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7화 〉8장 - 호환 (虎患) (107/341)



〈 107화 〉8장 - 호환 (虎患)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겠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사령관님께서 거래를 했다는 그 여인이더라고요.”
“정리하자면 그래도 나름 뛰어난 실력자인, 요정과 마족의 혼혈이니 신체적 능력은 나쁘지 않은 여인을. 미처 눈치도 못 채게 아주 순식간에 그냥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압 목적이었기에 간단히….”




크흡. 카엘라의 말에 클라우스는 웃음을 참지  했다.

붉은 독거미의 단장 안젤리카를 어제 밤에 여관 바닥에 그대로 패대기를 쳤단다.
기척을 지우고 은밀하게 다가오기에 허튼 짓을 하려는 자들인 줄 알았다는데.
안젤리카는 다만 클라우스가 떠난 이후에도 누군가가 그의 명령을 받아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자금의 진행 상황을 알리려고 찾아갔던 것이었다.
그런 여인을 카엘라는 냅다 바닥에 메다꽂은 것이고 말이다.


진작 언질을 해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작게 투덜거리는 카엘라.
솔직히 그 부분에 대해서 클라우스도 고민을 하긴 했었다.
카엘라에게 자신이 떠나는 그날 밤에 누군가가 찾아올 테니 준비하라고.


하지만 그는 끝내 제 부관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카엘라 때문에 그랬다기보다는 안젤리카를 의식하여서 그런 것이라고   있다.
그녀 딴에는 최대한 은밀하게 찾아온다고 온 건데 그게 발각되었다.
심지어 눈치조차 못  상황에서 정말 순식간에 제압당하기까지 했다.



‘확실하게 해둬야지. 위계질서는 확실한 게 좋아.’


12년 전 안젤리카의 목숨을 구해주었기에 자신과 그녀의 관계는 확실하다.
하지만 카엘라는 다르다. 그녀는 클라우스의 부관이고 안젤리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리고 안젤리카는 거래 당사자이자 은인이기도 한 클라우스에게만 고개를 숙일 뿐이다.
제아무리 카엘라가 부관이라고 해도 그녀에게까지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고.
동등한 관계가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실제로 둘이 싸우기도 했지.’



결과는 당연히 카엘라의 압승.
하지만 그 둘이 싸우는 바람에 한동안 분위기가 엉망이  적도 있었다.
무리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그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클라우스는 아예 이번 기회에 위계질서를 확실하게 잡아두기로 했던 것이다.

혼혈이라고는 하나 안젤리카에게는 분명한 마족의 피가 흐른다.
그리고 마족은 강함의 척도에 따라 확실하게 고개를 숙이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존중을 받기를 원하는 본응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카엘라는 안젤리카를 순식간에 제압하면서 자신이  위에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었다.

“그래서, 안젤리카가 뭐라고 했지?”
“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이죠. 더해서 말씀하신 일주일보다도 닷새나 빠른 이틀 만에 일이 끝났음에 감사드린다면서 이건 그에 대한 감사 인사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감사 인사라.”

카엘라가 내민 조그마한 주머니를 받아든 클라우스.
끈을 풀고서 안을 살펴보니 그 안에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들이  움큼 들어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꽤나 값나가는 보석으로만 채운 듯 한데.
아무래도 일을 빨리 처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치고는 꽤나 후하게 넣은  같다.

“보석들이군요. 이런 걸 줄 여유가 있다면 사령관님께서 요청하신 자금에  넣어서 보내면 될 것을.”



카엘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찬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게 하나 있으니,  보석은 붉은 독거미의 자금에서 나온 것이 아닌.
순전히 안젤리카 본인의 자산으로 구입하여 보낸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마 붉은 독거미 측이 보낼 수 있는 자금은 그것대로 보내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또 지원을 한 것이겠지.


목숨 살린 값을 벌써부터 제대로 해주고 있는 안젤리카였다.
언젠가  번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조금  이야기를 해봐도 될 듯 싶었다.


“총장과의 면담은 잘 끝냈나?”
“네.”
“뭐라고 했지?”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클라우스는 다시 한 번 푸흡,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의 루스칼 총장은 이전에 있었던 사건사고.
정확히는 클라우스가 귀족 출신의 교수를 반신불수로 만든 것에 대해서 적잖이 놀랐던 모양.
평민이 귀족을 완전히 망가트려 놓은 부분에 충격을 받은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로 인해서 귀족들이 아주 지랄을 해댔으니 피곤했을 법은 하다.

헌데 클라우스에 이어서 그와 같이 전장에서 활약했다는 부관이 조교로 온단다.
당연히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정말 일어나면 그거 또 처리하느라 자신이  흘리면서 뛰어야 하니 조용히 지내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카엘라. 조교 생활에 들어 가기 앞서서 확실하게 말해둘 게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령관이라고 여기고 있지.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만 일개 교수일 뿐이다. 전쟁 영웅이긴 했으나 그것도 이제 5년이 훨씬 넘은 시점의 일이야. 대부분의 생도들은 전쟁 경험도 없는 애송이들이고. 그걸 꼭 인지해두었으면 한다.”
“….”
“내게 그들이 어떤 무례를 저질러도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할 수 있겠나?”


무례를 저지른다, 눈앞의  남자에게 말 그대로 애송이인 놈들이 그런 짓을 한다.
그렇게만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한 카엘라였다.


클라우스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마족들의 밑에서 노예로 부려지거나 이미 다 죽었을 놈들인데.
어떤 부분으로 봐도 전혀 대우하고 싶지 않은 놈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런 놈들의 무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야 한다니, 이건 정말이지 고문과 다름이 없었다.



“할 수 있겠나, 카엘라 티거?”


