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무림치매대응반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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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각에서 잠깐 노닥거리고 있으니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벌써 잡아왔나?
“소첩 자윤이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와당탕!
“환수마의를 붙잡아 왔사옵니다.”
어…. 그래. 아니, 잡아오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빨리’라는 단어가 문제였던걸까?
“죄송합니다. 마의. 이렇게 모시고 오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마의는 마혈이 눌린 상태로 짐짝처럼 전각 바닥에 내던져 졌다. 약액 제조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험하게 대하면 어쩌자는 이야긴지. 마의에게 사과를 하고 해혈을 해 주었다. 마의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되는 즉시….
쾅!
대가리를 박았다. 머리카락도 없으신분이….
“지존! 눈이 있음에도 제가 그때 지존을 몰라뵙고!”
그때는 제가 여러분의 지존이 아니었다니까요…. 심지어 지금도 아니지만.
“설명하기도 지친다 이제. 일어나세요.”
“옙!”
아니 보통은 이렇게 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신의라던가 이런 사람들은 조직에 속해있어도 보스랑 동기동창쯤 먹는거 아닌가? 천마신교라는 조직에서 천마가 차지하는 무게가 얼마나 되는건지 잘은 모르지만 이 정도라면 이건 뭐 거의 유전자에 박아놓은 수준이다.
“오해가 있으신데, 제가 진짜 천마는 아니거든요?”
그냥 기운을 좀 흉내 내는거지.
“신녀의 몸 속에 있던 모든 주박이 풀렸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초대 천마님을 제외하고서는 후대의 천마들도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존께옵서는 그냥 천마가 아니십니다! 초대 천마님 이상의 천마! 그야말로 천마중의 천마이십니다! 천마영원!”
…저, 천마영원은 뭐, 갈자윤이 전파시킨건가? 끄으응…. 천마중의 천마라니. 카포 디 카포도 아니고.
“도와주실 일이 있는데….”
“가당치 않습니다! 명하시면 따를 뿐입니다!”
“작게 말해 작게.”
“존명!”
귀도 아프고, 마의형 목청도 걱정되고…. 헤요. 나도 모르겠다. 그래 내가 천마다. 아임 천마. 고금최강의 천마위 천마. 천마신교를 스스로 묻어버린 자살천마. 해남출신 세외천마. 치매를 치료하는 활수천마. 어예. 신난다.
어떻게 보면, 내 쪽에서 존중하고 부탁해야 할 일을 그냥 손가락 끝으로 지시를 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냥 뭐,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해야겠다. 어차피 천마신교는 해산시켰고. 갈자윤정도만 책임지면 되겠지.
“그래, 내가 막 대하는게 마의한테도 편할테니 그렇게 하자.”
“당연합니다 지존!”
“작게 말 하라고.”
“기쁜 마음을 감출수가 없어서….”
아이고 두야.
“약을 좀 만들게 있는데…. 연아?”
“응 오라버니.”
일단 할 일부터 먼저 하자. 내가 천마든 아니든, 지금 이 상태의 마의한테 같이 약을 만들자고 하면 머리박고 만들어 줄테니까.
“여기 쓸게 있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존명!”
앞은 마의, 존명은 신녀. 둘 다 전각을 뚫고 튀어나간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니 순식간에 지필묵을 준비 해 와서는 손이 안보이도록 먹을 갈기 시작한다. 충성경쟁을 이상한걸로 하네….
“신녀는 물러나 있고, 연아. 필요한 것 좀 마의한테 적어 줘.”
“응!”
마의가 준비해온 종이와 북을 들고 연이가 약재이름이나 재료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는데 마의가 무릎걸음으로 옆에 붙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실로 이 마의는 탄복했사옵니다.”
“뭐가?”
“부인께옵서는 무림제일화가 아니시옵니까?”
“알아?”
“저희 동년배가 무림제일화의 용모를 모른다면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보아하니 화접신녀께서도 계시고, 검후도 치료했다 하시더니…. 실로 감탄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 뭐가 그렇게 감탄스러운지 모르겠다마는….”
“정파에서도 기가 드세기로 소문난 여걸들을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거느리셨는데, 이제는 마중화마저 꺾어 가지지 않으셨습니까? 수하로서도 남자로서도 진심으로 존경할 수 밖에 없사옵니다.”
아, 뭐 그렇지. 어쩌다 보니까 네임드만 골라서 수집했네. 서령이가 네임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건 아니고. 그리고 마중화는 아직 안 꺾었다.
“약을 만들고 시험할 환경은 갖추어져 있나?”
“예. 지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노망 치료에 필요한 약을 만든다는데도 반문 한 번 없다. 철저한 상명하복이다. 아, 이거 괜히 뿌듯한데. 마교 괜히 해산시켰나?
“일단은 알아 두어야 할 내용에 대해 설명 해 주지. 화란아.”
“네. 삼랑.”
“마의한테 지금 우리 상황 설명 좀 해줘라.”
[혹시 모르니까 내 목숨도 위협받았다는 내용은 빼고.]
[네.]
“신녀는 잠깐 나좀 봅시다.”
“존명.”
