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무림치매대응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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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 저런 노괴물 앞에서 그게 되냐고?
내가 뭐 마음을 안 다잡으면 어쩔건데.
“그래서 치료는 언제 갈 거…야?”
“잠깐만, 오라버니? 우리 이야기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일단 이 전표들은 네가 다 가지고 있는걸로 하자.”
“아니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어.”
왠지 족쇄같은 느낌이다. 내 돈도 아닌거 들고 있어봐야 뭐 하나. 아, 뭐 종리연이 그런다는게 아니라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건 뭐 됐고. 바로 치료하러 안 갈 생각이면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아까 먹다가 말았더니 배고프네.”
“밥을?”
아까도 배가 조금 고프긴 했다. 지금은 더 고파졌고. 사실 이 숲속 나무그늘 아래의 천막에서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또 종리연에게 덮쳐질 것이 뻔하니까 그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 싫다는거 아니다. 나도 좋다고 같이 뒹굴었고 이게 뭐 벌써 질렸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좀. 쫀거지. 어. 쫄았다. 이게 막 휙휙 날라다니고 할때는 괜찮다가 손에 돈다발 들리니까 느낌이 확 오냐…하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아우 나도 모르겠다. 괜히 해골만 복잡하네. 솔직히 종리연이 몸으로 덤비면 내가 이겨낼 자신이 없다. 낮에도 지고 밤에도 진다.
“오늘 가긴 할 거지?”
“아…. 응. 시도해 보고 얼마나 머물지 생각 해 봐야 하니까.”
“그래 그럼. 식사하러 가자. 아까 보니까 노점에서 파는 소면도 괜찮아 보이더라.”
아까 여기 날아왔던 것 처럼 종리연이 날 또 안아 올리려는 듯 다가와서 살짝 물러섰다. 눈에띄게 종리연의 표정이 안좋아 졌지만 일단은 외면했다. 이런거 보면 강제로 뭘 할 생각은 아닌것 같은데.
“걸어서 가자. 여기서 가도까지는 먼 거리도 아니니까.”
“그…. 그래 그럼. 응.”
손도 안 잡았다. 나는 지금 좀 현자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아 이래서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말리는 것 같아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숲을 빠져나와 가도로 향했다. 이런 역사가 오래된 큰 도시는 으레 그렇듯 주변으로 슬금슬금 퍼져나와 상점가도 생기고 빈민촌도 생기고 그런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곳도 그렇고.
“소면이요.”
“같은걸로.”
만만한게 소면이지. 아까 먹다 말았던 소면이 아쉬웠었는데 다행히 노점 소면이 훨씬 맛있었다. 국물도 진하고. 딱히 말을 할 기분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먹고 적당히 일어섰다.
“좀 걷자. 소주는 처음이라서 궁금하네.”
“응. 거기는 어두워지고 나서 갈 생각이니까.”
느긋하게, 거리가 어둑어둑해지고 하나 둘 일렁이는 불빛이 켜질 때 까지 주변을 돌아 다녔다. 진룡객잔 근처에서. 내가 딱히 종리연을 방해하려고 하는건 아니니까. 그래도 소주 자체가 이 시대 치고는 워낙 크고 유동인구도 많아서 주변에 볼 것은 널려 있었다.
“이제 올라가자.”
“나도?”
“응. 오라버니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거 오라버니 컨셉은 참. 나도 딱히 할 일은 없으니까 종리연의 뒤를 졸졸 따라서 진룡객잔으로 이동했다. 사실 치매를 어떻게 치료할 지 좀 궁금하기도 했고. 절세고수가 되고 나서 내공으로 온갖것을 다 하는 종리연이었지만 치료를 보는건 또 처음이니까. 막 힐처럼 손을 대고 내공을 뿜으면 상처가 아문다거나.
진룡객잔에 들어 섰지만 누구하나 멈춰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점소이가 이쪽을 신경 쓰지도 않았고. 뭔가 묘하게 공기가 조용한 것이….
[말 하지마. 모를거야.]
아마 넘치는 내공으로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진짜 미래산퍼렁고양이로봇같은 범용성이네. 나와 종리연은 최대한 주변을 건드리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이동하여 3층으로 올라갔다. 종리연은 아까 와 본 기억이 있어서 인지 금방 방을 찾아서 앞에 섰다. 그리고 내 쪽으로 손가락을 세워 입 앞에 대 보이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오셨군요.”
엄마야. 아까 낮에 점소이 장삼으로부터 마님이라고 불렸던 인물이 초화란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여러개의 촛불과 등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나?
“이 주변을 돌아다니실 때 부터 오늘 오실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혹시 보셨나요?”
“본의아니게, 대모님께서 여러분같은 젊은이들과 연을 맺으실 일이 없는데 찾아오셔서 이상하게 여겼던 터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좀 부탁 드렸지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진룡회 소속 하오문도들을 깔아서 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구만? 수상해 보이니까.
“정신도 온전치 못한 분께, 무슨 볼일이 있으신건지 들을 수 있을까요?”
“…시원치 않으면 베겠다는 뜻일지요?”
종리연이 마님쪽을 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마님이 아직 뽑지는 않았지만 슬그머니 탁자위의 장검을 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한자는 오지않고, 오는자는 선하지않다. 노망난 노인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두시면 안되겠습니까? 저는 어떠한 변화도 원치 않습니다.”
