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198. 당가로 돌아오다-1
"우우우웅 하기 싫어.."
요랑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불평을 토로하였다.
쿵
"요랑님 이것도 정리해주세요!"
그때 금적화가 요랑이 있는 책상 위에 서류 더미를 올려놓았다.
"그만 줘!"
요랑은 그런 금적화를 보며 소리쳤지만 이미 금적화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히잉"
요랑은 책상에 쌓인 서류를 보며 요랑은 울상이 되었다.
당서윤이 납치된 이후 당가의 수뇌부들은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업무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 결재를 담당하는 당서윤이 없으니 자연히 결재 서류는 밀리게 되었고 거래나 의뢰를 요청했던 곳은 제대로 된 답신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제대로 된 답신이 가지 않으니 거절당했다고 어림짐작한 거래처에서는 다시금 조건을 변경한 서신이 날아들었고 그걸 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니 또다시 조건이 바뀐 서신이 날아들었다.
악순환의 연속이 시작된 것이다.
당대부인과 금적화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몇 번이고 당서윤의 부재를 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락과 거절의 의사를 제대로 내비치지 않으니 그저 들어주기를 바라며 서신만 보내올 뿐이었다.
게다가 수뇌부들은 그들에게 일일이 정중한 사과의 서신을 작성하여야 했는데 그 양이 너무도 많아 당대부인과 금적화, 당감 이 세 사람으로는 감당치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선 방계 혈족 중 아무나 한 명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싶었지만 나름의 기밀을 요하는 일이 많았기에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자를 자리에 앉힐 수는 없었다.
결국, 세 명만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하루에 날아드는 서신만 수백 통이었는데 그걸 전부 분류하고 일일이 답신을 쓰려니 도저히 다른 일을 손댈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띈 것이 집무실에서 놀고 있던 요랑이었다.
요랑을 혼자 냅둘 수 없었던 당대부인은 항상 업무를 보면서도 요랑을 끌고 다녔는데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차에 그녀가 눈에 띈 것이다.
처음에는 도움이 될까 싶어, 기본적인 계산 원리만 가르친 후 단순한 회계 업무를 맡겨보았다.
마침 요랑도 심심하던 차라 그런지 그녀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고 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요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고 검산을 해봤지만 오차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금적화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조금씩 어려운 회계업무를 맡기며 요랑이 회계업무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요랑도 갑자기 단위 수가 올라간 복잡한 계산에 곤욕을 겪었지만 이내 적응하여 복잡한 계산조차 가뿐히 끝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금적화는 계산 관련된 회계업무를 전부 요랑에게 맡겨버렸다.
이런 인재를 썩히고 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말이다.
오로지 계산에만 한정돼있긴 하였지만 요랑의 업무능력은 그것만으로도 수뇌부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씨잉"
요랑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자꾸만 일을 시키는 금적화에 대한 짜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숫자놀이라며 가르쳐줄 때 의심하고 바로 도망갔어야 했다.
쿵
"요랑님,... 이거."
그때 어느새 다가온 당감이 그녀의 책상 위에 또다른 서류 더미를 올려놓았다.
"그만 줘!!!"
요랑은 그런 당감을 보며 소리를 쳤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잠도 못 자고 부려 먹힌 지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초월적인 신체를 가진 요랑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였으면 과로로 죽었을 것이다.
요랑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요랑님, 약소하지만 이것 좀."
그때 당감이 품에서 무언가 작은 봉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툭
그리고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게 뭔데!?"
요랑은 짜증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서역에서 건너온 당과입니다."
"서역..당과?"
순간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던 짜증이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습니다. 중원에서 만든 당과보다 수 배는 달콤하고 입에 쫙쫙 달라붙는다고 하더군요."
"이거..나 주는거야?"
"고생해주시는 요랑님을 위해 따로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당감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순간 요랑의 짜증이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서역 당과라니
듣도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런 걸 자신을 위해 준비했다고 생각하니 치밀어 올랐던 짜증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히히히히 고마워!"
요랑은 당감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별말씀을요."
당감은 그런 요랑을 바라보며 목례를 하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들어가봐!"
기분이 좋아진 요랑은 당감을 바라보며 손까지 흔들며 그를 배웅하였다.
`휴우 살았네.`
당감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대로 집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와압"
쫩쫩 쩝쩝
그가 나가자 요랑은 서역의 당과를 입에 넣고는 그대로 맛을 음미하기 시작하였다.
극도의 단맛이 혀끝을 헤엄치기 시작하였다.
`행복해~`
요랑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
그리고 당과를 모두 먹었을 때쯤 요랑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말씀하신 대로 요랑님께 회계서류를 맡겼습니다."
당감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별말 없던가요?"
금적화는 의문이 담긴 물음을 건네었다.
"당과를 꺼내드리니 웃으며 넘어가 주셨습니다."
"후우"
그 말을 들은 금적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과를 따로 수입하든가 해야겠네요."
그녀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을 내뱉었다.
요랑정도 되는 고급인력을 당과 정도로 퉁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이리라
"정말 그래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당감이 동조하였다.
요랑이 소리칠 때만 해도 어마어마한 위압을 느낀 그였다.
그런데 고작 당과 하나로 그런 위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으랴
"분류는 잘 돼 가고 있나요?"
"예, 날짜별 그리고 금액별, 지역별로 전부 분류하고 있습니다.
"으음, 특이사항은 없나요?"