마의를 화란이한테 던져두고 갈자윤과 함께 전각을 잠깐 나왔다. 내가 의문의 세력에게 죽을 뻔 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사람을 모아서 쳐들어가자고 날뛸까봐 그건 빼고 말하라고 했으니 화란이가 적당히 잘 알아서 설명해 줄거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점심시간이라서 늦겨울 햇빛이 너무 따가웠다. 천마전은 혹시 사람이 남아 있을까봐 그렇고.
“혹시 조용히 이야기 할 장소가 있습니까?”
“안내하겠습니다.”
야외같으면 산에다가 그냥 토굴을 파겠지만 비어있는 건물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럴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갈자윤의 안내에 따라 장내를 이동했다. 사람이라도 마주칠까봐 살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목표한 건물까지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도착했다. 마주쳐서 안될건 없는데 또 머리 박고 지존 지존 하면 난감해서.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편히 하문하시지요.”
방 안으로 들어와 말문을 열었다. 들어오면서 본 화려한 건물의 외양과, 방의 넓이. 방 안에 있는 가구들로 미루어볼 때…. 아주 굉장히 높으신 분의 침소 같은 느낌인데.
“잠깐!”
내가 방 내부를 둘러보는 사이에 천마신녀께서는 시원하게 겉 옷을 벗어버리고 새하얀 피부의 나신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었다. 아래 속옷만 벗으면 그대로 알몸이다. 내가 제지하자 뭐가 잘못 되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물방울 모양의 아름다운 가슴이 탱글 하고 흔들린다.
“지금은 그럴때가 아닙니다.”
“…천녀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박색인데, 중원의 여인들과는 다르니 성에 차지 않으시겠지요….”
아니 또 그런 눈빛을 하시면 제가 굉장히 잘못한 것 같은데요. 언젠가 그런 관계가 되긴 할테지만, 당장은 할 일이 있으니까 미뤄두기로 하고 갈자윤에게 다가가 손수 옷을 걸쳐 주었다. 그 전에 칭찬하는 느낌으로 가슴을 한 번 주물러주고.
“전혀. 아름답기만 하니 그런걱정은 말고 좋은 날을 택해서 합시다. 입으면서 들으시오.”
“…세이경청하겠습니다.”
“먼저, 본인이 치료되었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압니까?”
“대략적으로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물어볼 내용은….”
“제발 말씀을 편히 하시옵소서….”
“그럼 신녀도 말을 좀 편히 하십시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아…. 뭐 존명이라면서 말 존나 안듣네 진짜. 이걸로 실랑이 하기도 시간아깝다. 어차피 연이한테도 야 너 하는데 뭐.
“내가 물어보고 싶은건 이 배후에 혹시 마교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뢰옵기 부끄럽사오나, 본교는 전대 천마의 사망 이후 그런 전력이 없습니다.”
응. 나쁜짓 할 기운도 없다는건 알겠는데….
“이 독이 무림의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한건 대략 오십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때는 신교의 위세도 생생할때 아냐?”
“이미 그때 제가 소성녀의 자리를 받아 교내의 대소사에 관여하고 있었으나 그러한 계획을 수행한 바는 없습니다.”
혈라마들은 일단 지들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고 걔들도 개박살이 났으니까 그럴 전력이 없는것도 맞았다. 구태여 마교에서 샘플을 수집하겠다고 왔던것에는 그걸 확인 하려는 목적도 깔려 있었다.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마교가 관여된 부분이 있는지. 꼴이 너무 처참해서 그냥 넘길까 했지만 혹시 몰라서 확인 해 봤다. 내가 천마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 뭔가 아는게 있다면 숨기지 않고 이야기 해 줄거라고 생각해서. 신녀나 다른 고수들이 노망독에 당했다지만 연막용으로 했거나 노망을 위장했을 수도 있는거니까.
약의 특성상, 소뢰음사나 마교가 직접적인 암약세력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연이 정도 되는 고수가 상당히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고, 휘발성도 엄청 강해서 병을 봉해놓더라도 조금만 놓치면 그 사이로 새어나간다고 했다. 즉슨, 독을 보관하고 돌아다니다가 기회를 봐서 하독을 하기에는 시간 제한이 심한 독이라는 거지. 목표를 노리며 어슬렁 거리다가 하독을 했는데 독기가 다 빠져 있으면 완전 삽질 아닌가.
그렇다면 결론은 제조현장과 가까운 장소에서, 막 제조된 독을 하독하고 휘발성으로 독기가 날아가기전에 고수들이 흡입을 했다는 거다. 아무런 의심없이.
소뢰음사와 마교가 용의선상에서 빠졌고, 누구보다 이 사태로 엿을 먹고 있는게 무림맹, 구파일방,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정파 무림인들이기 때문에 제낀다고 치면 결국 남은것은 ‘관’이다. 원래 그렇다. 혈라마가 사고를 안치고, 마교가 강제 자숙을 하고, 무림맹 소속의 정파인들이 자빠져 나가면, 사도련같은 사파 연합체가 없는 이쪽 세계관에서 남는것은 결국 관 이다.
주기적으로 고수들을 모아 자금성에서 연회를 열고, 각 지방의 관리에게 시켜 지역의 명문가를 조지고. 그래도 의심을 받지 않는다. 왜?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니까. 믿을걸 믿어야지. 모든 단서가 관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만, 정말 다른 세력이 있을 수 있으므로 확정은 보류했다. 예상하는 결과를 미리 정해두고 사건을 대한다면 괜한 선입견에 매몰되어 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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