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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28화 (28/122)

〈 28화 〉 무림치매대응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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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나면 뒷처리는 항상 좀 민망한 편이다. 닦는 것도 닦아야 하고, 주섬주섬 옷도 챙겨 입어야 하고. 물론 연이는 이제 내공을 다루는게 익숙해져서 슉~하고 끝내버리지만. 나도 앞으로 배우면 되겠지.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내 내공도 뻥튀기 되었고, 검후의 노망도 나았다. 어기적어기적 옷을 챙겨 입고 있는 검후의 표정을 보면 관계뒤의 어색함까지 겹쳐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다운되는 느낌이다.

“화란아, 오늘 뭐 먹지?”

“아…. 그러게요. 건량은 좀 질리니까 오리라도 한 마리 잡아 올까요?”

“그거 괜찮겠다. 오늘 검각에서 잘 생각으로 왔더니 먹을게 없네.”

사실 이렇게 급 전개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노망난 검후의 습격으로 한 방에 검후를 달고 쫓겨날 줄이야. 뭐, 연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토굴이 이제는 왠지 내 집 안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오히려 마음은 편한 것 같았다.

“같이 가자.”

“와. 오라버니. 지금 검후를 남겨두고…. 이건 피하려는 거지 그렇지?”

“제가 봐도 그렇네요.”

피하려는게…. 맞다! 치료목적이래도 대뜸 강제로 관계를 해 버린 남자와 당한 여자가 이 어두운 토굴에 앉아서 뭘 하겠는가?

“아니 그게….”

“잠깐 이야기라도 하고 있어. 꿩이든 오리든 금방 잡아 올 테니까.”

“불 피울 준비만 좀 해 주세요.”

“어…. 응.”

두 사람은 사이 좋게 토굴을 나서서 사라졌다. 이거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주는 것 같은데. 아니, 걱정된다고 보러 간 사람도, 대뜸 검각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도, 치료하겠답시고 박으라고 시킨 사람도 지들이면서! 것 참.

불 피울 준비를 해두라고 했으니까 그냥 그거나 해야겠다. 저렇게까지 이야기 하고 나갔으니 뭐라도 잡아서 손질까지 다 해서 올거다. 여기서 멱따고 내장빼고 하기는 썩 좋지 않아서. 기실 사람이 수십명 몰려와도 순식간에 썰어버릴 두 사람이 고작 날짐승을 잡자고 나갔으니까 여기서 나가는 순간 이미 잡았을거다.

나는 등짐에 있던 장작을 끄집어내고 토굴 출구쪽에다가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둥글고 커다란 냄비…. 를 꺼내려다가, 관뒀다. 불은 무슨. 막말로 내공으로 불을 일으켜 사람도 구울수 있을텐데 꿩이나 오리 한 두마리 못 구울까. 짐에서 소금이나 꺼내놓고 다시 이불위로 올라와 앉았다. 내공 만세다. 빨리 내공 다루는거나 배워야지.

아, 두 사람 경공이면 근처 마을에 가서 음식을 포장해와도 될텐데. 차라리 그러라고 할 걸 그랬다.

“저기….”

“아, 예. 검후님.”

가만히 있기도 영 공기가 어색해서 토굴 밖으로 나가볼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검후가 부른다. 연이나 화란이한테는 말을 잘도 까지만 검후님과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심지어 박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아. 머리아프다.

“두 사람은, 그러니까 반로환동을….”

“예, 뭐. 그렇습지요? 보신 바 대로….”

“허어…. 그렇구만.”

저렇게 팽팽하고 예쁘장한 얼굴로 허어… 같은 소리를 내고 있으면 진짜 감당이 안된다. 연이나 화란이는 의도적으로 내가 그렇게 생각을 안하려고 하기도 하고, 본인들도 많이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런 위화감이 많이 줄어 들었지만 검후는 그런것도 아니니까.

“나는…. 왜….”

“이게 머릿속에 독기라는게 있는 모양입니다. 검후님 뿐만 아니라 제일매화와 화접신녀께서도 같은 연유로 발병을 하셨고, 지금도 무림에는 수많은 노고수들이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이상하다 생각만 했었지, 누군가 수를 썼으리라고는….”

검후는 고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생각에 빠졌다. 이야. 이게 방금 떡을친 사이가 아니고, 무림맹에서 도주한 요양보조사와 치매투병을 하다 본가에서 쫓겨난 사람간의 대화가 아니었다면 제법 무림을 뒤덮은 음모와 중원의 앞날을 그럴싸하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아니라서 모양빠지는 거지만.

“마침 신색을 회복하셨으니 검각으로 다시 돌아가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허, 복귀라. 복귀라아….”

“본시 검후께서는 검각의 모든것이나 다름없다 들었습니다.”

“글쎄.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고 있지 않겠지.”

아, 이거 뭐 삐진거야 어쩐거야? 내가 진짜 요양보호사도 아니고. 피식 하고 웃으며 김빠진 소리를 내는 검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대충 뭔 생각을 하는지는 알것 같기도 한데. 나이가 칠순 가까이 되더라도 서툰건 서툰거니까.

“원래, 이 노망이라는 것이 본인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보니 주변사람들도 그렇고 본인도 많이 힘듭니다. 원인이야 어쨌거나간에 주변에서 보기에는 노망이었으니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을거고….”

“그 문제가 아닐세.”

“그럼요?”

“내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것들이지.”

“고치시면 되죠. 어차피 젊어졌는데. 연이 말로는 엄청 오래 살거라고 하던데요?”

