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142화
* * *
2호점 오픈 전 행사는 그렇게 거하게 마무리됐다. 사실은 내 퇴원식이긴 했지만.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만취 상태의 여자들 사이에서 눈을 뜬 나는 그 보드라운 살결들을 하나하나씩 만지며 어젯밤의 화려한 정사를 떠올렸다.
특히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벌거벗은 모습은 천사가 잠자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쌔액 쌔액
갓난아기처럼 곯아떨어진 나의 뮤즈들.
나만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멀쩡하게 출근을 할 수 있는건 나뿐이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왔더니 소민이 내 방앞에서 팔짱을 끼고 난교파티의 흔적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어, 소민아... 안녕?”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고 그녀 역시 날 발견하곤 고개를 까딱했다.
다니엘도 뒤이어 나왔다.
“우와 우리 준현 씨 어젯밤에 힘 깨나 쓰셨겠네요. 퇴원하면 안정을 찾아야될텐데 하루를 안 쉬고 열일하시는 준현 씨.”
“...”
“고생하셨을까봐 고깃국 끓여놨어요.”
“원래는 그레이스가 차리는데. 어? 그러고보니 그레이스... 저기서 저러고 있네요. 너무 무방비 상탠데 저거... 건드리신건 아니겠죠?”
“절대요. 저는 어제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후후...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성스러운 오일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잠깐만... 성스러운 오일이라... 재료는 그레이스의 생리현상에 의한 추출물이라고 했다. 처녀의 피. 다른 여자도 아니고 오로지 그레이스의 피가 필요하다는 소리는 그만큼 그녀의 피가 고결하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그 날 내 의식이 날아간 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근데 그레이스가 처녀를 잃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최악은 아니겠지만, 성스러운 물건들을 더 이상 만들어낼 수 없겠죠.”
“요 며칠 그 성스러운... 물건들을 계속 복용을 하고 사용하기도 해왔는데요. 어쩌면 의식을 잃은게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이번에는 관심이 좀 생겼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 앉은 소민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은 무언의 의식교환을 나눴다. 무슨 뜻일까? 소민이 이곳에 온 것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의식을 잃기 전 일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예... 조금?”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적나라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제가 그레이스 씨에게서 특이한 문제점을 찾아냈는데 그걸 해결하려다가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까 거길 만지셨겠군요.”
“... 넵.”
죄 지은 느낌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고 있는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말한다고 한들 믿게 만들 자신도 없었고 여전히 창피한건 창피한 얘기기도 했다. 다니엘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옆에 소민이 있어서 더 창피함은 더 심했다.
“흠... 우선 그레이스 수녀님의 특이한 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준현 씨에게 그레이스 수녀님의 처녀를 앗아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그녀를 보호하기 이전에 준현 씨를 보호하려는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레이스 씨의 처녀막 근처에는 보호막이 있습니다. 천사 혹은 신의 가호를 받는 것이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말하려다가 그럼 내 능력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건지에서 멈추고 말았다.
사실 이미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많이 행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제 그 능력마저도 잃어버렸다.
“그레이스 수녀님이 고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아직 수녀가 되기도 전이었죠. 남자애들이 그레이스 수녀님을 집단으로 강간하려는 사태가 벌어졌었죠.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강간을 하려했던 남자들은 전부 기억을 잃은채 그곳에서 쓰러졌습니다. 준현 씨처럼 의식을 잃은 정도가 아니에요. 아예 갓난아기처럼 모든 기억이 말소 되어버렸죠. 그만큼 그레이스 수녀님을 지키고 있는 수호천사의 능력이 강하다는걸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준현 씨가 의식을 잃은 정도로 끝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 여자랑 나를 같은 침대에서 자게 만든 당신은 대체...
날 시험하려고 했던 거라면 정말 나쁜 새끼인 거다. 시발, 내가 무슨 돌부처도 아니고.
“하지만 그 때문에 준현 씨한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네요.”
“그 사실을 알게 돼서 다니엘 씨가 얻은게 도대체 뭡니까?”
내가 화를 내면서 말하자 다니엘은 생긋 웃어보였다. 한 대 때리고 싶다, 정말로.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의식을 잃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죠. 아까 말씀하셨듯이 부작용에 관련된 겁니다.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부작용이 생기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준현 씨한테 뭔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뭔가 있다..?”
얘기가 여기까지 나오고서야 비로서 옆에 있던 소민도 입을 열었다.
“저는 얼마 전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악마가 나오는 꿈이예요.”
“악마..?”
나는 얘기를 들을수록 미궁에 빠지자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쳐다봤다.
“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자세한 사항을 확실하게 말씀드리기에는 이른 타이밍인 것 같네요. 하지만 오늘 저희한테 이런 얘기를 해준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됐습니다!”
“????”
“오빠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완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저는 그러기 위해서 여길 온 거구요.”
역시 소민이 여기 온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내가 능력을 잃은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젠장.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내 몸에서.
*
출근을 한 나는 최원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2호점 직원들이라고는 해도 많은 인원이 출근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거다.
“어제 회식을 했다고? 하...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적당히라는 걸 알아야되는데 말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고삐가 풀리면 정말이지 참질 못한다니까. 으하핫! 근데 괜찮아, 괜찮아! 나도 아주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무슨..?”
“우리 마누라가 임신을 했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지.”
“와,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잖아요?”
“그치, 그치. 그러니까 오늘은 아예 문을 닫아버릴까하고.”
“예?”
“나도 집에서 놀게. 축하 파티라도 열어야겠으니까. 아니면 준현이 너 혼자라도 샵 볼래? 아참... 너 몸은 좀 괜찮냐?”
