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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25화 (25/148)

EP.25 복귀

“…네토루, 어젯밤에 했던 그거,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결연한 카렌의 얼굴, 그걸 보며 네토루는 생각했다.

부대원들에게 이야기를 듣자 하니 나츠오라는 녀석은 상당히 무모한 성격이라던데,

이 아가씨도 그런 성격이 옮겨진 것일까.

부대원들을 위해 제 몸 아끼지 않는 무모함이 좋게 보면 성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보면 미련하기까지 하다.

어디 애니메이션 속 정의감 강한 열혈 캐릭터도 아니고, 이게 무엇인가.

‘…뭐,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첫 커플링 때부터 그 꼴을 겪었으면서, 다시 선뜻 다가온 것도 그렇다.

무모하고, 미련하고, 성실하고….

그야말로 빨리 죽기 좋은 캐릭터다.

세상의 본질이 그렇다 보니, 사람 역시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 속성을 띄고 있다는 걸까.

네토루는 카렌을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방금까지 어젯밤 일로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서,

카렌의 검은 눈동자는 어느새 조용한 호수면처럼 고요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 뚜렷한 의지표명에 네토루도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카렌. 괜찮겠어?”

“…그건.”

대답을 강요하듯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입술을 달싹이던 카렌이 결국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말하고 보았지만, 어딘가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망설임도 잠시,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리 말한 카렌이 힐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지도 안에는 부대원들과 버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장거리 포격형을 뒤로 한 채 밀려 들어오는 버그들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일 것이다. 한 치의 실수가 곧 죽음과 직결된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이상 살아 움직이는 표적지와도 같다.

그렇게 하염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던 카렌이 나직이 말했다.

“부대원이 4명이나 죽었는데 내가 꼬맹이도 아니고 겨우 입맞춤 정도야…. 굳이 못 할 것도 없잖아. 오히려 안 하면 멍청이지.”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무미건조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혼자 부끄러워하며 궁상떨던 소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덕분에 그제야 네토루는 한 가지 인정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라고 해도,

카렌 나름대로 이 빌어먹을 전장에서 3년 넘게 버텨온 성기병 파일럿이라는 걸 말이다.

지금껏 많은 버그들과 싸웠을 테고,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을 것이다. 식당에 붙여진 사진들처럼.

그런데. 카렌,  이 녀석이 한 가지 오해하는 게 있다.

“그런데 카렌. 미안하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뭐? 자, 잠시만!”

생각지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카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조종석에서 일어날 것처럼 몸이 들썩였다. 흐트러지는 커플링 파장이 카렌의 동요를 잘 알려주고 있었다.

“네토루! 그러면 설마 못 하는 거야?”

“글쎄. 나름 가능하다면,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니, 이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뻔뻔하게 말장난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가능하다는 거야, 불가능하다는 거야?”

이도저도 아닌 대답에 화난 걸까. 이글거리는 카렌의 눈빛이 제법 매섭다. 그렇지만 딱히 무섭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가운 느낌이다.

역시 진지한 카렌보다는 이런 카렌이 좀 더 낫다. 문득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며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 될 텐데, 그 짧은 시간 안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으로 그건 무리지.”

“…그건, 그렇지.”

카렌도 그제야 그걸 깨달았는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겉으로는 차분한 척, 결연한 척했지만,

부대원이 죽었다는 사실에 속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어서 제대로 생각을 못 했을 게 뻔하다.

애초에 오버히트가 그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있나.

그러니 ‘치료’가 아닌 다른 방법을 써야했다.

“그래도 네가 정말로 싸우고 싶다면 그렇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카렌의 눈동자가 옅은 기대감이 떠올랐고, 네토루는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내가 해줄 건 치료가 아니야. 오히려 도핑에 가깝지.”

“……도핑?”

“네가 원한다면 어떻게든 이번 전투는 수행할 수 있게 해줄게. 하지만 전투가 끝나면 곧바로 어제보다 심각한 오버히트가 찾아올 거야. 그래도 할 생각이야?”

“……”

오버히트는 단순히 이마에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수준이 아니다. 그야말로 불길에 휩싸이는 듯한 괴로움이다.

당장 어젯밤에 겪었던 일이니, 그 고통을 상기하듯 카렌이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곧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알겠으니까, 해줘.”

“그래. 그러면 커플링부터 해제한다.”

“응.”

네토루는 카렌의 조종간을 놓았다. 그러자 성기병과 커넥팅을 해제한 카렌도 조종석에서 일어났다. 키스를 하려면 서로 일어서서 마주 볼 수밖에 없다.

“…방법은 어제랑 똑같은 거야?”

카렌이 쭈뼛쭈뼛한 몸짓으로 다가오더니 묻는다. 네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간단하지?”

“…간단하기는 무슨.”

나름 농담이었는데 카렌은 새초롬한 눈빛으로 흘겨보더니 모든 감정을 내려놓듯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마치 맘대로 하라는 것처럼.