“제일매화를 편하게도 부르는군.”

“당신께서 그렇게 해달라시니 저같은 범부야 그냥 따를 뿐이지요.”

연이에 비하면 나는 범부가 맞다. 그것도 아주 평범의 극한에 있는 범부지. 돈도 다 연이거고. 무력도 압도적이고.

“나는 말일세, 돌아오지 않는 젊음을 질투하고 있었던 것 같네.”

“그거야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거라고 한다면 누구나 열망을 하지 않을까요?”

으음. 토굴안이 서늘하다. 내공만 따지자면 나도 이제는 한서불침의 경지일텐데. 언제 한 번 나도 내 내공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불이나 피워야지.

“추위를 느낄만큼 공부가 얕을것 같지는 않은데.”

“제가 좀 얻어걸려서요. 사실 무공도 뭣도 모릅니다. 불을 좀 피울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연기는 검후가 밖으로 뽑아주겠지 뭐. 아까 꺼내려다가 만 장작과 부싯돌을 꺼냈다. 미리 뭉쳐둔 지푸라기 뭉치도 꺼내서 잽싸게 불을 붙였다. 추운것도 추운거고, 등잔불 하나만 있는 상황이니 토굴안이 어둡기도 해서 겸사겸사.

“겉치레라고는 없는 남자로군 자네는.”

“그런거 해 봐야 뭐합니까. 제것도 아닌데.”

무림은, 아니지. 무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을때도 세상은 허세가 절반이었다. 무림은 그 정도가 더 심했지. 고수들은 거의 못봐서 모르겠고, 나같은 하류 무인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허세가 곧 생명이었다. 누구도 허세를 확인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만약 확인하다가 칼침이라도 한 방 맞으면 본인만 손해다.

“과연, 그런 남자인가.”

“예?”

“아니, 혼잣말일세.”

혼잣말은 무슨. 그럴거면 안들리게나 하지.

“아무튼,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 본성은 마주하기 두려울 정도로 추악했었군. 각내의 누구도 나보다 강해지지 못하게 막고, 젊고 아름다운 여제자들을 곤란하게 했어.”

“그러셨군요….”

어우. 생각보다 승질머리가 더 지랄맞았었나 보네. 본인이 본인입으로 이야기를 할거면 아무리 개과천선을 하고 현자타임이 왔다고 해도 최대한 방어적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그게 저 수준이면….

“직전제자도 말일세, 확실히 나보다 뛰어난 아이였어. 나는 그 아이 나이였을 때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아, 아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마흔일세. 내 추한 욕심때문에 강호행을 해 보지도 못한 아이지.”

“네에….”

여기서 대체 무슨 리액션을 넣어 드려야 하나? 본인 입으로 치부를 고백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편승해서 아 참 님 썅년이셨네요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난일이니까 괜찮아요…하기에는 뭔가 피해자분들께 참 죄송하고. 이제 젊어지셨으니 다 잊고 새출발하세요? 으으음.

“딱히 할 말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네. 그냥 내 업보야. 후우우….”

으음. 회한이 담긴. 깊은 한숨을 내뱉고 계시는데 이것참 그래도 몸까지 섞은 사이에 그대로 두고 보기도 애매하고. 이것도 오지랖인가 싶긴 한데. 검후가 빡쳐서 덤비기라도 하면 내가 감당이…될지 말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아. 그렇구나.

아마도 연이 성격이면 이 주변에서 혹은 바로 토굴 바깥에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연이나 화란이나 둘중에 하나는 반드시 대기하고 있겠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그렇게 허술한 애들이 아니다.

“할 말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다 하셨으니 한 말씀 드리자면, 그것도 결국 자기 만족이네요.”

“무어라?”

“있는대로 깽판을 쳐놓고, 정신이 드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젊은 제자들을 질투하고 검각 내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괴롭힌건 노망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러셨던거죠?”

“…부끄럽지만 그렇네.”

“그러면 가서 사과하세요.”

“그렇지만, 나가달라고 했는데, 내가 다시 간다고….”

“아니 뭐, 꼭 받아주고 용서해줘야만 사과하는건 아니잖아요?”

최고 권력자가 존나 지랄맞은 성격이고 꽁하고 질투많은 성격이었으면 어우야. 그동안 버티고 살았을 검각의 인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거기다 검후께서는 아마, 앞으로도 제법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실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더 질투할 일은 없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죄를 지었네. 내가 젊어지고 말고는 아무생각 없음이야.”

“그거야 지금생각이고, 살다가 또 주름살생기고 하면 모를일이죠.”

“아닐세!”

“하여간 그건 저는 모르겠고. 그 사람들에게도 검후를 욕할 기회나 좀 주시죠?”

“나를 말인가?”

이게 아무리 좆같이 굴고 그랬어도 아픈사람 내쳤는데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을거다. 실제로 화란이의 경우도 그걸 끊어내기 위해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모질게 말하고 온거고. 이런 검후 밑에서 평생을 당했던 사람들이면 성격이 그래도 온순할텐데 아마 지금쯤 시원하면서도 꽁꽁 앓고 있을게 틀림없다.

“소검후의 뼈도 부러졌다면서요. 여기서 멀어진 동안에 정신이 안 돌아왔다면 모르지만 마침 가까운데서 정신을 차렸으니 경공으로 가시면 멀지도 않은 거리 시원하게 가서 사과 하세요.”

“욕이라도 먹고 오란 이야기군.”

아니 먹고 다시 오라는 이야기는 아닌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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