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15화
오늘따라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많다. 그런데 그 불청객들이 하나같이 존예녀들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만 같은 일들이었다.
옆에서 김서아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누구야?”
“어? 아는 사람.”
대충 얼버무리자 김서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질됐다. 나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장난기가 발동됐다.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진아영을 맞이했다.
“네! 저 안에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아영 씨? 연락도 안 하고. 연락 주셨으면 바로 뛰어 나갔을텐데.”
문을 열어주자 한껏 차려입은 진아영이 양손으로 뭐가 들어있을지 모를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나와 김서아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나 역시 김서아의 얼굴을 한번 훑었는데 표정이 가관이다. ‘바로 뛰어나갔을 거라고?’ 라고 이마에 써붙여놨다.
“연락했죠. 안 보시던데요.”
그러고보니 김서아에게 마사지도 해주고 뽕도 따먹느라고 폰 확인을 못했다. 아차하며 주머니에서 폰을 바로 꺼내 진아영이 보낸 비수신문자를 확인했다.
- 진아영 : 준현 씨
- 진아영 : 지금 뭐해요?
- 진아영 : 저 지금 볼일 있어서 강남쪽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준현 씨네 집 지나갈거 같아서
- 진아영 : 바쁘세요?
- 진아영 : 신경 쓰지마요.
이렇게 말해놓고 불쑥 찾아온 거다.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있자 진아영이 다시 한번 김서아 쪽을 보면서 말했다.
“예쁘시다, 누구에요?”
“그냥 친구에요. 이제 곧 갈거에요.”
“아,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으로인사하는 김서아. 진아영은 그녀의 표정을 신경쓰지 않고 내게 말했다.
“그럼 같이 나가요. 잠깐 산책.”
“후. 지금 꼴이 말이 아니라서.”
나는 땀에 젖은 티셔츠와 가벼운 마음으로 입은 반바지를 가리켰다. 화장실에서 김서아가 손으로 쑥 내려 벗긴 고무줄바지.
“전 상관 없는데...”
“그러지말고 안에 들어와서 잠깐 기다려줄래요? 금방 옷 갈아입을 테니까.”
“아, 예... 그럼. 아, 그리고 이거.”
진아영은 내게 지난번에 빌려갔던 옷가지와 슬리퍼를 건넸다.
“지난번에 잘 빌려입었어요.”
“별 말씀을요.”
옆에서 김서아의 숨소리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들렸다. 아마 지금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거다.
진아영은 김서아가 그러던지 말던지 쭈뼛거리다가 한발짝 안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은 열려있는 상황. 나는 김서아를 말없이 바라봤다. 내가 눈치를 주자 김서아는 콧방귀를 뀌면서 곧바로 신발을 신고 도도하게 걸어나갔다. 진아영과 바톤터치를 한 후에 그냥 가긴 그랬는지 뒤돌아섰다.
“나 갈게... 문자 할게. 그... 아, 안녕히 계세요?”
김서아가 진아영을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진아영은 베시시 웃어보였다. 확실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요.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안녕히 계시라고 하니까 예정보다 좀 오래있다 나가야겠네. 맥주라도 사올걸 그랬나봐요.”
진아영의 말에 김서아는 뺨이라도 한 대 맞은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사하고 후다닥 사라졌다. 진아영은잠시 그녀가 떠난 자리를 보면서 찰랑이는 머리를 귀뒤로 넘기며 물었다.
“엄청예쁘게 생겼네요. 인기 되게 많을거 같은데. 질투도 장난 아니고.”
“맞아요. 쟤 학교 다닐 때 인기 장난 아니게많았어요.”
“풋. 준현 씨가 많이 좋아했나보구나.”
“엥? 아니에요.”
“그래서 진도는 어디까지?”
“예?”
“손만 잡고 잤나봐요. 입술에 립스틱이 하나도 안 묻었네. 아니면 그새 다 빨아먹은건가?”
진아영이 부드러운 손짓으로 내 입술을 살포시 누른 후에 입꼬리까지 닦아내듯 스쳤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금 이 자리에서있었던 일을 다 들킨 듯했다. 내가 난감해하자 그녀도 웃으면서 손사래쳤다.