"한 가지 꼭 보고 해야 될 사안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당감은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곱게 접힌 서신 하나를 꺼내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당감은 그대로 서신을 금적화에게 건네었다.
텁
금적화는 당감이 내민 서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신을 펼쳐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서신을 받아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색이 창백하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서신 속의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청성과 아미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당장에라도 추격대를 소집할 요량인듯싶습니다."
금적화는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청성과 아미가 나섰다면 당가 또한 빠질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제자들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함께 나서주기로 약조를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청성과 아미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전력이 나설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이 파견되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금적화는 당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적화의 말에 당감을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말을 마친 당감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후우"
그가 나가자 금적화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고에 지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가 꼈어, 마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아무래도 마가 껴도 단단히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한숨을 마저 쉰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당서윤과 선우가 빨리 돌아오기를 말이다.
***********
"후우"
옥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가 천월궁으로 떠난 지 벌써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당가에서 천월궁까지의 거리는 사나흘 정도였다.
보름이 지난 지금쯤이면 돌아올 법도 하건만 그는 전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옥령은 눈물을 글썽였다.
선우에 대한 걱정이 날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소양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과거 이십여 년 전 수많은 마인들의 목을 참하고 천검후라는 칭호를 얻은 여인.
비록 무림에서 빠르게 은거한 옥령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그 명성은 무림에 잠깐 출도한 옥령조차 알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렇기에 걱정이 앞섰다.
기라성같은 강자들을 제치고 여중제일인으로서 우뚝 솟은 여인이었다.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그녀는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선우....`
선우가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 따뜻한 품에 자신을 안겨줄 것만 같았다.
"흐극"
이내 걱정은 눈물이 되어 그녀의 눈가를 적셨다.
참아보려고 하였지만 역시 무리인듯하였다.
그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옥령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든 것이다.
"흑...흑...흑"
그녀의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누가본다면 청승 맞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감정을 터트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
.
.
.
.
그렇게 운지 얼마나 됐을까
찌릿
갑자기 그녀의 기감에 무언가 잡히기 시작하였다.
뚝
숨죽여 눈물을 흘리던 옥령은 재빨리 울음을 그쳤다.
`뭐지?`
순간 옥령은 의아함이 들었다.
불편하다며 사용인조차 두지 않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거처에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기세를 보며 상당한 수준의 무인이었다.
옥령은 긴장감이 들었다.
옥령은 한쪽 구석에 가만히 세워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검이 맹렬히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쇄애애액
그리고 이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터업
옥령은 날아들어 온 검을 잡아챘다.
스르르릉
그리고 그대로 검집에서 검을 빼 들었다.
휘황찬란한 은색 검광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위이이이잉
그러자 검명이 울리면서 청광의 빛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옥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옥령은 기감을 더욱 넓혀 적의 위치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다가온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기감에는 잡힌 위치가 바로 문 건너편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긴장된 기색으로 문 앞에 섰다.
"누군가요."
그리고 문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쪽에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적이 아니라면 정체를 밝혀주세요."
".............."
옥령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지금부터 셋을 세겠습니다. 셋을 셀 동안 대답이 없다면 그대로 베겠습니다."
"..............."
"하나........둘.........셋!"
쇄에에엑
셋을 세는 옥령의 구호와 함께 그녀의 검이 그대로 문을 향해 쇄도하였다.
쾅
문을 향해 쇄도한 옥령의 검은 그대로 문을 뚫고 건너편에 있는 상대에게 쇄도하였다.
챙
하지만 아쉽게도 몸이 꿰뚫리는 감촉은 느끼지 못하였다.
옥령의 검격이 그대로 막힌 것이다.
옥령은 재빨리 검을 회수한 후 이격을 준비하였다.
그대로 목을 갈라버릴 생각이었다.
"옥령"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옥령은 재빨리 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억
그러자 문에 베인 자국이 생기더니 이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쾅
그리고 문이 완전히 갈라지자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모습을 본 옥령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고 말았다.
챙그랑
어찌나 놀랐는지 옥령은 검을 그대로 놓쳐버렸다.
그리고 눈가에는 그렁그렁한 물기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선우....."
옥령을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 옥령."
선우는 옥령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덥석
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옥령은 그대로 선우에게 안겨들었다.
선우 또한 양손을 벌려 그녀가 안겨들기 편하도록 도와주었다.
"선우....선우...선우..."
선우의 품에 안겨든 옥령은 물기젖은 목소리로 하염없이 선우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래..그래..그래"
쓰윽 쓰윽
선우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말이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진정된 듯 말을 멈추었다.
대신 얼굴을 깊게 파묻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숨 안 막혀?"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선우 냄새가 좋아요.."
옥령은 선우의 품에 파묻힌 채 말을 이었다.
"막 달려와서 땀 냄새 날 텐데?"
선우는 그녀를 보며 난감한 듯 말을 이었다.
당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찾아온 옥령의 거처였다.
땀 냄새가 안 날 리 없었다.
"땀 냄새도 좋아요."
그런 선우의 물음에 옥령은 별것 아니란 듯 말을 이었다.
"그것 참 곤란하네. 당장 씻고 싶은데?"
"조금만요....조금만...이대로 조금만 더 있게 해주세요."
옥령은 선우에게 애원하듯 부탁하였고 선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몸이 더러워 찝찝하긴 했지만, 그녀의 행복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선우는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쭉 안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