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화
최원재. 명함에 적혀있는 이름. 진아영의 은사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전화를 걸면 남자가 받을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머리부터발끝까지 여성전용 에스테틱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진아영 씨 소개로 전화를 드리게 된 강준현이라고 합니다.”
-강준현 씨? 잠깐만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언제 오실 수 있으세요?
“네? 아, 음... 언제 가면 좋을까요? 오늘 아무 일정도 없어서요.”
-그럼 식사시간 피해서 2시쯤 오시겠어요?
“2시요. 네, 알겠습니다.”
-위치는 알고 계시고요?
“음. 알아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잠깐만요! 갈 때 준비해 가야할 게 있나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짤막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준비물이요?
“네.”
-음, 손? 저희 원장님은 손을 보시거든요.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손바닥을 꺼내서 한참을 내려봤다. 순간 “손바닥”이라는 단순한 대사로 카리스마를 증명했던 평경장이 떠올랐다.
‘풋, 나는 고니고? 무슨 타짜냐?’
스마트폰으로시계를 확인하니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하. 나도 모르게 어제 일을 생각하면서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었다. 진아영이 남겨놓은 문자가 있는데 내용만 읽고 들어가서 확인은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밀당이랄까. 다급하게 확인해서 답장하면 왠지 없어 보여서. 오매불망 연락만 기다렸다는 걸 들켜버리고 싶지 않다.
-진아영 : 어제 잘 들어갔어요? 1
어제 진아영이 내게 안긴 채로내 나이를 물어봤었다. 나는 스물아홉이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특유의 웃음을지으면서 자기 나이를 밝혔는데 서른여섯 살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나서 놀랐는데 티를 안 내려고 애쓰는 모습에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었다. 그녀는 내가 많이 연하인데도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더불어 왜 스물아홉 먹을 때동안 경험이 없었냐는 얼굴 붉어지는 질문 따위도 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쓰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답장을 보냈다.
- 나 : 잘 들어갔어요. 아영 씨는요? 1
아주 잠깐 지나서 1이라고 적힌 숫자가 사라졌다. 기다리고 있다가 확인했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 진아영 : 저도요.
- 진아영 : 어제 마사지 고마웠어요.
- 진아영 : 근데 빌린 옷을 못 돌려드렸네요. 다음에 또 오셔야할거 같아요. (부끄)
나는 그 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이 돼버렸다.
- 나 : 그래야겠네요.
- 진아영 : 뭐하고 있어요?
- 나 : 아영 씨가 주신 명함 보고 전화했었어요. 2시까지 오라고 하더라고요.
- 진아영: 아! 전화하셨구나. 잘하셨어요. 분명 후회 안 할 거예요.
- 나 :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마사지 한번도 해본적 없는데.
- 진아영 : 당연히 잘할 거예요. 절 믿어봐요.
- 나 : 알겠어요. 고마워요.
- 진아영 : (화이팅)(화이팅)
요즘 애들은 ‘사귀다’라는 표현보다는 ‘삼귀다’라는 표현을 쓴다는데 지금 나와 진아영의 관계가 딱 그 정도일까. 썸보다는 사귀는 쪽에 가깝지만, 정말이지 사귀는 사이는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7살이나 연상인 그녀는 나를 남자 이상으로 보지 않는 게 딱 느껴졌다. 풋풋하고 설레는 느낌이 드는건 맞지만, 우리의 관계는 이 이상으로 진전하지 못할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살을 섞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몸의 정이라고 해야하나? 어제 첫경험을 한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떡정도 정이라고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가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 역시 그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다. 쿨한 그녀를 보면서 나 또한 쿨하게 지내보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사지로 사람 하나를 살렸다. 어쩌면 나에게 마사지라는 재능이 있는 거고 지금까지는 그걸 몰랐을 뿐이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면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이제 더 이상 아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여성전용 에스테틱이라니.
나는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검색창에 ‘머리부터 발끝가지 여성전용 에스테틱’을 검색했다.
‘사이트가 있네.’
블로그가 아니라 따로 사이트가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듯했다. 들어가보니 마사지의 효능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여성들이 마사지를 받는 동영상과 리뷰가 눈에 띄었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탈의한 여성이 중요부위만 수건으로 가리고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마사지사는 놀랍게도 남자였다. 각도 때문에 가려져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수위를 넘지 않는한에서 건전한 마사지를 하는 동영상이다. 그에 따른 리뷰도 괜찮은 편이었다. 마사지 잘 받고 간다. 안심하고 믿고 맡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등. 별점5점 만점에 평균4.5점을 줬다. 불만족했다는 평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격을 보니까 만만치 않다.
