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7 NTO
1.
도시 내부의 전투가 격화될 때마다 세레스는 네토루가 걱정이 되었다. 상황이 안 좋은 만큼이나 그 남자가 어떻게 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잔뜩 무리하고 있겠지.
세레스가 네토루랑 헤어질 때 영웅 노릇 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은, 이제 대충 네토루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도.
물론, 세레스 앞에서는 티를 안 냈지만 말이다.
가끔은 허세 부리지 않고 약한 척 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게, 세레스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이윽고 전투가 끝나자,
부대에서 차량을 타고 도시로 가는 길.
세레스는 아스나에게서 전달받은 소식에 눈을 슬며시 감으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걱정했던 게 현실이 되어버린 듯했다.
도대체 얼마나 무리했으면, 마력 탈진으로 피를 토하며 기절까지 했을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네토루가 그랬다고 하니, 쉽게 상상이 안 된다.
여기사를 제멋대로 다룰 정도의 사내다.
그런 사내가 마력 탈진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건 그만큼 격렬한 전투를 반복했다는 거겠지.
‘···바보 같은 남자.’
게다가 듣자 하니 마지막에는 사람 하나 구하려고 잔뜩 무리한 듯했다. 그래서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하고 그렇게 된 건가. 나참···. 그렇게 무리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오버 히트만큼이나 마력 탈진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정말 폐인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레스는 네토루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옷자락을 꼬옥 쥐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도시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네토루가 많이 걱정돼?”
아스나가 문득 그런 질문을 던졌다. 세레스는 그런 아스나를 잠시 흘겨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스나는 살포시 웃었다.
그것은 어딘가 흥미로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미소였다.
“세레스,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그새 사이가 많이 좋아졌나 보네. 내가 393부대에 오고서 네가 그렇게 파트너를 걱정하는 건 처음 봐.”
“···그런가요?”
“궁금하면 거울을 봐. 그러면 너도 알 테니까.”
아스나의 말에 세레스는 무의식적으로 차량 거울을 바라보았다. 방금 막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거울 안.
“······”
그곳에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자색 머리카락···. 자색 눈동자···.
분명 자신의 얼굴이 맞는데, 세레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눈꼬리부터 평소보다 처져 있는 것이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런 세레스를 보며 아스나는 넌지시 말했다.
“이제야 겨우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찾았나 보네.”
“···마음에 맞는 파트너요?”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런 얼굴을 할 리가 없잖아. 특히나 남자를 꺼리는 네가 말이야.”
그런 얼굴이라···.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동안 생각에 잠기던 세레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적어도 이제는 전처럼 마냥 싫지는 않네요.”
어쩌면 파트너를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신기한 일이었다.
언제 이렇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 걸까. 그 남자와 커플링 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정말이지···. 이런 내가 낯설다.
그렇게 한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구경하였을까. 이윽고 차량이 드디어 도시 내부로 진입하였다.
도시 안의 풍경은 처참했다.
그렇기에 세레스는 폐허로 변한 거리를 보며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기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알던 도시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여기가 프라시온?”
순간 다른 도시에 왔나 싶었다. 하지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반파된 시계탑이 여기가 프라시온이 맞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어떤 전투가 있던 걸까.
솔직히 말해서 세레스는 버그들에게 공격당한 도시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에 기사단에 있을 때도 간간이 전투 자료나, 신문에 실린 사진만 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스나의 차량이 도시 안쪽으로 진입할수록 성기병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는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더니, 차마 옮기지 못한 사람들의 시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아···.
세레스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건가.
덕분에 그녀는 납득하고 말았다.
어째서 그 남자가 그렇게 무리한 것인지.
어쩌면 이러한 도시의 풍경을 보기 싫었던 게 아닐까. 자기 몸을 그렇게 혹사시켜서라도 말이다.
비소리가 처연하게 울려 퍼지는 도시의 모습은 어딘가 불쌍하고 외로워 보였다.
이러니까 왠지 빨리 그 남자를 보고 싶어졌다.
그 남자의 상태가 어떤지 보지 않으면 이 초조함을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자, 도착이야.”
그렇기에 차량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세레스는 다급하게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대원들이 안에 있었기에, 그의 병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서 바쁘게 복도를 가로지른다.
그렇게 네토루, 그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였다.
───드르륵
세레스가 도착하자, 누군가 먼저 병실 문을 열고서 빠르게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나츠오?”
무심코 이름을 넌지시 불러보았지만,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소년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세레스의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에 세레스는 차마 그런 소년의 뒤를 잡지 못했다.
2.
뚝 뚝 뚝···.
