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사내들의 계획.
* * *
“히익! 으윽!”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촛물이 움직였다. 깜짝 놀란 찬드라는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찬드라는 신음을 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쇠사슬에 묶인 찬드라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깜짝 놀란 것은 찬드라 뿐만이 아니었다. 귀족 또한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랐다. 그는 해탈이라도 한 듯한 인자한 표정으로 찬드라의 등을 응시했다. 차분한 음미의 시간을 가진 그는 다시 한번 촛물을 떨어뜨렸다.
움찔!
굵은 저음의 신음이 지하실을 울렸다. 귀족이 내뱉은 감미로움의 표현이었다.
“아으으…! 좋구나…! 이 맛이지! 다른 년들은 이런 쪼임이 나오질 못해. 네년은 최고의 좆집이다. 이런 쪼임은 정말이지… 정말 최고야. 깜짝 놀랄만큼…”
낚시꾼의 손아귀에 잡힌 피라미가 최후의 경련을 떨어대듯 움찔거리던 찬드라는 축 늘어졌다. 체념이라도 한 듯 힘이 쭈욱 빠진채 쇠사슬에 늘어져 있는 그녀였다.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
지존은 그리핀을 타고 날아가 버렸고, 두 사내는 맥빠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길리엄의 표정은 프레데릭에 비해 좀 가벼워 보였다. 책임질 것이 적은 사내와 많은 사내의 차이이리다.
길리엄이 먼저 침묵을 깼다.
“먼저… 음… 일단 갑옷을 벗기는게 좋겠지? 날씨가 꽤 따뜻하고… 비가 와서 습하기까지 하구만. 구더기가 금새 끼겠어. 며칠이나 걸릴까?”
“... 이틀? 아니면 삼일 정도 걸리겠군.”
“소 뿔은 단번에 재끼는게 좋고, 좆같은 일은 일찍 끝내 버리는게 낫겠지?”
프레데릭은 길리엄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상당히 심란한 와중이라, 길리엄이 사태의 심각성도 깨닫지 못한 채 실없는 소리나 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어쩌자는 거야?”
“갑옷을 벗겨서, 시체를 묻던지 말던지 정하자는 뜻이지.”
프레데릭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말투가 약간 거슬렸지만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세. 일단 그리 하고 출발하자고.”
루돌프의 시체를 들어 올려 바위에 올렸다. 그 편이 갑옷을 벗기기 수월했다. 목이 뒤틀린 루돌프의 머리는 무게추처럼 대롱거렸다. 갑옷을 벗기려 몸을 들추니 혓바닥이 튀어나왔다.
평소에 말을 참 싸가지 없게 하던 그였다. 입이 문제였던 사람 답게 혓바닥도 추하게 늘어져 출렁거렸다. 하반신을 감싸고 있던 갑옷은 오물투성이였다. 동물이란 으레 죽기 전에 오물을 쏟기 마련이다. 인간도 예외는 없었다. 동물적인 루돌프야 말할 것도 없었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악취를 맡으며 프레데릭이 욕설을 읊조렸다.
“이런 씨발…”
길리엄은 그런 그를 안됐다는 듯 쳐다보며 길가의 모래를 주웠다. 그는 말 없이 모래를 문질러 오물을 닦아내었다.
프레데릭도 그걸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따라했다. 그러곤 갑자기 욕설과 함께 갑옷 조각을 집어던졌다.
“이런 씨발… 씨발… 씨바알! 개! 씨발! 아아아악!”
한참을 씩씩거리던 프레데릭을 뒤로한 채 떨어진 갑옷을 주우러 걸었다. 프레데릭은 그런 그의 배려에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미안하네 길리엄.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이해하니까 신경 끄게. 그나저나 좋게 생각하자고. 우린 살아 있고, 상당한 귀금속, 보석을 얻었어. 자네 계획이 어떤 거였을지는 몰라도… 다른 마을로 도망쳐서 새 삶을 살고도 남는 돈이잖나. 장사를 해도 좋겠고, 음, 술장사를 하면 재밌겠군. 안 그런가?”
길리엄의 말대로 프레데릭이 분노심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루돌프의 죽음 때문이었다.
루돌프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주군을 잃은 기사의 분노와 같은 것일까?
