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6화 〉17장 - 마왕성 도착 (186/341)



〈 186화 〉17장 - 마왕성 도착

“마왕 전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마왕성의 끝자락이 보이는 거리에까지 오자 한 무리의 일행들이 마중을 나왔다.
마왕가의 깃발을 높이 들고 번쩍이는 의장용 갑옷을 차려입은  등장한 이들.
아무래도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마왕 전하! 어찌 기별 하나 없이 이렇게 돌아오신 겁니까. 미리 서신이라도 보냈다면 저희가 예를 갖추어 전하를 모셨을 터인데 어찌하여….”

가장 먼저 무척이나 반가운 기색으로 율리아를 맞이하는 인물은 역시나 칼라굴 시종장.
어릴  양친을 모두 잃은 율리아에게는 충직한 신하이기 전에 가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이었다.


때문에 율리아는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서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되었군. 하지만 이쪽 사정도 있으니 너그러이 넘어가주면 좋겠어, 시종장.”
“무슨 그런 말씀을! 마왕 전하의 행동에 있어 어느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늙은 마족이 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천부당만부당 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린다.
역시나 율리아 휘하 충성파 마족들 중에서도 진짜배기라고  수 있는 마족이었다.




“메이로어 재무관도 나왔군. 한창 일이 바쁠 터인데.”
“마왕 전하께서 돌아오셨다는데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 하여 이렇게 부득이 나섰습니다.”
“그대가 고생이 많아. 그동안 자금난 때문에 많이 허덕였을 테지.”
“다행히 마왕 전하의 헤아림으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율리아는 클라우스를 흘끗 쳐다보고서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아는 메이로어 재무관은 괜한 말을 하지 않는다.
즉 자신 덕분에 난관을 극복할  있게 되었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
재무관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정말 마왕성의 재정난은 해결되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무튼 이 남자 덕분에 도대체 얼마나 덕을 보는 것인지.
율리아는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는 마왕성에서 보이지 않던 마족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대는… 엘세 가문의 페르디난트가 아니었는가.”
“넵, 그러합니다. 신 페르디난트 엘세, 마왕 전하를 뵙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대는 중립파에 속한 귀족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왕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허나 그런 제 생각이 무척이나 어리석었음을 알아차리고 뒤늦게나마 동부의 유일한 왕이신 전하께 충성을 다 하고자 마음을 돌렸습니다. 요즘 들어 정세가 심상치 않아 여기 있는 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전하께서 귀환하셨다 하여 이렇게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
“혹 제 과거로 인해 불쾌하셨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사죄를….”
“사죄라니 당치 않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율리아의 말에 페르디난트가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말 위에 오른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왕의 자태는 매혹적이면서도  묘하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뒤늦게나마 내게 와주어서, 나를 믿어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대가 중립파 중에서도 꽤나 유력한 자리에 있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대의 결정 덕분에 이득을 보는 것이 나일 텐데 무엇이 불쾌하고 무엇을 사죄 받겠느냐. 그대는 그럴 필요가 없어. 페르디난트 엘세.”
“그리 말씀해주시니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페르디난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클라우스의 말에 따른 것이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율리아가 보이는 저 얼굴은, 목소리는 단순한 연기 따위가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기뻐하고 있다, 무척이나 흡족해하고 있다.
여태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은  마왕파나 중립파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임에도.
그 중 하나가 자신을 택한 부분에 대해서 과거는 바로 치워버리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점만을 생각하는 그런 태도였던 것이다.

율리아의 나이가 이제 성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혈기 왕성하여 과거의 원한을 쉬이 잊지 못 한다는 걸 본다면.
눈앞에 있는 저 마왕은 그런 부분 따위는 애당초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모두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고생들이 많았어.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왕이라는 자가  자리를 비우고 아카데미로 향했으니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었겠는가.”
“아닙니다, 마왕 전하.”
“다행히도 오는 길 내내 마음도, 그리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대들에게 보낸 선물이 있고, 또한 보여줄 선물도 아주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 말하면서 율리아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직후 그녀의 뒤에 있던 클라우스가 가볍게 말을 몰아서 그 옆에 선다.

“모두들 인사하게. 오늘부터 그대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클라우스네. 다들 알고는 있겠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남부의 악마를.
시종장도, 재무관도, 그리고 그들을 따라 나선 마왕가의 병사들도.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또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대륙 전쟁에서 마족의 대군세를 몇 번이고 격퇴했던 바로 그 인간.
수없이 많은 회유와 유혹 속에서도, 그리고 귀족들의 견제에서도 버틴 남자.
그 클라우스가 다른 이도 아니고 동부의 군주인 마왕을 따른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오직 페르디난트만이 클라우스와 진작 안면을 텄기에 별 다른 변화 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말 위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저들은 자신을 이리 직접 보는 게 처음이겠지만 이쪽 입장에서는 저들 모두가 익히 보고 겪어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외에도 마왕성의 이들에게 소개해줄 이들이 많았지만, 일단은 성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이런 허허벌판에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니까.

