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4화 〉 124화 (123/173)

〈 124화 〉 124화

* * *

치요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병이라고 하는데 당췌 처음 들어보는 병이라서 믿어야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믿기로 했다.

“보지털..! 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크흠..! 뭐, 어쨌거나 마사지샵에서 일하려면 마사지를 잘해야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죠?”

“아, 네! 당연 고추털이죠! 아, 죄송해요, 진짜!”

미치겠네.

지금 내 머리가 이상해진 걸까. 아니면 세상이 뒤집힌 걸까. 그게 아니면 설마 꿈?

시발... 첫 면접자부터 이 지경이면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건지.

“일본에서 오셨으면 앞으로 지낼 곳은 있나요?”

“아, 네! 돈은 있어요! 아는 사람도 있어서 잠깐 거기서 지내려고요. 동거 좋아! 한국남자 좋아!”

“... 동거하는 사람이 남자예요?”

“아뇨, 아뇨! 예, 예!”

“그 동거하는 사람 몇 살이예요?”

“아마 서른 다섯인가?”

“어떻게 알게 됐어요?”

“어플로요. 제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팬 클럽 회장! 사까시! 사까시!”

“...”

미치겠다. 산 넘어 산이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지압하면서 말했다.

“일단 거기는 들어가시면 절­대 안 되고요.”

“왜요? 왜요?”

“위험하니까요. 그리고 그쪽 지금 미성년자잖아요? 잘못하면 큰일나요, 진짜. 제 말을 믿으셔야 해요.”

“아하! 아하! 그럼 사장님네서 자면 되겠다!”

“... 왜요. 왜 그렇게 되는건데요?”

요즘 왜 이렇게 외국인들이 우리 집에서 재워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거절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밉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니까! 사장님 나 덮칠 거야? 섹스! 뒷치기! 정액범벅!”

“안 덮치죠. 그, 그렇긴한데...”

“그럼 나 재워줄 사람이 없어요... 아무래도 그 팬클럽 회장님네서 몇일 묵어야 될거 같아요...”

“아니, 그건 안된다니까?”

“왜요! 그럼 나 책임져요! 팬클럽 회장이랑 잔뜩 섹스할 거야!”

“제발... 그러지 말아요. 사우나도 있고 근처 모텔 같은데서 숙박을 해요.”

그러자 치요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우나? 모텔? 같이 가줘요, 그럼.”

“그건...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왜요, 왜! 증말! 21세기에 안 되는건 없다고 배웠어요!”

20세기와 21세기를 전부 겪어본 나로써 머리에 털 나고 단 한 번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곤란했다. 집에 데려다 재워주지 않는다면 계속 그 노땅 새끼한테 따먹혀버릴거라고 으름장을 놨고, 결국 이 시간은 면접이 아니라 논쟁을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미친 변태 아재한테 이 여리여리한 19세 짜리를 맡겨놓을 수는 없었다. 그 그림은 상상만 해도 싫다.

“크윽!”

“사장님 울어요? 빨아줄까요?”

“됐다고요... 제발...”

“됐어요? 나 합격? 오예!”

나는 다시 또 기다려보라고 한 다음에 진아영과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진아영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한숨 한 번.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 한 번.

만약 다른 여자들한테 치요를 맡아달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19살짜리도 넘보느냐면서 경찰서 가고 싶냐고 말할 거다.

하긴 뭐... 우리 집에 데려간다면 우리말 어수룩한 다니엘, 그레이스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터. 딱히 이상한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 전에!”

나는 가장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갔다.

“우리 가게에서 일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먼저 테스트를 해봐야 겠어요.”

“히잉... 알았어요.”

오예!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치요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시무룩해했다. 그 모습이 엄청 앳되 보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딜 빨면 되나요?”

“... 아무것도 안 해도 되요. 진짜 큰일 날 사람이네.”

“한국 사회에서는 무조건 빨아야 된다고 배웠단 말이예요.”

“누가요. 누가.”

완전 틀린 말은 아닌데 치요가 말하는 빨기랑 그 빨기는 아무래도 다른 맥락인 것 같다.

“힝... 누가 나한테 거짓말 했나봐요.”

“마사지샵은 마사지를 잘하는게 맞습니다.”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다. 이 면접이 이상한 길로 퇴색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마사지... 할줄 알아요?”

“마사지! 당연! 촬영할 때 배웠어요! 대딸! 발기! 사까시!”

“그거 세 개 빼고!”

“... 똥까시?”

“그니까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아무래도 치요 씨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거 같아요...”

“아니야! 나 제대로 잘 찾아왔어요. 나 이제... 몬가... 배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랑이 하고 싶어요. 그것도 한국 남자! 한국 남자 최고! 제일 좋아.”