빗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카렌은 어느새 사라져버린 나츠오의 기척을 느끼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몇 번을 닦아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왠지 알면 안 되는 걸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나츠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충격이었을까? 아니, 차라리 단순히 거짓말만 했던 거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방금 전에 보여준 나츠오의 표정은 정말···.
그건 카렌이 알던 나츠오가 아니었다.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겁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카렌이 알던 기존의 나츠오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비겁하게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게 카렌이 알던 나츠오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겨우 한 달 뿐이었는데 나츠오가 이렇게 된 건.
사실 조금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나츠오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실제로 방금 녀석이 말했던 대로 정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시계탑에 있던 거라면, 카렌은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끝내 거짓말을 들키자,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비겁하게 도망쳐버렸다.
자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이렇게 되었는데···.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듯한 그 모습은 정말,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 서투른 거짓말을 할 바에 차라리 용서를 비는 게 나았을 텐데. 차라리 네토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좋았을 텐데.
아니···.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사과하면 좋을 텐데.
여전히 빗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훌쩍이던 카렌은 그저 멍하니 네토루를 응시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건지, 의식이 없는 네토루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네토루도 원래는 이렇게 얌전한 표정을 할 줄 알던 남자였던 걸까.
덕분에 뭔가 이대로 네토루가 계속 이러고 있을 거 같아서 카렌은 두려워졌다. 얼른 평소처럼 뻔뻔한 얼굴로 일어나서 걱정 말라고 해주면 좋겠다.
그러한 상상을 하며.
그렇게 그를 얼마나 하염없이 바라보았을까.
다시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나츠오가 뒤늦게 사과라도 하러 온 걸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카렌. 방금 나츠오랑 무슨 일 있었나요···?”
세레스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문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세레스가 보였다. 카렌은 울먹이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그런가요.”
다행히 세레스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단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올 뿐. 그렇게 네토루의 앞에 조용히 선 세레스가 물었다.
“네토루의 상태는 어떤가요?”
“···모르겠어.”
카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도 의사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외상이면 모를까.
성기병 파일럿의 치료가 힘든 건 이래서였다.
마력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부상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마력 신경이라는 것은 남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누군가 손을 댈 수도, 볼 수도 없는 형체가 없는 의사 신경이었다.
그렇기에 몸 상태를 정확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었다.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유독 오버 히트나 마력 탈진이 적은 건 이래서였다. 경험이 쌓일수록 자기 몸을 어디까지 사용해도 되는지 잘 알게 되니까.
···그렇기에 카렌은 더욱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도 자기 몸에 잘 알 텐데도,
네토루는 나츠오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에도 망설임 없이 몸을 혹사했다는 거니까.
3.
나츠오는 병원을 나와 미친 듯이 달렸다.
하늘이 뿌옇다. 빗물이 강하게 몸을 때린다. 내려치는 천둥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비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아직도 도시 안에는 여전히 사람과 버그의 피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누군지 모를 핏물. 무너진 건물 잔해. 버그들의 끈적끈적한 살점 덩어리들.
그러한 것들을 짓밟으며 나츠오는 계속 달렸다. 이렇게라도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이러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왜 나는 거기서 거짓말을 했던 걸까.
차라리 카렌에게 모든 걸 털어놨어야 했는데. 그녀에게 미움받더라도, 그것이 옳았는데.
깊은 후회감이 가슴을 저며내고 있다. 소년은 그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저 앞을 달렸다. 악을 지르며 달렸다. 그러다가 끝내 나츠오는 골목길에 도달하며 다리를 멈추었다.
소리 없는 비명이 가슴에서 울어나온다.
나츠오는 울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
여기라면 아무도 없다.
그 사실에 안도하듯 나츠오는 그대로 멍하니 빗물에 맞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비를 맞고 있었을까.
뚜벅뚜벅
별안간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꼬마야. 왜 울고 있니?”
한 여인이 나츠오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고는 넌지시 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홀로라이브박사님, 천율님, 사라말아이솔님 후원 감사합니다!
삽화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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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라이브박사님─2000코인
천율님─10코인
사라말아이솔님─100코인
)
이건 선호작 1만 기념 프롤로그 삽화입니다! (카렌이 네토루 뺨 때리는 장면)
앞으로 삽화가 18장 더 추가될 예정이며,
다음에는 세레스 그림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참고로 삽화는 solresi님이 그려주시고 있습니다! 퀄리티 아주 굳입니다!
참고로 현재 올린 삽화는 프롤로그에도 올라가 있으며, 이건 내일 새로 연재되면 삭제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못 보신 분들이 있을까봐 임시로 올리는 겁니다.
어쨌든 이걸로 제 통장 잔고는 다섯자리가 되었군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