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24. 공갈을 치다-2
"참나"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어이없다는 듯 탄성을 자아냈다.
"저거 안보여?"
선우는 용포를 덮고 있는 요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저리 만들어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다니
선우는 용봉들이 양심이란게 존재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대체 저 여자가 누구길래, 정파의 후기지수들과 척을 진단 말인가요."
제갈지아는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가 주장한 모든 말이 맞다고 가정해도 그가 용봉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독왕의 제자이듯이 그들 또한 당가 못지 않는 거대 문파의 제자들과 거대 세가의 자제들이었다.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아무리 그가 독왕의 제자라하더라도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런데 한낱 계집때문에 자신들과 척을 지다니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었다.
이미 당서윤이라는 정혼자가 있는 그에게 그들과 척을 질만한 여인이 누가 있겠는가
"저 여자는 요랑이라고 한다. 독왕의 부인이지."
선우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용봉들은 화들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뜬금없이 독왕의 부인이라니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라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처..첩이라는 말인가요?"
제갈지아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부인이라면 첩을 말하는 것일까
"첩같은게 아니야, 정실 부인이지."
"말도 안돼요! "
제갈지아는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휘젓고는 그에게 소리쳤다.
이 남자와 말을 섞은 후부터 말도안된다는 소리만 수어번은 한 것같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말이 안되었다.
제갈지아는 지치봉이라 불리우는 여인답게 두뇌가 명석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때문에 왠만한 무림의 주요 인사들의 얼굴은 전부 외우고 있었다.
그 주요인사들 중에는 각 세가의 안주인들의 얼굴 또한 포함 되어 있었다.
독왕 그러니까 당가주에게는 다 섯명의 정실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 다섯명의 부인 중 저렇게 생긴 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당가주에게는 다섯 명의 부인이 있지만 그 어떤 누구도 저 소저처럼 생긴 부인은 없어요."
"이번에 새로 맞이한 육부인이거든."
선우는 그녀의 말에 담담히 답하였다.
여기서는 윽박지르거나 같이 흥분하기보단 담담히 말하는 것이 진실성이 강조 될 것이다.
사실 요랑은 대외적으로 독왕이 맞이한 육부인이었다.
아직 당가와 청성 그리고 아미에서 밖에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무림 전체에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선우는 당당히 요랑의 신분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어차피 조사해봤자 진실로 드러날 사실이지 않은가
"그..그런 말 들어본적 없어요."
제갈지아는 다시금 반박하였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당가가 마교의 습격으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지 고작 한달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새 새부인을 맞이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아무리 당가주가 부인을 다섯이나 둘정도로 호색한이라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제 슬슬 소문이 퍼질거야, 거짓말 같으면 나중에 당가에 기별을 넣어보던가."
선우는 그녀의 반응에 심드렁히 답하였다.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은 힘들지만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선우의 말에 제갈지아는 할말을 잃었다.
저리도 당당히 나오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정체가 독왕의 제자라고 판가름 난 이상
이예설의해 피범벅이 되어버린 여인이 당가의 육부인이란 말도 충분히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보다 어떻게 할거지?"
"네!?"
"당가주의 애지중지하는 여인을, 그것도 첩도 아닌 부인을 저 꼴로 만들어놓고 입다물겠다는 건가?"
"저..저희 쪽도 피해가.."
제갈지아는 애써 변명하려고 하였다.
"장난하냐? 니들이야 , 몇대 처맞고 끝났지만 당가의 육부인은 온몸에 칼자국 투성이가 되었어. 여인의 몸에 칼을 대다니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인지 못하는 거야?"
물론 선우에 의해 말이 끊겨버렸지만 말이다.
"너도 온몸에 칼침 좀 당해볼래?"
선우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는 그녀를 겁박하였다.
"히익"
그 표정에 겁을 먹은 제갈지아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저 남자라면 진짜로 그리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희들 착각한 것 같은데, 너희들은 가해자야 내가 분풀이를 했다해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전혀없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선우가 손을 쓴 것은 사실이나 이예설을 제외하고는 기절한 정도 밖에 안되었고 얼굴이 퉁퉁 부어버린 이예설조차 온몸이 칼에 베어 피투성이가 된 요랑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이건 대형사고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대형사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가가 아닌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들의 힘으로 유야무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 모두가 나설 필요도 없이 이예설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누가뭐래도 그녀는 무림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인 천무맹의 맹주 이재원의 금지옥엽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과거 무림을 구한 영웅이자 천무맹주 이재원의 매형이 되는 독왕이었다.
항렬로 따지면 외숙모에 해당하는 여인의 온몸을 칼로 난도질한 것이다.
모든 이들 손을 들어 그녀를 손가락질 할 것이고 독왕이 분노할 것이 뻔하였다.
".........."
제갈지아는 울쌍을 지었다.
그녀를 난도질한 것은 자신이 아니것만 어째서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지 억울함이 들었다.
사고를 친 것은 저기 나자빠져 있는 황보악과 화운산 그리고 이예설이 아니던가
독왕의 육부인을 두고 멋대로 싸움을 벌인 것은 화운산과 황보악이고 일을 키운 것이 이예설이었다.
그녀는 난감하였다.
자신은 그저 방관한 죄밖에 없것만 왜 저런 살벌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한단 말인가
"거..거짓말!"
그때였다.
선우에게 얼굴 볼살이 터지도록 맞고 기절한 이예설이었다.
그녀는 용미연검을 꼿꼿하게 세운 뒤 그것을 지지대 삼아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지만 제갈지아입장에서는 사태를 악화시키려는 쌍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두 거짓말이야! 당가에 육부인은 없어! 거기다 당서윤의 정혼자 또한 아니야!"
그녀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모두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다.
