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 134화 (133/173)

〈 134화 〉 134화

* * *

“이번 약은 뭔가요?”

나는 다니엘이 최원재와 콜라보를 해서 새로 만들어온 약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훗. 오일은 효율적으로 잘 쓰셨나보네요?”

대답대신 날아온 가시가 달린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옆에 있는 그레이스가 계속 의식됐던 거다. 그녀는 내가 오일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를 알고 있는 산증인. 아니나 다를까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그레이스가 대신 대답했다.

“엄청 잘 썼습니다. 오늘 하루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셨어요.”

“그렇단 말이죠? 후후... 하긴 그러시니까 이번 약도 궁금하시겠네요. 하지만 이건 준현 씨를 위한 약이 아닙니다.”

“그럼? 원장님을 위한 건가요?”

“그렇죠.”

“발기부전을 막기 위한?”

“네네.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원장님은 대체로 비밀을 유지하길 원하시는 눈치입니다만,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게 아닌지...”

“저만 알고 있을 겁니다.”

조금은 아쉬웠다.

콜라보를 했다길래 나를 위해 어떤 약품을 준비했을지 궁금했는데 최원재를 위한 약이라니.

내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자 다니엘은 피식 웃으면서 내게 약병을 건네줬다.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지만, 언젠간 요긴하게 써보십시오.”

“... 네?”

이걸 왜 나한테..? 하면서 옆에 있는 그레이스도 함께 쳐다봤다. 그녀라면 나에게 이 약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녀는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언젠간 진짜 나한테 이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 어이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딱딱하게 고추를 세울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스테미너 약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겁니다.”

“아...”

그러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지금도 스테미너 약을 먹지 않으면 쉬지 않고 섹스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약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몇 달 전부터 2호점 오픈을 예정하고서는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6시간만 근무하면 퇴근해버렸다. 최원재도 나를 딱히 건드리기 싫은지 터치하지 않았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나의 퇴근을 용인해버렸다.

그야말로 꿈만 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퇴근하고 싶으면 퇴근하고. 섹스가 하고 싶으면 함께 일하는 여자들과 진득하게 섹스도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는 거다.

뭐, 사실 꿈의 직장이야 예전부터 느꼈던 부분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돈 벌 수 있는 시스템이 대한민국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일한지 얼마나 됐다고 차도 장만했지, 집도 얻었지. 대한민국 청년들의 꿈이란 꿈은 뭐든 다 이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른 직원들이 저녁식사 시간인데도 퇴근을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퇴근할 때가 되면 치요는 교육을 끝내고 와야했다.

치요는 연두와 서아 그리고 유영이와 함께 깔깔거리며 웃으며 복도를 걸어왔다. 어떤 남자든 다 눈길을 흘릴법한 네 명의 여자가 무리를 지어서 걸어오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학창시절에는 참 예쁜 애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몰려다니곤 했다. 한 번이라도 그녀들 사이에 끼거나 그녀들 중 아무라도 사귀고 싶어했었는데 지금은 이 네 명의 여자가 나만을 바라본다.

“오빠!”

“오빠라니... 일하는 곳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으응...”

연두가 따끔하게 가르치면 치요는 그럭저럭 잘 수긍하는 편이었다. 얼마나 질 좋은 교육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치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물었다.

“교육 잘 받았어?”

“네!”

“이상한 소리는 안 했고?”

“네!”

“좋아, 잘했어.”

“히히...”

“연두야, 너도 고생 많았어.”

“네, 사장님.”

“아휴, 그 놈의 사장님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원장님 들으시면 뭐라고 하신다.”

“에이, 저번에도 어물쩍 얘기해봤는데 그냥 넘어가시던데요? 별로 상관 안 하시는거 같아요. 오히려 2호점 사장님이 보물단지라고 애지중지하고 난리시지. 요즘은 와이프 분이랑 맨날 소고기 파티래요, 파티.”

“얼마 전에 나한테도 한우 보내주셨더라.”

“... 우리 2호점 멤버들 파티는 언제 해요.”

“조만간 해야지. 치요야, 우리 성당 패밀리랑 퇴근하자.”

“네!”

“치요쌤 어디 가요?”

아차...

다른 사람들은 내가 치요랑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서아가 치요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치요, 잘곳은 있어?”

“응!”

“어디서 자는데?”

치요는 분명 어리고 일본에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잘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치요는 정말 똑부러진 대답을 했다.

“다니엘 신부님네서!”

“아... 그렇구나. 신부님... 참 좋은 분이시지...”

서아는 다니엘이 얼마나 금욕생활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후... 다행이네.’

나는 기특한 치요의 머리를 다른 멤버들 몰래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차에 탑승해서 퇴근을 할 수 있게 됐다.