“마왕 전하!!”


클라우스 일행이마왕성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성문 앞에 다다른 순간.
 앞에 서있던 우람한 체구의 마족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온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마왕성에 남아 문을 지키던 전사장 헤에타리였다.


“…전사장.”
“아카데미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처음에 그곳으로 향하시며 상상하셨던 그런 곳이 맞았는지요?”
“….”


율리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간다.
원래는 마왕성의  어떤 이보다도  신뢰했던 신하가 바로  전사장이었다.
시종장 칼라굴은 가족과도 같은 사이라고 하지만 나이도 많이 먹었고 무엇보다 무력 부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재무관 메이로어 역시 사무 부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인이지 무장이 아니다.
무력 부분에서  숙부에게 밀리기만 하던 율리아 입장에서는 헤에타리야 말로 가장 필요한 신하이며 또 잃어서는 안 되는 존재, 라는 게 얼마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물론 클라우스에 의해 전사장을 의심하게 된 율리아이기에.
이제는 그런 확실한 신뢰를 받지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마왕 전하?”
“아, 미안하다. 전사장. 그대의 말에 지난 아카데미 생활이 생각나서 말이야.”
“그러십니까? 전하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리 유쾌했던 일만 있던 건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 그랬지.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지. 암, 그렇고 말고.”


율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내 마왕이 기거하는 거대한 성 앞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리니 그에 따라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이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시종장 칼라굴은, 곧 몇 번 본 적이 있는 마족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결코 마왕성에  인물이 아니니까.
하지만 곧 칼라굴은 자신의 눈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깨닫고 말았다.



“아, 아니? 레, 레블랑 가문의 세실리 영애 아니십니까?”



칼라굴의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마왕파 인사들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클라우스를 볼 때보다도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블랑 가문이 누구를 지지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아, 안녕하세요. 세, 세실리 레블랑입니다.”

결코 자신을 반기는 것이 아님을 세실리도 깨달았는지 긴장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원래 왈가닥 기질이 좀 있는 게 바로 레블랑 가문의 막내 딸 세실리인데.
클라우스로 인해 성격이 조금 변한 것을 빼고서라도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마왕파 인사들의 표정은 영 곱지가 않았다.



“그만들 해라. 내 손님이다.”
“마, 마왕 전하?!”
“그대들에게 말한다. 레블랑 가문의 세실리는 내게 정식으로 초대 받은 손님이다. 허니 그녀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율리아가 세실리에 대해서 더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몸을 돌리니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고 만다.
아마 저들 입장에서는 클라우스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세실리의 등장은 거기에 조금  얹어지는  다른 충격거리라고 할까.

안으로 들어선 율리아는 바로 제 집무실로 이동했다.
그곳까지 제 사람들을 데리고 온 그녀는 남은 인물들을 마저 소개했다.
특히 카엘라를 소개할 때는 페르디난트의 얼굴에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대들과 할 이야기가 참으로 많지만 이곳까지 오느라 조금은 피곤한 감이 있어. 해서 자세한 부분들은 내일 오전에 논의하고자 한다.”
“마왕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허면 그대들은 각자의 자리로 물러나도 좋다. 아, 시종장은 새로 마왕성에 들어온 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배정해주면 좋겠어. 다들 중요한 손님들이니 특별히 신경 써서, 마왕의 체면이 잘 서도록 말이야. 그리고 클라우스. 그대는 잠시 남으라. 할 이야기가 있다.”
“명 따르겠습니다, 마왕 전하.”



막힘없는 클라우스의 대답에 마족들이 묘한 눈빛을 보낸다.
그 남부의 악마가, 대륙 전쟁에서 동부에 결정적인 패인이 되었던 그 남자가.
이제는 마족들의 군주인 마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존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다 갔죠?”

문을 닫는 시종장 칼라굴을 끝으로, 클라우스를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율리아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들  것 같군요.”


클라우스의 대답에 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의자의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서는 가볍게 기지개를 켠다.



“때로는 엄청나게 갑갑한 곳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나 여기가 내 집이 확실하네요.”
“당연한 말을 하는군요. 그보다  남으라고 한 겁니까?”
“전사장. 그 남자에 대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파헤쳐야 하니까요. 여태까지 제대로 된 보고가 없었던 걸 보아 결정적인 것은 찾지 못 한 모양이에요.”
“그런 것 같더군요.”
“클라우스, 당신의 말대로 정말 그가 배신자라면 무조건 증거를 찾아서 목을 틀어쥐어야 해요. 감히  등 뒤에 칼을 꽂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고요.”
“….”
“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겠죠. 해서 당신에게 묻는 거예요.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배신의 증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요.”



당연히 있다, 없을 수가 있겠는가.
설사 없다고 해도 이쪽에서 만들어서라도 죄를 만들 텐데 말이다.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는 클라우스는, 사실은 뭔가를 생각해두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실은 그 부분에 있어서 추천할 만한 인재가 있습니다, 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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