“그럼, 잠시 실례.”

허락을 구하듯 그리 말한 네토루는 거리를 좁히며 카렌의 허리를 휘감았다.

어제 몇 번이나 만졌던 몸이지만, 여전히 새롭다. 몇 번을 경험해도 카렌의 얇은 허리와 굴곡진 골반은 결코 질릴 일이 없겠지.

“자, 잠시만…. 이건 너무 가깝지 않아?”

“이제부터 입도 맞출 건데 겨우 이 정도로 뭘.”

“…으으.”

밀착된 몸과 허리에 걸려오는 손길이 아직은 낯선지 카렌이 몸을 떨었지만, 그것도 잠시.

“…알았어. 대신 똑바로 해야 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카렌은 알아서 살짝 발끝을 들어주며 자세를 잡아주었다.

다가오는 깨끗한 얼굴. 옅은 분홍빛 입술과 수려한 턱선. 예술 작품을 보듯 찬찬히 살펴보고 있자니,

카렌의 긴 속눈썹이 긴장한 듯 떨리는 게 보였다.

어째서일까. 네토루는 그 모습이 왠지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연약한 날갯짓처럼 보였다.

…사실 카렌에게 말하는 걸 빼먹은 게 있는데,

비록 좀 오래 걸리겠지만 뭐 어차피 다시 오버히트 상태에 빠지면 ‘치료’ 해주면 그만이다. 네토루는 단지 카렌의 각오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만약 이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튼,

네토루는 지금 순간을 즐기듯 카렌의 허리를 천천히 당기며,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혔다.

───.

이윽고 카렌과 입을 맞추고, 그 달콤함을 즐길 여유도 없이 네토루는 접속한 카렌의 마력 신경계를 강제로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과 신경을 자신의 마력으로 덧씌우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2.

리엔 사령관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까.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그러면 두 사람만 믿고 있겠습니다.

키스의 여운을 즐기는 것도 잠시, 얼마 기다리지 않아 리엔의 목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당연하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버그들이었다.

움직임이 관측되자 393부대원들이 그에 대응하듯 각 소대가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토루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신속히 움직였다.

포인트 306 ─ 언덕 지대.

──콰아앙!

이윽고 그곳에 도달하기 무섭게 공기를 뒤흔들며 연달아 포성이 울렸다. 뿜어지는 굉음이 충격파가 되어 주변의 풀과 나무를 흔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포격이었다.

적성체와 격돌한 지점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포성은 멈출 기세가 보이질 않았다.

거리상 30km 안팎은 사실상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공격 범위였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멈추지 않는 포성 속에서 은밀하게 주변 지형을 가로지르던 네토루는 무의식적으로 스크린에 표시된 부대원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다행히 포격에 맞은 부대원은 없는 듯했다. 다만 여유로운 건 아닌지 움직임이 바빠졌다. 질서 있던 움직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무서움은 단순히 사정거리와 화력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버그라도 그곳에 적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화력을 투사하는 무자비함이었다. 녀석들에게 동료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싸우기 위해 공장에서 만들어져,

생명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생존본능 따위는 철저하게 적출된 채,

총과 포로 무장한 생체기갑병기.

그게 바로 현 세계에서 인류를 밀어붙이고 있는 버그들의 정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주된 특징은 적을 죽일 수만 있다면, 같은 버그들도 적과 함께 날려버리는 잔혹한 공격 방식이었다.

이윽고 포인트 306의 언덕에 거의 다 올라갔을 때였다.

──스으으윽!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하나 없던 탓에 신속하게 나아가던 네토루가 성기병을 돌연 멈춰세웠다.

비록 후방이 무방비하게 뚫려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의 주변에 호위 병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까지 전투 없이 도착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야겠지.

─키리리릭!

─키이익!?

네토루가 멈춰서기 무섭게 땅바닥을 뚫고서 징그러운 형태의 생명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0m 정도 되어 보이는 기다란 몸통,

수십 쌍의 절지 다리,

거무칙칙한 색깔의 단단한 갑각.

리엔의 관측을 피해 땅밑에 숨어 있던 커다란 지네 ─ 침투형 센티페드들이었다.

그 숫자는 제법 많다.

하지만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것들로 앞을 막아서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바로 근처에서 울려 퍼지는 포성이 시끄럽다고 느끼며, 이 앞에 있을 장거리 포격형 스파이더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네토루. 이 정도는 가능하지?”

커플링 때문에 그 순간 연결된 감정과 생각을 읽은 것인지, 당당하면서도 뻔뻔하게 그리 말하는 카렌의 태도에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7월 되면 담배 공장? 회사? 아무튼, 가서 열심히 포장질 할 예정입니다. 아마 일일 연재는 요 며칠간이 끝일 듯 합니다.

슬슬 생각해둔 1권 분량이 끝나가네요.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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