아니, 그런 거라기보다도 좀 더 현실적인 이유였다. 마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지의 아들의 의뢰를 받아 함께 모험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유지의 아들이 죽어 버렸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모험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지 못한 멍청한 루돌프의 탓일까? 물론, 길리엄은 그런 식으로 생각했겠지만 진지한 성격의 프레데릭이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루돌프가 멍청한 의뢰를 했건 안 했건, 자신의 아들을 잃은 유지의 보복이 무서운 것이었다. 그 공포와 함께 자신의 실책으로 인한 실망이 버무러져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꽤 괜찮은 줄을 잡은 김에 이 마을에 터를 내리려 했는데 그 계획 또한 박살나 버렸다. 처자식도 있는 몸이라, 모험가 같은 위험한 일은 이제 그만 접고 싶은 마음도 내심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계속 머리를 쥐어짜니 갑옷 쪼가리라도 집어던지지 않고는 미치고 펄쩍 뛰는 것이다.
“...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때라네. 당신처럼.”
길리엄은 말 없이 프레데릭을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루돌프의 시체를 대강 수습한 뒤 길을 나섰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리핀의 포효가 들려왔는데, 이젠 주변에 무엇도 없는 것마냥 고요했다.
역시나 고요함을 깨는 사내는 길리엄이었다.
“시체랑 함께 가니 꺼름칙한 건 어쩔 수 없구만. 기분이 뭣같을 때는 여자 생각을 하면 좋지. 혹시라도 루돌프 아비 되는 자가 우리를 용서해 준다면 말일세, 그래서 마을에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면 말일세, 내 좋은 곳에 데려가 주겠어.”
프레데릭은 피식, 싱겁게 웃었다.
“이런 말 하면 쬬다 같아 보이고 그러네만. 처 외에 다른 여자를 안는 취미는 없다네.”
“쬬다라기보다는 공처가 같군. 뭐, 그런 거 멋져, 멋지다고 생각한다네. 난 자식도 없고, 아내도 없으니 하루 종일 여자 생각만 하지 않겠나. 그나저나 여자 안을 생각도 없고,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표정이 심상찮더구만.”
“아내 생각 중이었다고 하면 똥 씹은 느낌일테지.”
“...”
그의 말대로 길리엄은 말린 생선 같은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크게 한번 웃고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 생각하기로 했다네. 루돌프가 죽기는 했지만 우린 여전히 살아 있고, 밑천도 두둑히 벌었지. 자네 말대로 술장사나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다른 생각이 문득 들지 뭔가.”
항시 진지함 뿐인 프레데릭이 기쁜듯 말하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길리엄은 프레데릭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청했다.
프레데릭이 다시 말을 이었다.
“루돌프 가문 줄을 잘 잡아서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다 틀린 생각인 것 같지 뭔가. 나는 역시 모험가 체질인 것 같다는 거지. 레옹 드 수숑, 그 사람 쪽 일행이 되고 싶어졌어.”
“그리핀 잡은 건으로 길드에 붙은 그 사람?”
*
진득한 정액을 넘치도록 쏟아냈는데도 지존의 정력은 식을 줄 몰랐다. 지존이 몸을 일으키니 릴리아에게서 정액이 왈칵 쏟아졌다.
릴리아는 온몸에 꿀이 절여진 듯한 달콤함을 느끼며 후희를 만끽했다. 그녀는 자신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신음했다.
그녀가 맛보고 있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성적 쾌감과는 또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애욕을 취하며 살아가는 종족인 서큐버스다. 그녀들에게 있어 성교란 단순히 절정에 달하기 위해 몸을 들썩이는 것 뿐만 아닌 식사 시간이기도 하다.
오랜 굶주림 끝에 마주한 만찬이었다. 릴리아는 포만감과 성적 쾌감으로 충만함을 느낀 채 누워 있었다. 앙상했던 팔다리는 탄력적이고 육감적인 여인의 것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젖가슴은 풍만해지고, 풍만해져서 초원에 불쑥 솟은 활화산 같았다. 잔뜩 발기한 유두는 용암처럼 붉은빛을 뿜어내는 듯 했다.