발관리 40분에 5만원이 가장 싼 가격이고 비싸게는 전신 아로마 마사지 50분 짜리가 20만원이다.
근데 더 밑으로 내려가니까 스페셜 코스라고 적혀있는란이 있었는데 아무 내용도 없이 떡하니 40만원이 적혀 있었다. 대체 얼마나 스페셜하게 마사지를 하길래 돈을 저렇게 받나 싶었다. 스페셜 마사지에 대한 리뷰도 있나 해서 봤는데 다른 마사지 코스에 비해서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다.
- 황홀 그 자체였어요.
⇒ re: 이거ㅇㅈ
⇒ re: 굵고 짧다 ㅋㅋ
⇒ re: 대체로 다 이 반응인듯
-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스페셜 코스.
⇒ re: 월급 타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순식간에 통장 순삭.
⇒ re: ㄷㄷ 이제는 무섭기까지 해요.
- vip만 받을 수 있어서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회원가입을 하셔서 마일리지를 쌓으셔야 합니다. 저 초반에 비회원으로 다녔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 re: ㅋㅋㅋㅋㅋㅋㅋ
⇒ re: 아깝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게 어디.
⇒ re: 대체 뭐길래... 궁금하네요. 이상한건 아닌지.
⇒ re: 하지마세요, 그럼. 받을사람만 받게 ㅋㅋ 공유한다고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 피팅모델인데 마사지받고 촬영하니까 표정이랑 포징 칭찬 엄청 들었어요. 옷태도 더 예뻐진거 같아요. 거울 보면서 매일 감탄감탄.
⇒ re: 피팅모델? 님 사진 인증 좀...
⇒ re: (사진)
⇒ re: 와 존예시다... 부러워요
인터넷 갤러리처럼 활발한 리뷰 게시판.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유명한 걸로 유명한 마사지샵인듯. 밑에 어떤 사람이 “체대 입시생인데 마사지 받고 체전에서 금메달 땄음” 이라고 장난조로올려서 댓글이 거의 돗대기 시장 마냥 시끌벅적했다.
‘진짜 골 때리는 여자들이네.’
킥킥거리면서 리뷰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12시 반이 훌쩍 넘어갔다.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부산하게 준비해서 나가니 얼추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는 빠르게 도착할 듯 싶었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알바 면접을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였더라. 이전에 1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3년. 그 동안 벌어둔 돈으로 꾸역꾸역 공무원 시험 준빌 했었다. 도저히 생계 유지가어려울거 같아서 1년 전에 카페 알바 면접을 봤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그때의 좌절감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카페 알바도 못 붙는데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붙을거야?
지금은 다르다. 진아영이 내마사지를 받아본 입장으로써 자길 믿으라고 했었다.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 아닌 거다.
신림역에서 내려서 도로를 따라 쭉 걸었다. 지도앱을 보면서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맞은편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판을 확인하고 건너갔다.
확실히 신식 건물은 아니다. 6층짜리 건물인데 지하 1층까지 주차장이 나 있는 모양.1층에 자동차 타이어 전문점이 있었고 2층이 바로 마사지샵. 그 위로는 전부 소규모기업 오피스텔로 이뤄져 있었다. 주요 고객층은 아무래도 건물 직장인들이나 역 근처에 사는 주거인들 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신형 아파트 입주자들일 거다.
입지는 나쁘지 않다. 사이트에서 보니까 체인점으로 서울시에 점포가 몇 개 더 있는 모양이던데 장사가 꽤 잘 될 것 같다.
이 시간에도 계단을 내려오는 고객이 있을 정도니까. 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날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듯 총총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녀의 뒤태를 봤는데 오우야... 배꼽과등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상의에 아랫배까지 가리는 롱타이즈를 입었는데 잔근육으로 꽉 잡혀있는데군살이 하나도 없다. 엉덩이가 완전히 애플힙. 남자들 눈 돌아가게 만드는 예쁜 몸매였다.
문득 리뷰 내용 중에 자신을 피팅모델이라고 소개했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런 점으로 미뤄봤을 때, 셀럽들이나 소위 말하는 인싸들이 자기 몸매 관리하려고 샵을 찾아오는 듯하다.
2층으로올라가서 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여자가 일어나서 인사했다. 신비로운 느낌을 연출한 티가 났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저 강준현이라고 합니다. 아까 전화했던...”
