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36화
마사지가 끝나고, 김유진은 이연두뿐만 아니라 본인이 화를 냈었던모든 직원들에게 가서 사과하고 해명을 했다.
사과를 들은최원재는 나와 김유진을 번갈아 보면서 어리벙벙해 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천만원짜리 계약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후로는 내 이름 석자가 신앙이 되어버렸다.
김유진은 카드할부를 3개월밖에 안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닥 화를 내지 않았다.
“휴, 당분간은 컵라면만 먹고 지내야겠네요.”
들어보니 김유진은 대기업에 다니는 대리라고.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한번에 천만원 지출은 타격이 크다. 근데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다음에도 마사지 잘 부탁해요♥”
섹스가 고픈거다.
나야 뭐, 김유진 정도면 섹스하기 딱 좋기도 하고,기분 적적할 때마다 불러서 돈도 벌고 섹스도 하면 좋으니까.
근데 한 가지가 더 남았다. 김유진은 떡을 치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지겠노라고 약속했었다.
나는 손님 마중 나가는척, 그녀와 나란히 샵을 빠져나갔다.
“남자친구는 어디쯤에 있어요?”
“아마 공영주차장에 있을 걸요? 차는 안 끌고 왔는데 거기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헤어질 거죠? 안 그러면 다음에 왔을 때, 마사지 이상의 서비스는 안 해줄 거예요.”
“칫. 어차피 그런 새끼랑은 헤어질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남자랑 관계 맺지 마요. 난 누가넣던 구멍에 내거 넣을 생각 없으니까.”
“하. 되게 깐깐하게 구시네. 선생님도 참 지독해요. 어떻게 나 같은 여자한테 그렇게까지 인정사정없이 굴 수가 있어요? 회사에 나랑 한번 자려고 아등바등거리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 고추가 제일 크니까요. 그리고 내가 제일 기분 좋으니까.”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김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진짜 자뻑이 심하시네.”
“크큭. 그게 아니면 왜 이 대화를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그쪽 제 거 아니면 이제 느낌도 없을 걸요?”
“하... 틀린 말이 아니라서 반박을 못하겠어. 그쪽 잘하긴 해요. 오늘 수치 플레이도 좋았고. 나 은근히 그런거 좋아하는거 같어. 지금까지는 잘 몰랐는데 엄청 흥분되더라고요.”
그녀는 핸드백을 들어보였다. 그 안에는 본인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계약서 이면이 들어있다.
“이거 이렇게 되면 효력은 있는 거예요? 잉크 다 번졌을 듯.”
“효력이요? 없죠. 근데 그건 환불 할때만 필요한데 환불 할 일이 있을까요?”
“... 솔직히 지금같은 심정이라면 없겠죠. 하,위약금만 100만원인데 내가 미쳤다고 환불하겠어요? 50회... 그 동안 제대로 뽕이나 뽑아야지.”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샵 건물에 있는 주차장은 좁은 탓에 다 꽉차있어서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해놨다고한다. 나는 구태여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놀랄 때, 해주고 싶은 게 떠올랐으니까.
“따라와도 되겠어요? 둘이 싸움날거 같은데.”
“그러면 깽값이나 받죠, 뭐.”
“으이그... 남자들 쎈척은 할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주차장에 도착하자 입구 쪽에서 그 놈이 벽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김유진을 발견하더니 해맑은 표정으로 반긴다.
“오, 왔어?”
근데 그 말을 하는 동시에 나와 눈이 딱 마주치더니 주춤했다. 뭔가 낌새를 차린 걸까. 그도 그럴것이 김유진의 표정이 확 굳어 있었다.
“이 사람은..?”
“어. 우리 버스에서 만났던 그 남자야. 너가 주먹감자 날렸던.”
나는 놈에게 썩소를 한번 날려줬다. 아까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대가리를 발로 차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놈의 뒤통수를 세게 갈겼으니까.
“근데 왜 거기서 같이 나와? 아니... 이, 일은 어떻게 됐어?”
“일이라면 이연두 씨 엿먹일 일 말입니까?”
내가 묻자 놈은 아연실색했다.
“아, 아니... 그런 건...”
