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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4화 (125/1,419)

〈 124화 〉 125. 공갈을 치다-3

"흑흑흑"

이예설의 울음소리가 풍천루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중독에 대한 고통에서 해방된 그녀는 이내 자신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녀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다리 사이를 흘러내리는 끈적한 액체의 감촉, 후각을 자극하는 지린내.

용봉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절대무신 이재원의 딸인 자신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이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오줌을 지린 장면을 본 이들은 다른 이들도 아니고 정파를 이끌어 갈 후기지수들 앞이었다.

그녀가 정파인 인생 평생을 보게 될 이들 앞에서 실례를 저지른 것이다.

그녀는 그저 서럽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천무맹의 권력이양이고 뭐고 전부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누가 위엄도 없는 오줌싸개를 천무맹의 수장으로서 대우해주겠는가

그녀는 후회하였다.

황보악과 화운산이 싸우던 말던 신경쓰지 않았어야 했다.

풍천루에 저 여자가 들어왔을 때 한 자리정도는 내줄 수 있는 아량을 갖췄어야 했다.

만류귀원신공을 시험해본다는 헛된 생각을 하지 않았어야했다.

저 남자가 내뱉은 말을 믿어야했다.

그녀는 그저 울었다.

무엇하나 되돌릴 수 없는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는 것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흐윽, 흐어어엉"

한편 그녀가 울어젖히는 모습을 본 선우는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무림에서 떨어진 이후 악연으로 얽혔던 것이 그녀였다.

장삼을 처참하게 패배시키것도 그녀였고 장삼이 살인을 저질렀다면서 아침댓바람부터 처들어온 후 잡아간 것 또한 그녀였다.

정황상 잡아간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우 입장에서는 아니꼬울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무저항인 요랑이를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까지 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양볼이 터질듯 부풀어오른 채 오줌을 지리고 엉엉 울어대는 걸 보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선우는 장삼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녀가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천하제일인이자 천무맹주 이재원의 딸이라는 자부심과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자신감 그리고 무림에 그 어떤 누구보다 존귀하다 여기는 자존감.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그릇된 선택에 의해 부숴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후회를 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당하게 만든 자신의 오만을 말이다.

선우는 히죽 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조절하느라 애먹었다.

여기서 웃어젖히며 의도적으로 그녀를 중독시킨 꼴이 되기에 표정관리가 필요하였다.

"이제 증명 됐나?"

선우는 엉엉 울어젖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하였다.

가녀린 여인이 애처롭게 우는 것을 달래줄 법도 하것만 그는 그저 담담히 물을 뿐이었다.

"흐어어엉"

하지만 선우의 물음에도 이예설을 눈물을 흩뿌릴 뿐이었다.

"그만 처울어."

선우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지가 처잘못해놓고 어딜 눈물로 때운단 말인가

선즙필승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즙을 짜서 여론의 동정을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보통 계집들이 많이 쓰는 방법인데, 그리 자존심 강한 이예설도 한낱 계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끅."

선우의 짜증섞인 말을 들은 이예설은 울음소리를 그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말을 안들으면 또 독에 절여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어'

'어찌 사내가 저리도..'

'독하기 그지 없는 것이 역시 당가구나'

'두렵다. 두려워'

그 모습을 지켜 본 용봉들은 내심 그의 냉혈적인 면모를 보며 치를 떨었다.

무릇 사내란 애처롭게 울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의 눈물에 닦아 줄줄 아는 면모를 발휘해야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면모가 전혀없었다.

그저 울음을 그치길 종용할 뿐이었다.

선우는 짜증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로보다 봇짐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옷 한벌을 꺼내어 그녀에게 쥐어주었다.

"갈아 입고 와."

선우는 일부러 코를 쥐어잡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 모습을 본 이예설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선우가 건네준 옷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오줌지린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야"

그리고 선우는 제갈지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말을 이었다.

"네!? 저요?"

"쟤 데리고가서 옷 갈아입혀,"

'왜 또나야!?'

선우의 말에 들은 제갈지아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이예설에게 다가갔다.

'흐으윽 지린내'

그녀에게 다가가니 지린내가 진동하였다.

제갈지아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고 그 모습은 이예설을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이예설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어차피 사태를 정리하려면 이예설을 저 꼴로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씻을 만한 물을 올려보내주세요."

제갈지아는 점소이를 향해 씻을 만한 물을 부탁하였다.

그냥 옷만 갈아입힐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갈지아는 이예설을 부축한 뒤 천천히 이 층에 있는 독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쪽팔리다고 어디로 새지말고 바로 와."

선우는 이층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다.

이대로 사라진다면 곤란하였기 때문이다.

선우의 말을 들은 제갈지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걸음을 옮겼다.

************

그녀들이 올라가고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요랑에게 다가갔다.

새액 새액

잠들어 있는 요랑은 그새 안정이 되었는지 처음보다 숨을 고르고 쉬고 있었다.

선우는 흑룡포를 슬쩍 들춰 안을 보았다.

그녀의 몸에 났던 자상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회복을 막아놨던 것이 기절하면서 풀린 모양이었다.

상태도 아까보다 더욱 괜찮아진 듯 싶었다.

'이렇게 회복할 수 있으면서 왜 바보같이 참았냐.'

선우는 천천히 요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상처를 보자 미안함과 죄책감이 떠올랐기때문이다.

자신의 안일함만 아니었어도 그녀가 이렇게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성하고 또 반성하였다.

이제는 더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말이다.

"우웅"

너무 많이 쓰다듬었는지 요랑이 몸을 뒤척였다.

그 모습에 선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몸에 손을 떼었다.