“... 한국 남자가 왜 좋은데요?”

“한국 남자! 예뻐요. 귀엽고 섹시해... 자상해. 그리고 애교도 많아. 일본 남자... 재미없어... 이상해... 자상하지도 않아. 애교가 없어.”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일본 남자들은 터프하거나 야쿠자같은 이미지라면 한국 남자들은 좀 더 자상하고 로맨틱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그런데 실상 들여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환상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애써 부정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럼 마사지 배울 생각이 있는 거예요?”

“네!”

“알았어요. 일단 며칠 묵으면서 두고 볼게요.”

“이잉? 나 재워주는 거예요?”

“그래요. 대신 약속 몇 가지는 지켜줘야 해요.”

나는 약속 사항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우리 집에서 지내는걸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스물 세 살이라고 대답해라. 합격했다는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흑인 아저씨를 조심해라. 흑인 아저씨가 뭘 준다고 해도 절대 피를 못 뽑게 해라.

그 외에는 상관 없었다.

솔직히 집 안에서 외국인 셋이 있을 때 치요가 보지라던지 자지라던지를 외쳐대봐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렇게 나는 퇴근 시간에 맞춰 비밀리에 치요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

들어가자마자 다니엘이 치요를 보더니 하는 말.

“오~ 야동 배우다.”

“아닌데요?”

“오! 흑인 아저씨다!”

“야동 배우 맞죠.”

“아니라니까요? 대체 어디서 이상한 걸 본 거야...”

그레이스는 나와 치요를 위해 불고기 백반을 준비해줬고 치요는 아주 조금 음식을 먹더니 맛있다고 일본말로 리액션을 하고선 몇 젓가락 먹지 않고 내려놨다.

반면에 나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치요 몫까지 다 먹어버렸고. 그레이스는 내 그런 게걸스러운 모습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더 이상해졌다.

치요라는 여동생이 하나 더 생긴 기분. 시발... 혼자 살고 있던 집은 이제 북적북적해졌다.

“근데 어디서 재우려고요? 미성년자를...”

“미성년자 아니라니까요?”

“흠... 아무튼 내 방은 안 되요.”

다니엘의 말에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된다고 해도 안 보낼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치요, 거실에서 혼자 잘 수 있지?”

“응? 어디서? 저기?”

치요는 내가 가리키는 소파를 똑같이 가리켰다.

“으, 응...”

우물거리며 대답한 치요는 한동안 시무룩하게 앉았다. 흘러내린 어깨선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불쌍하게 보여도 할 수 없다. 치요는 19살이다. 비록 동정을 유지해야하는 수녀님이랑 같이 자는 사이라지만, 치요까지 침대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녀님은 선택적으로 섹스를 참는 거고, 치요는 법적으로 금지된 상태니까.

우리는 어느 때랑 마찬가지로 샤워를 차례대로 했다.

이미 씻고 저녁식사까지 마친 다니엘은 할아버지 마냥 10시가 되자마자 문을 닫고 취침시간에 들어갔다.

치요가 왔지만, 덤덤한 동거남과 동침녀들.

그레이스가 먼저 씻고 그 다음은 내가 씻었다. 혹여나 치요가 먼저 씻고 나와서 애먼 모습을 보게 되는 불상사가 있어선 안 될 테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레이스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소리없이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샤워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래도 화장실 문을 닫지도 않고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치요가 흥얼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내용은 알고 싶지 않다. 분명 이상한 단어들을 조합해서 흥얼거리고 있으리라. 다행히 일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물줄기 소리가 끝나고 거실에 나와서 계속 흥얼거리는 치요.

그녀는 왔다갔다 하면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듯 싶더니 마침내 소파에 앉았다.

나는 치요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계속 소리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줄 몰라하는 듯 이리저리 자세를 옮기는 듯했다. 가죽소파에서 날 수 있는 특유의 찌그러지는 소리가 반복됐던 거다.

‘뭐하려는 거지?’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치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우리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치요는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곤 조그맣게 속삭였다.

“섹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열아홉살 짜리 키 작은 예쁜 아가씨는 그렇게 내 옆자리로 파고들어왔고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쳐서 침대 한가운데로 쫒겨났다.

따라서 나는 양 옆에 수녀와 미성년자를 끼고 잠을 자게 됐다.

그림의 떡이 하나 더 생긴 거다.

*

어찌저찌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레이스가 해주는 밥을 챙겨먹고, 부스스 일어난 치요도 앉혀놓고 밥을 챙겨줬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아무 일 없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설마 수녀님이 옆에 있는데 미성년자랑 했겠는가. 반대로, 미성년자가 보는 앞에서 수녀님이랑 했겠는가.

‘하, 진짜 제대로 말렸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