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치매대응반-89화 (89/122)

〈 89화 〉 무림치매대응반 89

* * *

“그러니까 가능 하다면.”

“그리 된다면…. 못 할 것도 없지요. 저도 동창에는 묵은 원한이 있으니까요.”

무영신투의 얼굴에서 서늘한 빡침이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그럼 신투께서는 무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를요?”

“저희가 신투의 전성기때 전력을 회복시켜 드릴 수 있다면요.”

“글쎄요. 혹시 따로 천녀에게 원하시는것이 있으실까요?”

사실, 딱히 없다. 잠시 기다리며 내 기색을 살피던 무영신투가 고개를 흔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드릴것이 없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무영문의 비고는 사실상 당대의 문주인 유하의 것이나 마찬가지고. 무영문이 이미 일시적으로나마 문주님의 수족이 되기로 하였는데 그 이상을 말씀드리기도 힘듭니다. 무영문은 저나 유하의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보면 느낄 수 있다. 문주와 문도들이라기 보다 가족같은 느낌이었지. 흠. 그냥 받는거 없이 해 줘야 하나? 아니면 무공이라도 좀 알려달라고 할까? 은신이나 뭐 그런것들.

“무영문도들이나, 소문주는 역시 불가능할까요?”

“들키지 않고 잠입을 하기는 불가능할겁니다. 거기다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무영문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아챌거구요.”

무영문의 독문무공은 주로 비도술이나 자체적으로 제작한 기물을 이용한 이동술, 은신술, 단검술 정도로 정말 절도와 잠입공작에 특화된 무공들이었다. 한 번 발각이 되면 자연스럽게 전투로 이어질테고, 특유의 기수식과 투로등의 정보가 동창에 넘어가면 분명 무영문의 침입이라는걸 눈치챌 것이었다.

우리는 혹시나 걸리고, 누군가 빠져나가더라도 우리가 동창을 쳤다는것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즉슨, 무영문이나 우리나 안 걸려야 특정이 불가능한건데, 그러려면 초식의 한계따위는 까마득히 벗어난 고수가 필요하다. 단순히 용모파기가 동창에게 넘어간 것 이상으로 무공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넘어갔기에 그런 측면에서도 무영신투가 같이 가 주는 수 밖에 없다.

거기다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작전 수립 능력이다. 우리끼리 아무리 동창의 본거지에 잠입하겠다고 머리를 굴려봐야 이대로라면 타이틀에는 암살자가 붙어있지만 사실 정면으로 들어가서 다 때려죽이는 모 게임같은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그렇게 혼전상황이 되면 도주 차단을 위해 자윤이와 서령이를 배치한다 해도 변수가 생길 수 있고.

[그냥 뭐, 따지지 말고 하자.]

[호, 그렇게 무영신투의 호감을 사시겠다?]

[자꾸 장난칠래?]

[하여튼 오라버니는 뭐 요구 할 것 없다는거지? 그럼 나한테 맡겨.]

[또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면 화낸다?]

[어허, 이 누나만 믿어.]

누나라기엔 나이가 좀…. 같은 느낌으로 연이를 힐끔거렸더니 연이가 도끼눈을 뜬다.

“그렇다면 신투,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씀해보시죠.”

“전성기 수준의 무력을 회복하신다면 당분간 저희를 위해서 일해 주시면 어떨까요?”

“제가요?”

“무영문과는 별도로요. 아, 물론 무영문의 문도들에게 무공을 전수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막지는 않을거에요.”

“제가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무영신투는 아직 제대로 믿어지지 않는지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바로 진행할게요. 오라버니?”

“응.”

나는 한 발짝 물러나고 연이가 무영신투에게 약을 내밀었다. 무영신투는 망설임없이 약을 받아들고 그대로 들이켰다. 아니 뭐 간도 한 번 안보나.

“그럼 치료 시작할게요.”

무영신투는 편하게 하라는 듯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어차피 그저께 약은 먹어둔 상태였으니 바로 시술을 해도 문제가 없을것 같았다. 안에서 멀뚱히 쳐다보고 있기도 뭣해서 잠시 방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일다경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연이가 나왔다.

“오라버니. 독기는 다 뽑아냈어. 들어와.”

“수건이랑 좀 필요하지 않냐?”

“미리 준비 해 놨지.”

어째 아까 여기를 콕 찍어서 들어온다 싶더니 미리 준비는 해 놨던 모양이구나.

“허우. 이거 한 번 하고 나면 기운 쫙 빠지던데.”

“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바로 해.”

연이가 쌔액 웃으면서 달라붙어온다. 얜 대체 어제부터 왜 이렇게 텐션이 우주끝까지 달려가는건지.

“머리가 한결 개운합니다. 헌데, 추가로 또 치료할 것이 있나요?”

“방금 연이가 한건 노망 치료고 제가 하는건 좀 다른겁니다. 마음 편하게 하고 앉아 계세요. 아, 위는 다 벗어 주시고요.”

“…네.”