“강준현 씨구나.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귀퉁이에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미닫이문으로 열고닫는 방. 따로 마사지를 하는 곳은 아니고 직원들이 쉬는 공간인 듯하다. 싱크대도 있고 옆에 화장실도 딸려있다. 잘 닦인 그릇들이 건조대에 차곡차곡 넣어져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는 걸로 보아선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한 모양이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물건 하나하나가 산뜻하게 느껴졌다.
싱크대 위의 매끄러운 표면을 손끝으로 만지고 있는데 미닫이문이 열리는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강준현 씨?”
“안녕하세요.”
“나 최원재 원장이에요. 아영이한테는 얘기 잘 들었어요.”
이 사람이 명함에 적혀있던 최원재. 들어오자마자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중후한 미남 빡빡이였으니까. 거기에 덩치는 또 얼마나 큰지, 근육질로만 이뤄진 듯 옷가지 안쪽으로 꽉차 보이는 최원재는 척 보기에도 강단이 있었다.그가 멋드러진 웃음으로 싱긋 웃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좋아하시는 분이네요. 앉아요.”
최원재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나는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그는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 한번 합시다.”
스읍-
나는 긴장한 탓에 가슴을 부풀릴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근육 때문에 딱딱해 보이는 최원재의 전완근. 그리고 그가 내뿜어대는 알 수 없는 카리스마 때문에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악수.
문득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팔씨름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중에 어떤 놈은 “나는 손만 잡으면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했고 마치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돌아가면서 친구들과 악수를 하더니 자리에 앉으면서 “5승 5패네.”라고 했던또라이가 생각났다. 그놈은 실제로 1년 동안 단 한번도 팔씨름을 하지 않았다.
근데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사람은 뭔 수를 써도 절대 못 이긴다. 두손으로 넘기려 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부드럽네요. 근데 생각보다 뼈가 굵네. 눈치도 있고.”
꿰뚫는 듯한 눈빛.
근데 뭐냐. 자꾸얼굴을 쳐다봐야되는데 민머리 쪽으로 눈길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건가? 정신차려, 강준현! 잘못하면 여기서 매장 당한다!
“아영이가 그러는데 손맛이 아주 좋다고.”
“아하하. 그렇게 말했나요? 아하하하...”
정말이지 멋쩍은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손맛이 좋다니. 떡 주무르듯 주물렀던 엉덩이나 젖가슴이 생각나서 당황스러웠다.
“나도 한번 주물러볼래요?”
“네?”
최원재는호기심이 동한 얼굴이었다. 가부좌를 튼 채로 등을 곱게 피더니 상의를탈의했다. 역시나 근육질의 몸이다. 1~2년 운동해서 만든 몸이 아니라 평생을 거쳐 착실하게 만든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아, 네... 그럼...”
나는 진아영에게 했던 것처럼 일어나서 그의 뒤로 돌아갔다.
“몸이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까 한쪽 무릎을 굽혀서 견갑 사이에 고정을 시켜봐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막상 해보고 나니 꿀팁 오브 꿀팁이었다. 등받이 의자가 없는 상황이라 마사지를 하면 분명 몸이 흔들릴테니까.
나는 최원재의 드러난 어깨를 봤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어깨 주변에 붉은점들이 많이 보였다. 분명 이 점들은 나만 보이는 점들일 터. 만약 최원재가 이런 점들을 볼 수 있다면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에게 시켜서 얼른 붉은점들을 제거했을 거다. 명색이 마사지샵인데 서로서로 마사지를 해주지 않을까.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진아영의 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푸른점이 척추의 가장 밑, 요추의 도입부 부분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다.
나는 우선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 부분을 주무르면서 붉은점들을 없애 나갔다.
내가 붉은점을 없애는 순간, 다른 곳에 있는 붉은점들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돌아다녔다. 진아영의 발목을 주물렀을 때와 똑같은 반응. 그런데 그것들이 날뛰던 말던 푸른점은 가만히 있었다.
신기하다. 궁금하다. 본능적으로 호기가 동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원장님.”
“네. 무슨 문제라도?”
“제가 이쪽 주변 말고 좀 밑부분을 마사지해도 괜찮을까요?”
“...”
최원재는 고개를 돌려서 잠시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러다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몸을 엎드리고 누웠다.
“이렇게 있을까요?”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푸른점의 비밀을 알아야 했다.
나는 지레 먹은 겁을 물리고 소매를 걷었다.
호흡이 차분해진다.