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50. 독서시毒西施 당서윤-1
사천당문 가장 끝 쪽에 위치해 있는 전각
휘이이이이잉
전각 앞에 있는 개인 연무장에 거대한 독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독기의 중심에는 한 여인이 오연하게 서있었다.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땀이 얼굴을 적셨지만 그녀는 개의치않는 듯하였다.
이내 거대한 독기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더니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파아아아악
엄청난 독기의 폭풍이 연무장을 덮쳤다.
펑
그리고 이내 뒤덮고 있던 독기들이 일순간 터져버리고는 그대로 소멸되었다.
"하아...하아..."
그녀는 거친 숨결을 몰아쉬고 호흡을 정돈하였다.
'아직 반각정도인가?'
그녀는 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그때였다
짝 짝 짝
난데없이 그녀의 귀에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고모님 그 난해하다던 만류귀원신공을 이만큼이나 다루실 줄이야 ."
고개를 돌려보니 사공자 당산이 손뼉을 치며 연무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네 녀석이 여기는 무슨일이지?"
당산을 본 그녀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조카가 존경해마지 않는 고모님께 인사드리러 오는 것이 무에 문제된다고 그러십니까?"
"네 녀석이 워낙 뱀 같은 심보를 가진터라 찾아오면 괜시리 부담돼서."
그녀는 당산의 면전에 대고 서슴없이 거친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당산은 이마에 실 핏줄 하나가 솟아르는 것이 느껴졌다.
'개같은 년'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참아야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나 씻어야해."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불편해, 가."
그녀의 축객령에 당정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성을 내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당산은 심호흡을 한 번하고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일단 말이나 한번 들어주십시오. 분명 솔깃하실 겁니다."
당산은 애원조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눈쌀을 찌푸렸다.
"다 큰 놈이 뭐이리 징징대, 별거 아니면 죽을 줄 알아."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려 연무장밖으로 빠져나갔다.
당산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아오 , 저 지랄같은 년 진짜.'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참아야했다.
자신이 고독관을 온전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서윤의 도움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
"그래, 말해봐."
의자에 다리를 꼬아 앉은 당서윤은 빠르게 본론부터 물어봤다.
저 어린 독사 새끼랑 오래있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싫다면?"
즉답이었다.
애초에 당서윤은 파벌 싸움이나 후계 다툼같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무공이었다.
당산의 부탁을 들어줄리 만무하였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드리겠습니다."
"뭐?"
이건 예상치 못했다.
인면지주의 내단은 독정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독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보물 중 하나였다.
인면지주는 머리부분이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거대 거미로서 수백년을 묵은 거미가 영력이 쌓여 사람으로 둔갑하기 직전의 모습이라 알려져 있다.
인면지주는 내단 안에 절독을 품고 있는데, 그 독기가 워낙 독하다하여, 내단 속의 독기를 내뿜기 시작하면 반경 십 리 안에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내단의 독력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독공을 익힌 자로서는 누구나 탐내는 것이 인면지주의 내단이었다.
할짝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입맛 다시는 모습을 본 당산은 슬쩍 얼굴을 붉혔다.
저리 매혹적인 얼굴로 혀를 돌리니, 괜시리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당서윤은 인면지주의 내단이라는 말에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독정이라는 천고의 보물은 어차피 가주에게 내정된 보물이라 포기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인면지주의 내단 내놓는다는 말을 하니 구미가 땡겼다.
충분히 협상할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뭔데?"
"저에게 격체전공을 시전해주십시오"
"미친새끼"
그녀는 단번에 당산에 말을 끊어버렸다.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분명하였다.
격체전공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수 십년을 수련한 내력을 그대로 타자에게 내어주는 기술이 아니던가
뭐가 어여쁘다고 이런 음흉한 놈에게 자신의 내력을 넘겨준단 말인가
인면지주의 내단이 탐나긴했지만 수 십년동안 수련한 내력은 더욱 소중하였다.
그리고 막상 격체전공을 시전해줬더니 모르쇠 일관한다면 어찌하겠는가
괜한 위험부담은 지기 싫었다.
"꺼져."
그녀는 단번에 축객령을 내렸다.
"고모님,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먼저 제 내력을 격체전공으로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인면지주의 내단을 온전히 흡수한 뒤 제가 넘겨준 만큼만 다시 넘겨주시면 됩니다."
"그냥 네가 섭취하면 되잖아,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이유가 뭔데?"
"저는 중단전이 막혀있어서 인면지주의 내단을 섭취한다하더라도 온전히 흡수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맞는 말이었다.
당산의 내력은 이미 하단전의 한계까지 차올라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인면지주의 내단을 섭취해봤자 온전하게 흡수는 커녕 줄줄 흘리게 될 것이 뻔하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네가 얻는게 뭔데?"
당서윤은 이해안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쓸바에는 중단전이 개방되고 본인 스스로 섭취하는 것이 낫지않겠는가
뭣하러 남좋은 일을 한단말인가
"인면지주의 독기입니다."
당산의 눈이 열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말마따나 당산의 내력은 한계까지 차올라 있어 인면지주의 독기를 흡수하진 못하지만 중단전이 개방되어 있는 당서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격체전공을 통해 단전을 비운 뒤 당서윤을 통해 정제된 내력을 다시 받게 된다면 인면지주의
독기 뿐만 아니라 그녀가 수 십년동안 갈고 닦은 독기까지 전부 흡수할 수 있었다.