무슨 술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녹빛 기류도 만류귀원신공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당연하지!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이 지금 운용하고 있는 것은 만류귀원신공이 아니야, 애초에 독공도 아니겠지! 그저 빛깔만 흉내낼 뿐인 가짜다!"
선우의 말에 이예설은 더욱 더 큰소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분명 거짓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하였다.
도대체 독왕의 제자라는 작자가 육부인과 왜 무당산이 있는 균현을 방문한다는 말인가
당위성이 없었다.
그저 살기위해 지어낸 헛소리에 불과하였다.
아니 거짓말이여야 한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일 경우
천무맹에서 자신의 입지는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지금 천무맹은 짐짓 평화로워보이지만 내부에는 엄청난 권력다툼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천무맹주 이재원의 사후 있을 권력의 이양이었다.
이재원은 수많은 부인을 두었고 그만큼 수없이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그렇기에 권력에 이양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모든 부인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가문이 이재원의 절대권력을 승계받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인 천검후 주소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식인 이예설이 이재원의 모든 것을 가지길 원하였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쉴새없이 노력하였다.
이예설 또한 어머니인 주소양의 노력을 알았기에 권력을 승계받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다.
무공부터 인품 , 학식 그리고 남자관계까지 무엇하나 흠집나지 않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다.
만약 조금의 흠이라도 생기는 순간 다른 어머니들이 그녀를 승냥이처럼 떼로 달려들어 물어뜯을테니까 말이다.
독왕의 육부인이라니
이재원의 삼부인인 당진설이 달려들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독왕의 누이인 그녀라면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다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는 사부인 팽가련 또한 미친개처럼 물어뜯으려고 달려들게 뻔하였다.
그럴수는 없다.
가짜여야한다.
저자들은 가짜여야한다.
"시험해볼텐가?
"시험?"
"독공인지 아닌지 말이야."
"물론!"
그녀는 선우의 물음에 당당히 답하였다.
그가 흉내낸 만류귀원신공이 가짜라는 확신이 있기에 나온 발언이었다.
겉으로 티나는 빛깔 정도는 어떻게든 흉내낸다하더라도 심오하기 그지 없는 만류귀원신공의 독기는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독공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무인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않는 이상
독기를 흡수조차 못할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만류귀원신공의 독기만큼은 흉내내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안그래도 뺨 좀 후려갈긴 것만으로는 분이 덜 풀리던 참이었다.
뒷 수습을 하기위해서 어쩔수 없이 빰따구 좀 터지는 선에서 끝내긴 하였지만 속은 아직도 열화와도 같은 분노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녀에게 무시당하던 장삼의 기억과 아무런 저항도 없이 짓밟힌 요량에 대한 분노가 복합적으로 선우의 가슴에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발로 고통받을 기회에 다가오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우우우우우우웅
선우는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여 몸안에 있는 독기를 손바닥에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내 그의 손이 녹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독장(毒掌)이었다.
"후회하게 될거야."
"웃기지마."
이예설은 선우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어디 되지도 않는 허세란 말인가
선우는 마지막 경고를 한 이후 천천히 그녀에게 갔다.
저벅 저벅
그의 걸음 소리가 천천히 그녀의 귀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꿀꺽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분명 거짓말이 분명할 것이다.
흉내에 불과할 것이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저리도 당당한 태도로 나오니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독왕의 제자면 어떻게 해야할까?
만약 그의 손에 모아져 있는 녹빛의 기운들이 진정으로 독기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까?
수많은 상념들이 그녀의 머리속을 온통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저벅
이내 독왕의 제자라 주장하는 자가 그녀의 코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어깨에 녹빛으로 물든 손을 올렸다.
순간
"끄흑"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질렀다.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고통이 어깨를 타고 느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선우의 손을 타고 독기가 그녀의 몸 속에 침투한 것이다.
'거...거짓이 아니었어?'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재빨리 내력을 운용하여 몸속으로 독기를 배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손을 통해 침투한 독기는 아무리 밀어내려고해도 밀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흘린 독기는 그녀의 내력으로 밀어내기엔 너무나도 빨랐고 강력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지날 수록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뺨을 기절할 때까지 맞았을 때도 이만큼이나 크나 큰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독기로 인한 고통은 독종과도 같은 그녀의 인내심을 아득히 초월하게 만들었다.
"제...발..!"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선우에게 애원하듯 말하였다.
쉴새없이 파고는 독기가 그녀를 너무나도 아프게하였다.
마치 이세상의 고통이 아닌듯한 고통이 그녀를 덮쳐든 것이다.
"요랑이도 아팠을거야."
그녀의 애원에 선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생살이 칼로 난도질을 당한 요랑의 고통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선우는 그녀가 이 고통으로 요랑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끼길 빌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 록 더욱 커졌다.
선우가 그녀에게 주입한 독은 작열독이란 이름을 가진 독으로 당서윤이 가르쳐준 고문용 독이었다.
내부에 수많은 독들이 잠재되어있는 선우는 내부의 독들을 조합하여 고통에 최적화된 작열독을 만들어낸 것이다.
작열독은 독들 중에서도 고통으로는 수위를 다투는 독이었다.
아마 이예설은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가 맞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였다.
주르륵
모락모락
그녀의 아랫도리에서 지린내가 진동하더니 이내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망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그녀의 몸에서 재빨리 독을 흡수하여 해독하였다.
설마 오줌까지 지릴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작열독의 효과가 지나친 듯 싶었다.
철푸덕
그녀는 자기 실례를 저지른 곳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흐흑"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였다.
분명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이었다.
무림에 이름 난 기재라고 불리우는 용봉들 중에서도 최고의 기재라고 칭송 받는 자신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 실례를 저지른 것이다.
"흑흑흑"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펑펑 울어젖히는 그녀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