“이미 그쪽 여자친구 분이 다 실토했습니다. 아, 전여자친구가요.”
“저, 전여자친구? 자,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김유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나한테 “그쪽도 하나 필래요? 저 새끼는 나랑 안 펴주거든.” 이라길래 나도 그녀가 주는 담배를 받아서 피웠다.
“하, 이렇게 전할 생각은 없었는데 너랑 헤어지기로 했어. 나 방금 저 남자랑 빠구리 뜨고 오는 길이야.”
“... 씨, 씨발 지금 뭐라고?”
그러자 김유진이 눈을 치켜뜨고 지랄을 시전했다.
“씨발? 이 씨발새끼가 어디서 욕지거리야? 존나 못난 새끼 몇 달 만나줬더니, 니가 내 상전인줄 알았냐?”
“...”
“어휴, 줏대도 없는 새끼. 꺼져. 존나 꼴보기 싫으니까.”
“아, 아니... 자, 잠깐만... 자기야. 얘기를 좀 하자. 그, 그래. 여기 옆에 카페에서 잠깐 얘기하고 들어가자, 응?”
“내가 왜 니 자기야. 꼬추도 작은 새끼가.”
“야, 야! 너 말 너무 함부로 하지마. 그, 그리고 지, 진짜 저 새끼랑 잔 거야? 응?”
놈이 내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자 나는보란 듯이 주먹감자를 날려줬다. 이거나 먹어라, 난 니 전여친 먹을테니까.
“응, 존나 했지. 그쵸, 선생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맛있던데요?”
“이개같은 년놈들...”
“개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쪽이 이연두 씨한테 하려고 했던 일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개새끼는 당신이거든요. 아까 흡연장 앞에서 김유진 씨랑 통화하셨죠? 그리고 그 다음에 혼잣말로 뭐라고 했는지까지 내가 다 들었어요. 이연두 씨 따먹으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괜히 화풀이하려고 한거 잖아요.”
이 정보는 처음 들었는지 김유진은 놀라서 화를 냈다.
“뭐? 너 나한테는 그 이연두라는 여자가 니 친구랑 바람나서 복수하려는 거였다며. 나한테는 공짜 마사지 받을거라고 구슬려 놓고. 다 거짓말이었구나?”
“...”
“하, 진짜 이럴줄 알았다. 이 찐따 새끼.야, 빨리 꺼져. 나집 가게.”
놈은 잠시 분을 삭히다가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어쩐지 오늘따라 이거저거 다 사주더라. 휴, 솔직히내 남자친구가 정당한 복수하는 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화가 나가지고 우발적으로 저지른건데 다 거짓말이었을줄은 꿈에도몰랐네요.”
담배는 탁탁 쳐서 바닥에 털어낸 그녀는 내게 폰을 건넸다.
“전화번호 찍어줘요. 앞으로 예약도 잡아야 할테니까.”
나는 그녀의 폰에 내 번호를 찍어줬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백에 폰을 집어넣는다.
“으, 다리 후들거려.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10분이나 걸어야 되는데. 누가 섹스를 그렇게 거칠게 해요?”
“큭큭. 그쪽이 입에 계약서 물고 개처럼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읏.다시 또 하고 싶어지네. 암튼 책임져요. 나 그쪽 때문에 지속적으로 섹스해주는 사람 하나 잃었으니까.”
“그거야 그쪽 자유라니까요?”
내가 받아치자 김유진은 분통 터지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했다. 나는 어떠한 책임이 없고 이 사태는 본인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시켜줘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한 마디도 안 지려고하시지? 진짜, 웃겨! 다음에 봐요!”
“들어가세요~”
김유진은 정류장이 있는 쪽을 향해 걸었고 나는 그녀의 등뒤에 대고 손을 흔들어줬다.
한차례 폭풍이 왔다간 것 같다. 나 역시이런 일은 처음이라 긴장이 풀리자마자 참아왔던 땀샘에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일이 잘 풀린거 같아서 다행이다. 남의 여자를 빼앗는 걸 NTR이라고 하던가. 두 번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진은 아무리 봐도 싸가지가 제대로 박힌 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지 남자친구를 그렇게 차 버리는 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섹스할 때 맛이 좋다는 거거든. 그리고 밝히기는 또 얼마나 밝히는지. 수 없이 많이 분포됐던 핑크색 반점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떡칠 여자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지금까지 쌓인 내 여자들을 확인했다.