아직은 혈맥과 기의 운행을 육안으로 보면서 하는게 편해서 그냥 웃장을 까라고 했다. 윤성이도 그랬었고. 무영신투는 약 마시라고 할 때는 별 소리 없다가 상의 탈의 하라고 하니까 망설인다. 아니 그거랑 이거랑 뭐가 더 위험해요.

“입으로 소리내지 마시고, 시술을 하고 나서 저는 나가 있을테니까 연이하고 정리하시면 됩니다. 자 시작할게요.”

“네.”

“어허. 소리.”

어차피 저번에 윤성이한테 한 번 해봐서 돌발사태가 생길 일도 거의 없고 편한 마음으로 신투의 몸속에 ‘천지환원기’를 밀어 넣었다. 오히려 윤성이보다 수월한 느낌이다 연이가 밑작업(?)을 잘 끝내놔서 그런가.

“끄흐으으으응….”

슬슬 느낌온다. 무영신투의 입에서 잔뜩 억누른 신음소리가 튀어나오고 온 몸의 뼈마디가 뚜둑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최대한 기운을 쏟아부어 완전히 개통시키고 기운을 흩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내공이 후달리는 경우가 아예 없다시피 한데, 이건 확실히 좀 버겁긴했다. 제대로 반로환동과 환골탈태가 시작되는걸 확인하고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긴장이 약간 풀리네 거의 긴장은 안했지만.

“연이 네가 잘 보고 있다가 끝나면 부르러 와.”

“응 오라버니. 가서 쉬고 있어.”

연이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춰줬다. 무영신투가 지금 무방비 상태이긴 하지만, 아마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같은건 인식할 수 있을거라서. 윤성이때를 생각해 보면 딱히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깨어난 후에 혹시 어디로 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연이를 그대로 남겨둔 채 방을 빠져나왔다.

내 방으로 가서 쉬려다가 화란이를 찾았다. 별 일이 있었으면 화란이가 나를 찾았겠지만, 그냥 화란이를 보고 싶어서.

“아, 삼랑. 무영신투는 치료중인가요?”

“치료는 끝났고. 지금 반로환동 중이지.”

“그런 엄청난걸 아무렇지도 않게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니 삼랑 정말….”

아 그러고 보니, 연이가 본다던 비급은 어떻게 된거야? 왜 이야기가 없지.

“아무튼, 윤성이는 만나봤어?”

“아, 예. 나름 성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고 성내 주요 객잔들도 감시중이라는데 딱히 동창에서 성도로 들어온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하네요.”

“윤성이 몸은 괜찮아 보이던?”

“아주 살판났더라구요. 온 복도에 사향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뼈삭는다고 작작하라니까….”

“몸이 젊어졌으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저도 그 마음알죠. 아마 금방 평소 생활로 돌아올거에요.”

그래도 만복회라는 제법 규모있는 지방 조직을 이끌고 있으니까. 알아서 잘 컨트롤하겠지…? 이새끼 불안한데.

“윤성이는 큰 일 없으면 너 직속으로 줄테니까 알아서 잘 굴려봐. 성도내에 정보망도 좀 깔아 놓고.”

“네 그렇게 할게요.”

화란이를 끌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드러누웠다. 화란이의 가슴을 조물거리며 놀고 있으면 연이가 끝났다고 이야기 해 주겠지. 어제 배윤성이 반로환동 시키고 오늘 무영신투를 또 작업했더니 기력이 후달리는 느낌이었다.

“삼랑?”

“피곤해서 조금 잘테니까 연이 오면 깨워줘.”

“네. 쉬고 계세요.”

화란이의 포근한 살결을 느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연이 목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방 안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밖에서 들어오는 적갈색 햇빛에 제법 시간이 지난것을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

“…응?”

“다 끝났어.”

“어…. 음. 아우. 이틀 연속은 안되겠다.”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인데 그 정도 부담밖에 없으면 오라버니가 정말 괴물인거지.”

내가 괴물인게 아니라 ‘천지환원공’이 괴물인거지.

“그래서 무영신투는?”

“여기 있네.”

“어?”

깜짝이야. 면사를 쓴 사람이 흑회색의 무복을 입고 앉아 있어서 우리애들인줄 알았는데. 무영신투였구나. 아. 나는 아직도 화란이의 가슴에 들어가 있는 손을 황급하게 빼냈다. 민망해라.

“그래, 몸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문주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 죄송한데 은혜 아니에요.”

“네?”

“소문주를 인질로 잡을 생각이거든.”

“오라버니!”

“삼랑?”

왜, 뭐. 배윤성이야 뭐 금제를 받은 상태였다고는 해도 죽자니까 단박에 끄덕끄덕했고, 나름대로 나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었는데. 무영신투는 그런것도 아니잖아?

“어째서입니까?”

“신투께서 본인의 몸 상태를 보시면 아실텐데요. 제가 가진 이 능력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큰일 납니다.”

“그건 이해하지만….”

“우리로서는 신투의 충성심 같은걸 믿을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니까요. 지금 신투께서 저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서약을 한들….”

어차피 소문주는 경지가 낮아서 가성비도 안나오니까 그냥 장원 내에 머물도록 감시를 붙이고 그걸 핑계로 무영신투를 굴려먹는게 훨씬 개이득이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