“치요, 오늘 뭐 배웠어?”

뒷좌석 쪽에서 다니엘이 치요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운전에 집중하는 척 두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들었다.

“만져주는거. 만지고 누르고 뿍뿍꾹꾹.”

“아, 뿍뿍꾹꾹?”

“응.”

“괜찮아? 할만해?”

“힘들어. 근데 기분 좋았어. 여자 손이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어.”

“그래. 그게 마사지의 묘미지. 치요는 일본에서 마사지 한 번도 안 받아봤어?”

“받아봤어! 받아봤어! 막 여기도 만지고 여기도 만지고 다 했어.”

?

나는 미러를 통해 어딜 만졌다는건지 확인하고 식겁했다. 가슴도 만지고 보지도 만지고 다 했어? 시발...

“그냥 일반 마사지샵인 거야? 아니면 촬영 때 그런거야?”

“일반 마사지샵이었어! 나랑 같이 촬영하는 친구 있는데 그 친구가 소개해준 거야. 여기 만지면 어디에 좋다고. 여기 만지면 거기에 좋다고.”

“... 치요, 그건 안 좋은 일이야.”

“응? 왜 안 좋아? 나 기분 좋았는데.”

“아니... 아니야... 치요는 앞으로 다니엘의 허락을 받아야만 외출을 허락할 거야.”

“안 돼! 나 싫어! 나도 이제 밖에 돌아다니고 싶어!”

그래서 내가 운전 중에 말했다.

“습­ 치요­”

“응...”

“다니엘 말 잘 들어야지. 그래야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는 거야.”

“원하는 거? 치요가 뭘 원한다는 거예요?”

“아, 신부님은 몰라도 됩니다...”

“흐음...”

“힝... 나 나가고 싶어... 쭌 오빠.”

“응..?”

원래는 쭌짱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쭌 오빠라고 부른다. 어째 서아한테 많이 물든 듯한 느낌인데.

“나 아까 서아 언니가 같이 살자고 했을 때 그러자고 할 뻔했어. 나 서아 언니랑 같이 살면 안 돼?”

“어? 어... 그러고 싶어?”

“어차피 나 스무살 될 때까지는 섹스도 안 해줄거잖아.”

그 순간, 조수석에 앉아있던 그레이스가 눈을 부릅 뜨고 쳐다봤다.

“하하... 스무살 됐을 때도 해준다고 한적 없는데?”

“아, 맞어. 말 잘 들으면 해준다고 했어.”

이번에는 다니엘도 미러를 통해 날 노려봤다.

“그래. 그래. 말 잘 들으면! 말 잘 들으면이야. 그리고 이상한 소리하지 말기로 한 것도 잘 지켜야 한다고.”

“응. 응. 그렇게만 하면 나랑 하루종일 해주기로 약속했어.”

“그래, 성인 될 때까지 꾹꾹 참고 말 잘듣고. 그런 다음에도 오빠랑 하고 싶어지면 그때 하는 거야. 알겠지?”

“응응. 좋아. 근데 서아 언니랑 같이 살고싶어. 스무살 되기 전까지만 그렇게 할래.”

하...

서아는... 내게 절대복종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이제는 보험설계 일도 그만뒀지만, 천성은 어디가지 않는 법이라고. 그런 서아에게 치요가 잘못 길들여지면 어쩌나 싶었다.

“왜? 서아가 좋아?”

“응. 서아 언니 좋아. 나 되게 예뻐해줘. 그리고 아껴줘. 나한테 쭌 오빠에 대해서도 얘기해줬어. 쭌 오빠 학창시절 얘기 다 해줬어.”

“안 돼. 서아랑 같이 사는건 결사반대야. 절대 안 돼. 알았지? 절대 안 돼.”

“아앙. 왜.”

아양을 떠는 치요의 목소리에 살살 녹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레이스와 다니엘의 살기가 느껴졌다. 그들 몰래 치요와 그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나를 화장실에 사는 곱등이 정도로 취급하려는 모양이다.

‘젠장...’

“알았어.”

“오오!”

“서아네서 살아도 좋아. 오늘부터 그렇게 해.”

“어예! 좋앙!”

“내일 출근 시간 늦지 말고 샵으로 나와야 해. 늦잠자면 절대 안 되는거 알지?”

“알지! 알지! 좋아! 섹스!”

“아니... 그건 조심해야된다니까 그러네.”

“응응! 기분 좋아버려서 나도 모르게 그만...”

하... 나는 핸들을 돌려서 서아네 집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 비밀번호 정도는 알고 있으니 집안에 치요 하나 떨궈놓고 간다해도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대체 둘이서 내 얘기를 어떻게 할까 우려됐다.

그와 동시에 좋은 일도 생겼다.

그레이스의 오색찬란한 반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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