성숙미의 진아영. 내가 목숨을 한번 구해줬기에 날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수 있는 여자. 여러모로 나에게는 온갖 첫경험을 선사해주는 뉴프론티어 눈누난나.
고등학교 얼짱 출신의 김서아.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이면서 지금은 친구를 가장한 섹파. 피카츄 팬티를 즐겨 입는 골 때리는 년. 동시에 맛있기는 또 겁나게 맛있는 년.
향기 잃은 꽃이었지만, 이제 그 향기를 다시 찾은 박유영. 인터넷 쇼핑몰 피팅모델이어서 몸매만큼은 탑급.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듯. 뭐 하나 빠질게 없지만, 아직 섹스도 한번 밖에 안 해서 더 맛봐야 할 여자.
그리고 싹퉁 바가지 김유진. 이 여자는 그냥 마사지하러 올 때마다 하고 싶으면 즐기면 되는 섹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격만 좀 좋았으면 밖에서도 자주 만났을텐데.
그 외에도 아직 맛 보지는 못했지만, 곧 맛보게 될 것만 같은 파릇파릇한 여자들도 대기 중이다. 이연두, 신이설을 비롯해서 신이설이 소개해주기로 한 여자 아이돌 그리고이미경이 소개 해주기로 한 그녀의 어린 동생들.
이 정도면 입맛 대로 골라먹는 뷔페가 아닐지.
마사지를 시작한지 며칠만에 이렇게까지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는 비단 섹스할 여자만 많이 생긴게 아니다.
내가 샵으로 복귀하자 그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환불도 막았다. 불순한 의도의 고객에게 역으로 사과도 받았다. 환불을 막은 것도 모자라서 천만원짜리 VIP 계약을 따냈다.
내 수익은 바닥에서 천장을 찍었고 최원재를 비롯한 우리 샵 전체 직원들은 나를 리스펙하기 시작했다.
이연두는 따로 날 옥상으로 불렀다.
“고마워요, 쌤.”
“뭘요.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근데 괜찮아요? 아까 많이 놀랐을거 같은데.”
“진짜요... 진짜 많이 놀랐어요. 잘못하면 샵에서 짤리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제 깜냥에 수습할 수 있는 일이어서 다행이네요. 또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도와줄게요.”
내 다정한 말에이연두는 살짝 눈시울이 시큰해졌는지 턱을 들어 하늘을 봤다.
“캬~ 하늘 맑네요, 오늘.”
“구름 엄청 끼었는데요?”
“푸흐흐... 하, 암튼 고마웠어요! 이 말 하려고 부른 거예요.”
“음. 고마우면 알죠? 내일 우리 보기로 했잖아요.”
“아,맞다. 내일이지?”
그녀는 지금 막 생각난 듯 연기를했다.
“내일 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여자친구가 없어봤던 나에게 여자와 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진아영과 한강 벤치에서 키스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썸내나는 풋풋한 만남은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뭔가 요구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타이밍.
좀 소박해 보이지만, 정식으로 데이트를 즐겨볼까.
“영화 볼래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원래라면 차가웠을 늦가을의 찬바람이 지금만큼은 따사롭게 느껴졌다.
그녀도 이 분위기를 만끽했는지 기분좋은 한숨을 크게 내쉬곤 대답했다.
“영화, 좋아요. 팝콘은 쌤이 사요.”
“크큭. 네. 그리고 끝나면 나랑 밥도 먹어요.”
“아! 밥 먹고 술도 먹으러 가야죠!”
“네... 그리고 그 다음은...”
여기까지 말하자 이연두의 얼굴이 머리 꼭대기까지 빨개졌다.
친구들이랑 문자질할때는 나 한 번 따먹어보겠다느니 뭐 하겠다느니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던 그녀지만, 막상 야릇한 생각에 도달하자 창피한 모양이다.
“크흠! 그건 내일 술 먹다가 생각해요.”
“그럴까요?”
오늘도 집에 가면 꿀잠을 잘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