이대로 푹자게 냅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이 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당가 특유의 녹빛 무복을 입은 이예설과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제갈지아가 보였다.

선우는 내심 만족하였다.

용봉 모두가 당가를 상징하는 녹의를 보았으니 그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류귀원신공과 당가를 상징하는 녹의까지 믿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속마음과는 달리 선우는 표정을 굳혔다.

이제 사건의 주역이 왔으니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선우는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

털썩

선우는 일 층 중앙에 위치한 탁자에 앉았다.

"니들도 앉아."

그리고 제갈지아와 이예설을 향해 손짓했다.

흠칫

털썩

선우의 목소리에 이예설은 흠칫하면서도 그에 말에 따라 탁자에 앉았다.

털썩

제갈지아 또한 눈치를 보다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어때?"

선우는 이예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많..이..진..정됐어요."

"누가 니 상태가 물어 봤어? 만류귀원신공인거 증명됐냐고."

선우는 그녀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네에."

선우의 짜증에 이예설은 기가 잔뜩 죽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처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제갈지아는 그런 그녀를 놀란 듯 쳐다봤다.

이 자존심 강한 여자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기가 죽은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평생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하며 살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처연한 모습은 제갈지아에게 생소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거지?"

선우는 그녀를 향해 담담히 말을 이었다.

"............"

선우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독왕의 제자라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그가 주장한 말은 사실일 것이다.

자신이 칼로 난도질한 여인의 정체가 바로 당가주의 여섯 번째 정실부인이라는 사실 말이다.

비록 피가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독왕 당진철은 항렬로 따지면 그녀에게 외삼촌에 해당하는 이였다.

그리고 사사로이 따지면 저 여인 또한 자신의 외숙모가 된다는 소리였다.

자신은 외숙모격인 인물로 칼로 난도질한 것이다.

이것을 어찌 수습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이라도 해봐."

선우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윽박을 질렀다.

"죄...죄송합니다."

그녀는 선우의 높아진 언성에 움찔하며 사과를 건냈다.

"지금 사과한다고 해결 될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그저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상대의 뒷배에 독왕이 있다면 재력이나 권력으로 짓누를 만한 위치에 선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앞의 남자를 무력으로도 압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과할 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기를 확실히 죽여놔서 그런지 별다른 말도 없이 사과만 해오고 있었다.

사실 선우가 독왕의 제자를 자처하긴 하였지만 상당히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외적으로 독왕은 육부인과 신혼여행 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독왕은 어디가고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가 육부인과 함께 있단 말인가

또한 육부인이라면 사사로이 사모가 될 여인일터인데 어째서 그런 여인의 이름을 사사로이 부른단 말인가

하지만 극도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수치스러움은 이예설이 그런 사소한 허점들을 잡아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사과를 전할 뿐이었다.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초장에 잡아버리니 일이 술술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상태라면 어떤 말을 꾸며내든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소리만 아니라면 전부 믿을 것이다.

선우는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독왕의 체면이 서질 않는다.

당가의 체면을 세우면서 상황을 종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된 듯 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천천히 이예설을 비롯한 용봉들을 둘러보았다.

어차피 여기 애들을 다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무당산 바로 아래 위치한 균현은 대도시였다.

이미 선우와 요랑이 이곳으로 향한 것을 본 이들만 수백은 될 것이다.

어디 한적한 시골 촌동네도 아니고 살인멸구한다고 다죽였다간 정파의 추살대가 몰려들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용서해주고 끝내기에는 당가라는 가문의 체면이 안선다.

일을 벌일대로 벌여놓은 선우였다.

여기서 번갯불에 콩튀기 듯 대책없이 끝냈다가는 당가는 비웃음을 살 것이고 독왕의 체면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마교의 습격을 받더니 자존심조차 없어졌냐고 말이다.

당가의 명예가 떨어진다는 것은 세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서윤이 알게된다면 자신을 죽일 것이다.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저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줘야한다.

어떻게든 잘못을 수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니들은 천만다행인줄 알아."

선우는 그들을 향해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만약 균현에 스승님이 있으셨다면 너희들은 한줌의 독물로 변했을 거야."

선우의 말에 용봉들은 의문을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은즉슨 균현에는 독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나도 사태가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아. 육부인의 호위를 맡은 입장에서 그녀가 난도질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나 또한 스승님의 분노를 피해가기 어려우니까 말이야."

선우는 그들을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희들 또한 일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잖아, 안그래?"

끄덕 끄덕

선우의 물음에 용봉들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게된다면 가문의 명예는 물론 자신들의 입지마저 위험할지 몰랐다.

그들이 비록 용봉이라 칭해질 정도의 유망주들이었지만 그들의 바로 밑까지 치고들어오는 자들은 수두룩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이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하는거야, 쉽지?"

선우의 말을 들은 용봉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만한 구멍이 생겨난 것이다.

만약 여기있던 일이 잘만 무마가 된다면 사문이나 가문의 명예가 추락할 일도 입지가 위험해질 일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눈을 반짝였다.

생각지도 않은 호재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는 용봉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보면 알다시피 육부인의 상태가 저렇게 심각하잖아. 그치?"

선우는 용포를 덮고 있는 요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육부인의 온 몸은 칼날로 인한 자상이 가득차버렸어. 이 사실을 스승님께서 알게된다면 우리가 전부 입을 다문다고해도 소용없을거야. 안그래?"

선우의 말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여자에게 외모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외모를

그것도 감히 천하제일이라고 칭할 수 있는 초월적인 미를

칼날로 더럽혀 버렸다.

그들이 입을 다문다해도 금방 들통날게 뻔하였다.

"자아, 그럼 문제야"

선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선우의 말을 들은 용봉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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