클라우스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카엘라를 압박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곁에 불러와줬다.
대신 여기에서 지켜야 할 것들은 반드시 지키면서 지내라.
설사 상대가 나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여기서 나는 전쟁 영웅이라기 보다는 교수일 뿐이다.
클라우스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 호칭도 생도들 앞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알겠나?”
“…네, 클라우스 교수님.”




알겠다는  완전히 수긍하는 카엘라였다.
기본 교육까지 전부 마친 후 클라우스는 그녀를 데리고서 강의실로 이동했다.
마침 오늘 전투 마법 강의가 있었기에 이참에 아예 정식으로 그녀를 소개할 참이었다.


“그리고, 그 안대.”
“네?”
“언제까지 쓰고 있을 생각이냐.”
“아, 이건….”
“그만 벗어. 눈 다친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쓰고 있으려고 하는 거냐.”


이유를  알면서도 클라우스는 짐짓 모르는 척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말에 카엘라는 알겠다는 듯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어냈다.
그러자 예쁘게 반짝이는 카엘라의 노란빛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 훨씬 좋네. 왜 그런 예쁜 눈을 가리고 다녔던 거야.”
“…사령관님께서…”
“내가 뭘.”
“아닙,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눈이 멀쩡한데도 카엘라가 굳이 안대를 쓰고 다녔던 이유?
실은 클라우스가 그녀에게 했던, 반은 장난에 나머지 반은 실험으로 했던  때문이다.

보아하니 네가 안대를 쓰고 다닌다면 훨씬 더 강해보이는 인상이  것 같다.
클라우스는 대륙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그런 말을 카엘라에게 했었다.
그 말을 들은 카엘라는 며칠 뒤 어디선가 정말 안대를 구해서는 쓰고 다녔다.
눈을 다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더 강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녀는 다만 클라우스의 말에 그런 걸 선호하시는 건가? 하면서 최대한 애를 쓴 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괜한 말을 해서  전투 능력을 떨어트리는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호랑이 수인답게 그녀는 안대를  채로도 어렵지 않게 전투에서 활약했다.

무엇보다 정말로 안대를 쓴 모습도 묘하게  어울려서 그냥 두기도 했었다.
눈앞의 미녀가 자신에게  보이고자 노력한 모습인데 장난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안대도 충분히 잘 어울렸어.”
“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카엘라, 네 그 예쁜 눈이  가려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대륙 전쟁 당시야 그게 강인한 느낌을 주기도 하니 말은 안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카데미에서는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사령관님께서, 아니 교수님께서 걱정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 약속 부디 오랫동안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은 채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면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서 카엘라가 모습을 드러내니 조용하던 강의실에 일순간 웅성거림이 퍼진다.


“여러분, 오늘부터 저를 도와서 강의 진행에 도움을  조교입니다. 저번에 다들 한 번  적이 있을 겁니다. 물론 그 때는 외부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아카데미의 사람인 거죠. 카엘라? 생도들에게 자기소개  번 부탁드립니다.”
“카엘라 티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전사답게 담백하고 깔끔하게 인사를 끝내는 카엘라.
딱히 그녀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생도들은 조금 신기해하고 말았지만.
카엘라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율리아나 얼굴을 마주했었던 나타샤는 ‘으엥?’ 하는 반응이었다.

‘안대가 없어졌어?! 눈 한 쪽 다친 거 아니었어?! 하고 생각하고 있겠지.’

안타깝지만 카엘라의 눈은 멀쩡하다고, 이 여자들아.
그렇게 생도들에게 카엘라를 소개한  강의에 들어간다.


조만간 또 대련을 하는 시간이 다가올 터인데  때 카엘라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클라우스 본인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다 챙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때 수인 중에서도 최고라는 호랑이 수인, 카엘라가 봐준다면 분명 좋을 게 확실하다.



“신체를 움직이면서 동시에 마법을 사용할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강의를 진행하던 클라우스는 정확히 두 여자의 눈빛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눈치 챘다.
하나는 세셀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리르.
공통점이라면 둘 모두 얼른 클라우스가 자신을 어떻게 좀 해주었으면 한다는 것.

다른 점은 리르는 지금도 흠뻑 젖어있을 제 음부를 쑤셔달라는 것이고.
세실리는 일단 엉덩이부터 찰지게 때려줬으면 한다는 것이리라.




원래라면 당장 리르부터 불러서 약속을 지키는 게 맞을 것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리르는 정말 율리아를 밀착 경호한 모양이다.
아예 일지까지 작성해두었는데 그녀를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생도들의 이름까지 모조리 다 적어둔 것이었다.



‘정말 엄청 고픈 모양인데.’



리르에게  미약은 자신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스킬까지 동원해 만든 것이다.
더해서 최면 스킬까지 쓰면서 철저하게 고문을 가했고 정신을 망가트렸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물건에 박히지 않으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요 며칠 한 번도 박아주지를 않았으니 지금 그녀의 상태는 며칠 동안 물 한 모금조차 먹지 못 한, 그야말로 갈증이 나서 죽기 직전의 상태라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인내심을 길러야지, 리르.’


박히고 싶다고 냉큼 불러줘서 박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당장 카엘라도 인내심 기르기 훈련을 멋지게 통과하지 않았던가.
리르도 상을 받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상을 받아야 하는 이는 카엘라였다.

“카엘라 조교.”
“네, 사… 교수님.”


강의가 끝난 후, 클라우스는 카엘라에게 다가갔다.
마침 다른 여인들은 곧 다른 강의가 있으니 시간도 빈다.
바로  때 우리 귀여운 고양이에게 상을 내려줄 시간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 방으로 가지.”




참고로, 클라우스가 말하는 방은 카엘라에게 지급된 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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