“장난이에요, 장난. 하여튼 준현 씨는 장난치면 표정이 굳는게 너무 귀엽다니까. 한강에서 나 구해준 사람이 맞나 싶어요.”
“자꾸 장난치면 순한 양이 짐승이 될 지도 몰라요?”
“오, 보고싶다. 계속 장난쳐야지.”
진아영은 히히하고 웃으면서 나풀나풀 침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옷 갈아입는다고 했죠? 우리 잠깐 나가요. 염치없이 마사지 해달라고 하고 싶지만,조금 있으면 출근해야돼서.”
그러고보니까 열두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원래라면 그녀는 술집에 나가 있어야할 시간. 어딜갔다 오는지,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쁜 와중에도 날 생각해줬다는 게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대충 땀을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갖춰 입은건 아니고 긴팔 라운드티에 청바지 정도를 입고 나와서 점퍼를 하나 걸쳤다.
“갈까요?”
현관쪽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말한다. 꼭 데이트 직전의 여자친구처럼 살랑거린다. 그녀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진하지 않고 딱 알맞게 코를 간질이는 비누 내음 같은 것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냄새를 쫒아서 현관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진아영이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고 함께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한동안걸으면서 마사지샵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비밀이라고 당부하며 최원재 원장을 마사지 해줬던 일이나 포핸드 마사지를 부탁한 아줌마 고객 얘기까지. 다 털어놓는 동안 그녀는 웃겨죽겠다는 식으로 크게 웃어줬다.
또각또각 구두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부드럽게 웃어주는 목소리와 꼭 감긴 팔의 감촉 때문에 방금김서아와 있었던 일은 까마득하게 잊혀져갔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언덕을 따라 쭉 내려가서 한참을 걷다보면 나와 그녀가 처음 만났던 한강 둔치가 나온다. 누가 가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차가 쌩하고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서서히 커지자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침묵은 오히려 더 애틋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게 5분을 더 걷자 한강 옆에 딸린 조깅코스까지 오게 됐다. 진아영이 벤치 하나를 손으로 가리켜서 그곳에 가서 나란히 앉았다.
“주차는 어디에 했어요?”
“요 근처에요. 어쩐지 여기까지 올거 같아서.”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너무 불쑥 찾아와서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서아랑 저 별 사이 아니에요.”
피식.
다 알고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나는 혹여나 두근대는 심장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해졌다.
“아버지한테 또 전화가 왔어요.”
“네? 설마또 돈 때문에?”
“네... 근데 이제 멍청한 짓은 그만하려고요. 어머니한테도 얘기했어요.”
“그, 그럼...”
“예. 이제 더 이상 저한테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 진짜 신기해요. 준현 씨를 만나고서 이틀 지났는데 아침마다 항상 개운하고 일 할때는 지끈거리던 머리가 안 아픈거 있죠.”
“죽다 살아나서 그런거 아니에요?”
“푸핫.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할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진아영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진아영의 얼굴이 각도가 바뀌면서 점차 내 얼굴 쪽으로 가까워졌다. 이내 쪽하는 소리가 들리고 볼쪽에 부드러운 낙인이 찍혔다.
“나랑한 게처음이라고 했죠?”
“... 네.”
“키스도?”
“... 네.”
“그래도 꽤 능숙하게 하던데.”
“제가요?”
“응. 근데 좀만 고치면 엄청 잘할거에요.”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지금 키스 해보자는거 아닌가. 때로는 직접적으로 말할 때보다 간접적으로 돌려말하는 게 더 야릇하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연습 해볼래요?”
“... 뭐, 뭘요? 키, 키스요?”
내가 당황하자 진아영이 빵하고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쳤다.
“아, 진짜 너무 웃겨요. 당황하는 얼굴 진짜 귀여워. 키스 얘기가 아니라 여자들 꼬시는거요.”
여자들 꼬시는거라니. 나는 고개를 비틀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저희 술집에는 여자들도 찾아와요. 그에 따라서 접대 선수들도 항상 준비하고 있고. 근데 그 애들 중에 에이스들은 다제가 직접 가르치거든요. 어때요, 나한테 한번 배워볼래요? 그렇다고 우리 술집에 취직하라는소리는 아니고.”