이는 독과 내력이 혼합되어 있는 만류귀원신공이기에 가능한 꼼수였다.
"왜 하필 나인데?"
"저희 파벌에는 인면지주의 독기를 온전히 소화시킬만한 고수가 없습니다."
인면지주의 내단은 상상이상의 엄청난 독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르러야 했고,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초절정 중경이상의 경지에 이르러야했다.
하지만 당산의 파벌에는 그에 걸맞는 고수가 없었다.
3부인 금적화의 외가인 금씨세가는 상단을 기반으로 성장한 거대한 상인 가문이였는데, 상인을 천하게 여기는 인식이 가득한 장로들과 원로들은 그녀의 출신성분을 영 마땅치 않게 바라봤다.
이런 인식은 후계 경쟁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는데, 젊은 장로들의 경우 당산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높은 연령대의 장로들과 원로들은 그를 기피하였다.
연륜이 깊어질 수록 무공도 깊어진다하지 않던가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당산의 파벌에는 초절정 고수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
당산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분명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것뿐이라 되려 의심이 들정도였다.
인면지주라는 희대보물을 그저 독기를 강화하는데 사용하겠다니
어찌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당산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거짓이 아닌듯 보였다.
"쿡"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가주 위가 그리도 좋다는 말인가
얼마나 좋으면 이 희대의 보물을 고작 독기 강화에 사용한단 말인가
재밌었다.
자신과 전혀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조카가 말이다.
"좋아."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손해 볼일은 없었다.
"격체전공을 해주지, 대신 네 녀석 파벌에 들어간 것은 아니니, 쓸데없는 소문 내지마라."
"감사합니다. 고모님."
당산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사실 그녀가 거절하면 어쩔까 노심초사 했것만 일이 잘 풀리니 기뻤다.
"인면지주 내단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탁
당산은 품안에 있는 작은 주머니를 꺼낸 뒤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좋아, 모두 흡수하면 내 따로 기별을 넣지, 놓고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산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고 감사인사를 건넸다.
감사 인사는 돈이 안드니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다.
"알았으니까 빨리 꺼저, 나 씻어야해."
온몸이 땀에 젖어 불편했던 그녀는 당산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당산은 한 번 더 꾸벅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
당서윤은 당산이 떠나간 곳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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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씻고 나온 당서윤은 개인 연무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쇳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인면지주의 내단을 받은 김에 곧바로 흡수할 요량이었다.
털썩
연무장 정중앙에 앉은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만류귀원신공을 한 차례 운용하기 시작헀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독기와 내력들이 요동을 치며 그녀 주위를 뒤덮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팟
한 차례 운용을 마친 그녀는 눈을 뜬 후 품안에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주머니를 열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거무튀튀한 물체를 볼 수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독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과연 인면지주의 내단이구나'
무척이나 거부감이 드는 생김새와 냄새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입안에 넣어버렸다.
꿀꺽
화아아아악
순간 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예상 이상의 독기였다.
그녀는 재빨리 만류귀원신공을 운용하며 독기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웅
하지만 인면지주의 독기는 과연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몸 속을 활개치고 다니며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질까보냐'
그녀 또한 지지않고 만류귀원신공을 발휘하여, 인면지주의 독기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독기들이 서로 잡아먹기 위해
뒤엉키며 싸움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체력이 서서히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하아..조금만 더'
하지만 그녀와 마찬가지로 인면지주의 독기 또한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만류귀원신공을 더 운용하였고 인면지주의 독기를 그대로 잡아먹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인면지주의 독기를 전부 흡수하는 순간
갑자기 하단전과 중단전에서 충만함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번쩍
머리에 벼락이 관통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아아'
그녀는 이루말하지 못할 정도의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곧이어 머리 위에 다 섯개의 고리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오기조원(五气朝元)이라는 초절정 최상위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하아...하아...하아.."
당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입가에 희열에 찬 미소를 띄었다
자신이 비로소 화경을 목전에 초절정 상경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것도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말이다.
기쁨뒤에는 뒤늦은 피로와 수마들이 몰려들어왔다.
아무래도 인면지주의 내단을 흡수하면서 체력과 심력을 모두 사용한 모양이었다.
"하아....하아..."
아무래도 한숨 자고 일어나야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그대로 내리고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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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서윤이 눈을 슬그머니 떴다.
분명 개운하게 잔 것 같은데 이상하게 힘이 없었다.
아래에는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침상!?'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은 분명 딱딱한 연무장 바닥에서 잠들지 않았던가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침상과 탁자 , 의자
방의 구조로 미루어보면 이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기절한 자신을 누군가 옮긴 것이 분명하였다.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절그럭
하지만 팔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들어 살펴보았다.
철로 된 족쇄가 양팔을 감싸고 있었다.
놀란 그녀는 밑을 바라보았다.
다리 또한 철로 된 족쇄로 감싸져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녀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딴 족쇄따위로는 자신을 가둘 순 없었다.
하지만 몸안의 내력이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가
분명 자신은 초절정 상경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따위 족쇄조차 풀지 못하다니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끼익
"당분간 내력은 못 쓸거야 점혈로 봉해뒀거든"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독서시毒西施 당서윤."
처음보는 남자였다.
"우리 진지한 얘기 좀 나눠보자구."
남자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