지금 죄책감에 시달려있는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준 그에게 고마웠다.
고맙다는 감정이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말이 더욱더 안나왔다.
어찌 이런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능소화는 조용히 선우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선우는 그런 능소화의 붉은 머릿결을 조심스레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말이다.
.
.
.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얘는 왜 이렇게 안떨어지지?'
선우는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는 능소화에게 당황하였다.
분명 울음이 멈추었다.
진정 된듯 보였다.
또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능소화는 도무지 자신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선우는 고민하였다.
이걸 밀쳐야되는지 말아야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소화야."
선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
하지만 선우의 부름에 능소화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진정되지 않았어?"
".........아직 안되었다."
선우의 물음에 능소화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된 것 같은데?"
"그대의 착각이다. 본녀는 좀더 안정이 필요하다."
"안정은 나중에 찾고 일단 빙궁으로 돌아가는게 어때?"
"어쩜 그대는 이리도 이기적이란 말인가? 본녀에겐 그대의 품이 필요하다."
"아니 이러다가 해가 진다니까?"
그녀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당황한듯 말을 내뱉었다.
하늘을 보니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 서서히 져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밤이 오는 것이 시간 문제였다.
최대한 빨리 빙궁으로 돌아가야했다.
"해가 지면 노숙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능소화는 무엇이 문제냐는듯 그에게 물었다.
"아니 따뜻한 집을 놔두고 왜 노숙을 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뭐가 여의치 않은데? 말타고 가면 밤에는 도착하겠구만!"
"본녀가 말하지 않았는가! 본녀는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 그대의 품이 간절하단 말이다! 이만큼 여의치 않는 사정이 어디있겠는가?"
"헛소리 할래? 네가 무슨 어린애야? 말도 안되는 걸로 떼를 쓰고 있어!"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본녀는 진심을 토로하는 것이다."
능소화는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 반나절이면 돌아온다고 약속을 했다니까?"
선우는 달래듯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어찌 세상 약속을 전부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게 지금이고?"
"그렇다."
"헛소리 할래?"
그녀의 대답에 선우는 단호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강제로 그녀를 품 안에서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능소화는 애써 반항하였지만 이내 선우의 품에서 완전히 떨어지게 되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 일이라는게 어찌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문제가 많지! 엄청나게 많아! 너는 군주라는 애가 외간 남자랑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뭐!?"
능소화의 당당한 말에 선우는 당혹스러운 심정이 들었다.
"이미 본녀는 그대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상황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능소화는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선우에게 답하였다.
"뭐...뭐?!"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대가 본녀의 순결을 가져가지 않았던가!"
능소화는 붉디 붉은 적안으로 선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