엉덩이 살도 윤기있고 포동포동하게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영양을 듬뿍 담은 듯한 젖가슴과 엉덩이 사이에 있는 골짜기는 잘록했다. 모래시계가 연상되는 허리 곡선이었다. 그녀를 엎드리게 하고 짐승처럼 그녀를 덮칠 때, 그 허리 곡선은 천국을 향하는 문의 손잡이와 다름이 없었다. 무릇 사내라면 이 감각을 모를 수 없을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지존에게 있어 약간은 건조한 섹스였다. 그녀에게 영양을 공급하겠다는 목적성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달아오른 풍만한 육체를 어루만지며 애욕의 감각을 맛보는 그녀는 어찌나 음란하던지.
지존의 물건은 어느새 불가마에서 꺼내 담금질 하기 직전인 쇳덩이 처럼 되었다. 한차례 정액을 내뿜고도 그처럼 우뚝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은 지존의 넘치는 정력 덕도, 괴이한 복숭아를 먹은 덕도 있겠으나, 역시 릴리아의 육감적인 몸맵시 덕이었다.
탄력적인 살점은 만지면 만질수록 더욱 만지고 깨물고 싶었다. 찹쌀떡처럼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다시금 떡메치는 소리가 동굴벽을 때렸고, 릴리아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안 그래도 넘치는 기력 탓에 열기를 내뿜는 석탄과도 같은데 릴리아의 육감적인 모습을 보니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미친듯 허리를 흔들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또 한차례 절정을 맞이하고 그녀와 함께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밖 그리핀이 내지르는 괴조음이었다. 그 찢어지는 소리에 릴리아는 파랗게 질려 지존에게 매달렸다.
“주, 주인님! 이 소리가 뭘까요? 몬스터라도 나타난 걸까요?”
지존은 그녀를 안심시키고 말했다.
“붕붕이 녀석 참을성이 없구나.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보채는구나.”
“붕붕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붕(?)이라는 새가 있는데 그걸 빗대서 이름 지은 것이다. 그리핀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그리핀이라는 말에 릴리아는 펄쩍 뛸 듯 했는데, 아마 지존이 없었더라면 동굴 깊숙히 뛰어 도망갔을 것이었다.
지존은 릴리아와 함께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릴리아는 입은 옷이 없었기에 지존이 웃옷을 벗어 둘러 주었다. 사람 따위 만날 일 없는 깊숙한 곳이라 의복의 필요 따윈 없었지만 지존의 그런 행동에 릴리아는 더욱 감동했다.
릴리아를 동굴 입구에 세워두고 그리핀이 묶여 있는 곳으로 갔다. 녀석은 자신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 분하다는 듯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릴리아는 그리핀의 날개 소리에 겁을 먹어 웅크렸다.
“붕붕아! 배가 고파 그러냐? 자, 고기 좀 더 먹어라.”
얼마 없는 말린 고기를 던져주니 일순 얌전해지는 듯 싶었다. 녀석은 게눈 감추듯 육포를 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왠걸,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서큐버스가 있는 것이 아닌가.
붕붕이는 미친 듯 릴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릴리아는 너무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붕붕이의 금빛 부리는 릴리아의 두개골을 부숴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두고 볼 지존이 아니었다. 얼른 붕붕이를 가로막고 뺨을 치듯 손바닥을 날리니 붕붕이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 녀석 참! 날뛰긴! 주인 마음도 이심전심 해야 영물이라 할 것인데 영물이 되긴 썩 글렀구나. 붕의 이름이 아깝다.”
주저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는 릴리아를 안아들고 붕붕이의 등에 올라탔다. 그는 릴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긴 말 않겠다. 너는 나를 주인으로 섬기겠다 했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맹세의 증표는 제 아랫배에도 새겨져 있어요.”
“그렇다면 네 주인으로써, 네가 이런 동굴에 근신한 채 살아가는 건 체면이 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너는 정욕(??)을 먹고 사는 존재다. 네가 여기서 살아갈 방법이라는 건, 일전에 네가 나와 동료에게 했던 것처럼 동굴 근처에서 자는 사내의 정을 훔치거나 잡아먹는 것 뿐이다.”
릴리아는 붕붕이를 처음 봤을 때처럼 겁에 질리더니 말했다.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예요.”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만일 그렇게 살아간다면 또 다른 무고한 사내가 목숨을 잃거나 기력을 빼앗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 그렇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