취직하라고 해도 못하겠지. 나도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알려줘요.”
그래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여성전용 마사지샵이라 그런지 여자들과의 접촉이 많고 그만큼 얘기할 일도 많았다. 벌써 샵에서 세 명의 여자를 알게 됐고 당장 내일부터는 VIP 단골손님과 단둘이 있어야 하기도 했다.
마사지하는 내내 고객이 주무시면상관없지만, 안 주무시고 계속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턱턱 막히면 그 전에 내 숨이 막혀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진아영은 내게 여자를 설레게 하는 단계별 방법에 대해 교육해줬다. 그리고 언제나 기본적으로 탑재해야 할 예의와 유머 그리고 겸손과 거만의 중간과 여자를 들었다놨다하는 외줄타기 기술 등.
그러다 내 손을 잡고 자기 귀밑에 가져다댔다.
“이건 좀 케바케이긴 한데. 여길 살짝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지그시 봐봐요.”
“아.”
“아니. 크크. 그러고 있지 말고 직접 해보라고요.”
“아, 예. 이렇게요?”
나는 그녀의 말대로 귀밑에서부터 목덜미 부분을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을 사르르 감았다.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눈을 반쯤 뜬 진아영. 나는 그 끈적해진 목소리에서 확신을 느꼈다. 이런게 꼬신다는 거구나. 지금까지 나한테 키스하려고 툭툭 밑밥을 깔았다는 생각에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아무리 속살을 섞은 상대여도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건가. 전직 모쏠아다에게는 신세계와도 같은 교육이다.
나는 아주 조금 열린 진아영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빨려들어가는 혀. 그녀의 뾰족하게 선 혀가 속수무책으로 입을 열고 들어와 안의 말랑말랑한 살을 도려내듯 핥았다. 나는 뜨끈하게 열이 오른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까슬한 스타킹의 촉감. 하지만 그 밑에 도사리고 있을 탱글한 허벅지가 부드럽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는 손의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귀밑을 간질이고 한 손으로는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로 진하고 달콤한 키스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섹스의 맛, 키스의 맛. 어감이나 느낌 자체도 너무 다른 두 가지의 맛. 둘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김서아와 섹스할 때는 결코 입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혀를 낼름거리고 입술을 열어도 입을 맞추지 않았다. 그걸 내주는 순간 애닳던 그녀는 다시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했을 거다. 키스는 남자의 이성을 잃게 만드니까.
짤막하면서도 능률 좋은 교육(?)이 끝나고 나는 진아영이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바래다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아영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 나 : 조심히 들어가세요.
- 진아영 : 하, 출근하기 싫다.
- 진아영 : 준현 씨는 내일 출근하죠?
- 나 :네.
- 나 : 저는 아직 일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노동의 고통을 잘 모르나봐요.
- 진아영 : 풉. 노동의 고통이요?
- 진아영 : 조만간 정식으로 마사지 받으러 갈게요.
- 나: 아 오시게요?
- 진아영 : 네.
- 진아영 : 이제부터 내 담당은 준현 씨 밖에 없는거 아시죠? ♡
아, 행복. 이런게 행복이라는 건가.
그런데 이 행복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었으니.
- 김서아 : 야... 강준현...
- 김서아 : 야.
- 김서아 : 야야야야야야야야야!
- 김서아 : 야 뭐하냐고!
- 김서아 : 야!!!!!!!!!!!!!!!!
- 김서아 : 주녀나...
- 김서아 : 나 할말 있다고!
- 김서아 : 전화도 안 받네
- 김서아 : 저기요? 여보세요? 이 번호가 준혀니 핸폰 맞나요?
- 김서아 : ...
- 김서아 : 그래... 알았다...
- 김서아 : 근데 그 여자 누구야?
- 김서아 :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 김서아 :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 김서아 : 준현아... 나 외국으로 여행 간다. 그 동안 잘 살고 잘 먹고. ㅠㅠ
- 김서아 : 나 죽을 수도 있대...
- 김서아 : 야야야야야야! 강준현!!!
- 나 : 니 뭐하냐?
- 김서아 : 아 됐고!
- 김서아 : 너 일하는 마사지샵 거기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