“아, 예...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오랜만에 너 혼자서 샵 좀 봐줘라! 있잖아. 장영업이라는 게 그런거야.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거든. 갑자기 직원들이 파업을 해버리면 혼자 남아서 일처리를 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고 말이야.”
상관은 없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능력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충분히 주기 어려웠다. 분명히 오늘 스케줄 펑크가 나는 바람에 클레임도 들어올텐데 응대를 어떻게 해야할지 암담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그래서 날 불렀다고?”
“나는 또 왜...”
SM여제 한서연과 욕 박기 좋은 김유진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을 튼 적도 없어서 서로의 얼굴을 향해 시선 한번 던져주지 않고는 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한테 지금 일을 하라고?”
“미안해요. 달리 부탁할 데도 없어서.”
“흥, 그렇게 말하면 할 수 없지만. 이 사람은 누구야?”
“김유진 씨에요. 저희 VIP 고객님이시고요.”
“고객님한테 일 시키는 사람은 정말 당신뿐일 거야...”
김유진은 화를 내려다가도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한서연이 나한테 치욕을 주는걸 좋아하고 나는 그 치욕을 받아들이는 한편, 김유진은 나한테 치욕을 당하는 쪽이었으니까.
“싫으시면 돌아가셔도 좋겠습니다만... 이곳까지 찾아와주셨으니 두 분 다 절 도와줄 생각으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건 그래.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기품있는 맵시에 당돌한 한서연. 그녀는 긴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에 비하면 김유진은 한 없이 모자란 여자였다. 그러나 궂은 일만큼은 김유진이 제일 잘 해낼 것이었다.
한서연은 카운터에서 고객을 응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김유진은 내 서브역할을 맡았다.
“여보세요? 네... 네... 근데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는거 아니에요? 저희도 다 이쁨받고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이에요. 네, 네. 그런데요? 어디 와서 그딴식으로 말해보시지? 어, 그래. 한번 붙자, 이 새끼야. 일루와, 썅놈의 새끼.”
타악
“하... 진짜 서민들의 삶은 이런 거구나. 오늘 마사지 안 받으면 죽냐? 참내.”
“... 참으세요.”
“그래야지. 뭣하면 환불하라고 해. 내가 다 메꿔줄게.”
이보다 더 든든한 소리가 있을까. 자기 지갑을 열어서까지 함부로 하는 고객들에게 맞대응을 하겠다는 한서연. 서비스로 따지면 최하의 평점을 받겠지만, 나중에 실장들이 받을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대응이었다.
서비스업자들도 결국에는 사람이다. 갑자기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못 나오게 되면 너그럽게 봐주는 자세도 필요한 거다. 한서연이 원하는 고객의 태도는 그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규 가입을 원하는 여자 고객이 하나 들어왔다.
“저 새로 가입하고 싶은데요.”
“돈 많아요?”
“네?”
“돈 많으시면 VIP로 받으시는걸 추천드릴게요. 여기 일반 마사지는 형편 없어서요.”
“아...”
“근데 잘 봐요. 예뻐지고 싶어서 오는거예요? 아니면 그냥 한시간 기분 좋아지려고 오는 거예요.”
“예뻐지려고..?”
“그러면 무조건 VIP해야지. 지갑 여는만큼 예뻐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내가 장담할게요. 나 여기서 마사지 받고 얼굴윤곽 잡히고 허벅지살이랑 아랫배 쏙 들어갔어.”
“정말요?”
“그럼. 식단조절 1도 안하고 이만큼 됐다는건 마사지 때문 아니겠어?”
“와... 근데 정말 미인이세요... 정말 관리 하나도 안하고 마사지만 받으신 거예요?”
“물론 VIP 중에서도 VVIP로 받았지. 나 여기서 마사지 받고 광고모델 제안이랑 협찬 잔뜩 받았다? SNS에서도 인증했는데. 나 팔로워 20만 넘어요. 자기 SNS 하나?”
“아, 예... 하고는 있어요. 소소하게?”
“SNS로 돈 벌고 싶으면 마사지 한 번 받고 시원하게 후기인증 올려요. 나 그걸로 팔로워 5만명 늘었잖아.”
“와, 정말요?”
“요즘은 몸매만 좋으면 여자 인생은 그냥 끝이야. 알지, 자기야?”
“아, 알죠! 저도 진짜 셀럽처럼 몸매 좋아지고 싶어요!”
“그럼 바로 긁어야지.”
“제가 학생이라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아서요.”
“대출이라는 방법도 있잖아? 신용카드 할부도 되는데? 우리 6개월까지.”
“아... 그럼 얼마나...”
“VVIP가 좀 비싸긴한데 나는 1년권 끊어서 쓰는 편이고. 우리 자기는 그럼 알바하면서 10회로 천천히 써볼까?”
“오, 그게 되는 거예요?”
“달에 160 정도해서 3개월 할부로 일단 긁어. 그 다음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6개월로 늘려줄게. 15일 이내로 재가입만 하면 되거든. 만족스러우면 추가로 더 결제해도 상관없고.”
“앗! 그러면 저 20회로 하고 그냥 6개월 할부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여기 계약서 있으니까 읽어보고 서명란에 알아서 서명해. 자기야, 나 바쁘니까 서명 끝나면 불러어. 아, 카드는 주고.”
“네, 알겠습니다.”
한서연의 사업수완은 대체로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쪽에 속했다.
반면에 김유진은 정말 열심히... 열심히... 고객을 마사지했다.
나는 열심히 마사지하는 김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발년아, 따먹히고 싶으면 열심히 마사지해라.”
“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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