“…저희가, 치료를 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치료요? 하. 온갖 시정잡배들이 치료가 가능하다며 약을 팔고 갔었습니다만 그 중에 단 하나도 제대로 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우리도 종리연이 아니라면 이 치매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었을 테니까. 아, 그리고 아픈사람 있는집에 치료해주겠다고 덤비는 약팔이들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돈이 필요하신거라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묵어가실 곳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묵어가셔도 좋습니다. 대모님은….”
“아니요, 거친방법을 쓰게 되어 죄송하지만 강제로 진행하겠습니다.”
[미안 오라버니. 물러날까 했는데 화란이를 보니 안되겠어.]
마님에게 말을하면서 나한테 전음으로 사과를 구했다. 흠. 어떻게 강제로 진행할 지 알 수 없지만 곱게 끝나진 않을 것 같으니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에 조용히 있어야 겠다.
“문답무용(??無?)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군요. 합!”
마님도 과연 한 수가 있는 고수였다. 들고 있던 검집을 아래로 툭 쳐내면서 튕겨나오는 검병을 잡아채 역수로 잡고서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종리연에게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내가 경고를 날리려 했으나 이미 손날을 세운 종리연의 손짓에 검을 든 팔 전체가 튕겨나왔다. 말 그대로 손짓 한 번에.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여러분을 해하고자 했다면 이미 낮에 끝났을겁니다.”
“일합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싸움도 있지요.”
잠시 숨을 고른 마님의 다시 한 번 기합성을 지르며 종리연에게 달려들었다. 종리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대로 손을 털었다. 뭔가 종리연의 어깨가 움찔거리긴 했는데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크…흡. 큭….”
억눌린 신음소리와 함께 마님은 처음에 우리를 맞이했던 자세 그대로 의자에 날아가 처박혔다. 처박혔다기에는 다소곳한 자세였지만.
“결코 해롭게 하지는 않을테니 지켜보고 계세요. 오라버니는 잠깐만 기다려줘.”
종리연은 의자에 앉아 있는 초화란의 뒤에 가서 섰다. 마님쪽을 흘긋 쳐다봤더니 의자에 앉은 상태로 눈을 감고 기절한 것 처럼 미동도 없었다. 에고 불쌍해라. 지켜보라고 해놓고는 아예 재워버렸구나. 그러게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들으셨어야지.
“화란? 초화란? 자기 이름은 기억해?”
“나는…. 나를….”
눈을 보아하니 초화란의 눈이 완전히 풀려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치매에 걸린 노인네가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아편에 절여놨다. 무림맹의 시설에서 관리받지 못하거나 하면 특히나 더. 이미 사람은 망가졌지만 거죽뿐이라도 높은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고. 그러면 참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내다버릴수도 없고 워낙에 복합적인 사유들이 득시글득시글 하게 엮인 일이니까 이런걸 가지고 간병을 잘 한다 못 한다 그러면 안된다 주변에서 입을 대면 몹쓸짓이다.
“하루에 맨정신이 일다경도 안된다더니 빈 말은 아니었네. 시작할게 오라버니.”
종리연은 한 손을 천령개에 대고 한 손은 머리 뒷쪽의 뇌호혈에 두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웅얼웅얼 하고서는 그대로 양 손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강하게 힘을 준다. 그때 종리연이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처럼 투웅하는 기파가 터져나왔다.
“흐끄으윽! 크허어억!”
“참아 화란!”
“끄으으으으응!”
어우야 사운드가 아주 그냥 지옥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다. 초화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입이 떡 벌어져 침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어머나 세상에 이거 완전 다 죽어가는…. 음? 잘 되고 있는건가?
“끄…으…. 오라…버니…. 내…. 뒤로….”
뒤로 뭘 어쩌라는 걸까? 일단 부르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옆에서 터덕 하는 불길한 소음이 들린다.
“대모님…대모님을 놓아라….”
뭐지? 종리연의 점혈이 그렇게 녹록한게 아닐텐데. 혹시 아까 일어났던 기파 때문인가? 마님이 양쪽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더듬더듬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빨리….”
“크흐윽…. 대모님을…. 어찌할…생각이냐….”
“쿨럽…. 쿫…. 꾸웨에에에엑….”
“대모님…. 대모니이임….”
하하. 이거 개판이네. 내 정신도 아득해진다. 일단은 종리연부터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 들어가는데 어이쿠. 불쑥 눈 앞으로 칼날이 지나간다. 잠깐만 그쪽 대모님께서 지금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신나게 피를 뿜어내고 계시는데 그거 부터 어떻게 좀 합시다.
“못…. 간다아아…!”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부인. 금방 끝날 겁니다.”
“대모님을…. 지키지 못한 죄…. 이렇게 나마…!”
“으억!”
해혈을 제대로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내공이 실리지는 않은, 중년 여인의 춤사위 같은 칼질이 눈 앞으로 날아들었다. 내가 딱히 검을 베운것도 아니라 검을 들고 다니지 않다 보니 마땅히 대응할 것이 없어 그대로 몸을 움직여 피했다.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도 고수가 괜히 고수는 아닌지 마님이 익숙해지면서 칼 끝이 점점 날카로워 지기 시작했다.
“커흛….”
“대모니임…!”
초화란이 부들부들떨며 허공에 휘젓던 손이 푹 하고 떨어졌다. 마님은 그것을 죽음으로 판단했나보다. 그대로 검병을 역수로 쥐고 휘둘러 나를 물러나게 한 다음 괴성을 지르며 종리연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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